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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인생의 재미를 읽고서
이화순 수필가
에세이 (제 10 집) 인생의 재미는 설경 김 영월(1948- )수필가, 시인의 등단 22년 해를 맞는 열 번째로 출간된 수필집이다. 설경 선생의 평생 간직한 좌우명 한 마디가 글을 대하는 이의 가슴에 감동의 파문으로 남는다.
-THE DROP HOLLOWS THE STONE NOT BY ITS FORCE, BUT BY ITS FREQENCY.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것은 힘이 아니고 꾸준한 빈도수이다.)
저자가 중학 시절 배운 영어 문장의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SLOW AND STEADY) 라는 한 마디가 오늘날 노력형 작가로 성공하게 된 비밀임을 털어놓고 있다.
책을 열고 ‘망초꽃 세상’을 읽어보다가 어느새 읽는 이의 가슴에까지 망초꽃 물결이 파도치며 밀려오는 착각에 휩싸였다. 한 편 시 보다도 짧은 글 속에 온 세상 사람의 희노애락을 모두 담아 위로하며 다독여 줌을 보았다. 작가의 손에 들린 붓 자락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같이 꿈과 현실을 오가는 공상의 세계를 가 보게도 하고 현실의 아픔을 달래며 치유도 시킨다.
특히 ‘망초꽃 세상’에서는 망초꽃들의 물결을 바라보며 “누가 높고 낮고가 없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갈등이 없는 평등한 세상이 펼쳐진다. 정규직 비정규직의 구분도 없다. 그냥 함께 어울려 어깨동무하며 깔깔깔 거린다.”는 꿈을 전하고 있다.
저자는 연일 뉴스에서 터지는 갈등과 온갖 분쟁들을 망초꽃 물결을 바라보는 한 순간에 그토록 복잡하게 뒤얽힌 사회적 문제와 분통의 아우성을 감싸 안는다. 피 터지게 길바닥에 나뒹굴며 쉰 소리 내던 어느 누구라도 이 한 편의 망초 꽃 세상에서 한 숨 돌리기에 좋은 글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러시아 박물관(에레미타시 겨울 궁전) 소장품인 미술전에서 성화 한 편 앞에 선 설경 선생의 마음을 읽는다. 명화는 성경에서 나오는 내용으로 애굽의 총리 보디발의 아내가 젊고 일 밖에 모르는 청년 요셉을 유혹하는 장면이다. 침대에 반라로 누운 채 유혹하는 주인 마님 앞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민망해 하는 한 편의 그림 앞에서 나온 글이다. 요셉은 유혹을 이겨내고 옷을 잡아 채인 채 방에서는 도망쳐 나왔으나 분노에 치를 떠는 총리의 엄명으로 감옥에 갇힌다.
요즘 우리 사회에 낯 뜨거운 미투 운동이 확산되는 점을 피력하면서 보다 밝고 건전한 성문화 물결을 염원하고 있다. 한 가지 인상 깊게 남는 점은 마지막 부분에서 ‘보디발의 아내와 요셉’의 명화 앞에서 작가는 ‘내가 저런 상황이라면 요셉처럼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마음이 가능할지 고개를 갸웃거려 본다. 아마 나는 어려울 거야.’하며 붓을 내린다. 이처럼 꾸밈없이 심경을 드러내며 글을 쓰는 설경 선생님의 소박함이 또 하나의 긴 여운으로 남는다.
글을 갓 대하는 나에게 이 한 권의 수필집은 교과서처럼 읽고 또 읽어보는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설경 선생님의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를 나의 글쓰기 생활 지침으로 받아 안고 나가보리라 생각해 본다.
부디 앞날에도 설경 작가님의 제 10권의 책을 뒤이어 연달아 새롭고 경이에 찬 내용의 수필집이 나오면서 건강하시기를 마음속으로 바래본다.
*등단 22년째를 맞이하여 그 동안 수필집 10집. 시집 9권을 출간하였다.
이번에 무더위와 벗하여 수필집 '인생의 재미' 와 시집 '노을 서성이고 있다'를
출간하였다. 내 사랑하는 영혼의 자식들을 세상에 내보낸다.
설경 김영월의 아홉 번째 시집 제목이다. 간혹 찔레꽃 향기처럼 시를 읽는 누군가의 코끝에 머물기를 바라는
시인의 시어를 독자로서 나름대로 정리해 감상해 본다.
시인은 시편들을 4부로 묶어놓았다. 제1부 靈(영), 제2부 肉(육) , 제3부 魂(혼), 제4부 느림.
통상 우리는 영 혼 육의 순으로 말하는데 시인이 영 육 혼으로 순서를 바꾼 이유가 궁금하다. 느림은 시인이 오랜 천착
끝에 삶의 미학으로 받아들인 것이므로 그의 지난 시와 수필 속에 깊이 녹아있어 새삼스럽지는 않다.
시인이 어떤 의도로 아홉 번째 시편들을 네 묶음으로 묶었는지 찾아들어가며 읽어보는 시 감상이 재미있다.
제 1 부 영 (靈)
시인의 영은 홀로이고 싶다. 홀로 봄 여름 가을 겨울 가리지 않고 산하를 쏘다닌다. 시인은 그가 만나는 자연에서 끝없는 사랑의 노래를 듣는다. 그가 만난 영이다.
겨울 산에게 아무도 말을 건네지 않는다. 오롯이 나만 간직하고픈 솔숲이 있다. 눈은 무표정하게 바쁜 길 가는 자동차 숲에 행복과 평화와 사랑의 영으로 내린다. 두물머리의 겨울은 초록빛 사랑을 잊으라 잊으라 한다. 작은 그늘 하나 내밀어 준적 없는 나의 뉘우침처럼 폭염 속에서 목이 메는 매미의 합창, 요석공주의 한숨처럼 숨죽여 나는 낙엽, 애타는 사연 감추려 파아란 하늘에 향기로 숨어드는 감국은 내 외로운 영의 동반자다. 색깔바랜 가슴을 맞대며 황혼녘 우리 부부는 모래시계 해변에서 흘러간 시간을 줍는다.
목숨 떨어진 꽃잎 하나 가만히 주워 입맞춤하게 하는 능소화, 삼복더위에도 끓어 넘쳐 억센 생명을 담금질하는 초록, 거기에서 시인은 잃어버린 눈빛-사랑을 찾아낸다. 그렇게 찾아낸 영이 자아내는 노을에 빠져 집에 가기 싫은 시인이 노을 속을 서성이고 있다.
제 2 부 육 (肉)
육적인 사람의 삶은 욕망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 육은 느낀다. 그러고 육은 늙는다. 시인이 만난 사람, 자연, 그리고 관계들에는 이런 육의 모습이 회한과 추억과 가슴앓이로 세월에 녹아내린다.
욕심과 욕망이 육의 모습이다.
치미는 홧병으로 강화 유배 두 달 만에 죽음으로 풀려난 연산군, 역사에 남을 정복자 광개토대왕, 헛된 줄 알면서도 지상에 보물쌓기를 하는 독일 드레스덴 왕, 이런 사람들의 욕망의 화신인 회색곰 앞에 바들바들 떠는 태어난 지 삼일 된 사슴이 있다. 세 차례나 찾아간 백두산 천지는 소리쳐 애걸해도 비바람 운무로 빗장을 걸어 잠그는 짝사랑같이 야속하다.
그러나 욕망에 스러져 무섭고 야속한 것만이 육은 아니다. 육의 느낌은 정겹기도 하다.
애기똥풀 꽃은 가장 순진하고 바보스런 얼굴로 속절없이 헤헤 웃으며 살라한다. 미풍에 살랑거리는 초록 물결은 버들치 떼처럼 하늘 향해 우르르 몰려간다. 사람 눈길에 부끄러운 착한 누렁소 가족, 사랑의 멀미를 하는 보랏빛 꽃향유, 쪽빛바다 젖을 물고 있는 우도... 육은 참 정겹다.
그럼에도 육은 세월에 부질없다.
화려한 원피스 신데렐라 같은 그대를 만나 사랑이 붉어져 결혼을 하고 그대 모습 변함없는 줄 알았는데 지금 문득 보니 세월 앞에 무너지는구나. 고희의 언덕에 올라보니 사라지는 것들은 쓸쓸한 미소를 남긴다. 지나간 추억은 아름다웠노라는,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한 세상 그런대로 살만하다는 가랑잎들의 노래를 듣는다. 장례식장에서 속울음을 운다. 친구여 먼저 가게나. 자네 없는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변함없이 흘러갈 테니. 아직 먼 길이라고 여겼는데 언제 내가 이 곳에 이르렀나. 죽다 살아났으니 이제부터 사는 건 덤이다.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 가을날의 오색단풍처럼 아름다운 마감을 꿈꾸리라.
제 3 부 혼 (魂)
시인은 혼을 담아 노래한다. 그의 노래는 신앙이 녹아 있다. 그의 노래에는 생명이 있다. 혼은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깨달음은 통찰로 이어진다.
시인은 깊은 신앙에서 빚어내는 목소리로 찬양한다.
비천함을 돌보시는 사람의 몸으로 성탄하신 이여. 비천하고 낮고 낮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소서. 감사란 주어진 것, 채워 주는 것, 순풍에 돛단 듯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내게 아직 남아 있는 것, 불평불만 않고 지금 이 순간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살다보면 가슴 아픈 일 많지. 다 내게 가져오라는 주님의 말씀, 죄인들은 귀를 막고 있다. 내 마음 속 주님은 어떤 도둑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기쁨이라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만난 고니를 보며 느낀다. 인생도 결국 여행길인데 철새처럼 세상에서 한 때를 보내고 마침내 우아한 날개를 펴고 하늘나라 훨훨 날아갈 수 있었으면...
시인은 신앙의 밑바탕에서 꺼져가는 것, 늙어가는 것에서도 생명을 찾아내어 노래한다.
눈 이불 덮고 깊은 잠에 빠진 논밭, 추억의 앨범 뒤지며 미소 짓는 야산 숲, 한 줌 햇살 부리에 담아 맹물인 듯 삼키는 산새. 그 속에서 봄의 새 생명을 기다리는 겨울 들녘의 여유를 갖는다. 무엇하러 달려가랴. 굴곡진 몸통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을 푸른 이끼가 생명으로 감싼다. 원앙새 노니는 연못가에 가만히 끼어들고 싶다. 영산홍이 계곡에 떨구는 눈물 같은 꽃잎들, 바람결에 생명의 기쁨 살랑댄다. 사랑의 물결은 끝없는 밀어를 토해낸다. 초록 숲에 말갛게 헹궈 낸 마음으로 보니 세상은 더욱 눈부시게 빛난다. 메마른 땅에 물고랑 생기고 흙탕물 되어 거침없이 갈 길을 재촉하는 장맛비에 초록 숲은 성장통을 앓는다. 운명 교향곡 같은 장마의 선율 속에 한 여름의 꿈도 여물어 간다. 한 밤에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는 사랑의 세레나데다. 황홀해질수록 노랑 창포꽃 벌어지고 불에 비친 반달도 더욱 교태를 부린다. 개구리들의 지칠 줄 모르는 짝짓기의 열정은 생명 있는 것들의 간절한 기도소리 아니랴.
그 생명 찾음은 깨달음과 삶의 통찰로 이어진다.
산은 언제나 제자릴 지키며 변함없는 어른의 자세를 보여주는데 사람들의 마음은 마냥 흔들리는 나뭇가지이다. 산에 오면 바람처럼 구름처럼 물처럼 살라하는데 다시 서둘러 티끌세상으로 향한다. 햇살 한 줌의 사랑 가슴에 고이 담고 눈을 스르르 감아본다. 인생도 하루하루 꽃잎 날리듯 추억의 무늬 남기며 속절없이 간다.
공부란 갇혀 있는 생각의 틀을 깨뜨리는 것이다. 시골 소녀, 맨발 벗은 아이들. 찔레 앞에 서면 언제나 그리운 고향의 향기가 난다. 그냥 안아주고 싶은 그대가 있기에 세상은 이처럼 빛나지 않으랴.
제 4 부 느림
시인은 느림을 삶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다. 사실 빠름을 이기는 것이 느림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의 느림은 빠름을 이기려하는 것이 아니다. 나무는 겨울에도 느리게나마 자라며 나이테를 만든다. 시인의 느림은 나이 듦에 대한 나이테이다.
느림은 한가함이다.
젊은 날의 질주가 끝나고 노년의 평온한 산책로 벤치에 앉아 한가한 시간을 낚는다. 템즈강에서는 갈매기 한 마리가 한가하게 낯선 나그네에게 황톳빛 강물의 안부를 전한다. 숨결이 바람 되어 날아가 버린 나날들로 겨울나무의 빈 가지처럼 가슴은 허허로운 새해이지만, 소망 담은 꽃눈, 잎눈으로 계절의 흐름에 맞춰 한가로이 다시 피어나리라.
느림은 침묵이다. 기다림이다. 내가 먼저 말을 건네지 않는다. 자연이 하는 말을 듣는다.
융프라우 만년설 아득한 음성에 눈을 감는다. 그 속살 앞에 무너진다. 너무 아름다워 쓸쓸한 길을 천천히 음미하듯 걷다보면 봄의 꽃길은 다정한 벗이 된다. 호수마을에서는 아직도 잠에서 덜 깬, 고요한 수면 위에 미끄러지는 물오리의 날갯짓을 듣는다. 고희에 만나는 강물은 어찌 살아야 하는지 소곤소곤 거리며 내게 말을 건다. 문득 눈을 들어 보니 호수 같은 하늘에 돛단배 같은 흰구름이 바람결에 살랑살랑 웃으며 떠간다. 시인도 강물이 건넨 말에 笑而不答 웃음으로 대답한다.
느림은 멈춤이다. 그러면 잊힌다.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와 다시 만나기 위해 독사의 독니가 혈관에 박히는 순간 온몸의 마비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5500년 전 사하라 사막 모래 폭풍에 묻힌 한 사내는 한 줌의 모래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못한 채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이 나그네 발길이 에딘버러 고성의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린다한들 사람들은 멈춤이 없이 줄을 잇겠지. 연두빛 윤슬, 내게도 저처럼 빛나던 청춘의 한 때가 있었지. 그 땐 몰랐다. 그것이 내 인생의 윤슬이란 것을. 발걸음을 멈추고 잃어버린 무지개를 찾듯, 그 부활의 길목에서 그만 나를 잊는다. 환한 벚꽃 그늘에 하염없이 앉아 시간을 잊어버리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여라.
느림은 관조다. 고요한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시인은 잠시도 집에 있지 않고 박물관 미술관 등 전시회, 도봉산 두물머리 부챗길 등 국내 명소, 영국 스위스 프랑스 등 해외 명소를 특유의 느린 걸음으로 쉬지 않고 다닌다. 어디에서든 무얼 만나든 마음 고요히 들여다본다.
세느강의 강물은 밤늦도록 잠들지 못하고 마냥 뒤척인다. 상제리제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인생은 즐겁고 행복한데 일가족 세명이 노숙하며 손을 내민다. 스톤헨지의 거석은 가슴 속 풀리지 않는 불가사의 하나쯤 언제까지나 지니고 살라 한다. 낙화, 잠깐 머물렀다 사라지는 아픔, 미련 두지 않는 깨끗한 뒷모습이여. 나도 이 세상 마감할 때 한 줄기 바람에 두둥실 실려 저리도 가볍게 가볍게 하늘에 닿고 싶다.
* 이상은 독자 조재창님이 제 시집을 읽고 쓴 독후감입니다.
첫댓글 김영월 선생님, 에세이 제 10집 <인생의 재미>창간을 축하 축하드립니다.
간행 축합니다. 시집 제9집과, 에세이 집 10권이면 대단한 양입니다.
문운이 왕성하길 기원합니다,
윤사월 님 한상철 시인님
오랫만입니다, 격려에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