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맨 왼쪽은 취적봉
그러므로 세계사적인 인물, 한 시대의 영웅이란 통찰력을 지닌 사람들로 생각해야 하며, 그들
의 언행은 그 시대로선 최상의 것이다. 위대한 인물은 타인을 만족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
의 만족을 목표로 한다. 그는 타인들에게서 어떤 호의적인 의견이나 충고를 들었다 해도 오히
려 편협하고 쓸데없는 것이 많다. 왜냐하면 그이야말로 가장 그 사태를 잘 알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모두 그에게 배워서 그것에 동의하는 자, 또는 적어도 사태에 잘 대처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 헤겔,「역사철학강의」
▶ 산행일시 : 2010년 9월 4일(토), 맑음, 그늘 벗어나면 뙤약볕
▶ 산행인원 : 12명
▶ 산행시간 : 11시간 3분(휴식과 점심시간 포함)
▶ 산행거리 : 도상 16.9㎞
▶ 교 통 편 : 25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
00 : 30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3 : 43 ~ 05 : 35 - 정선군 동면 화암리(畵岩里) 문재(文峙), 산행시작
06 : 25 - 1,062m봉
06 : 45 - 각희산(角戱山, △1,083.2m)
07 : 40 - 1,038m봉
08 : 40 - 1,019m봉
09 : 30 - △1,043.2m봉
09 : 40 - ╋자 갈림길 안부, 소래재
10 : 00 - 1,048m봉, ┤자 능선 분기, 왼쪽은 다래재 고양산 가는 길
10 : 50 - 문래산((文來山, △1,081.5m)
12 : 00 ~ 12 : 35 - 1,068m봉, 점심식사
13 : 10 - 자후산(自後山, 885m)
13 : 50 - △863.0m
15 : 00 - △884.9m
16 : 10 - 827m봉
16 : 38 - 정선군 임계면 낙천리(樂川里), 산행종료
22 : 07 - 동서울 강변역 도착
2. 군의산 주변, 각희산 오르면서
▶ 각희산(角戱山, △1,083.2m)
취적봉(吹笛峰, 728.2m). 연산군의 세자 이황과 어린 형제들이 이곳 버드내(유천리)로 유배되
어 피리를 불며(취적) 고향생각을 달래다가 중종이 내린 사약을 받고 죽었다한다. 그때 세자
이황의 나이는 10살, 연산군 폐위 22일만이다. 그런데 항설과는 달리 연산군의 아들들이 모
두 이곳에서 죽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이덕일의 「조선선비 살해사건」에 의하면 연산군의
세 아들 중 신씨 소생의 세자 이황은 강원도 정선, 창녕대군 이성(李誠)은 충청도 제천, 안양
군 이인(李仁)은 황해도 수안(遂安)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각각 사약을 받고 죽었다고 한다.
첨봉인 취적봉 자락은 거대한 석벽으로 둘러싸였고, 그 정상은 구름이 휘감아 보이지조차 않
는다. 어천(漁川)은 밤을 도와 흐른다. 어천 건너 저기를 오르려고 스무엿새 가는 달빛 비춰
새벽부터 서둔다. 2006년 5월 봄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문래산에서 취적봉으로 와서 그 사
면을 더듬어 맘 조이며 내리던 기억이 아직도 등줄기 서늘하도록 생생한데 이번에는 그 사면
을 거꾸로 오르고자 한다.
세자마을, 하돌목교, 어천 주변을 오가며 등산로 표지판을 찾는다. 이곳저곳 쑤신다. 아예 몰
랐다면 용감히 덤비겠지만 저 수직사면에서 이미 영금을 본 터라 아마 그새 뚫렸을지도 모를
등산로를 찾는 것이다. 없다. 날 훤할 때까지 기다려 오르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없는 등산로
가 날 훤하다고 생길 리 없고, 오늘 산행거리는 취적봉이 아녀도 아주 실하다고 자위하며 문
재로 간다.
어천을 오산교(熬山橋)로 건너고 아스팔트 포장된 도로로 산허리 굽이굽이 돌아 오른다. 문
재. 표지판에 해발 620m다. 안개가 어스름하니 끼었다. 각희산 쪽 절개지는 철망 씌웠다. 각
희산 등로는 어디일까? 대간거사 님은 예전에 내려온 기억을 되살려 문재 고갯마루 살짝 넘
어 오른쪽 안부 향한 골짜기로 갈 것을 주장했으나 따르는 이가 없다. 대장 따르다가 개고생
할 것을 염려한 것 같지는 않고 아무 데로나 가도록 버릇이 잘못 들었다.
철망 씌운 절개지 가장자리로 오른다. 억센 잡목 숲이다. 자세 한껏 낮추고 머리부터 디밀어
뚫는다. 나지막한 산등성이 오르고 내리자 등산로가 뚜렷한 ┴자 갈림길 안부다. 대간거사 님
의 기억이 맞았다. 비로 내린 새벽이슬 털며 덤불숲 잠시 지나면 벌목한 사면이 나온다. 일순
간 아! 하는 감탄사를 동시에 내뱉는다.
사방에 운해가 넘실거린다. 다도해. 우리는 방금 심해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문재에서 취적봉
에 이르는 능선은 모세의 기적을 반복한다. 가경이다. 봉봉이 곧 잠길 듯이 위태롭다가 바람
불어 준봉의 모습을 다시 드러내곤 한다. 정선8경(화암동굴, 화암약수, 소금강, 몰운대, 거북
바위, 용마소, 화표주, 광대곡)에 이 경치가 빠진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곧추 솟은 사면을 운해에 쫓겨 오른다. 조금도 힘 드는지 모르고서다. 다만, 저 멀리 앞서 가
던 스틸영 님이 낮게 드리운 나뭇가지에 머리 받치는 것을 보고 예의 경계했건만 나도 받치고
만다. 능선 숲속 길로 들어선다. 나뭇가지 사이로 운해의 간만(干滿)을 기웃거려 살핀다. 능선
길 가파름은 1,060m봉 오르자 크게 수그러든다. 이정표에 각희산 정상까지 20분.
숲속 방사하는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한낮의 뙤약볕을 예고한다. 이정표대로 20분 걸려 각
희산 정상에 오른다. 삼각점은 임계 312, 2005 재설. 좁다란 정상에 주변 조망도를 설치하였
는데 웃자란 나무숲으로 가려 실경과 대조하기 어렵다. 옆의 솔체꽃에 모여드는 벌이 무서워
얼른 물러난다.
3. 각희산 오르면서
4. 맨 왼쪽은 취적봉
5. 문재 주변
6. 취적봉
7. 정선 주변
8. 정선 주변
▶ 문래산((文來山, △1,081.5m)
각희산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뻗은 마루금은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절벽이다. 아무쪼록 길 따
를 일이다. 돌아간다. 그래도 가파른 사면이다. 삼밧줄이 달려있다. 빠져나간 운해의 흔적이
리라. 안개비로 젖어 등로의 흙은 질고 바위는 미끄럽다. 등산화 비브람창은 전혀 맥을 못 춘
다. 빙판 가듯 살금살금 스릴 느낀다.
쭉쭉 내린다. 버실이로 가는 ├자 갈림길 지나고 뚜렷한 길 따르다 주춤한다. 진행방향이 이
상하다. 마루금에는 인적이 없어 엉뚱한 데로 갈 뻔했다. 아무튼 지도와 나침반 믿고 내려야
한다. 안부 즈음하여 흐릿한 소로가 나타난다. 잡목 숲 헤치며 오른 1,038m봉. 휴식하는 중에
도 공부한다. 1,054m봉 가기 전 왼쪽 사면은 등고선이 축 늘어졌다. 넙데데한 초원이리라.
궁금하다. 따분한 능선 길보다는 인적 없을 그리로 간다. 60m정도 내려 초원이다. 이제는 쇠
한 곰취가 흔하다. 낙엽송지대는 가시덤불 숲이다. 1,054m봉을 사면으로 돌아 넘는다. 안개
속에 든다. 1,019m봉 오름 길이 땀나게 가파르다. 봉봉 오르내리는 굴곡이 만만하지 않다.
△1,043.9m봉 삼각점은 임계 430, 2005 재설. 조망 없다.
미끄러워 엉덩방아 찧어가며 내린 ┼자 갈림길 안부. 소래재다. 긴 오름이 이어진다. 고양산
에서 승두치 다래재 넘어오는 능선과 눈높이 같이 한다. 어느 해던가. 거기를 지나왔다.
1,048m봉 아래 첨봉을 기어오르던 기억으로 저절로 숨이 가빠진다. 1,048m봉은 너른 초원이
다. 모처럼 보는 큰갓버섯이 우아하다. 모녀를 정답게 세워놓고 사진 찍는다. 큰갓버섯은 먼
지만 털어내고 구어서 소금 찍어먹으면 구수하니 맛있다.
┤자 갈림길 안부를 지나고도 한참을 가야 문래산 정상이다. 그간 문곡리에서 작은소래에서
올랐던 문래산이다. 그때마다 철이 다르니 산 또한 다르다. 서너 평 공터 한가운데 삼각점이
있다. 311 재설, 77.6 건설부. 옛날 이 산봉우리에 사찰이 있어 학자들이 많이 찾았다하여 문
래산(文來山)이라 부른다고 한다(국토지리정보원).
이 산 아래 골지리(骨只里)는 한자의 뜻이 ‘뼈만 남았다’는 의미가 담겨있는데다 ‘골치 아프다’
또는 ‘꼴찌다’라는 좋지 않은 의미의 어감으로 지역 주민들의 자긍심을 훼손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하여 2009.11.1.자로 ‘문래리(文來里)’로 바꾸었다.
9. 각희산 오르면서
10. 각희산 사면
11. 솔체꽃
12. 왼쪽 멀리는 두타산(?)
14. 1,038m봉 사면
15. 동면 상북동 주변
▶ 자후산(自後山, 885m)
문래산 정상에서 발돋움하여도 자후산은 1,068m봉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1,068m봉에서 점
심식사하기로 하고 문래산을 내린다. 몇 번이나 주르륵 미끄러지며 뚝 떨어진 안부는 드문 바
람골이다. 시원하다. 가만히 서 있어 부드럽게 스치는 바람결은 수마(睡魔)의 손길이다. 눈 감
긴다. 만사 내팽개치고 싶다.
자후산 가는 길. 잘 다듬었다. 활개 치며 걷기 좋게 등로 주변의 잡목을 베어냈다. 눈으로나
지도로는 한달음일 것 같던 1,068m봉이 꽤 멀다. 봉우리 4개를 넘어야한다. 오른쪽 사면은
협곡이거나 골지천 내려다보기 겁나는 절벽이다. 리지성 바윗길도 지난다. 1,068m봉 정상은
후끈하니 뙤약볕으로 달구어졌다. 그 아래 나무그늘로 피해 점심식사자리 편다.
문재에서 여기까지 오도록 여러 눈으로 사면을 그렇게 훑었건만 도시 구경할 수 없었던 더덕
을 무심코 점심식사 하다말고 바로 옆에서 본다. 그 진한 향으로 비로소 일행들의 소침했던
얼굴에 생기가 돈다. 사면 쓸어 내려도 자후산이 가깝다. 새마포산악회에서 정상표지판을 달
아놓았다. 그런데 ‘표고 885m’는 어디에서 근거하는지 모르겠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나
여러 도엽은 904m로 표시하고 있다.
더산 님을 비롯한 4명은 자후산에서 용동으로 탈출하고 8명은 단봉산을 향한다. 등로는 다시
풀숲이다. 위령산 가는 ┤자 갈림길 지나고 적송 숲 내렸다가 바짝 오르면 △863.0m봉이다.
삼각점은 인식표만 있고 그 실물은 보이지 않는다. 산마루 햇볕에 나가면 머리 익게 뜨겁다.
무척 더운 날이다. 짙은 숲속 그늘 야트막한 봉우리 오르내린다.
위령산(位嶺山, 887.8m)이 등대 격이다. 오른쪽 그 첨봉을 바라보며 대닫는다. △884.9m봉에
서는 삼각점을 확인하는 데만도 땀을 비 오듯 흘린다. 302 재설, 77.6 건설부. 초원을 이슥 간
다. 별안간 선두가 낙담한다. 능선 마루금으로 임도가 난 것이다. 별수 없이 임도로 간다. 임
도는 827m봉에서 왼쪽 사면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단봉산 가고자 산불감시초소 돌아 덤불숲
헤친다.
단봉산 가는 마루금은 절벽이다. 뚫어볼만한 데가 없다. 혹시 비스듬히 돌아서 갈 수 있을까
하고 여기저기 들여다보아도 온통 오금 저리게 하는 절벽이다. 단봉산을 그만 놓는다. 낙천리
미락동으로 내린다. 이도 그리 수월하지 않다. 간벌한 나뭇가지 피해 사면으로 쏟아져 내리고
묵은 임도 잔솔밭 지나다 다시 급사면 지친다.
산기슭 가시덤불 헤치고 나오자 고압선 두른 빈 밭이다. 그 아래는 콘파스도 건들지 않은 미
락동 윗마을이다. 딴 나라 사람으로 보였을까. 토마토 따러 간다는 마을 아주머니가 땀에 절
고 가시에 할퀸 우리를 보더니 어디서 왔드래요 신기해한다. 예전에는 이따금 오르내린 산이
었지만 지금은 사람 발길 끊긴 지 퍽 오래라고 덧붙인다.
16. 계란버섯
17. 계란버섯
18. 큰갓버섯
19. 가야할 능선, 1,068m봉
20. 코스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