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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인사이드
기획특집
<파리 폴리>의 사랑스러운 노르망디 여인으로 돌아오다!
1953년생, 한국 나이로 막 63세에 접어든 이자벨 위페르는 카트린느 드뇌브와 더불어 프랑스 영화의 ‘Grand Dammes(위대한 여인)’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대표 여배우이다. 그녀는 칸, 베를린, 베니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고, 프랑스의 아카데미시상식으로 불리는 세자르영화상에서 한 번의 여우주연상 수상과 함께 무려 13번의 노미네이트를 기록하는 등 뛰어난 존재감을 뽐내왔다. 2011년에는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에 출연하며 국내 영화 팬들과 만남을 가졌던 그녀가 이번엔 프랑스 노르망디의 한 시골에서 목장을 운영하며 사는 소녀감성의 여인으로 돌아왔다. 160cm의 작은 체구, 어려 보이는 얼굴, 앙다문 입술을 한 채 다채로운 배역을 자신만의 확고한 영역으로 재탄생 시키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여성상’을 연기해 온 이자벨 위페르. 2015년, <파리 폴리>로 발랄한 변신을 꾀한 그녀의 대표작들을 돌아본다.
1. 비올렛 노지에르(개봉: 1978Ⅰ감독: 클로드 샤브롤)
제31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
: 1930년대 부모에게 학대당하며 자란 젊은 창녀 ‘비올렛 노지에르’가 부모를 살해했던 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작품.
프랑스 누벨 바그의 거장 클로드 샤브롤과 이자벨 위페르가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작품이다. 이자벨 위페르는 <비올렛 노지에르>에서 부모를 살해한 젊은 여인인 ‘비올렛’ 으로 분해 완벽한 연기력으로 역할을 소화하며 칸영화제에서 첫 여우주연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샤브롤 감독은 후에 자신과 수차례 함께 작업했던 이자벨 위페르를 “어떤 역이든 통째로 집어삼켜 자신 안에서 새롭게 다듬어내는 카멜레온 같은 배우”라고 극찬했다.
2. 의식(개봉: 1995Ⅰ감독: 클로드 샤브롤)
제5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볼피컵 여우주연상
제21회 세자르영화제 여우주연상
: 부르주아 가족의 가정부로 고용된 한 소녀가 상류층 인물들의 위선을 인식하고 이에 맞서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의식>은 프랑스 브루주아의 허위의식과 위선적인 모습을 묘사한 작품으로, <비올렛 노지에르>에서 작업했던 클로드 샤브롤 감독과 이자벨 위페르가 다시 함께한 작품이다. 이자벨 위페르는 이 작품에서 정열적이면서 거칠 것 없고, 때때로 짓궂은 우체국 직원 ‘잔느’를 맡아 부르주아 가족의 가정부인 ‘소피’에게 도움을 주고 그녀가 상류층의 위선을 목격하게 하는 인물이다. 당차지만 직설적인 성격 때문에 마을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지 못하는 ‘잔느’라는 인물을 뛰어난 연기력으로 묘사해 영화가 담고 있는 주제 의식을 세련된 방식으로 표현해냈다.
3. 여자 이야기(개봉: 2003Ⅰ감독: 클로드 샤브롤)
제4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볼피컵 여우주연상 수상작
: 프랑스에서 마지막으로 처형된 여성으로 기록된 낙태 시술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
이자벨 위페르에게 두 번째 베니스국제영화제 볼피컵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여자 이야기>는이전 그녀의 수상과 많은 인연이 있었던 클로드 샤브롤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다. 프랑스 디에프 근처의 한 작은 마을에 사는 주부이자 어머니인 ‘마리’역을 맡아 섬세한 연기를 보여준 이자벨 위페르는 원치 않는 다른 여성의 낙태를 도우며 자신의 삶을 책임지려는 강인한 여성을 표현해 엔딩 장면에서의 감정적인 충격을 오롯이 자신의 연기력으로 꽉 채워내며 큰 감동을 주었다.
4. 피아니스트(개봉: 2001Ⅰ감독: 미카엘 하네케)
제54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제54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
제54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제28회 시애틀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제14회 유럽영화상 유러피안 여우주연상 수상
: 뒤틀린 욕망을 가진 엘리트 피아노과 여교수와 제자의 불온한 사랑을 통해 인간 본성과 폭력, 그리고 사랑의 상관관계를 그린 작품.
<피아니스트>는 세계적인 거장 미카엘 하네케의 파격적인 작품으로, 이자벨 위페르가 가학적인 성적 취향을 지닌 빈 음악원의 피아노과 교수 ‘에리카’역을 맡아 열연했다. 예술을 다루는 고급 계층에 속하지만, 지적이고 차가운 가면 뒤로 기형적인 욕구를 숨긴 채 살아가는 여인인 ‘에리카’는 이자벨 위페르라는 여배우를 통해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지만 가학적인 욕망으로 사랑을 갈구하는 슬픈 아이러니를 가진 캐릭터로 표현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파격적이고 감정의 진폭이 큰 캐릭터로 이자벨 위페르는 두 번째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세상에 다시 없을 최고의 여배우임을 증명해냈다.
5. 8명의 여인들(개봉: 2002년Ⅰ감독: 프랑수아 오종)
제5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수상작
제15회 유럽영화상 유러피안 여우주연상 수상작
: 1950년대, 프랑스 시골의 눈으로 덮인 대저택에서 ‘밀실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저택 안에 있던 여덟 명의 여인들이 범인을 추리하는 이야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여 화제가 되었던 <8명의 여인들>에서 이자벨 위페르는 가장인 ‘마르셀’의 처제 ‘오귀스틴’ 역을 맡아 열연했다. 뮤지컬 적 요소가 가미된 이 영화에서 이자벨 위페르는 프랑수아 아르디의 ‘개인적인 메시지’라는 곡을 소화해 자신이 맡은 캐릭터의 비밀을 암시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매력적이지 못한 외양으로 히스테리를 부리며 안경 너머의 욕망을 드러내는 그녀의 모습은 후반부로 갈수록 감추고 있던 비밀과 함께 숨겨져 있던 여성적인 모습을 드러내며 입체적인 매력을 선보였다.
6. 코파카바나(개봉: 2010년Ⅰ감독: 마크 피투시)
: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던 철없는 엄마 ‘바부’가 자신의 결혼식에 엄마를 초대하지 않겠다는 딸의 선언을 듣고 벨기에로 떠나 새로운 생활에 도전하며 자랑스러운 엄마로서 다시 서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
이자벨 위페르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그녀의 친딸 ‘롤리타 샤마’와 함께 출연해 화제를 모은 작품으로, 기존에 알고 있는 ‘엄마’라는 틀을 깨부순 색다른 캐릭터 ‘바부’ 연기로 주목을 받았다. 미래보다는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철이 없어 보일 정도로 천진난만하며, 열정적인 모습으로 자기감정에 솔직한 ‘바부’를 완벽하게 표현해낸 이자벨 위페르는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선보였다. 흔들리는 모녀 관계에 대해 색다른 대안을 제시하며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정작 진정한 모습은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유쾌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7. 다른 나라에서(개봉: 2011년Ⅰ감독: 홍상수)
: 모항이라는 해변 마을로 빚에 쫓겨 내려온 영화과 학생이 쓴 시나리오에 ‘안느’라는 이름의 세 여인이 등장해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
이자벨 위페르의 한국 인지도를 높여준 가장 큰 계기가 된 영화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인 홍상수 감독과 함께 작업하며 ‘안느’라는 이름의 세 여인으로 분했다. 잘 나가는 감독, 한국 남자를 비밀리에 만나는 유부녀, 그리고 한국 여자에게 남편을 빼앗긴 이혼녀라는 세 명의 캐릭터를 능숙하게 변주해내며 영화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8. 파리 폴리(2015년 2월 26일 개봉Ⅰ감독: 마크 피투시)
: 노르망디에서 목장을 운영하며 권태를 느끼는 중년 부부에게 일어난 일련의 변화를 통해 그들의 사랑을 재발견하게 되는 여정을 그린 작품.
<코파카파나>를 통해 호흡을 맞췄던 마크 피투시 감독과 다시 한 번 의기투합해 만든 영화로, 프랑스의 노르망디에서 목장을 운영하며 남편과 살아가는 아내 ‘브리짓’역을 맡았다. 지금껏 주로 극단적인 상황에서 치열한 갈등을 겪는 여성 역할을 맡으며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던 이자벨 위페르는 <파리 폴리>에서 중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꿈꾸는 소녀 같은 몽상가로 남편인 ‘자비에’ 역의 장 피에르 다루생과 환상적인 부부 연기를 선보인다. 특히 엉뚱하며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다채로운 매력을 발산하는 이자벨 위페르를 만날 수 있어 그녀를 사랑하는 많은 영화팬들에게 선물 같은 영화가 될 예정이다.
마크 피투시 감독과 나는 다시 같이 작업할 계획이 계속 있었다. 나는 마크 피투시 감독의 세계와 거리를 진심으로 좋아한다. 그가 쓰는 시나리오에는 지극히 우아하면서도 그에 어울리는 유머가 곁들어진 무언가가 있다. 그는 두드러지지 않는 인물들에 흥미를 가지고 사회적 현실을 통해 그 인물들을 엑스레이 찍듯 탐구하면서도 배경에 지나치게 집착하지는 않는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그가 쓴 대사들의 의미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섬세한 상황들이 마음에 들었다. 마크는 자신의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을 절대 길가에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리고 익살스럽긴 하지만 그만의 부드럽고 인간적인 시선으로 그 인물들을 사랑스럽게 만드는 법을 안다. 이런 의미에서 지적이면서도 정확한 그의 영화를 보며, 나는 할리우드 코미디의 황금기를 떠올리기도 한다.
관객들은 아마도 더 모나거나, 어떤 꿍꿍이가 있거나, 혹은 훨씬 더 치밀한 갈등을 겪는 역할에서 나를 보는 것이 더욱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마크 피투시 감독의 영화들은 가벼운 편이면서도 섬세하게 스타일리쉬하고, 우화와 로맨틱 코미디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부드럽고, 이번에 내가 맡은 ‘브리짓’은 나름의 어둡고 모호한 부분도 가진 여자이지만 다가가기 어려운 인물은 아니다. 마크 피투시 감독은 세밀한 연기를 하는 배우들과의 작업을 통해 일견 평범해 보일 수 있는 상황들을 멋지게, 그리고 깊이 파고드는 것 같다.
‘브리짓’은 권태에 빠진 여자다. 하지만 드라마틱한 인물은 아니다. 그녀가 파리에서 사흘을 보내기로 한 그 순간부터 그녀는 이 여유를 완벽하게 즐기면서 어떤 의문도 없이 매 순간을 만끽한다. ‘브리짓’은 좋은 모험이건 나쁜 모험이건 적당한 거리와 그녀를(또 우리를) 위험에서 구하는 유머 감각을 유지하며 상황을 즐긴다. 때때로 자신을 난감하게 하는 사건을 겪지만, 그 상황에서 뭔가 쿨하게 보이려는 그녀의 태도를 지켜보는 건 정말 웃기는 일이었다. 그녀는 또한 어린 양과 같은 인물이기도 하다. 남편(장 피에르 다루생 역)은 그들에게 일어난 일련의 일들을 통해 자신이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게 된다. 이 지점에서도 나는 이 영화의 섬세함을 다시 느꼈는데, 이 커플 사이에는 어떤 비난도 결판도 없고 단지 일종의 권태와 한 번쯤은 살짝 흔들리는 삶의 과정만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