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에서 발간하는 <<월간문학>> 2015년 6월호(통권 556호)에 실었습니다.
제가 다음에 내려고 하는 책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모범생을 권장하는 사회
심양섭
아르바이트생의 조건으로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할까.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한국에서는 ‘성실’ ‘근면’ ‘밝음’ ‘끈기’ 같은 것을 요구한다. 크게 보면 이 네 가지는 다 ‘모범생’의 특성에 해당한다. 정식 직원이 아닌 사람을 일시 쓰면서도 한국 사회는 ‘모범생’을 선호하는지도 모른다.
성실하고 근면한, 그래서 모범적인 사람을 채용하고 싶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동네 중국음식점의 경우 배달원만 좋은 사람으로 데리고 있을 수 있으면 돈을 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모범적인’ 배달원 구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짜장면 맛은 아무래도 괜찮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범적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아시아 문화의 유별난 특징일 수도 있다. 연전에 미국 대학에서 연수하는 동안 나는 사뭇 색다른 경험을 하였다. 시애틀에 있는 한 주립대학교에서 학생신문을 뒤적이던 중에 아르바이트생 구인광고를 살펴보게 되었다. 거기서 재밌는 현상을 발견했다. 한결같이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요즘은 한국에서도 유머가 인기다. 텔레비전에서도 개그 프로가 시청률이 높고 영화도 코믹영화가 관객을 많이 모은다. 웃겨야 젊은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도 유머감각 있는 사람이 점수를 높게 받기도 한다.
예전에는 안 그랬다. 웃기는 소리 많이 하는 사람은 실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던 한국 사회가 변하기는 많이 변한 셈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면 여전히 ‘유머감각’은 ‘성실성’이나 ‘근면성’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유머감각’도 겸비하면 좋지만 아직까지는 필수과목이 아닌 것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상은 모범생에게 먼저 돌아간다. 다만 한국에서는 그런 현상이 유난히 심하다. ‘모범생’ ‘모범수’ ‘모범시민’ ‘모범경찰’ ‘모범공무원’ ‘모범운전사’ 외에 ‘모범택시’까지 있다. 성품이 모범적인(?) 택시가 있을 수는 없다. 일반 택시보다 요금이 비싼 대신에 시설이 좋고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택시를 ‘모범택시’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일반택시는 ‘비모범택시’라는 말인가.
‘모범림’이라는 말도 있다. 숲을 가꾸는 데 본보기가 되거나 또는 본보기로 삼기 위하여 가꾼 삼림이란다. 표창장 문구에도 ‘모범’이라는 말은 빠짐없이 들어간다. “위 사람은 재학중 품행이 단정하고 학업성적이 우수하여 타의 모범이 되므로 이를 표창합니다”라는 식이다. 이런 상을 학창시절에 가장 많이 받았던 게 바로 나이고, 나는 그런 상을 받으면서 그런 사람으로 길들여졌다. 한국사회는 모범생을 권장하는 사회다.
‘다른 길’ 가는 것을 허용하는 학교도 없지는 않다. 대안학교인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의 십계’ 중에서 제9계명은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고 말한다. 학생 수가 일흔 명도 안 되는 지방의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어린이날에 전교생에게 상장을 수여했는데 ‘색칠 사랑상’ ‘독서 즐김상’ ‘리더십 향상상’ ‘고운말 노력상’ 같은 다양한 상들이었다. 이러한 다양성이 조금씩 증진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모범생’이라는 개념도 따지고 보면 체제 유지 이데올로기다. 무릇 조직을 유지하려면 조직원들로 하여금 조직의 단맛과 쓴맛을 보게 해야 한다. 공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죄가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벌을 줘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공이 있는 자에게 상을 주는 것’이 바로 ‘모범생’ 되기를 부추기는 메커니즘이다.
인생을 마라톤 경주에 비하면 모범생은 초반에 앞서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는 결승점까지 내리 앞서가는 사람도 있지만 중도에 뒤처지거나 낙오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나 자신부터가 초반의 우위를 후반까지 지켜내지 못한 선수다.
나는 그동안 대학에서 십 년 넘게 강의하면서 많은 학생들과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인생의 출발선에서 앞서가는 학생들보다는 조금씩 뒤쳐저서 가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런데도 졸업 후의 진로를 보면 명문대생 못지않은, 아니 오히려 명문대생보다 더 빛나는 길에 들어선 경우가 없지 않았다. 꽃도 봄꽃, 여름꽃이 있듯이 사람도 누구나 제 철을 만나면 열매를 맺기 마련이다.
사회가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바뀌면서 명칭이 바뀐 장소가 많다. ‘표 파는 곳’이 ‘표 사는 곳’으로 바뀌었고, ‘현금자동지급기’가 ‘현금자동인출기’로 바뀌었고, ‘신차발표회’가 ‘신차관람회’로 바뀌었으며, ‘버스정거장’이 ‘버스승강장’으로 바뀌었다.
‘모범생’이란 말도 마찬가지다. 보는 사람에 따라 말의 뜻도 달라진다. 부모가 생각하는 모범생과 자녀가 생각하는 모범생은 다를 수 있다. ‘컴퓨터 황제’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뒤를 이어 변호사가 되길 바랐지만 빌은 하버드대학교를 중퇴하고 사업가가 되었는데 그를 모범생이 아니라고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
‘모범생’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학업이나 품행이 본받을 만한 학생”이라고 나오는데 이러한 기준은 누가 정한 것인가. 우리사회에서 널리 그리고 오랫동안 쓰이면서 굳어진 말뜻이겠지만 이제는 ‘모범생’이라는 개념도 시대에 맞게 업그레이드했으면 싶다.
선진국의 명문 사립대학교에서는 신입생을 선발할 때 학업 성적도 보지만 단체생활과 봉사활동 그리고 리더십 경험을 중시한다. “학업이나 품행이 본받을 만한 학생”이라는 구절에서 ‘품행’이 그런 점들을 다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본받을 만한 품행’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유머감각’도 모범생의 품행에 포함시켰으면 좋겠다. 유머감각 있는 학생과 유머 감각 있는 사원이 표창을 많이 받는 날을 기대한다.
첫댓글 "꽃도 봄꽃, 여름꽃이 있듯이 사람도 누구나 제 철을 만나면 열매를 맺기 마련이다."
이 말이 제게 큰 위로가 되네요.
제 아파트 베란다로 보이는 산밑 오동나무는 그 보라빛 꽃을 아직도 안 피웠어요~~계속 기다리는 중입니다.
‘모범생’이라는 개념도 따지고 보면 체제 유지 이데올로기다. 공감합니다. 교육이 심성의 바탕을 양육한다기 보단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을 길러내는데 목표를 두고 있으니까요. 이 점에 많이 반발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제 단골 화원에 들렀는데 여주인장 왈:
" 두 아들 중 둘째는 모범생인 반면에 첫째는 운동 잘 하고 그랬는데 인천국제공항에 취직됐어요. 기적이에요."
모범생이 반드시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도 아닌 걸 확인했습니다~~
워싱턴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뜀뛰기에 꼴찌한 아이에게 상장을 주었어요. <가장 열심히 뛴 상> ! 꼴지 어린이에게 상장을 주는 선생님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이 상장을 보고 엄마, 아빠가 너무 좋아했다니, 이런 부모도 많았으면 좋겠어요.
심 교수님, 글 잘 읽었습니다.
네. 문자 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