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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현의 계명지조(鷄鳴之助) 曺 孝 鉉 꼬끼오! 꼬끼오! 닭이 운다. 이 소리는 여명(黎明)을 고하고 새날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序曲)의 계명(鷄鳴)이 아니며, 한밤에 횡행(橫行)하던 귀신을 쫓고 요괴를 물리치는 주력(呪力)의 계명도 아니다. 그렇다고 저 태초(太初)의 천지(天地)가 혼돈(混沌)일 때 개벽(開闢)을 위해 울어대던 천황(天皇)닭, 지황(地皇)닭, 인황(人皇)닭들의 그 계명도 아니며, 그렇다고 또 저 아득한 옛날, 신라의 왕조(王祖) 알지(閼智)의 탄생을 알리느라 계림(鷄林)에서 울어대던 흰 닭의 그 계명도 아니며, 그렇다고 또 저 나사렛 예수를 세 번씩이나 부인하던 베드로를 회한(悔恨)에 통곡케 하던 그 계성도 아니며, 그렇다고 또 저 공양미(供養米) 삼백 석에 몸을 팔고 앞못보는 아비를 홀로 두고 떠나야만 하는 만고효녀(萬古孝女) 청이로 하여금 “꼬꼬 닭아 울지 마라.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죽는다. 나죽는 것은 서럽지 않다만 앞못보는 우리 부친 누가 있어 조석공양(朝夕供養)할꼬?” 하며 효심(孝心)에 울던 그 계명도 아니며, 그렇다고 또 저 오매불망(寤寐不忘) 그리던 임을 꿈속에서나 만난 속미인곡(續美人曲) 속의 가련한 여인 을녀(乙女)로 하여금 “마음속에 품은 생각 실컷 사뢰려고 하였는데 눈물이 쏟아지니 말인들 어찌 하며, 정을 못 다하여 목조차 메는데 방정맞은 닭울음소리에 잠을 어찌 깨었던고?” 하며 독수공방(獨守空房) 외로움에 긴 한숨, 눈물짓게 하던 그 계명도 아니며, 그렇다고 또 저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이 진(秦)나라의 소양왕(昭襄王)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국경(國境)의 함곡관(函谷關)까지는 숨가쁘게 달려왔다만 거기 첫닭이 울기 전에는 열지 않는 성문(城門) 때문에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 처했을 때, 닭울음소리를 잘 흉내는 그의 식객(食客)에 의해 온통 다 따라 울던 성안(城內)의 그 계명도 아니다. 부언컨대, 여기 이 수탉의 울음소리는 저기 저 태초의 갑을동방(甲乙東方)에 해를 띄우고, 위인의 탄생을 알리고,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처한 목숨을 구하던 그런 계명이 아니며, 회한에 통곡케 하고, 효심에 흐느끼게 하고, 애련에 눈물짓게 하던 그런 계명도 아니며, 그렇다고 또 새날의 광명(光明)을 맞는 계명이라든가, 악의 정령(精靈)을 쫓는 그런 계명도 아니고, 아니며, 아니다. 다시 또 부언에 중언(重言復言)컨대, 이 수탉의 울음소리는 저기 저 계궁(鷄宮)에서 홰를 치며 울어대는 그 계공(鷄公)들의 그런 저런 울음소리가 아니라, 나의 우거(寓居) 내 침실 베갯가에서 울어대는 여기 이 핸드폰(Hand Phone)의 알람(Alarm) 소리이며, 나를 깨우고 어서 일어나라는 소리이다. 그렇거니, 여기 이 수탉의 울음소리는 저기 저, 고사(古事)에서 “군주(君主)가 국정을 게을리 하지 않도록 그 현숙한 왕비(王妃)가 ‘신하는 모두 닭이 울 때 일어나서 일하고 있다’고 말해 군주를 일찍 일어나게 했다”는 계명지조(鷄鳴之助)의 그 계명(鷄鳴)인 셈이다. 기실, 나는 기계(機械)엔 손방인데다 문명의 이기(利器)도 잘 활용할 줄을 모른다. 그러니 이 핸드폰만 해도 나는 언감생심(焉敢生心) 갖고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몇 해전, 내 생일날 우리 딸애가 선물로 사다 준 것이고, 그리되어 소지(所持)는 한다만 걸려오는 전화나 겨우 받고는 했었다. 그랬었는데 금년 생일에는 또 그 애가 새로운 제품으로 교환해 가지고 와서는 모닝 콜(Morning Call)의 알람소리까지 입력해 준거다. ‘꼬끼오’ 하고 우는 수탉의 이 계성(溪聲)을 ……. 세상 참, 편리해졌다. 늦잠을 자지 않게 깨워주는 것도 그렇거니와 계공(鷄公)으로 하여금 이 도회의 콘크리트 성(城), 침실 베갯가까지 와서 울게 하는 것도 그렇다. 그런데, 그런데, 이렇듯 편리한데도, 이렇듯 이기(利器)의 혜택을 흡족히 누리는데도, 썩 탐탁하거나, 마냥 흡족하지만은 아니 하니 이건 또 무슨 연유인지 내 모를 일이다. 혹여, 저, 시경(詩經)의 ‘계명(鷄鳴)’에 닭이 웁니다. 鷄旣鳴矣. 조회 벌써 시작됐겠습니다. 朝旣盈矣. 닭의 울음 아니라, 匪鷄則鳴, 쇠파리의 소리 아니고? 蒼蠅之聲. 동이 틉니다. 東方明矣. 조회 벌써 한창이겠습니다. 朝旣昌矣. 동이 튼 게 아니라, 匪東方則明, 떠오르는 달빛 아니고? 月出之光. 벌레들이 윙윙 나니, 蟲飛薨薨, 저도 뫼시고서 자고 싶습니 마는, 甘與子同夢, 모였다가 돌아가면, 會且歸矣, 저로 해서 미움사실까 봐 그럽니다. 無庶予子憎. 라고 말하는 시(詩) 속의 왕비(王妃) 같이 지극한 정성으로 깨워주고 달래주는 정이 고파서일까? 아니면 왕(王)처럼 나이가 들어도 버릴 수 없는 가동주졸(街童走卒)의 속성 때문일까? 일테면 마냥 챙겨주기만을 바라는 그런 철부지 어린 아이 같은 심사(心事) 말이다. 아무려나, 기계가 편리하다손 사람만이야 할 것인가. 편리한 기계도 편안한 사람만은 못하고, 문명의 이로움도 따뜻한 정만은 못하지 않은가. 어떻든지, 이 핸드폰의 계명지조(鷄鳴之助)에 의해 나는 오늘도 늦지 않게 출근을 한다. (한국수필가. 2005년 여름호) 조효현(曺孝鉉). 충북 옥천 출생.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졸업. 서울문일고등학교 교감(퇴임). 「詩와 意識」으로 문단 데뷔.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 회원. 계간「참여문학」 상임고문.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역임). 한국풍류문학회 회장(역임). 계간「문예한국」 편집 이사(역임). 수필집 : <사랑이 아픈 계절>. <풍류여정>. <나비를 찾아온 꽃>. <항아리 속의 눈먼 수탉>. 수상 : 「문예한국」 작가상. 「한국문예」 문학상. 국가수훈 : 옥조근정훈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