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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녘에 옥수수로 사랑을 심자
- 50여년간 갈라져 있는 한반도, 그리도 그리웠던 북녘 땅.
다섯 번째의 초청장을 받은 끝에 1월24일부터 2월3일(98)까지
북녘의 옥수수 밭을 둘러보았다.
평생을 옥수수 밭에서 옥수수만 연구하고 살아온 필자는 내 몸같은
북한 이웃이 굶주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없이 돕고 싶었다.
북한이나 남한 양쪽 당국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북한의 실상을
학자의 양심에 따라 전달하는 것은 하늘이 내게 맡긴 책무라고
생각한다.
1. 천원이면 35명 하루 먹어
- 열 하루 동안 평양 평남 강원도를 다녔다.
황해도는 차를 타고 지나가며 살폈다.
굶어서 죽어 가는 사람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농업 전문가로서의 진단은 북한이 분명 크나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 북녘 땅은 비료의 절대부족과 가뭄으로 주작 물인 옥수수 생산이
결정적인 차질을 빚고 있었다.
서해안에서 갑자기 일어난 8∼12m의 해일로 서해 간척지 벼농사까지
완전히 망쳤다.
그런데도 세계가 믿지 않으려 하고 심지어 같은 동포인 남한 사람들까지
믿지 않으려 한다.
- 남한도 IMF한파로 극심한 어려움이 시작됐다.
북한 옥수수 심기운동과 관련한 일로 밤열차를 타고 새벽에
도착한 서울역에서 민초들의 고난을 느끼고 눈물이 났다.
실업자들이 여기저기 퀭한 눈으로 모여 있었다.
실업자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
굶주리는 북한 동포를 살리는 일도 시급하다.
남과 북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공생하지 않으면 안된다.
북녘 땅을 직접 방문하고 느낀 것은 과학적으로 농사를 짓고 우수종자를
생산하면 북한은 세계에서 단위당 생산수량이 가장 많은 옥수수
생산지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1천원이면 북한땅 다섯 평에 옥수수를 심어 35명이 하루를 먹고
살 수 있는 식량이 생산된다.
4천만 국민이 각각 1천원씩 내면 4백억 원이다.
이것은 돈이 아니라 뜻이다.
천심과 같은 민심인 것이다.
반세기 이상 묵은 대립의 골을 넘어서려면 이런 천심이 필요하다.
- 또한 남한은 세계 제 2의 옥수수 수입 국으로 매년 8백만∼1천만t의
옥수수 알곡을 수입한다.
약 15억달러어치다.
북한의 옥수수 증산은 북쪽의 극심한 식량난을 줄이는데 결정적으로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식량 자급률을 크게 높여
식량 안보에 기여할 것이다.
옥수수 심기운동은 직접 원조보다 3배 이상의 효과와 경제적 이익이
예상된다.
- 북한은 경제난 전력난 등으로 비료 생산을 못하고 있으므로 남한에
쌓여있는 잉여 비료를 보내주어야 한다.
비료 20만t만 있으면 20만 정보에 옥수수를 재배해 약 1백50만t의
옥수수가 증산될 수 있고 북한 식량난의 고비를 넘길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20만t의 비료는 가격으로 6백억 원어치다.
수송비까지 합하면 1천억원 정도의 자금이 들어간다.
남북한 정부가 직접 만나 비료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농사는 반드시 때맞춰 지어야지 만약 때를 놓치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북한의 식량난은 걷잡을 수 없게 되고 어린이는 영양부족으로
평생을 허약하게 보내거나 죽게 될 것이다.
- 필자는 북한을 다녀온 뒤 바로 국제 옥수수재단을 만들어 전국
1백여 민간단체와 함께 북한 옥수수심기 범국민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북한 옥수수심기운동이 개인에서 가정으로 마을로 직장으로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기를 기대한다.
2. 한반도 식량안보도 고려
- 특히 북녘이 고향인 실향민들이 이 운동에 적극 동참하여 주길 바란다.
이산가족 상봉의 날이 올 것이다.
북한의 옥수수 농사가 풍년이 들어 환영을 받으며 그리운 고향을 방문할 수 있도록
바로 지금 정성을 모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옥수수 박사는 수량이 30∼50% 이상 증수되고 농약을 뿌릴 필요가
없는 환경 친화적 신품종 슈퍼 옥수수를 하루빨리 만들어 여러분의
심부름을 할 것이다. - 98/4/6. 김순권 -
* 민족 단일화의 숙명
- 사람이란 무엇인가.
「비인간적인 것을 포함한 모든 것에 익숙해질 수 있는 동물」이라고 정의(定義)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정의라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주장했다.
복구되지 못한 대홍수의 피해, 올해의 극심한 가뭄과 혹서 속에 살고 있는 한반도 북쪽 주민 들은 고픈 배를 움켜잡은 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기계와 같은 인간이 되어 모든 정서가 마모된 상태인가. 정말 궁금하다.
1. 감싸야할 北 이탈주민
- 북측의 지도층도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을 법한데
별다른 변화의 조짐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어 답답하다.
1백여년 전 독점자본의 폐해를 논한 한낱 경제학도의 논문에 편승한
권력욕구가 근대 사회주의 국가를 태동시켰고 그 자연소멸의 말미에
북측이 서있다는 것.
- 이미 2천4백년 전 그리스 철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인간사회는 소득이라는 자극과 적절한 근로, 절약
그리고 책임을 위해서는 「소유라는 자극」을 필요로 한다』
고 한 것을 역사적 사실로 다시 한번 입증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외롭게
남아 있는 듯한 북측, 그들도 나름대로의 고뇌가 클 것으로 유추된다.
- 남북관계는 늘 애증(愛憎)이 교차해 왔다.
한 핏줄이면서도 가장 증오하고 가장 아픈 상처를 주고받은 관계다.
근년의 북쪽 기아현상에 대한 국민적 감정도 엇갈린다.
「북의 권력자를 미워하되 인민까지 미워할 수는 없다」는 동정론과
「북의 남침 야욕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는
경계론이 팽팽하다.
우리 사회의 한쪽에서 북한동포돕기 모금이 진행되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북에 대한 경계를 늦춰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북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과 분노의 질타가 공존하고 있는 현실이다.
- 그러나 우리는 오늘의 문제뿐 아니라 내일의 문제도 생각해야 하고
준비해야 한다.
「북한이탈주민 후원회」가 발족된 것도 내일을 준비하기 위한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북쪽의 용기있는 사람들이 생명을 걸고 또 북에 남겨둔 가족들이 당하게 될
희생에 대한 죄책감의 갈등을 넘어 남쪽으로 귀순한 사람이 지난 94년까지는
연평균 10명 정도였다.
이들은 주로 휴전선 접경지역을 넘어온 인민군으로 그야말로 귀순(歸順)이었다.
- 그러나 金日成이 사망한 94년 이후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접경지역의 인민군뿐만 아니라 민간인 재외공관원 고위관리까지 개인 또는
집단으로 북한을 탈출하고 있다.
94년이후 제삼국을 경유하거나 보트피플이 돼 남쪽을 찾아온「이탈민」들은
그동안 연평균 50명 정도 되더니 금년에는 상반기에 벌써 50명을 넘어
섰다.
- 과거에는「우리의 존재를 부인하고 공격하는 적들 중 전향한 자」들이
남쪽으로 넘어 왔으나 이제는 「억압된 체제를 못견뎌 탈출하는 북한 사람들」이
남쪽을 찾아 오고 있는 상황이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를 「귀순자」와 「이탈자」로 구분할 수 있다.
▼ 국민 모두 두레꾼 돼야 ▼
- 이같은 상황 변화로 이들에 대한 우리의 법체계도 바뀌었다.
종전의 「귀순북한 동포보호법」이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로 개정됐다.
지난 7월14일(97)부터 시행된 이 법은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우리
대한민국에 보호를 받고자 의사표시를 한 북한 이탈 주민을 대상으로
남쪽에서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목적이다.
- 정착금과 주거지원, 교육 의료 등의 혜택과 사회적응교육 직업훈련도
받을 수 있다.
북쪽에서의 학력과 자격을 인정받고 군 공무원 출신은 동등 이상의 대우를
받을 수도 있다.
- 문제는 이들이 전혀 다른 가치관과 규범, 그리고 신념체계의 차이에서 오는
문화적 충격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점이다.
그래서 이 법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북한이탈주민 후원회」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후원회만의 일이겠는가.
우리 국민 모두가 그들의 두레꾼이 되어 주어야겠다.
멀고 험하겠지만 우리민족 단일화는 결국 우리 민족 스스로가 감당하여야
할 숙명이 아니겠는가. - 동아일보. 강성모(북한이탈주민 후원회장) -
* 한국전과 집단학살
대전형무소 재소자 집단학살사건이 있을 무렵 포항에서도 한국 해군과
경찰이 재판도 없이 주민 200여명을 함상에서 처형·수장시켰으며 당시 이같은 처형명령은 군은 국방장관, 경찰은 내무장관이 내린 것이라고 당시 포항 집단처형을 지휘했던 해군 지역사령관이 증언했다.
한국전쟁 발발 때 해군 포항경비부 사령관이었던 남상휘 전해군준장(당시 중령, 뉴욕·75)은 『사령관으로 있던 해군 포항경비부가 50년7월초 경주·포항·영덕 일원에서 예비검속된 주민 200여명을 군함 3척에 태우고 포항을 출발, 영일만 장기등대 동쪽 3~5km 지점 바다로 나가 함상에서 총살시킨 다음 모두 수장시켰다』고 9일 밝혔다. 남씨는 『피살자들은 대부분 중장년 남자들이었지만 여자들도 있었으며 피살자들이 다시 떠오르지 못하도록 몸에 돌을 메달아 바다로 던졌다. 처형은 해군 장병들과 경찰이 집행했으며 군경의 수는 약 반반이었다』고 말했다.
남씨는 『당시 처형명령은 군은 신성모 국방장관이 채병덕 육군참모총장과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에게 내렸으며 포항경비부에는 해군참모총장 명의의 문서명령으로 하달됐다. 포항경비부는 명령을 수령한 후 약 이틀만에 처형을 집행했다』고 밝히고 『경찰은 조병옥 내무장관이 김병원 치안국장을 통해 각 도경국장에 명령했으며 경북의 경우에는 명령을 받은 조제천 도경국장이 전언통신문으로 각 경찰서에 다시 명령했다』고 덧붙였다.
남씨는 『명령을 수령한 후 포항·경주·영덕 경찰서의 협조로 용공분자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던 각 경찰서 관할지역 주민 400~500명을 한 자리에 모으고 다시 신원을 분류해 이중 200여명을 처형하고 나머지는 돌려보냈다』면서 『신원분류는 이종환 포항경찰서장, 이강학 경주경찰서장(3·15부정선거 당시 치안국장), 박주현 영덕경찰서장, 포항경비부 정보참모 차병엽 중위, 헌병대장 고윤석 중위, 정보장교 박재옥 중위 등이 함께 했으며 재판 같은 것은 없었다. 당시 포항경비부 참모장이었던 박병태 소령(해사 1기)도 사건 전모를 소상히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남씨는 『내가 직접 배를 타고 나가지는 않았으나 처형은 사령관으로서 내가 명령한 일이다. 이 일로 평생을 자책감 속에 살았으며 깊이 통회한다』면서 『반세기가 지난 일이지만 한국 정부는 후손을 위해서라도 올바르게 사실을 정확히 규명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청문회라도 연다면 참회하는 심정으로 사실 대로
증언하겠다』고 말했다. -1/10/2000hkusa -
* 노근리 배상 1인당 10억
노근리사건대책위원회(위원장 鄭殷溶)는 11일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사건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망자 1인당 10억원 이상을 배상해 줄 것을 요구했다.
대책위는 “미 정부가 민간인 자문그룹의 건의를 받아들여 책정한 것으로 알려진 사망자 1인당 2만달러(2천2백만원)의 손해배상금은 유가족의 고통에 비교하면
터무니 없는 액수”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1/11/2000/경향 -
* 북한과 식량
- 북한은 유럽연합(EU)이 제공하는 3천3백만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식량원조에
상응해 개인영농 권장과 국제구호기관의 북한전역 식량실태 조사에
동의했다고 EU 집행위가 6일(98/05) 밝혔다.
북한이 국제구호기관이 실시하는 전국적인 식량 실태 조사에 응하기로
한 것은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 집행위 관계자는 EU가 북한의 식량난이 두드러지게 부각된 지난해
이후 북한에 4-5차례의 실무 협의단을 파견해 북한측과 이같은 합의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EU 집행위가 이 과정에서 파리 주재 북한 대사관과도
접촉했으며 유엔 및 미국측과도 긴밀히 협의했다고 말했다.
- 북한은 개인영농 농민이 생산물중 현재 허용되고 있는 개인용 소비 할당량보다
더 많은 양을 분배받아 판매나 물물교환에 쓸 수 있도록 하는
개인영농권장 조치에 동의했다고 집행위는 설명했다.
- 북한은 또 국제원조기구가 식량사정을 파악할 수 있도록 북한전역을
대상으로한 조사를 실시하고 EU의 식량 지원이 본래 목적한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EU실무진이 적절한 조사를 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는
데에 동의했다고 집행위는 밝혔다.
- 한편 유럽연합(EU)은 북한에 3천만 에큐(ECU,약 3천3백만달러)상당의
긴급 식량원조를 제공키로 결정했다.
EU집행위는 북한에 옥수수 3만7천t, 쌀 4만t, 식용유 3천t, 콩 6천t 등
2천만 에큐(2천2백만달러) 상당의 식량을 원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U는 또 북한의 식량 증산을 유도하기 위해 1천만에큐(1천1백만달러)를
들여 3만t 이상의 비료와 집단농장을 대상으로한 영농기술지원 사업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EU의 대 북한 지원사업은 황해남도와 평안남도에 집중될 예정이다- 한국. 98/05/07-
* 남과 북 어린이들의 통일
- 평양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리틀엔젤스 예술단 어린이들이 김포공항에서
던진 천진난만한 말 한마디가 어른들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어린이는 통일했어요. 이제 어른들만 통일하면 돼요.”
- 어른들의 잠든 양심을 세차게 흔들어 깨운 ‘작은 천사들’의 속삭임이자
어른들의 마음의 창에 두껍게 낀 먼지를 깨끗이 씻어내는 한줄기 청량한
빗물이었다.
▼ 남북 어린 천사들의 합창 ▼
- 리틀엔젤스 어린이들은 평양 봉화예술극장과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에서
춤추고 노래했다.
북한 어른들의 뜨거운 갈채를 받았고 북한 어린이들과 손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반갑습니다’를 합창했다.
그들의 눈에는 어른들이 50년 동안 높이 쌓아올린 이념과 체제의 벽은
보이지 않았다.
- 북한도 우리 땅, 북한 사람도 우리 민족이었다.
남과 북의 어린이들은 만난지 1분만에 통일을 이뤘다.
그러나 어른들은 통일하지 못한다.
새들은 휴전선을 넘어도 사람들은 휴전선을 넘지 못한다.
들짐승은 비무장지대를 넘나들어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는
아직도 판문점을 넘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남쪽의 들풀과 북쪽의 들풀이 다를리 없건만 남쪽 농장에서 자란 소떼는
북녘 산천의 들풀을 뜯을 수 없다.
- 남쪽 어른들이 작은 천사들의 순수한 속삭임에 가슴 철렁 내려앉듯
북쪽 어른들도 어린이들의 꾸밈 없는 호소를 귀를 열고 들어야 한다.
어른들이 어린이들의 통일을 막아서는 안된다. 당장 통일이 안된다면
사람과 편지가 남북을 오가고 남쪽과 북쪽의 물자가 제한 없이
휴전선을 넘나들게 하는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런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 새 정부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평화 화해 협력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 정책의 첫 걸음이다.
- 우리는 다 풀었다. 민간차원의 인도적 대북지원을 제한없이 허용하고
민간기업의 대북투자 규제도 사실상 완전 철폐했다. 누구든 북한에
물자를 보내고 싶은 사람은 마음대로 보내고 북한에 투자하고 싶은
사람은 자율적 판단에 따라 수시로 무제한 투자해도 좋다고 했다.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서라면 북한 인권문제나 납북자문제조차
거론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 그러나 손뼉은 마주 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통일은 남북한 어느 한쪽의 의지나 열망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어린이의 통일과 어른의 통일의 다른 점이다.
통일을 앞당기려면 남북이 서로 필요한 쉬운 문제부터 협의를 통해 풀어나가는
것이 순서다.
많이 만나서 많이 대화하고 많이 협력하는 것이 첩경이다.
우리 정부가 정경분리 원칙에 입각해 우선 이산가족 상봉문제와
대북 지원문제 협의를 통해 남북의 협조망을 확대시켜 나가고자
한 선택은 그런 점에서 옳다.
- 문제는 북한이다.
지난번 베이징(北京) 남북차관급회담에서 북한은 이산가족면회소 설치문제와
비료지원문제를 병행 합의하자는 우리측 제안을 거절했다.
우리가 북한에 주겠다는 비료 20만t은 미화(美貨)로 5천만달러에 이른다.
95년 이후 올해까지 민간이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북한에 지원한 옥수수 등이
전부 합쳐 3천1백여만달러어치인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액수다.
같은 기간중 정부차원 대북지원은 2억7천3백여만달러어치였다.
그 많은 지원을 받아가고도 북한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국민의 세금으로 주는 막대한 정부차원의 지원을 거저먹겠다는 북한측
자세는 한마디로 몰염치다.
▼ 北 화해-협력 성의보여야 ▼
- 독일통일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선(先)민족통일 후(後)국가통일’이다.
어린이의 통일은 민족통일의 원형일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반세기 동안 남북으로 흩어져 생사조차 모르는
부모형제가 혹시 살아 있다면 얼굴만이라도 한번 보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도 아직 이루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다. “어린이는
통일했다. 이제 어른들만 통일하면 된다.” - 김종심 .98/5-
* 북한 다녀온 성균관대 총장
- 남과 북의 `성균관 대제학'이 개성에서 만나 남·북 학술교류의 물꼬를 텄다.
성균관대의 정범진 총장은 지난달(98/5) 28일부터 이달 5일까지 북한을
방문해 개성 고려성균관의 김효관 총장을 만나고 돌아왔다.
- 정 총장은 방북기간동안 고려성균관쪽과 자매결연을 맺고 지속적인
학술교류를 갖기로 합의했다.
또 올 9월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대학총장학술회의에 김일성종합대 박관오
총장과 고려성균관 김효관 총장을 초청해 긍정적인 반응을 받아냈다.
북한의 대학총장들이 서울에 오는 것만으로도 남북 화해와 협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정 총장은 벌써부터 기대에 부풀어 있다.
- 북한의 대학과 학술 교류를 추진하게 된 계기는.
95년 총장에 취임한 뒤 우연히 북한 교육에 관한 자료를 보다 고려성균관이란
대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름만 보고도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실제 고려성균관은 고려시대 개성의 국자감에 뿌리를 두고 있고, 성균관대는
조선시대의 학맥을 이어받은 것이다.
성균관대 건학 600년을 맞아 남·북의 성균관이 오고가며 서로 교류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2년 전부터 대북접촉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핵문제와 잠수함사건 등이 터져
어려움을 겪었다.
올 1월 북쪽 인사를 처음으로 만날 기회가 있어 교류의사를 전달했다.
문 : 처음부터 직접 북한을 방문할 계획이었나.
답: 처음에는 어디서든 만나서 고려성균관과 교류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저쪽에서 먼저 남·북 총장이 북한에서 직접 만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해왔다.
나 스스로도 학교를 직접 찾아가 보고 총장끼리도 만나야 교류협력이 빠르게
진척될 것이라 생각했다.
문: 북한방문의 성과를 꼽는다면.
답: 기대하고 바랐던 것은 일차적으로 모두 이뤘다.
고려성균관 김효관 총장을 만나 서로 교류·협력하자는 원칙적인 합의를
보았다. 원칙적인 수준이지만 서로 동질성을 확인하고 앞으로 두 대학의
발전을 위해 협력하자는 데 뜻을 모은 것은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직접 만나보니 상당히 희망적이란 느낌이 들었다.
당국에서 도와주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번 학술교류가 좋은 결실을 거둔다면 정치·경제·문화 등 다른 분야의
교류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문: 구체적으로 어떤 학술 교류 계획을 갖고 있나.
답: 1단계로 학술 교류를 하자는 원칙적인 합의를 봤다.
다음으로 오는 9월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대학총장학술회의에 북한 대학총장들이
참석하길 기대하고 있다.
이 대회에는 영국의 옥스포드,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프랑스의 소르본느 등
세계의 유서 깊은 대학들이 많이 참석하기로 했다.
1000년이 넘는 우리 민족의 교육사와 전통을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좋은 자리에
북한의 대학총장들이 참석하면 금상첨화다.
이들이 서울에 오면 교직원과 학생의 상호교류, 학술 자료의 교환, 공동연구와
학술회의 공동개최 등 구체적인 협력사안을 놓고 의논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 가보니 대학 재정이 좋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험기자재 등 도와줄 것이 있으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486컴퓨터 50대와 프린터 15대를 인천항을 통해 개성의 고려성균관으로
보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문: 북한 대학 총장들이 서울 회의에 참석할 가능성은.
답: 고려성균관 김효관 총장은 직접 만나 대회 참석을 제의해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김일성대 박관오 총장은 베이징대 100주년 행사에 참석하는 바람에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다른 교수로부터 잘 될 것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아직 확실한 참석 약속을 받지 못했지만 남·북 정부가 도와주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서울대회 참석이 성사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계속 교류하는 길을
모색할 작정이다.
9월(98)까지는 방북할 계획이 없지만 그뒤에 북한에 다시 갈 수도 있고,
중국 등 제 3국에서 공동 학술회의를 여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문: 북한의 여러 대학을 둘러봤는데 수준은 어느 정도였나.
답: 고려성균관은 평양에 있는 큰 대학에 비해 규모가 작은 지방대학이다.
인삼가공, 도자기공예, 섬유공학 등을 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곳이다.
평양의 김책공대는 우리의 공대 수준이고, 김일성대는 유일한 인문·사회계 위주의
종합대학이었다.
48년에 지은 본관 건물을 비롯해 도서관이나 체육관 등의 시설과 규모가
남쪽의 대학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문: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소감은.
답: 통일전망대에서 멀리 개성의 송신탑을 바라보곤 했는데, 그 송신탑 바로
밑에서 남쪽을 보니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척에 두고 몇 만리를 돌아서 갔다왔는데 빨리 판문점으로 오고가야할
것 같았다.
우리는 민족의 이질화를 염려하고 있지만 지나친 기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통하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고, 특히 한민족이 가지는 `정'이라는
것을 북한사람 누구에게서도 느낄 수 있었다.
서로 침범하지 않고 흡수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서로의 약속을 지켜 신뢰를
쌓아가면 무슨 일이라도 이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활발한 교류를 위해서는 남쪽이 먼저 상당한 아량을 갖고 지원을
베풀어야 한다. - 한겨레. 98/518-
* 북한의 수능시험
- 북한의 대학이 총 280여개에 달하고 있으며 우리의 대입수학능력시험과
유사한 시험을 통해 신입생을 선발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는 현재 전문대를 포함 336개이다.
26일(98/5) 정부 관계기관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대학은 종합대학,
단과대학, 사범·교원대학, 우리의 전문대학에 해당하는 공장고등전문학교
등으로 구분된다.
종합대학은 김일성종합대, 김책공업종합대 고려성균관 등 3곳이며 사범대학은
고등중학교 교사를, 교원대학은 인민학교 교사와 유치원 교양원을 양성한다.
- 대학 신입생 선발은 대학에서 입학생수를 계획, 노동당이 이를 지역에
할당하는 방식이다. 우리 수학능력시험과 비슷한 「대학예비시험」을
치른 지원자들은 3개 대학을 복수지원할 수 있다. 또 최근
김일성종합대에 대한 선호도가 낮아지고 평양외국어대나
평양장철구상업대 등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어 북한대학생들도
나름대로 진로에 대해 고심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 대학 학비는 기본적으로 면제이며 대학원 학위과정은 연구원(석사)과정
2년, 박사원(박사)과정은 3년으로 돼 있다.
또 석사의 경우 우리와는 달리 준(準)박사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 자료는 또 『최근 북한의 식량난 심화로 대학의 무단 이탈자가 급증,
청년동맹 중앙위가 최근 「방학후 미도착자들을 시급히 데려오기 위한
사업을 진행하라」고 지시하기까지 했다』고 소개하고『일부대학의 청년위원회에서
「부르주아 사상요소, 개인 이기주의, 장사행위 등 비사회주의적 요소가 만연하고
있다」고 자아비판하는 등 대학생들이 사상적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한국일보.98/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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