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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8월 13일 화요일
[(녹)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홍] 성 폰시아노 교황과 성 히폴리토 사제 순교자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에게 꿀처럼 입에 단 두루마리를 입에 넣어 주시며, 이스라엘 집안에게 당신 말씀을 전하라고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 두루마리를 내 입에 넣어 주시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2,8─3,4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8 “너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을 들어라.
저 반항의 집안처럼 반항하는 자가 되지 마라.
그리고 입을 벌려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을 받아먹어라.”
9 그래서 내가 바라보니, 손 하나가 나에게 뻗쳐 있는데,
거기에는 두루마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10 그분께서 그것을 내 앞에 펴 보이시는데, 앞뒤로 글이 적혀 있었다.
거기에는 비탄과 탄식과 한숨이 적혀 있었다.
3,1 그분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네가 보는 것을 받아먹어라.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집안에게 말하여라.”
2 그래서 내가 입을 벌리자 그분께서 그 두루마리를 입에 넣어 주시며,
3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배를 불리고 속을 채워라.”
그리하여 내가 그것을 먹으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
4 그분께서 다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 집안에게 가서 그들에게 내 말을 전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5.10.12-14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10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마태오 복음서 18장은 교회의 삶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읽은 어린이에 관한 말씀 다음에는 그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오고, 그다음에 다시 잃어버린 한 마리 양에 대한 말씀 다음에는 형제가 죄를 지으면 깨우쳐 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니 여기에서의 문제는, 나 혼자만 죄를 짓지 않고 나 혼자만 구원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백 마리 가운데 나를 포함한 아흔아홉 마리가 길을 잃지 않고 집으로 잘 돌아갔다고 하여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받아먹은 에제키엘에게도, 동족에게 가서 경고하라는 사명이 주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에게, 그가 경고를 하지 않는다면 악인이 죽은 책임을 그에게 묻겠다고 하십니다. 오래전 일이 떠오릅니다. 어떤 신부님과 꽤 먼 길을 가던 중에, 작은 휴게소 같은 가게에 들렀습니다. 가게에 있던 자매님은 자기가 오래전부터 냉담 중이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그 자매님을 끈질기게 설득하여 결국 고해성사를 보게 하였습니다.
그때 저에게는 솔직히 신부님이 너무 강요하는 것처럼 보였고, 자매님은 그 자리에서 성사를 보아도 내일부터 다시 냉담을 할 텐데 괜히 마음에 걸리는 일을 더 만드는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십 년도 더 지난 그 일이 왜 이렇게 뚜렷이 기억날까요? 그 일을 저만 기억하고 있을까요? 그 자매님도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요? 혹시 그 뒤에 또다시 냉담하였다 하더라도, 그날의 기억은 이 자매님을 계속 교회로 부르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그 신부님의 모습에서 저는 양 한 마리를 찾는 목자를 보았습니다.(안소근 실비아 수녀)
이 세상은 언제나 호기심 천국이요 즐길 거리로 충만한 멋진 무대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여름 신앙 학교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지막 차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하루 쉬는 날이라 만사 제쳐 놓고 ‘방콕’을 하며 밀린 잠을 실컷 잤습니다.
그런데 웃기는 일이 생겼습니다. 잠을 자는 동안 본인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아이고 아파라! 아이고 쑤셔라!”
잠을 자면서 신음 소리를 내는 것이 정말 오랜 만이었습니다. 오래전 주택공사 현장에서 막노동을 세 달 정도 한적이 었었는데, 일 시작하고 일주일 내내 밤마다 그렇게 앓았습니다. 온 몸이 쑤시고 아프고, 그런데 딱 일주일 지나니 적응이 되더군요.
요즘 산업 현장에서 땀흘리며 일하시는 노동자들, 참으로 고생이 많으십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힘든 때 인데, 두꺼운 작업복에 작업화, 작업모에 안그래도 더워죽을 지경인데, 철판 위는 복사열로 달구어져 계란 프라이를 해도 될 정도입니다.
다시 한번 현장 근로자들의 노고를 체험할 수 있게 해주신 주님께 깊이 감사드리는 요즘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찐하게 체험하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덥다 덥다 하면 더 덥습니다. 왜 나만 이래야 해, 하고 불평불만 하며 더 힘듭니다.
이왕 일 하는 것, 짜증내지 않고 환하게 웃으면서, 여름에는 땀 흘리는 것이 정상이지, 건강에도 좋고 다이어트에도 좋다는 생각으로 기쁘게 일하면, 그것이 성덕으로 나아가는 길이요, 주님께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이 세상을 너무 복잡하게, 너무 인상 쓰면서 살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어린이처럼 단순하게, 철부지처럼 희희낙락하면서 재미있게 살아가라고 당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 3-4)
인생의 고수는 사실 매사를 재미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만사를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만사를 흥미진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큰 고통이나 시련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며, 이 고통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밋밋한 내 일상에 자극을 주시는구나, 나를 재미있게 해주시려나 보다 하고 생각해야겠습니다. 고수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 세상은 언제나 호기심 천국이요 즐길 거리로 충만한 멋진 무대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제가 태어난 곳은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입니다. 앞에는 안덕 저수지가 있고, 뒤에는 높은 산이 있습니다. 집 앞에는 채석장이 있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돌을 캐는 일은 없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신 선산이 있고, 집안의 장손이 있어서 부모님을 모시고 가끔 다녀왔습니다. 말 그대로 해님만, 달님만 알아준다면 만족한다는 두메 꽃처럼 깊은 산골입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아랫마을에 쉼터가 생겼습니다.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이라 아픈 사람들이 요양차 내려왔습니다. 입소문이 나서인지 외지에서 건강 회복을 위해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예전에 도시는 정주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교통이 발달하고, 도시화 되면서 도시의 형태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사망하는 사람이 출생하는 사람보다 적어지면서 도시의 기능과 모습도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 도시는 상주인구를 기준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외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과 잠시 머무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합니다.
강남이 개발되면서 사람들이 강남으로 몰렸는데, 요즘은 강북으로 사람들이 몰린다고 합니다. 강북만이 가지고 있는 정과 문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강북에는 고궁이 있고, 한옥이 있고, 오래된 문화가 있습니다. 거기에 젊은이들의 취향과 입맛을 끄는 콘텐츠가 함께 어우러지면서 인적이 드문 마을들에 사람들의 생기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명동에서 8년을 살았기에 강북의 맛과 멋이 있는 곳을 찾곤 했습니다. 명동에서 나오면 바로 남산 한옥마을과 남산길이 있습니다. 을지로로 내려오면 도심 속의 쉼터인 청계천 물길이 있습니다. 종로로 나가면 광장시장이 있고, 혜화동으로 나가면 대학로와 낙산이 있습니다. 홍대, 연남동, 경의선 길, 성수동, 이태원에도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은 비단 서울에 한정된 게 아닙니다. 전주에는 한옥마을이 있고, 여수에는 벽화 거리가 있고, 남해에는 독일마을이 있습니다. 순천에는 습지가 있습니다. 양양에는 서핑 해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늙음과 낡음은 다릅니다. 비록 오래되었을지라도 멋지게 늙어가면, 새로운 콘텐츠가 접목된다면 사람들은 그곳을 찾기 마련입니다.
미주 지역에는 140여 개의 한인 성당이 있습니다. 이민과 유학생들이 많았을 때는 한인 성당이 늘어났고, 공동체도 활기가 넘쳤습니다. 몇 가지 이유로 한인 공동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첫째는 공동체 인원의 감소입니다. 고령화되면서 고인이 되는 분들이 늘어납니다. 젊은이들은 미국성당으로 가거나, 성당에 나오지 않으려고 합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민과 유학생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둘째는 한국에서 파견된 사제와 공동체의 갈등입니다. 사소한 이유도 있지만, 본당의 신축과 이동이 관련된 갈등도 있습니다. 사제의 독선과 권위주의가 더해지면 갈등의 폭도 커지기 마련입니다. 한국과는 다른 사목 환경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그렇습니다. 먼저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이제 나의 뜻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회개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에서 시작됩니다. 회개는 어려운 이웃에게 손을 내밀면서 시작됩니다.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작은 이>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태 18,4-5)
애써
작은 이에게
눈길 건네니
나도 따라
어느덧
작아지고
내가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작은 이
스스럼없이
내 품에 안기네
오늘의 성인
성 폰시아노(Pontian)
신분 : 교황, 순교자
활동지역 : 활동연도+235년
같은이름 : 본시아노, 본시아누스, 폰시아누스, 폰씨아노, 폰씨아누스, 폰티아노, 폰티아누스
로마인 칼푸르니우스(Calpurnius)의 아들인 성 폰티아누스(Pontianus, 또는 폰시아노)는 230년 7월 21일에 교황 성 우르바누스 1세(Urbanus I, 5월 25일)를 계승하여 교황직에 올랐다. 그는 232년 로마(Roma) 교회회의를 주재하여 그리스 신학자 오리게네스(Origenes) 일파에 대한 단죄를 확인하였다.
235년 즉위한 막시미누스 트락스 황제가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황제의 관용 정책을 철회하고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를 시작하면서 그는 최초의 희생자가 되어 사르데냐(Sardegna) 섬으로 추방되었다.
여기서 그는 함께 추방된 대립교황 성 히폴리투스(Hippolytus, 8월 13일)를 만나 교회와 화해하도록 했다.
그는 235년 10월 29일 또는 30일에 이탈리아의 사르데냐(Sardegna) 섬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시신은 성 히폴리투스의 시신과 함께 성 파비아누스(Fabianus, 1월 20일) 교황에 의하여 로마의 성 칼리스투스(Callistus) 카타콤바에 새로 마련된 교황 묘지에 묻혔다.
그의 예전 축일은 11월 19일이었으나 현재는 성 히폴리투스와 함께 8월 13일에 기념한다.
성 히폴리토(Hippolytus)
신분 : 교부, 순교자, 대립교황
활동지역 로마(Roma)
활동연도 : 170/175?-235년
같은이름 : 히뽈리또, 히뽈리뚜스, 히폴리또, 히폴리뚜스, 히폴리투스
학덕이 뛰어난 로마의 사제였던 성 히폴리투스(또는 히폴리토)는 리옹(Lyon)의 주교인 성 이레네우스(Irenaeus, 6월 28일)의 제자이며 초대교회의 저명한 신학자였다. 그는 교황 성 제피리누스 (Zephyrinus, 8월 26일)를 공공연하게 비난하였다. 그 이유는 당시 로마에서 퍼지기 시작한 그리스도론적 이단, 특히 모달리즘(Modalism, 삼위일체 하느님은 한 분이신 하느님의 세 형태에 불과하다는 양태설)과 사벨리우스주의(Sabellianism, 사벨리우스의 이단적인 삼위일체설)에 대한 교황의 관대한 태도 때문이었다.
교황 성 칼리스투스 1세(Callistus I, 10월 14일)가 217년에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때, 성 히폴리투스는 자신의 추종자들에 의하여 대립교황으로 등극하고 성 칼리스투스의 후계자인 교황 성 우르바누스 1세(Urbanus I, 5월 25일)와 교황 성 폰티아누스(Pontianus, 8월 13일)를 극구 반대하고 나섰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그는 235년 막시미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교황 성 폰티아누스와 함께 사르데냐(Sardegna) 섬으로 추방되었는데, 여기서 그는 교황과 화해하였다.
그는 사르데냐 섬에서 운명하였는데, 갖은 고문 끝에 죽었기 때문에 순교자로 간주되고 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모든 이단 반박"(Refutatio omnium haeresium)이란 저서이다. 이외에도 그는 "다니엘서 주석"(Commentarium in Danielem)과 "아가서 주석"도 저술하였고, "사도 전승"(Traditio Apostolica)이란 책을 저술하였다.
그는 그리스 교부의 한 사람으로 교회 저술가이자 최초의 대립교황이었다. 동방교회에서는 그의 축일을 1월 30일에 기념한다.
성녀 라데군다(Radegund)
활동년도 : 518-587년
신분 : 왕후,수 녀원장
지역 :
같은 이름 : 라데군드, 라데군디스
성녀 라데군다(Radegundis)는 프랑크족의 침략으로 인하여 고향을 등지고 독일 중부 튀링겐(Thuringen)으로 이주하였고, 20세 때에 클로테르 1세 왕과 정략적인 결혼을 하였다. 남편의 성격은 매우 난폭하였지만, 그녀는 인내하여 10여 년을 살다가 자기 오빠가 살해되는 기회를 이용하여 왕을 떠났다. 그녀는 누아용(Noyon)에서 주교의 도움을 받아서 은신하다가 푸아티에(Poitiers)에 수녀원을 세웠다.
그녀는 이곳에 살면서 시인 성 베난티우스 포르투나투스(Venantius Fortunatus, 12월 14일)와 우정을 나누었는데, 그는 나중에 이 수녀원의 고문이 되었다. 이 수녀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정되는 유물로써 유명한데, 성 베난티우스는 이 수녀원의 십자가를 보고 저 유명한 찬미가인 “왕의 깃발이 앞장서니…”(Vexilla Regis), “내 혀는 영광스런 승리를 노래하리…”(Pange, lingua, gloriosi lauream certaminis) 등을 만들었다. 또한 그는 성녀 라데군다의 전기도 썼다.
성 요한 베르크만(John Berchmans)
활동년도 : 1599-1621년
신분 : 증거자
지역 :
같은 이름 : 베르크만, 요안네스, 요한네스,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성 요한 베르크만(Joannes Berchmans)은 어느 구두 수선공의 맏이로 벨기에 브라반트(Brabant)의 디스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사제가 되는 꿈을 꾸다가 13세 때 요한 프로이몬트(John Froymont)라는 사람의 하인이 되었다. 마침내 그는 1615년 말리네스(Malines)에 새로 세워진 예수회 대학에 들어갔고, 그 다음 해에 예수회 수련자가 되었다. 그는 1618년 로마(Roma)로 가서 학업을 계속하였는데, 미소한 일에서 완덕을 추구한 그의 성덕이 널리 알려지고 그의 근면함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은 감명을 심어주었다. 그의 사후에는 수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다. 그는 1888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요한 베르크만은 복사들의 수호성인이다.
성 막시모(Maximus)
신분 ; 수도원장, 증거자
활동지역 :
활동연도 ; 580-662년
같은이름 :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가 증거자로 불리는 이유는 참 진리를 전하려는 그의 노력과 그가 받은 고통 때문이다.
그는 7세기 최고의 정통교리 수호자였고, 성좌의 최고 권위를 열렬하게 옹호했던 인물이다. 그는 콘스탄티노플 태생으로 헤라클리우스 1세 황제의 비서로 있다가 사임한 뒤에 크리소폴리스(Chrysopolis)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그 후 그곳의 원장으로 여러 편의 신비적인 논문들을 남겼다.
그는 특히 그리스도 단성설을 주장하는 이들과 또 이를 옹호하는 칙서를 낸 콘스탄틴 2세 황제와 투쟁하는 사람들의 지도자로 활약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황 호노리우스 1세(Honorius I)를 도와 교황권의 확립을 위해 적극 헌신했으며, 콘스탄틴 황제의 단성설을 옹호하는 ‘티포스’라는 칙서를 단죄하기 위하여 649년의 라테라노 공의회(Council of Laterano)에 참석하여 맹활약하였다.
그는 그 때문에 비치아(Bizya)로 유배되었고, 그 후 페르베리스에서 6년을 지내야만 하였다.
그 후 그는 또 콘스탄티노플로 송환되어 고문을 받고 투옥되었는데, 이 무시무시한 여행으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흑해 연안에 있는 라지카에서 662년 8월 13일 운명하였다. 막시무스는 비잔틴 신비주의의 핵심 인물이며 신학, 신비신학 그리고 수덕신학에 대한 많은 글을 포함하여 성서주석, 영적인 대화집 및 전례적인 상징에 관한 논문 “신비 안내서”(Mystagogia)를 저술한 장본인이다.
복녀 제르트루다(Gertrude)
신분 : 동정녀
활동지역 : 알텐베르크(Altenberg)
활동연도 : +1297년
같은이름 : 거트루드, 게르투르다, 게르투르데스, 게르투르디스, 게르트루다, 제르뜨루다, 제르뜨루디스, 제르트루디스, 젤뚜르다, 젤뜨루다, 젤투르다, 젤트루다
1227년 9월 성지의 십자군에 가담했던 남편이 죽은 뒤에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Elisabeth, 11월 17일) 왕비는 세 번째 딸을 낳고 제르트루다(Gertrudis)라고 불렀다. 남편이 출정에 앞서 만일 딸을 낳으면 알텐베르크의 프레몽트레 수녀회에 입회시키라고 했기 때문에 어린 제르트루다는 곧 그곳으로 보내졌다. 장성한 그녀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수녀가 되었고 22세 때에는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어머니의 뜻을 따라 그녀는 자신이 물려받은 유산 대부분을 수도원을 짓거나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에 사용하였다.
그녀는 15년 동안 원장직을 맡아 봉사하다가 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