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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망 받으면 회개하고 다시 일어나라
(잠 29장)
전도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아갈 때 성취해야 할 사명입니다.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심부름임을 알아야 합니다. "목이 곧다”는 말은 본래 소가 그 멍에를 메지 않으려고 머리를 숙이지 않는데서 유래된 말입니다.
소가 보통 때는 아주 순한 것 같다가도 달구지 멍에를 메우려고 하면 발악을 합니다. 어찌되든 그 멍에를 메지 않으려 발버둥질을 칩니다. 그렇게 할지라도 억지로라도 멍에를 메우면 처음에는 괴로워서 막 뜀박질을 하고 발광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잘 메고 나아갈 때까지 매질하고 코가 찢어질 정도로 잡아 당겨서 고생을 시킵니다.
이렇게 해서 소가 달구지 메는 법을 배워 목을 숙일 줄 알면 그 다음에는 밭가는 법을 배우고 다음엔 곡식이 자란 후에 북돋우기 위해 후치 질을 하는데 밭고랑을 따라 일을 잘하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를 자녀답게 키우시기 위해서 훈련을 시키십니다. 잘못할 때에는 사랑의 채찍을 드시는데 이 채찍을 맞고 하나님의 뜻을 잘 알아서 그대로 하면 채찍을 더 맞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목을 숙이라는데 숙이지 않고서 곧은 대로 버티면 가해지는 것은 매 밖에는 없습니다. 소가 소 구실을 제대로 하려면 목을 숙이고 멍에를 바로 메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잘 길들여진 소는 달구지 옆에 멍에를 갔다놓고 멍에를 주인이 쳐들면 소는 이어 그 멍에 밑에 가서 섭니다. 그리고 아무 저항 없이 자기에게 메워진 멍에를 메고 갈 길을 갑니다.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여러 번 매를 맞으면서도 회개하지 못하는 심령을 잠언은 멍에를 메지 않으려는 소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육신을 입고 사는 인간에게는 누구나 다 고통보다는 평안을 원합니다. 매보다는 칭찬을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맡겨진 멍에가 각각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메어야만 하는 멍에가 있습니다. 내가 멜 것을 다른 사람에게 메울 수 없습니다.
1. 책망을 받으면 회개해야 함.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 하느니라 지혜를 사모하는 자는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창기와 사귀는 자는 재물을 잃느니라”(잠 29:1-3)
우리는 진리의 말씀에 기초하여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 자녀를 책망해야 합니다.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아 회개치 않는 자녀가 있습니다. 그는 갑자가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합니다. 책망을 받을 때 겸손히 회개하는 사람이 지혜의 사람입니다. 지배자가 의인이냐 악인이냐에 따라서 백성은 즐거워하기도 하고 탄식하게도 되는 것입니다.
의인이 권세를 잡으면 죄인이 벌을 받고 신앙이 있고 미덕이 있는 사람이 후원을 받게 되므로 질서는 안정되고 살 만한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악이 만발하게 되고 경건과 신앙은 박해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므로 백성이 탄식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어느 길이 바른 길이고 생명과 복의 길인 것을 알기 때문에 그 길을 가므로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자랑스럽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길로 나아가 창기를 사귀면 패가망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의 번뇌 거리가 될 수밖에 없고 알거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2. 왕은 정의로 나라를 견고하게 함.
"왕은 정의로 나라를 견고 하게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 시키느니라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잠 29:4)
집권자는 공의의 대행자가 되어야 나라가 튼튼하고 바로 세워질 것입니다. 반면에 불의한 집권자는 사리사욕을 위해서 중한 세를 가중시켜 국력을 파괴케 한 예가 많습니다. 공의의 위정자는 국민이 평안하게 살며, 자유와 재산권을 보장하여 발전시키고, 경제를 개발하여 골고루 혜택을 입게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존경심과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그것을 고백하는 것 그것이 아첨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마지막이 왜 그렇게 비참하게 되었습니까?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들의 아첨 때문이었습니다. 대통령이 하는 말이면 무조건 ‘지당하십니다’로 응수하고, 충언하는 사람은 없고 ‘잘 되어 갑니다’로만 아첨한 때문입니다.
3. 악인은 스스로 올무가 됨.
"악인이 범죄 하는 것은 스스로 올무가 되게 하는 것이나 의인은 노래하고 기뻐 하느니라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주나 악인은 알아줄 지식이 없느니라”(잠 29:6-7)
구부러진 길, 불의한 길을 걷는 것은,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스스로 올무가 되는 일입니다. 자기 자신이 판 웅덩이에 스스로 빠지는 결과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노래하고 기뻐합니다. 마음이 평안하고 기쁘고 즐겁고 여유 있어 노래하게 됩니다.
판사와 변호사는 가난한 사람의 소송도 부자의 소송이나 다름없이 꼭 같이 돌보아야 하는데 보통은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무시해 버리기 쉽습니다. 알아줄 지식이 없다는 말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도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별을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서로 차별을 둘지라도.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누구나 다 동등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을 더 긍휼히 여기십니다.
4. 거만한 자는 성읍을 요란하게 함
"거만한 자는 성읍을 요란하게 하여도 슬기로운 자는 노를 그치게 하느니라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다투면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 그 다툼은 그침이 없느니라”(잠 29:8-9)
예수님도 ‘화평케 하는 사람은 복이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문제나 요란케 하지 않고 조용하게 화평하게 하는 것이 지혜 있는 사람의 생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특색은 곧 화평하게 사는 것입니다. 성내면 성낸다고 시비하고, 웃으면 웃는다고 야단입니다. 아예 미련한 사람과는 될 수 있으면 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5. 피 흘리기 좋아하는 자는 온전한 자를 미워함.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는 온전한 자를 미워하고 정직한 자의 생명을 찾느니라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잠 29:10-11)
남을 피 흘리게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기같이 악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흠 없는 사람을 미워합니다. 그러나 정직한 사람은 온전한 사람을 좋아하고 흠 없는 사람의 생명을 보살펴 줍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노하게 되는 경우는 꼭 같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 있는 사람의 차이는 노를 드러내는 사람과 억제하는 자의 차이입니다.
6. 관원이 거짓말을 들으면 하인들이 다 악해짐.
"관원이 거짓말을 들으면 그의 하인들은 다 악하게 되느니라 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가 섞여 살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그 모두의 눈에 빛을 주시느니라”(잠 29:12-13)
관원이란 지도자급 인물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에서 관원이란 종교적 지위를 포함합니다. 거짓말을 신청한다는 말은 귀를 기울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며 정신이 빠져 있다는 뜻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거짓말에 귀를 잘 기울입니다. 거짓말도 진짜처럼 달게 듣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아첨에 귀를 기울인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하인들이
때로는 주인 듣기 좋으라고 달콤한 말로 주인을 기쁘게 하려는 말을 말합니다.
가난한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양심적인 사람들을 말씀합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요 다른 이들은 육신의 본능대로 살아가는 포학한 사람들입니다.
7. 가난한 자를 차별하지 말아야 왕위가 견고해짐.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악인이 많아지면 죄도 많아지나니 의인은 그들의 망함을 보리라”(잠 29:14-16)
우리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을 위해 성실히 변론하면 우리가 세세토록 주와 함께 살아서 왕 노릇 할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꾸지람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그 채찍과 꾸지람을 달게 듣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자기를 책망하면 그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앙심을 품고 마음에 섭섭함을 갖게 됩니다.
우리나라처럼 자녀 교육에 열성적인 나라도 드물 것입니다. 그를 위해 기러기 아빠가 생겼고 강남엄마라는 말까지 생겨났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청소년 범죄가 그칠 줄 모르고 있습니다.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완성된 인격이 표출되어야 하는데 세상은 점점 악해지고 있습니다. 악인을 버려두어서 악인이 많아지면 죄인도 많아집니다. 죄인이 많아지면 나라는 반드시 망합니다. 의인은 그들이 자신의 죄로 망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함.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종은 말로만 하면 고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알고도 따르지 아니 함이니라”(잠 29:17-19)
자녀 교육의 문제점은 징계를 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짐승들도 새끼를 기를 때 혹독한 훈련을 시키는데. 사람들은 자녀들의 잘못을 보고 징계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인격의 형성은 어려서부터 자녀를 징계하고 책망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여기서 징계와 책망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묵시란 장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해야 하는 것도 방자히 행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만약 성경의 계시가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사실 무익한 종교 활동이 됩니다. 내세의 영생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현실의 축복에 치우치는 종교행위가 되고 말 것입니다.
더욱이 신약은 우리 앞에 성취 되지 않은 그리스도의 날과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 기쁜 소식 우리가 전하는 복음인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성도들이 받는 영원한 기업에 대한 약속이 없다면 우리의 의로움도 헛것이며 인내와 절제의 생활도 유익하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같이 오늘을 먹고 마시다 죽으면 되지만 성경의 계시는 우리의 소망이 되며 율법은 오늘을 사는 성도들의 삶의 길잡이인 것입니다. 종이란 개념은 이제 세상에서 없어지고 있지만 이것은 부름을 받은 복음의 제자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수천 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바로 이끌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나가 오리혀 하나님의 복음을 훼방하고 모두 징계를 싫어해 다른 길로 간 것입니다.
9. 생각하고 말을 해야 함.
"네가 말이 조급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종을 어렸을 때부터 곱게 양육하면 그가 나중에는 자식인 체하리라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 함이 많으니라”(잠 29:20-22)
어떤 사람들은 속히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여 이 땅에 천국을 세워야 한다고 조급히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사도들 시대에도 이 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하지 못했고 복음의 왕성한 활동에도 세상은 더 악해졌습니다. 이 땅에 고난 받은 종들을 존경합니다. 그들이 비록 밭의 소출을 거두지 못하였고 우리에 소가 없어도 오직 주를 보고 기뻐했으며 복음을 배반치 않고 종의 직무를 다했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가는 곳마다 혈기를 부리고 분노를 발합니다. 그런 집에는 늘 불안과 긴장감이 돌고 평안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화가 나고 속이 상해서 견딜 수 없는 지경에 빠질지라도 참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함으로 가득 찹니다.
10.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음.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도둑과 짝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미워하는 자라 그는 저주를 들어도 진술하지 아니하느니라”(잠 29:23-24)
열흘 붉은 꽃이 없고 권불십년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사람의 길은 산과 같아 오르면 내려와야 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달려갈 때에는 자신의 교만함을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그 마음의 욕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 마음을 낮추고 겸손하면 합당한 영예를 얻게 됩니다.
주님은 하늘로나 땅으로나 성전으로나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인간이 제 뜻대로 이룰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엇을 얻기 위해서라면 맹세를 세우고 또 자신이 불리하면 자신이 한 맹세를 슬그머니 내려놓습니다. 사실 도적과 짝을 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모든 것을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돈 몇 푼에 참새 열 마리가 도매 값에 넘어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11.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림.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 하는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불의한 자는 의인에게 미움을 받고 바르게 행하는 자는 악인에게 미움을 받느니라”(잠 29:25-27)
마음에 평안을 잃고 불안에 떠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람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평안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을 보면 범사를 하나님께 맡기고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일이 세상의 권세 자에 의해 성공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 관한 모든 일은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으며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완성하십니다. 불의한 자는 여호와를 믿지 않은 자요, 정직한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이 둘은 서로 다른 가치관 위에 서있어서 대립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는 악한 자들에게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함께 해주심을 믿으며 싸워 승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살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합니다. 불의한 사람은 의인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 앞에서 사는 자들을 미워하십니다. 바르게 행하는 사람은 악인에게
미움을 받고 핍박을 받지만 하나님과 의인의 사랑을 받습니다.(교훈)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길을 제시해 주고 계십니다. 그 길은 좁고 험난한 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길을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혜 있는 사람은 그 길의 끝에 있는 구원과 영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생과 구원을 바라보며 현실의 삶을 살아갑니다. 훈련과 준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악인은 이 길을 거부하고 무시합니다. 이러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함께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성도는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기도 :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해도 두려워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심을 믿고 담대하게 나가게 하시옵소서.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서 화가 발할 때 억제할 줄 아는 것이 지혜임을 깨닫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생각해서 우리는 악인의 길, 어리석은 사람의 길을 걷지 않고 의인의 길, 지혜 있는 사람의 길을 걷게 하여 주시옵소서. 목이 곧은 생활을 하지 않았나 늘-돌아보아 회개하게 하시고 하루를 살아도 찬송하고 기뻐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디를 가든지 화평을 위해 힘쓰는 사람, 노할 일이 있어도 억제하는 그리스도인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는 우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G록키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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