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1932년 캐나다인 선교의사 셔우드 홀에 의해 처음 씰이 발행되었습니다. 그 이후
관심이 있는 인사들에 의해 소규모로 씰 발행 및 모금운동이 이어져 오다가 대한결핵협회 창
립 당시인 1953년부터 본격적으로 크리스마스 씰 운동이 실시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
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씰 도안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932년부터 2007년까지의 씰 도
안을 한번 소개해 볼까 합니다. 오늘은 첫 시간으로 1930년대 씰 도안을 한번 살펴보겠습니
다.
* 1932년 - 우리나라에서 발행하는 최초의 씰 도안은 한국인에게 좋은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그림이어야 한다고 셔우드 홀은 생각했다. 그래서 임진왜란 때 용감히 왜군을 물리친 거북선
을 소재로 하였으나 당시 거북선의 그림으로는 일제치하였으므로 당국으로부터의 발행 허가
가 불가능하리라는 한 일본 외교담당자의 암시를 받고 마음에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서울
의 상징물인 남대문으로 소재를 바꾸어 발행하였고, 1937년에 재판되었다. 첫 해의 씰 모금
총액은 당시 화폐로 850원이었다.
* 1933년 - 지난 해 1932년에 소년 · 소녀가 성탄절 노래를 부르는 도안으로 발행한 미국의
씰을 연상하여 캐롤을 부르는 한국의 소년 · 소녀를 소재로 하여 발행하였다.
* 1934년 - 발행 씰의 도안은 영국 왕실 가족 그림을 그리던 여류 화가인 영국의 엘리자베스
케이드(Elizabeth Keith)가 그렸다. 소재는 어머니가 어린이를 보호하듯이 결핵병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것을 묘사한 추상적인 표현이었다. 당시 구세요양원에 구성되어 있던 크리스
마스 씰 위원회의 김병서 집행위원이 서울에 와서 씰 모금을 위해 활동하였다는 1934.11.9
조선일보 기사가 있다.
* 1935년 - 크리스마스 씰 발행 4년째에 들어서면서, 씰과 결핵예방에 대한 홍보에 주력하였
던 시기이다. 씰은 최신영씨가 널뛰기를 하는 장면을 소재로 도안하였다. 일부 기록에 1935
년 씰 도안을 김기창씨가 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그것은 착오이며 다른 몇 가지 자료에 의하며
Mr. S. Y. Choi가 했다는 기록이 분명히 있다.
*1936년 - 1936년도 크리스마스 씰은 1934년도의 아기를 업은 여인을 그렸던 영국의 여류
화가 엘리자베스 케이드(Elizabeth Keith)가 두 번째로 도안하였는데, 도안은 연싸움을 즐기
는 소년을 바라보고 있는 소녀의 장면을 소재로 하였다. 특별히 우리나라에서 씰이 처음 발
행된 지 5년째를 맞이하면서 몇 가지 홍보자료와 엽서 등을 발행하여 씰 운동 확산에 많은
노력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 1937년 - 크리스마스 씰 판매 대금은 첫째 결핵예방과 홍보자료, 둘째 무료진료와 환자의
후원, 셋째 결핵에 관한 검사와 연구에 사용되고 있음을 강조한 씰 첩 표지가 인상적이다. 1
937년 씰은 운보 김 기창 화백이 도안했다. 그는 네 살 때 앓았던 열병으로 농아가 된 유망
한 젊은 조선의 예술가였다. 그때 김 기창 씨는 24세의 나이로 제 16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하여 일약 유명해졌다. 소재는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이 즐겨하는 팽이치기를 묘사하였
다.
* 1938년 - 1938년도의 크리스마스 씰은 팔각정을 배경으로 하여 소년들이 제기차기 놀이를
하고 있는 소재로 운보 김 기창 씨가 1937년에 이어 두 번째로 도안을 하였다.
* 1939년 - 산천이 푸름으로 둘러싸인 길목의 고목에서 처녀들이 그네뛰기를 즐기고 있는
장면을 소재로 도안한 1939년도 씰은 그 당시 조선에 건너와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호주의
장로교 목사인 에스몬드 W.뉴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9년도 씰 도안에 대해서는 앞
으로 규명이 되어야할 의문점이 있다. 씰 도안의 그네 하단의 풀 속에 필기체로 Esmond W.
New 라는 이름이 좌측 하단 나무 옆에 가로로 류 영완이라는 이름과 낙관까지 있다. 이는 우
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이 한국식 발음표기로 한글이름을 즐겨 썼으므로 Esmond도 한국
식 이름 류 영완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출처: 따스아리(보건복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