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를 찾은 관광객들이 반드시 해야 할 것 중에는 에펠탑 꼭대기에 올라가기와 루브르 박물관 관람하기, 그리고 ‘사랑의 자물쇠’ 채우기가 있다.
파리 센 강 위로 펼쳐진 그림같은 다리들이 맹꽁이자물쇠, 자전거 자물쇠, 수갑 등 다양한 사랑의 부적으로 휘청이고 있다. 이곳을 찾은 커플들은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은 자물쇠를 다리 쇠살대에 채운 다음 열쇠를 센 강으로 던져 버린다. 리얼리티 TV프로그램의 스타 커트니 카다시안도 지난해 가을 남자친구와 함께 어린 아들을 데리고 퐁데자르(예술의다리)를 방문해 ‘사랑의 자물쇠’를 채우고 갔다. 예술의다리는 루브르 박물관으로 이어지는 목재 보도가 있는 보행자 다리다.
하지만 파리 시민들은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자물쇠가 사랑하고 어떤 연관이 있다고 난리들일까?
‘사랑의 자물쇠’와 같이 공공 기물에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에 그곳 현지인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다리를 가득 메운 자물쇠들이 낙서못지 않게 파리의 경관을 해치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 녹과 오염도 걱정이다. 예술의다리 인근에서 베이비시터로 일하고 있는 실비안 루라두어는 센 강 바닥에 수 많은 열쇠들이 어지럽혀 있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사랑의 자물쇠가 담고 있는 상징성도 얼토당토 않다는 사람들도 있다. “자물쇠는 폐쇄와 속박 등 부정적인 것을 상징하는 사물이다. 사랑이 상징하는 것과는 정반대”라는 게 파리 시민 이스터 팔로프(48, 비서)의 주장.
사랑의 자물쇠들은 값비싼 현대 예술에 사용되고 금속 판매상들에 의해 도둑맞고 있다. 2010년 어느 날 밤 자물쇠 수천 개의 행방이 묘연해졌는데 당시 실연당한 사람, 아니면 자물쇠 제조업자가 훔쳐간 게 분명하다는 조소섞인 추측이 나돌았다.
최근 몇 달 새, 사랑의 자물쇠가 처음 등장했던 다리 두 곳에 더이상 자물쇠를 채울 공간이 없어지자 쇠살대가 있는 다리면 어디든 자물쇠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커플들이 사랑의 상징물을 동상이며 기념물이며 할 것 없이 여기저기 자물쇠를 붙이고 다니면서 파리 곳곳에 보수가 필요한 실정이다.
사랑의 자물쇠 트렌드가 처음 시작된 건 5년 전이었다. 이 트렌드는 이탈리아 십대가 쓴 소설 ‘나는 너를 원해’(원제: I Want You, 2006년 출판)를 통해 시작됐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로마의 연인이 로마의 한 다리 위에서 자신들의 영원한 사랑을 위해 자물쇠를 채운 뒤 티베르 강에 그 열쇠를 던져버렸는데 그것이 자물쇠 채우기 트렌드의 유래가 됐다는 것.
독자들은 소설 속 커플의 로맨틱한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리 위의 가로등 기둥이 자물쇠로 도배되자 당국에서 기둥이 무너질까봐 우려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그 후 사랑의 자물쇠 트렌드는 중국의 만리장성에서부터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 실리콘 밸리의 고가 도로 펜스에까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이 트렌드는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파리에 집중됐다. 로맨틱한 여행지라는 파리의 이미지 때문이다. 이 덕분에 파리는 관광산업이 호황을 맞고 있다.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일부 호텔들은 자물쇠 잠그기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로맨틱한 관광상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파리의 건축 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자물쇠 채우기를 금지하는 방안이 시 의회에서 좌초된 것이 관광산업의 입김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예술의다리가 위치해 있는 지역의 시청 관계자 조엘 리테일로우는 “사랑의 자물쇠 현상으로 관광업계가 수혜를 입고 있는 만큼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파리시는 지금 사랑의 자물쇠 문제말고도 훨씬 시급한 문제가 많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파리 시청은 파리시가 관광업계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일축했다. 다메안 스테판 시장 대변인은 “로맨틱한 도시라는 파리의 이미지는 역사와 아름다움 등 파리가 가진 매력에 의한 것이지 최근 자물쇠 트렌드와는 관련이 없다”면서 “파리시는 자물쇠 채우기를 부채질할생각도, 불법화할 생각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예술의 다리와 노틀담 성당 뒷편에 자리한 ‘주교의 다리’는 자물쇠 채우기 트렌드가 최초로 시작된 곳이다. 런던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여행 온엠마(22)는 주교의 다리에 채워진 수 많은 자물쇠들에 감탄하며 “이 다리에 자물쇠가 채워지는 이유는 이곳이 역사적으로 연인들의 다리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이 두 다리는 금속 쇠살대가 작아 자물쇠를 채우기 쉬워 영원한 사랑을 찾는 이들에게 유명한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다리 위에는 자물쇠를 파는 노점상들이 즐비하다. 자물쇠에는 원하는 이름을 새겨주는데 가격이 무려 27달러나 된다.
파리의 관광업계는 이 자물쇠 트렌트를 계속 부채질했다. 관광객들을 싣고 센 강을 오가는 유람선 바토뮤슈를 운영하는 투어회사들도 앞다퉈 사랑의 자물쇠를 홍보해왔다. 이곳 보트 투어 회사에서 근무하는 한 가이드는 “사랑의 자물쇠는 파리의 연인들 사이에서 내려온 오랜 전통”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티스트들과 고물수집가들은 사랑의 자물쇠에서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한다. 3년 전 어느 날 밤, 파리 당국이 자물쇠 채우기를 금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마자 예술의다리 위에 걸려있던 자물쇠들이 몽땅 없어졌다. 당국에선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실연당한 사람의 소행이라거나, 아니면 다리에 자물쇠를 채울 곳이 부족해지자 자물쇠 노점상들이 제품을 더 팔기 위해 자물쇠를 모조리 잘라버려 공간을 만든 것이 분명하다는 등 다양한 ‘음모론’이 제기됐다.
하지만 없어진 자물쇠들은 몇 주 뒤 프랑스의 명문 예술학교인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에 전시된 한 설치 미술 작품에 등장했다. 한 학생이 자물쇠를 모조리 떼어가 학교 프로젝트에 사용한 것.
이러한 해프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천 만 쌍의 커플들은 또 다시 자물쇠를 채우기 시작했다. 지난해 프랑스 현대 미술가 로리스 그래오가 예술의다리에 걸린 자물쇠들을 가지고 설치 미술 작품 ‘얼룩진 사랑’을 제작할 때에도 다리 위에는 자물쇠가 차고 넘쳤다. 그의 제작팀은 일주일 기간 동안 무려 330파운드 어치의 자물쇠를 수거해갔다.
그날 밤 그래오는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서에서 자신이 예술가라고 설명하고 난 뒤에야 풀려났다. 그래오는 경찰서에서 “나는 공공기물 파손자도 아니고 도둑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파리 경찰은 다리에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자물쇠를 가져가는 행위 자체는 불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오는 잘라간 자물쇠들을 녹여 조각품 15점을 탄생시켰다. 시가가 67만5,000파운드나 된다. 그는 사랑으로 오염된 금속을 무감정의 기하학적 물체로 바꾸는 역설을 실험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예술품 수집가 프랑수아 피노는 이 조각품을 모두 사들였다.
그래오는 파리 당국이 자물쇠 채우기라는 새로운 전통을 그대로 놔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어 “나는 다리가 사랑의 무게로 무너지지 않는 한 어떠한 금지 조치도 내려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사랑의 무게는 지금 위험한 수준이다. 결국 지난주 파리 당국은 자물쇠 제거 작업에 착수했다. 파리시 환경미화팀이 예술가의다리의 손상된 쇠살대 다섯 곳을 제거한 뒤 추락을 막기 위해 그곳에 임시방편으로 합판 소재 널빤지를 대는 작업을 해놓은 상태다.
쇠살대 한 개 당 자그마치 330파운드나 되는 자물쇠들이 걸려 있는 만큼 파리 당국은 사랑의 자물쇠가 다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당국은 또 금속 재판매상들이 자물쇠가 아닌 쇠살대를 통째로 잘라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공공 기물에 파손이나 오염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긴 하다.
포춘 브랜즈 홈 앤 시큐리티의 계열사인 매스터 락(Master Lock)은 지난해 온라인 사진게시판에서만 나타나는 ‘가상’ 자물쇠를 선보였다. 온갖 자물쇠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예술가의다리 사진 앞에는 ‘파리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회사의 광고 문구가 적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