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 리더십과 파트너십의 조화
봉건왕조시대나 독재정권시대의 리더십은 민주주의시대와 분명히 다르다는데서부터 화두(話頭)를 열어야 되겠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정치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비도덕적 비윤리적 수단이라도 허용된다' 라는 주의, 즉 파렴치한 권력정치, 추악한 현실정책 또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국가가 취할 술책으로서 힘있는 사자와 약은 여우의 두 역할을 해야 하며 모든 도덕성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있는 것처럼 꾸밀 필요가 있고 필요하다면 신의(信義)를 지킬필요가 없다' 고 주장한다.
마키아벨리의 이와같은 주장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 일고의 가치도 없는 흘러간 이론이지만 놀랍게도 근대 일부 독재권력자에게는 '군주론' 이 마치 자신들의 성서와 같은 역할이 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의가 필요하다. 북한의 김일성-김정일-김정은 계열의 원용(援用)이 대표적 예가 될 수 있다.
또한 쿠데타의 주동자는 마키아벨리의 이론에 자위하며 '군주론' 을 쿠데타 합리화를 위한 교범으로 삼아온 결과 그 폐해가 근대 독재자의 쿠데타와 권력의 종말적 비극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여기에서 소결론을 맺는다면 이 강의에서는 민주주의와 상반되는 이러한 주의 주장과 관계없는 민주주의 제도하의 리더십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데서 시작한다.
대한민국은 기나긴 봉건왕조시대. 사대주의왕조시대. 일본 제국주의시대. 그리고 해방 이후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독재정권시대를 겪었고 지금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진입, 선진국을 향해 힘찬 항진을 시작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사회에는 많은 집단이 있다. 집단의 종류가 다양한 것처럼 이들 집단을 이끌어나가는 리더(Leader)의 호칭도 많다. 그래서 학자들은 저마다 많은 종류의 리더를 열거한다. 그 가운데 리더의 분류상 비교적 공통점이 많은 것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지휘관, 사령관, 수령, 지도자, 관리자, 집행자, 중심인물 등이다. 근래에 와서 CEO(Chief Executive Officer-최고경영자)가 자주 눈에 띈다. 그러나 이외에도 그 수에 있어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한결 같이 이 모두가 한 집단 안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넓은 의미에서는 대통령을 비롯하여 고위 공직자도 한 조직의 리더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군사조직에서 사용하고 있는 리더십의 개념을 중점적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아무래도 리더십의 원류(源流)는 군사행동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두 원류 가운데 하나는 구약성경에 기록된 내용이다.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도록 그들의 유일신 여호와가 모세에게 명령을 내리면서 시작된다. 물론 모세 이전에도 많은 기록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리더에게 리더십을 언급한 기록은 여호와와 모세로부터 연유한다.
다른 하나는 보다 구체적으로 리더십을 서술한 중국의 병서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이 있다. 그 이전에도 리더십 기록은 있었지만 학문 체계를 갖춘 리더십 원전(原典)은 두 병서를 따를수 없다.
'전쟁론'의 저자 클라우제비츠(von clausewitz,1780~1831) 도 위 두 병서를 참조한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미국 육군에서는 소대장을 Leader 라고 호칭하며 중대장급 이상의 지휘관에게만 Commander 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전반적인 학문의 견지에서 Leader와 Commander 에 대한 것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Leader란 글자 풀이 그대로 집단의 선두에서 이끌어가는 사람을 말한다. 즉 앞에서 안내한다는 뜻이다. Leader를 설명하기 위하여 이해하기 좋은 예를 든다면, 사교춤을 상기해 보기 바란다.
춤을 추는 과정에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리더와 파트너(Partner) 관계라고 하는데 이 경우 남자는 여자를 이끌어 갈 책임이 있고 여자는 협력하면서 따라가야 할 의무가 있다. 리더에게 있어서는 춤을 춘다는 결과보다 춤을 추도록 이끌어가는 과정을 중시해야 한다. 따라서 리더는 파트너가 밟아야 하는 스텝을 전부 배워서 숙달하지 못하는 한 춤은 성립되지 못한다. 남자가 춤을 추겠다고 여자를 이끌면서 상대 여자의 발이나 밟으며 무대를 헤맨다면 그 한 쌍의 남녀는 협력관계(Partnership) 가 형성되지 못하면서 사교춤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소대장과 소대원의 관계는 바로 이들 한 쌍의 남녀 관계와 같다고 비유할 수 있다. 즉 소대장은 소대원의 일거수 일투족을 파악하는 동시에 모든 동작 하나하나를 완전히 터득한 후 앞장 서서 이끌어 가야 한다. 명령을 해서 동작을 하게하는 지휘가 아니고 안내하면서 인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대장 이상에게 붙여진 Commander 란 어떤 것인가. Command 는 명령하다라는 Order와 동의어이다. 즉 명령하여 지배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Commander 는 과정과 결과를 동시에 중시하는 소대장과는 달리 결과를 중시한다. 따라서 Commander 는 협력관계(Partnership) 가 아니라 지배자와 피지배자와의 관계이다. 그러므로 Commander 인 중대장급 이상 지휘관은 소대장 앞에서 소대원 하나하나의 동작을 지적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지휘관은 자기에게 부여된 합법적인 권한을 행사하여 자기의 조직을 움직여 구성원을 부여된 목적에 종속시키는 자이다. 바꾸어 말하면 지휘관은 조직관계의 중심인물이며 리더 즉 소대장은 인간관계의 중심인물이다.
그러나 우리 군에서는 Leader 와 Commander 를 적절히 구분하여 부를 수 있는 용어가 마땅치 않다. Commander 를 지휘관이라고 호칭하고 있으나 소대장 영어 호칭인 Leader 는 소대장 기능에 적합한 우리말 호칭이 없다. 영어에 있어서 Leader라고 하면 우리 말로는 지도자 또는 선도자라고 말할 수 있으나 어감 정서상 적합치가 않다.
그래서 한국군의 모든 군사제도는 미국의 군제와 다르므로 우리만의 군사제도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그렇다면 한국군에 있어서의 기능상 소대장의 호칭을 정한다면 결과적으로 임관된 장교이기 때문에 지휘관이라고 호칭할 수 밖에 없다.
군 통솔법이나 일부 교리상 문서에는 소대장의 기능상 호칭을 지휘자 라고 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미군 영어 호칭을 억지로 직역한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지휘자란 Leader 라는 기능상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Commander 란 뜻에 가깝기 때문이다. 영어에 있어서 Commander 는 어미에 붙는 '자' 와 '관' 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따라서 소대장은 임관된 지휘자이므로 지휘관으로 호칭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조선시대나 구 한국군의 군제에서 병졸을 집단으로 거느리는 무관을 지휘관으로 분류했다.
그러한 연유로 앞으로 기술하는 리더십 강좌에서는 지휘관 범위 안에 소대장을 포함한다는 것을 밝혀 둔다.
지휘관은 집단의 목표달성을 위하여 성공적인 통솔력을 구비해야 한다. 따라서 지휘관은 직책과 계급을 가지고 주어진 권한과 책임을 바탕으로 집단을 강력하게 지휘 통솔하여야 되는 책무가 있으며 이 책무는 기본적이며 절대적인 것이다.
지휘관이 자기 집단을 지휘함에 있어 어떻한 내부적 요인이나 외부적 요인에 의하여 장애를 받아 지휘력이 조직내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 할 때에는 그 시간부터 지휘관의 실질적 권한이 소멸된다.
전쟁이나 전투에는 원칙은 있으나 공식이나 방법이 없듯이 지휘관에게 있어서의 지휘통솔도 원칙은 있으나 공식은 없다. 따라서 전투에서 승리하는 지휘의 요체는 지휘관 자신의 전술과 지휘력의 창출에 있는 것이지 최고의 병학서의 원칙 적용에서 오는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원리 원칙에 없는 지휘관 자신이 창안한 전술이나 지휘력으로 위대한 승리를 가져왔던 전례는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고 원리 원칙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본다는 뜻과는 다르다. 어떠한 경우이든 원리 원칙은 지휘관에게 있어 판단과 결심의 기초가 된다는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휘관의 지휘 통솔 역량은 선천적 자질이 지배적인 요소가 아니고 부단한 학습과 책임감을 인식한 불타는 노력만이 성공적인 지휘 통솔력을 창출할 수 있다.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성공적인 지휘관이란 집단을 목표달성에 도달 시킬 때 즉 전승을 획득했을 때의 명예로운 상태를 호칭하는 것이지 개인 영달의 결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임을 지휘의 본질면에서 지적하고 싶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공적인 지휘관이 되기 위한 길은 필요 이상의 관심을 경주하면서 진급이나 상위직을 탐내서는 안되며 오직 단위 조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올바른 슬기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교훈은 과거 우리 육군에서 '하나회' 라는 권력형 사조직이 보직과 진급에서 특전을 독식한 병폐가 결국 12.12군사반란이라는 우리 군부의 치욕을 남긴데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휘관에게는 명령하는 권한이 있고 부하에게는 복종의 의무가 있다. 이 점이 일반 조직의 기능과 다르다. 그 상명하복(上命下服)이 무조건 무사통과하던 시대는 지났다. 군대에 있어서 지휘관의 강압적 리더십이 통할수 없는 개방시대에 왔으므로 지휘관 또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리더십에 더 관심을 갖고 실행할 때 목표달성이 가능해진다.
불행하게도 우리 군은 폭압적 리더십 아래 상당히 긴 세월을 겪어야 했다. 건군 이후 일본군 만주군 출신 지휘관 아래 상하관계가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 여파로 많은 병폐가 우리 군의 발전을 저해했다.
그 질곡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계기는 한국군의 월남전 참전에서 비롯되었다. 파월 제1진 주월한국군 지휘부 구성원 전원(대대장급 이상 지휘관 및 사단 참모 이상) 이 미국 군사학교 이수자로서 편성되어 새로운 리더십에 눈을 떴기 때문이었다.
지휘관과 부하와의 관계 또한 무조건적 복종의 마키아벨리즘이 원용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으므로 Leadership과 Partnership의 유기적 관계에서 생성되는 새로운 시대의 리더십이 전승을 기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1강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