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詩》가 선정한 좋은 시·37 │ 복효근

《우리詩》가 선정한 좋은 시·37                                                           추천 : 복효근(시인)       * 나기철 :「 길 위」 * 나혜경 :「 묵정밭에 봄」 * 강상기 :「 죽음 앞에서」 * 윤범모 :「 페이지 터너를 위하여」 * 전기철 :「 아내는 늘 돈이 모자라다」 * 박 철 :「 버리긴 아깝고」       사단법인『우리詩진흥회』가 ‘좋은 시 읽기운동’의 일환으로 매월 본지에 좋은 시를 선정 소개한다. 시와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이 운동에 독자 여러분들의 뜨거운 관심을 부탁드린다. <편집자 주>           길 위｜나기철     널 안 보려니까 내가 아프다 그냥 그 길만 오고 갔다 길 위 가지만 남은 때죽나무 높고 그 위 섬광처럼 흰구름 떴다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 동백 잎만 수북이 내렸다                  - 시집,『 올레 끝』(서정시학)에서         시읽기   길어야 할 시가 있지만 시가 반드시 길다고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짧아서 좋은 시가 있다. 아니 어쩌면 지금의 우리 시는 좀 더 짧아져야 한다. 너무 많은 말을 하려고 하여 시가 산문화 되어가는 경향은 더구나 경계할 일이다. 김소월 의「엄마야 누나야」가 그토록 회자 되는 이유는 짧고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시가 담고 있는 세계가 어디 간단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 여기서 그 시를 논할 자리는 아니로되 매우 평범한 시어 몇 개로 이루어진 소월의 여러 다른 시편들이 넓고 깊고 풍부한 시세계를 담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안다.   나기철의 위의 시편이 그러하다. 이별의 아픔을 짧은 시편에 절절하게 담아 내고있다.“ 그냥 그 길만 오고 갔다”라고 아무렇지 않고 평범하게 진술하지만 사실은 반어적 표현이며 눙치는 표현이다. 어디 그냥 오고 갔겠나? 아직도 사 랑하고 또한 간절히 보고 싶어 갔으나 그 어떤 연유로 이제 봐서는 안 될 사람 이기에 보고 싶지만 전화도 하지 못하고 가서 문을 두드리지도 못했을 뿐이다. 그 어떤 말 못할 이유로 두 사람은 만날 수 없는 것이다. 아니 만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전화를 했으나” 이 부분에서 주체가 불분명하나 아마 그리운 저쪽에 서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안 받은” 주체는 시적 화자인 ‘나’일 것이다. 왜냐하 면 안 보기로 한 것은 나(시적 화자)이니까. 그러니 아플 수밖에. 그것도 가슴이 미어지게 아플 수밖에. 무심한 하늘만 보았겠지. 빈 나뭇가지 거무튀튀하게 보 이고 하늘은 무심하게도 말짱하다. 뜬 구름, 구름이 떴다. 섬광 같은, 무심한, 무상한, 곧 사라질, 부질없는….   돌아오는 길, 그러니까 애써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돌아와야만 하는 길, 상록수인 줄 알았던 동백잎이 우수수 진다.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르나 실제 가 아니어도 좋다. 내면의 풍경을 그렇게 노래했다 해도 좋다. 그 하강의 이미 지만으로도 슬픔을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순교하듯 떨어지는 동백꽃의 이미 지와 함께 눈물의 이미지도 겹쳐진다. 그저 담담하게 평이한 언어로 몇 줄로 줄 여 표현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나머지 부분을 독자가 채워 넣어야 한다는 점에 서 이 시가 담고 있는 이야기는 결코 간단하거나 짧지 않다.           묵정밭에 봄 ｜ 나혜경       “저, 등 함께 밀까요?”   딸 하나 없이 혼자 온 여자가 마찬가지로 딸 하나 없어 혼자인 여자를 단 번에 알아보고 등을 함께 밀잔다 불쌍함을 나누잔다     그녀의 손이 닿지 않은 곳 그녀의 묵은 허전함은 내가 밀고 내 손이 닿지 않은 곳 내 묵은 썰렁함을 그녀가 민다 묵정밭 배경이 활짝, 환해진다 굳은살 같던 쓸쓸함이 무장해제 되니 봄비에 등을 맡긴 복숭아나무처럼 등이 후끈후 끈하다 너무 가벼워 오히려 무거웠던, 등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거뜬하다     덜 마른 빗방울을 털며 목욕탕을 나오는 내 뿌리와 가지와 잎눈과 꽃눈에 도 따순 피가 돌아 거울 속 한 송이 복사꽃, 발그레, 혈색 좋다                                    - 시집, 『 담쟁이덩굴의 독법』(고요아침)에서         시읽기   우선, 너무 엄숙하거나 심각하지 않아서 좋다. 묵직한 주제까지 없어서 되겠 는가마는 시는 철학이 아니다. 더더욱 윤리도 아니다. 시는 삶이다. 생활이다.   목욕탕 풍경이다. 딸이 없는, 그래서 혼자서 대중탕에 들어온 여자 둘의 이야 기다. 나처럼 아들이 없는, 그래서 혼자 대중탕에 가서 때를 밀어야 하는 쓸쓸 함이 딸 없는 여자에게도 있나보다. 등을 미는 일은 어쩌면 ‘불쌍함’을 나누는 일이겠다. 때를 미는 일이 함축하는 의미가 간단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내 손이 닿지 않은 곳, 즉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해결되는 일이기에 그렇다. 우리에겐 스스로는 도저히 어찌해볼 도리 없는 일들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때 미는 일 이다. 여기서 이 ‘때미는 일’은 더불어 함께 풀어나가야 하는 많은 일들에 대한 은유이다.   지옥에 갔더니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더란다. 그런데 지옥사람들은 자기 몸 보다 긴 숟가락과 젓가락 끝을 쥐고 음식을 집어 제 입으로 넣을 수가 없어 늘 배가 곯아 고통을 받고 있더란다. 천국에 갔더니 지옥과 똑같은 상황인데 이 천 국사람들은 음식을 집어 제 입에 넣을 생각을 하지 않고 서로의 입에 넣어주더 란다.   더불어 살아가는 기쁨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두루두루 때를 밀었으되 등을 시원스럽게 밀지 못하면 그 아니 찜찜하던가? 아들도 해결해줄 수 없는, 남편 도 해 주기 어려운 일을 같은 처지의 다른 여자가 해줄 수 있다. 개운하게 욕탕 을 나오는 내 몸이 비로소 물기 젖은 한 송이 복사꽃만 같은 것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상생의 철학을 어렵지 않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시가 좀 무겁지 않으며 또한 어렵지 않고, 그러나 소중한 깨달음의 풍경들을 그려내주면 좋겠다.           죽음 앞에서 ｜강상기     나는 흙으로 된 주형鑄型이다 황금상을 만들기 위한 흙의 주형이다 황금상이 완성되면 흙의 주형은 부셔버려도 좋다   보아라, 태양의 뜨거운 불길이 꺼지자 밤하늘은 검은 재 속의 흩어진 작은 사리들을 보여주었다                       - 시집, 『 와와 쏴쏴』(詩와에세이)에서         시읽기   시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이 선명한 게 좋다. 주제라고나 할까. 그것이 비유를 통해 드러나는 것도 재미를 더해준다. 인간을 흙에서 왔다고 하고 흙으로 돌아 간다고도 하는 비유는 흔히 접해왔으나, 이 시에서 현세의 흙의 모습을 한 인간 은 다음 생을 주조하기 위한 주형이라는 비유가 새롭다. 황금 주물을 부어 넣으 려는가 보다. 내세에 펼쳐질 삶에 대한 낙관과 함께 현세적 삶에 집착하지 않으 려 하는 극복의 의지 또한 읽을 수 있다. 굳이 내세가 아니어도 좋다. 누추한 이 생이 다한 다음에 남게 될 세인의 평가라든가 혹은 죽은 다음에 비로소 완성될 삶의 영광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앞서 말한 이생 다음에 대한 낙관과 초극의 의지는 2연에서 다시 한 번 비유 를 통해 강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승이 태양이 비추는 낮으로, 다음 생은 밤 하늘 검은 재 속으로 비유되어 있다. 낮이 다하면 밤이 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삶과 죽음의 문제에도 자연스럽게 적용해보고자 하고 있다. 타버린 재 속에 흩 어진 작은 사리처럼 뭇별이 빛나듯 이승의 삶이 다한 후에도 그 어떤 영원불변 하는 그 어떤 것이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어쩌면 이승의 삶을 부정하는 듯해 보이나 이승의 삶에서 흙의 주형으로서 그 몫을 다 했을 때의 이야기고 보면 결코 이승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러고 나서 맞는 죽음 그 이후를 낙관하고자 하는 것 아니겠는가? 사후에 대한 낙관임과 동시에 충실한 이승의 삶에 대한 다짐으로도 읽을 수 있 다. 죽음이 삶의 총화일 수 있는 것이라면 사후는 생전의 결과일 수 있기 때문 이다.   시는 짧으나 독자가 채워가야 할 행간은 넓어서 넉넉하다.           페이지 터너를 위하여 ｜윤범모     1 똑같이 무대 위에 올라도/ 조명 받는 주인공 뒤에/ 있는 듯 없는 듯 너울대는/ 그림자 인생// 건반 두드리는 속도와 함께/ 악보를 넘겨주는/ 수준급 내조// 청중석의 박수갈채와/ 주인공의 화려한 답례 속에서도/ 장내의 유일한 목석// 슬며시 내려가야 하는 무대/ 이름 따윈 필요 없다     2 그림자를 위하여 박수를 친다// 나도 그대를 위하여/ 갈채 숱하게 만들어주고 조용히 생의 무대를 내려가고 싶다/ 한 세상 뒤로하며 비록 몸을 바꿀지라도                                 - 시집,『 노을 氏, 안녕!』(시학)에서         시읽기   시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 시인이 이 인간세상에서 하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 하게 만드는 시다. 윤동주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 모든 죽어가는 것을사랑 해야지. ”그런 것 같다. 아름답고 화려하고 강하고 무성한 것들을 노래하기보 다는 아프고, 외롭고, 괴롭고, 고달프고, 죽어가고, 무너져가고, 소외 받고, 돌 보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안쓰러운 눈빛이거나 따뜻한 손길, 안타까운 마음이 시, 시인의 마음 아닐까?   그림자 같은 인생이 있다. 여기서는 그 대비를 극대화하기 위해 무대 위에 두 삶을 올려놓고 대조하고 있다. 하나는 연주가이고 하나는 그의 악보를 넘겨주 는 페이지 터너이다. 한 사람이 성공적인 연주를 수행하고 마치기까지 한 사람 은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악보만 넘겨줘야 한다. 한 몸에서 나온 그림자와 같은 존재이어야 한다. 그의 존재감이 연주가나 청중에게 느껴져서는 안 된다.   그리고 연주가 끝난 다음 쏟아지는 박수갈채 속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바람 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의 몫이 아니다. 그러나 기실 악보를 잘못 넘겨주었 거나 실수를 했다면 그 연주는 돌이킬 수 없는 낭패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 서 그의 역할은 연주가 못지않다. (물론 연주가가 무대 위에서 연주를 하기까지 는 악보를 보지 않고도 연주할 수 있을 만큼은 되겠지만) 악보를 읽어내는 실력 도 연주가 못지않아야 되겠다. 제때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판소리에서는 명창보다 고수를 앞에 둔다. 1고수 2명창이라지 않던가? 그러나 페이지 터너, 그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있어서는 안 된다.   돌아보면 우리 주위엔 너무도 많은 페이지 터너가 있다. 돌아보라 오늘 우리 가 숨 쉬는 것도 내 숨을 다음 페이지로 넘겨주는 그 누군가 페이지 터너가 있 다. 다만 모를 뿐, 다만 금강경에서 말하듯이 ‘아상我想’에 사로잡혀 보지 못할 뿐이다.   이 시의 후반부 ‘2’는 시인이 시를 쓰게 된 동기가 드러나며 그의 삶에 대한 태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연주가가 아니고 페이지 터너를 위하여 박수를 보 내는, 이제 그가 페이지 터너가 되어 그를 위해 페이지를 넘겨주는 생을 꿈꾼 다. 시인의 역할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아내는 늘 돈이 모자라다 ｜전기철       아내는 나를 조금씩 바꾼다. 쇼핑몰을 다녀올 때마다   처음에는 장갑이나 양말을 사오더니   양복을 사오고 가발을 사오고   이제는 내 팔과 다리까지도 사온다. 그 때마다   내 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투덜거리지만 아내는 막무가내다.   당신, 이렇게 케케묵게 살 거예요, 하면   젊은 아내에게 기가 죽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만다.   얼마 전에는 술을 많이 마셔 눈이 흐릿하다고 했더니   쇼핑몰에 다녀온 아내가 눈을 바꿔 끼라고 한다.   까무러칠 듯 놀라며 어떻게 눈까지 바꾸려고 하느냐, 그렇지 않아도 걸음걸 이가 이상하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린다고 해도   그건 그 사람들이 구식이라 그래요, 한다.   내 심장이나 성기까지도 바꾸고 싶어 하는   아내는 늘 돈이 모자라서 쩔쩔맨다.   열심히 운동을 하여 아직 젊다고 해도   아내는 나를 비웃으며 나무란다.   옆집 남자는 새 신랑이 되었어요. 당신은 나를 위해서 그것도 못 참아요, 한다.   시무룩해진 아내가 안쓰러워 그냥 넘어가곤 하는데   아침 일찍 아내보다 먼저 일어나   거울 속에서 내 자신이었을 흔적을 찾느라   얼굴을 아무리 뜯어보아도 내 모습이 없으니   밖에 나가면 검문에 걸릴까 두려워 일찍 귀가하곤 한다.                                          - 시집, 『 로깡땡의 일기』(황금알)에서         시읽기   한때 유행하던 대중가요가 있었다.“ 바꿔 모든 걸 다 바꿔…” 이 대목이 자주 반복되던 노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이 노래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자본의 구호와 어쩌면 그리도 딱 맞다. 절약이 미덕인 시대는 오래 전에 갔다. 소비만이 지고지선의 미덕이다.“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현대인의 많은 사람들이 소비함으로써 존재하는 삶의 양태를 보이게 된 지 오래다.   일찍이 에리히 프롬은 ‘지금 여기’에 주어진 삶을 창조적으로 살아내는 ‘존 재형’으로서의 삶의 양식과 부와 명예와 권력을 소유함으로써 행복을 성취하려 는 바람직하지 못한 ‘소유형’으로서 삶을 구분지어 현대인의 삶의 양태를 분석 한 바 있다. 후자의 경우 인간 내면에 잠재해 있는 욕망에 자본이 불을 지펴 상 승작용을 일으킨다고 할 수 있다. 자본은 스스로의 증식을 위해 사람들에게 끊 임없이 바꾸기를 요구하고 있다.   아직 충분히 사용가치가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케케묵은 것(구식)”은 미 덕이 아니다. 악덕이고 부끄러움이다. 시적 화자의 아내는 다그친다. 시적 화자 를 겉으로 변모시키는 데에서 모자라 “눈을 바꾸기”를 요구한다. ‘ 보는 눈이 바 뀌다’라는 말에서 보듯이 눈을 바꾼다는 얘기는 의식을 바꾼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물질적 풍요와 화려한 외장 앞에서 인간은 근본에 대한 물음을 생략하거 나 망각하거나 건너뛴다. 비판의식은 여기서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아내는 “내 심장과 성기까지도 바꾸고 싶어”한다. 아마도 모든 경쟁자를 쓰 러뜨리고 살아남을 강한 심장과 성적인 욕망을 최대한 만족시켜 줄 강한 성기 를 요구할 것이다. 그러면서 아내는 옆집 남자와 나를 비교하기에 이른다. 옆집 남자는 새신랑이 되었다고 말이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나이 먹어 늙어가는 것 이 순리일 텐데 보톡스를 맞든 성형수술을 하든 자꾸만 젊어지는 것을 자랑으 로 여긴다. 그렇다고 이러한 ‘소유형의 인간’이 행복한가 하면 그런 것 같지 않 다. “ 아내는 돈이 모자라다.”끝없는 결핍의 연속이다.   이 속에서 그나마 시적 화자는 “거울 속에서 내 자신이었을 흔적을 찾느라/ 얼굴을 아무리 뜯어보”는 노력을 한다. 그러나 이미 “내 모습이 없”다. 정체성 을 잃어버린 것이다.   자본의 전방위적인 공격 속에서 그나마 자기정체성을 지키려 거울을 보며 “내 자신이었던 흔적을 찾”아 보려는 노력이 어쩌면 이 시대의 시 쓰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버리긴 아깝고｜박철     일면식 없는 한 유명 평론가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서명한 뒤 잠시 바라보다 이렇게까지 글을 쓸 필요는 없다 싶어 면지를 북 찢어낸 시집   가끔 들르는 식당 여주인에게 여차여차하여 버리긴 아깝고 해서 주는 책이니 읽어나 보라고   며칠 뒤 비 오는 날 전화가 왔다 아귀찜을 했는데 양이 많아 버리긴 아깝고   둘은 이상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뭔가 서로 맛있는 것을 주고받은 그런 눈빛을 주고받으며                     - 계간《시에》(2009년 겨울호)에서         시읽기   이 시를 읽으며 씁쓸한 웃음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연은 내 얘기이 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시집을 내고 일면식 없는 평론가에게 시집을 보냈던 기 억이 있다. 평소에 좋아했던 사람도 아니었고 나에게 책을 보내주었다거나 관 심을 가져주었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다. 다만 그가 ‘유명한 평론가’이기 때문 이었다. 내 시집도 관심을 가져달라. 당신 꽤나 영향력이 있을 테니 내 시집을 읽고(받고) 나의 존재감에 관심을 가져달라. 그리고 가능하면 내 시가 널리 읽 혀지는 데 일조해 달라. 내가 시단 활동하는 데 힘이 되어 달라. 뭐 이런 비슷한 바람을 담아 보낸 것이다. 좋아하는, 존경하는 시인들에게 시집을 보낸 것과는 사뭇 그 의도가 다를 수 있겠다.   그것을 굳이 나쁘게 해석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평론가도 그의 정보력이 미 치지 않아 좋은 작품을 대할 기회를 놓친다면 필자가 그 기회를 직접 제공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보면 얄팍한(?) 속셈이 조금이라 도 없지 않기 십상이다. 그것도 ‘일면식 없는 유명한 평론가’이고 보면 말이다. 여기서 시인의 자의식이 발동한다. “이렇게까지 시를 쓸 필요는 없다”싶은 생 각이 그것이다. 이러한 고민을 하는 시인이 이렇게 있는 모양이다. 아마 많겠 지. 진솔하다.   “버리긴 아깝고”라고 진술한 시인의 언술이 가슴을 찡하게 한다. 어떤 시인 들은 유명 메이저 출판사에서 시집을 내고 몇 판 몇 쇄를 찍었네, 인세가 어떻 네, 문학상이 어떻네, 모 문예지 월평에 오르내리네.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몇 위에 올랐네 따위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내 시집은 참 초라하기 그지없고 시 쓴 다고 용쓰는 내 모습이 처량하기까지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음에 비춰 “버 리긴 아깝고”라는 말이 아프게 다가왔다.   물론 이 시에서 식당 여주인이 “버리긴 아깝고(아귀찜)”라고 한 말은 시적 화 자가 한 “버리긴 아깝고(시집)”라고 한 것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고마움과 감 사함, 따뜻함이 배어 있는 겸손의 말일 것이다. 시인으로 하여금 가슴 더운 시 를 쓰게 만들어주는 격려이기도 할 것이다.   시를 써서 그것이 학문적 가치를 부여받고 평론가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는 다면 그것 또한 좋은 일일 것이다. 시가 지닌 가치가 저렇듯 여염집 아낙네를 비롯하여 수많은 필부필부들의 가슴에도 전해져 매콤한 아귀찜으로 돌아와도 좋으리라.            복효근시인 * 1991년《시와시학》으로 등단. * 시집『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누우떼가 강을 건 너는 법』『목련꽃 브라자』   『마늘 촛불』등. 편운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수상. * bokhg62@hanmail.net / <A href="http://www.boksiin.com/">http://www.boksiin.co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