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글이 지니는 논조가 이미 특정한 사상을 통해서 세계를 보는 것입니다.
우선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 미리 말씀 드립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적 발달이 좋은 현상이라고 제가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그렇게 나쁘기 때문에 간디의
‘대지에 뿌리박고’ 살아온 사람들의 공생의 지혜로 "돌아가려는 철저히 비타협적인 자세"를
대안인 것처럼 글을 쓴다면 더 알아 볼 흥미가 생기지 않는군요.
흡사 서구문명은 착취의 문명이고, 대지에 뿌리박고 공생하는 중세 동양의 삶의 형태가
천국같았다고 말하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착취하고, 짐승같다고 해도, 자본주의로 인해서 오늘날 인간이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이르렀습니다. 과학의 발달에 따른 이익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며칠 전에는 김종철님의 인터뷰를 읽었습니다.
그 인터뷰를 지금 금방 다시 찾지를 못했는데,
거기에 분명하게 말했더군요.
티벳인지, 남아메리카의 어디인지의 옛공동체문화를 거의 모범적 사례로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가난하게 공동체적 삶을 살던 사람들도
자본주의의 물질을 맛보고 나면 그 소박한 삶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오랜 미래'라는 책이 잘 팔리니 큰 출판사와 번역권 계약을 했다는 점 역시
인간의 물질에 대한 그런 약점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그 저자가 정말 소박한 삶을 자신 스스로에서 흘러나오는 정신에서 행하는 사람이라면,
번역권 계약을 김종철님과 했을 것입니다.
비바람님이나, 김종철님께서 생각하는 것처럼 자본주의가 일방적으로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물질적으로 살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들이 자발적으로 물질을 좇아 갑니다.
그야말로 착취의 먹이가 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중국의 산업화를 보면서 소름끼치게 느낍니다.
아니, 뭐 그렇게 멀리 갑니까? 한국 사회가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잘 살아도 더 잘 살려고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겠다는 사람들이 과반수 이상이라면서요.
그것이 현실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인간의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을 타개해 나가기 위해서 과거의 소박한 공동체나,
대지에 뿌리박고 살아 온 사람들의 공생의 지혜로 "돌아가려고" 한다면,
글쎄요. 인지학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루시퍼적 생각이지요. ^^
제가 지난 20년간의 한국의 대안실상을 드려다 보면서 느끼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어느 시기까지 역사가 참으로 법칙성에 따라 발달된다는 점입니다.
지난 20년간 한국의 대안적 운동들이 지난 200년간 유럽의 산업화된 나라에서
일어났던 것과 너무 유사합니다. 단지 짧은 시간에 압축되어서
모두 섞여서 한꺼번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어떤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소박하게 살았고 좋아 보이니
산업화를 부정하고 그렇게 살고자 했던 운동이
유럽에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엽까지 굉장히 많았습니다.
마지막 절정이 바로 히피 운동이었고, 여기서는 68세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김종철님의 글을 굳이 곱씹어 읽지 않아도 사고의 논리는 서양문화에서 온 것입니다.
아이러니컬하지 않습니까?
서양문화를 비판하는 사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양에서 발생한 사상으로 생각하고, 서양에서 이미 발생했던 식의 문화운동을 한다는 것이.
이런 류의 글, 여기 어디에 실리면 시대착오적 68세대라고 논의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의 법칙성에 따라, 어느 사회든, 산업화된 사회의 한 구석에서 생기는 것이고,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과도기적 현상이지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에게는 이런 식의 문제고찰은 너무 구태의연한 태도입니다.
문제를 지적은 하지만(그것도 편파적인 입장에서)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구태의연하다는 것입니다.
*
근대적 재화와 서비스는 모두 ‘희소성’을 본질로 하는 자원을 기초로 해서 생산, 유통되는 상품으로서, 대부분 점점더 갈수록 전문가의 개입이 없이는 소비하거나 접근할 수 없는 시스템 속에서 보급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직업적 법률가의 도움 없이 자신을 변호할 수 없고, 교사의 도움 없이 배울 수 없으며, 의사의 조언 없이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돌볼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의 지혜와 능력이 위축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사회복지와 보험제도가 발달할수록, 교육이 널리 보급되고, 학력이 높아질수록, 병원이 많아지고, 의료기술이 첨단화할수록 자신과 이웃을 돌보고, 스스로 배우고, 사람을 사귀고, 고통을 견디고, 질병과 노화를 통해 삶의 궁극적 의미를 깨닫는 ‘삶의 기술’은 날이 갈수록 퇴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상품의 형태로 혹은 전문가의 개입을 통해서 주어지는 이러한 ‘혜택’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희소’ 자원을 기초로 한 것인 한, 우리는 부단히 돈을 벌기 위해서 혹은 자격을 얻기 위해서 타인들과 끊임없이 경쟁하거나 피나는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도스토예프스키가 일찍이 간파했듯이, 근대적 삶이란 불가피하게 “나의 행복을 위해서 타인의 불행을 전제로 하는” 삶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근대적 삶에서 실업, 빈부격차, 성차별, 사회적 불평등, 농민문화의 몰락은 이 체제의 불가결한 요소로 기능한다. 그것은 마치 현대 도시의 화려한 외관을 장식하는 고층빌딩의 이면에 누추한 슬럼가가 반드시 공존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고층빌딩이 전형적인 근대 건축인 것과 마찬가지로 슬럼도 역시 철저히 근대적인 산물인 것이다.
서구문명으로부터의 충격에 노출되기 시작한 19세기 중엽 이래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을 지배해온 것은 대체로 적자생존의 냉엄한 법칙에 따라 강자는 살고 약자는 죽는다는 우승열패(優勝劣敗)의 논리였다. 메이지 시대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을 대표하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유명한 탈아입구(脫亞入歐)론은 어떻게 해서든 일본이 ‘야만적’인 혹은 ‘미개한’ 아시아를 벗어나서 ‘문명’적인 서구화에 도달하지 않으면 일본의 독립을 유지할 수 없다는 긴박한 위기감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이 논리는 일본의 성공을 위하여 조선을 침략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정한론(征韓論)으로 그대로 연결되는, 근본적으로 제국주의적 논리이기도 했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제국주의적 측면이 결코 이 사상의 비본질적이거나 우연적인 요소가 아니라, 서구적 근대를 향해 가고자 열망한 후쿠자와의 진보사상, 문명관과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우승(優勝)은 열패(劣敗)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고, 근대적 국가의 성립에는 식민지 혹은 식민지적 사회관계의 존재가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드러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의식했든 안했든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도 대체로 이와 같은 제국주의적 문명관, 적자생존의 논리를 좁게는 자신의 처세의 원리로, 넓게는 민족의 생존의 방책으로 받아들였고, 이 전통은 아마도 지금까지도 근본적으로 흔들림 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국익이니 국부(國富)니 하는 말들이 별반 저항 없이 시도 때도 없이 통용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부강한’ 선진국으로 가고자 하는 이러한 욕망으로 지금 이 사회가 끓어 넘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왜 우리가 ‘선진국’이 되어야 하는가? 선진국이 된다는 게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지금 여기’가 아니라, 어떤 다른 ‘높은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정말 옳은 생각일까?
일본의 작가 아쿠타카와(芥川龍之介)의 작품에〈거미줄〉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사내가 지옥 속에 빠져 너무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석가모니 부처가 그걸 잡고 극락으로 올라오라고 거미줄을 내려주었다. 그런데 이 거미줄을 타고 올라가던 사내는 자기 다리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동료들을 떼어놓으려고 심하게 요동을 쳤고, 그 바람에 거미줄이 툭 끊어져 지옥의 심연으로 도로 굴러떨어질 수밖에 없었다…이 간단한 이야기의 다분히 교훈적인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지옥과 극락이라는 이분법에 기초해 있는 이 이야기의 기본구도이다. 다시 말해서, 지옥은 극락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고, 극락은 지옥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이런 구도 속에 처해 있는 한, 인간은 늘 보다 더 안락한 극락으로 가고자 하는 신경증적인 강박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고, 자유와 행복의 삶은 늘 먼 미래의 가능성으로만 주어질 뿐이다.
이 우화(寓話)에서의 지옥과 극락을 우리는 야만과 문명, 혹은 후진국과 선진국으로 바꾸어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럴 때, 문명과 야만, 선진국과 후진국이란 실체는 원래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다만 서구적 근대로 인해 형성된 개념이며 허구일 뿐이라는 사실이 좀더 분명해진다.
실제로, 따져보면, 오늘날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사회는 자연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수탈에 근거한 테크놀로지와 시스템에 의하여 유지, 관리되는 사회이다. 따라서 그 사회의 풍요와 안락은 진실로 인간다운 자유와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풍요와 안락의 삶은 인간간의 유대를 상실하고, ‘대지(大地)와의 접촉’이 단절된 깊이 소외된 삶이다. 그런 반면에, 이른바 후진국이라고 하는 사회는 물질적인 자본과 기술의 결여에도 불구하고, 인간다운 삶에 보다 본질적인 의미를 갖는 ‘사회적 자본’―가족, 친구, 이웃, 공동체―을 풍부히 소유하고 있고, 식민지적 착취에 따른 손상과 파괴에도 불구하고, 자연세계와의 교감이 아직도 살아있는 토착적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후진국에서의 대부분의 민중의 삶은 호혜적 관계를 원리로 하는 ‘공생공락의 가난’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말 문제는 후진국의 ‘빈곤’이 아니라, 선진국의 ‘풍요’임이 분명하다. 기후변화가 단순한 가설이 아니라 가공할 현실로서 나타나고 있는 시대에 낭비와 파괴가 시스템 속에 구조화되어 있는 ‘선진국형’ 생활방식을 전지구적으로 확대한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자살행위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전체 인류가 결코 고르게 나눌 수 없는 그러한 생활방식을 특정 지역, 특정 사회가 독점적으로 고수한다는 것은 비윤리적인 행위임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오랫동안 후진국 지식인들 대다수가 서구의 모범을 따라 근대화, 산업화에 매진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데 반해 간디는 이미 20세기의 초두에 서구문명에 내재한 근원적인 폭력성과 파괴성을 꿰뚫어보고, 이 문명이 확대된다면 그것은 인류에게 언젠가 저주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리하여, 예를 들어, 동시대의 저명한 시인 타고르가 동서양 문명의 이상적인 융합이라는 방식 속에 인도와 아시아와 세계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고 있었던 것과는 반대로, 간디는 서구적 근대문명은 어디까지나 극복의 대상이지 적응이나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관점을 철저히 견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간디의 관점에서 볼 때, 서구 근대문명은 무엇보다도 배타적인 자기중심주의에 토대를 둔, 영성(靈性)이 결여된 문명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참다운 의미의 ‘문명’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미국의 인디언 지식인으로 현재 뉴욕주립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존 모호크는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과 지배 밑에서 토착민이 취할 수 있는 자세를 ‘착한 신민(臣民)’ ‘나쁜 신민’ ‘비신민(非臣民)’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한 바 있다. 다시 말해서, 억압의 질서에 순응함으로써 안락을 추구하는 ‘착한 신민’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 억압에 반대하여 투쟁하는 ‘나쁜 신민’ 역시 힘의 논리에 대한 숭상에서 해방되어 있지 않는 한, 지배자의 것과 같은 게임의 법칙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근본적으로 노예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존 모호크의 생각처럼, 참다운 해방의 길은 억압적 구조와 논리 그 자체를 넘어가는 자주적인 비협력의 자세를 통해서만 구축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마도 그 전형은 영국산 직물에 대한 보이콧이라는 형식으로 인도 민중의 자주적, 협동적 삶의 바탕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여하한 권력추구도 철저히 배제했던 간디의 방식일 것이다.
간디의 방식은 서구 근대문명에 대한 순응도, 단순한 반대도 아니었다. 그것은 배타적인 탐욕과 약자에 대한 착취 없이는 한 순간도 존속할 수 없는 근대적 삶의 방식을 뛰어넘어 오랜 세월 ‘대지에 뿌리박고’ 살아온 사람들의 공생의 지혜로 돌아가려는 철저히 비타협적인 자세였다. 간디의 궁극적 메시지는 내가 진실로 자유롭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남들의 자유와 행복을 인정해야 하고, 그것은 결국 우리 각자가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선택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절제와 소박함 속에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덕목, 즉 ‘어울려 삶’의 토대가 형성된다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