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수복 전투중 신촌전투는 이전 영등포전투에 비해 겁나 치열했다는걸 먼저 말씀 드리며 2편으로 나누어 한번 이바구 해보겠습니다. 서울에 오래 사신 분들은 대충 글속에 나오는 지역이 어디인지 감들 잡으실겁니다.
수색역(당시에는 빨간색 건물로 현재 역사보다는 500M정도 떨어져 있었음)에 본부를 차린 해병 제5연대는 안산에서 연희동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와우산,노고산등을 확보해야했다.
21일 4시15분 진격을 시작했다,
좌익이자 북쪽을 맞은 3대대는 응암동과 홍은동 사이에 갈라져 있는 높이 216미터의 백련산(지금의 스위스그랜드호텔)을, 한국 해병 제 1대대는 전선 중앙의 연희고지라 불리우는 104고지(서연중학교 뒷산)를, 제 5연대 1대대는 한강과 경의선 철도 사이의 68m높이의 성미산(지금의 성미 초등학교 뒷산)을 목표로 진격했다. 2대대는 예비대로 대기!
북한군역시 해병들이 노리는 이 고지와 능선들이 서울 방어의 핵심이라는걸 잘 알고 있었다.
이에 북한군 주력부대중 하나인 25여단과 78연대를 투입 5키로에 이르는 방어선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완편 부대에는 못미치는 숫자였지만 이부대의 북한군 장교들과 부사관들 상당수가 중국 인민해방군 출신으로 실전 경험이 많았고, 포병대와 다수의 중기관총을 가지고 있어,화력또한 만만치 않았다.
백련산과 성미산은 별 다른 저항없이 차지하였지만 연희고지 전투는 그렇지 못했다.
한국 해병대는 모래내를 지나 개활지를 통과해야했고, 북한군의 치열한 방어선을 돌파하느라 다수의 사상자를 내고 오후 6시반에야 점령할수 있었다.
22일 새벽 3시 북한군 600명이 120mm 박격포 지원을 받으며 야습을 강행했지만,3시간의 전투 끝에 이들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그 전투 와중에도 북한군은 마지막 가지고 있던 자산을 탈탈 털어가며 진지 보강작업과 병력보충을 강행하고 있었다.
한국 해병대의 좌우측에 있었던 미 해병대대 전방에서는 밤사이 적의 활동이 대단치 않아서 지휘부에서는 대현동이나 아현동 즘 가야 적의 주 방어선이 나타날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예상컨대 그나마 만만해 보였던 한국해병대를 노렸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밤사이 북한군이 쏜 포탄이 수색역 미해군 연대본부에 떨어져 부연대장 헤이즈 중령이 다리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는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
수도 탈환을 위하여 넘지 않으면 안되는 사선은 바로 눈앞에 있었고, 그중에서도 한국해병 제1대대의 눈앞에 있던 56고지(연세대 운동장 서쪽 언덕이었다)
22일 오전 7시 공격이 시작되었다. 3대대의 목표는 296고지 즉 안산이었고 우측방 제 1대대목표는 105고지인 와우산으로 지금의 홍익대 뒷산으로 1970넌 와우아파트 참사가 난 그곳이었다. 그리고 중앙에 위치한 한국해병대 제1대대의 목표는 의령지터널(이화여대 정문에서 100미터 떨어진 철도터널) 또다른 105고지였다.
3대대가 백련산에서 296고지 즉 안산으로 진출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날 공격에서 좌익의 3대대가 안산296고지를 신속하게 확보할수 있다면 중앙과 우익의 진격은 좀더 용이하리라는 것이 머레이중령의 생각이었다. 해병대 전투기들이 안산일대를 강타하는 동안 공격의 선봉에선 H중대는 대단치 않은 적의 저항을 물리치고 오전9시 안산주봉을 점령하고 정상확보를 보고했지만, 그후 전개된 연대의 전투는 계획처럼 맞아 떨어지지 못했다.
남쪽으로 뻗은 주봉과 거의 같은 높이의 세 개의 능선은 여전히 북한군이 장악하고 있었고, 이들은 심지어 3대대를 역습하기까지 했다. 전투는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문제는 이 안산정상부는 바위투성이 산이라 단시간 진지 구축이 불가능했다. 자 거기다 문제는 높이 338미터 인왕산 정상에서는 안산을 아래로 굽어 볼수 있었으니, 북한군은 신나게 인왕산에서 포탄을 날릴수가 있었다. 그나마 영등포전투가 일찍 끝나는 바람에 해병 항공대가 집중적으로 미제5해병 연대를 지원할수 있었다.
한국해병 1대대는 목표인 북쪽105고지를 공겨하기에 앞서 대대정면을 가로막고 있는 연희능선 즉 안산에서 56고지로 이어지는 능선과 이능선 너머에88고지(지금의 세브란스병원북쪽, 연세대 노천극장의 동쪽)을 점령해야했다.
대대의 공격개시선인 104고지 능선과 그 전방의 연희능선은 불과1km간격을 두고 평행하게 놓여 있으며 두 능선 사이의 저지대에 가로노인 300~500미터의 논들(지금의 연희로 주변)이 실질적으로 극복해야할 장애물이었다. 이곳과 현재 서대문 우체국 밑의 길이 전쟁터가돼었다.
(우리가 자주 다니는 그 길이 한국전쟁의 치열한 전쟁터였다니!!! )
대대원들이 개활지로 들어서자 역시나 기다리고 있던 북한군의 중화기들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야포와 박격포탄까지 날라들자 진격은 주춤할수 뿐이 없었다.
미군의 야포와 전투기까지 날라와 퍼부어 댔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때 미군 전차 소대까지 지원받아 철길을 따라 공격에 나섰지만 하지만 56고지와 연희터널 위에서 날라오는 북한군의 대전차포공격을 피할수 없게되자 전차 진격도 멈추게되었다...
적의 정면도 문제였지만 측면 안산에서 날라오는 적의 공격도 치명적이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한국해병 1대대는 야음을 틈타 104고지로 부상자와 전사자를 수습해 퇴각하였으며 이날 한국해병 1대대는 전사자 11명 부상자 45명의 손실을 입었다.
와우산이 목표였던 미해병 제5연대 1대대는 이날 용산선 철도를 따라 전차와B중대를 앞세워 한국해병대대와 함께 공격을 펼치려 했으나 신촌전투로 전차소대가 차출되자 작전을 바꾼다.
10시30분쯤 A중대가 먼저 공격을 시작하였으나, 와우산 아래ᄁᆞ지 진격과정에서 소대장1명이 전사하고 소대장 한명은 중상을 당하는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우회 기동한 C중대 역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미군의 항공전력과 화력은 무서웠다. 화력 버프를 받는 사이 A중대가 전력을 다시 수습하여 C중대와 합세, 이날 저녁 5시30분경 와우산 정상에 올라섰다!
이전투에서 미군은 20여명의 전사자와 60여명의 부상병들이 나왔다.
자 이날 3대대의 목표인 안산이 확보되면 쉽게 풀리라라 믿었던 전황이 두고지를 점령했는데도 별로 좋아진거 같지 않자, 미해병5연대는 이날 탱크 지원까지 받았음에도 고지를 점령하지 못한 한국해병대의 경험부족과 미숙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해병대를 좀 쉴드처주자면, 북한군의 서울 방어 주저항선은 연희고지일대였고, 50정이 넘는 중기관총과 그사이사이 경기관총에 박격포등 북한군의 화망은 20미터꼴로 기관총이 배치된 방어선대비 고밀도로 구축된 상황이었던지라 쉽게 통과하기는 어려웠다.
암튼 오늘은 여기까지~~~
첫댓글 아무래도 지명이 낯익어서인지 실감납니다.
지금의 서울의 모습과 연계는 안 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