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유마와 수자타의 대화 카페에서 방문객님 글에 매료되어 불교공부하다가(제 닉네임이 핫하하 였던것으로 기억합니다)사회생활에 찌들어 한동안 잊고 살다가 1~2년전부터 다시 수행과 경전 공부하면서 방문객님 생각이 나서 검색하다가 이 카페를 알게되었습니다.
아나빠나사티 수행은 저도 드문드문 하였고 하다보면 의문점을 여쭐곳도 없고 혼자 경전보고 즐거워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여튼 호흡연습 게시판 발견하고 좋았는데 요즘은 답글을 안달아주시는것 같아서 당황스럽네요.ㅎㅎ
질문 올려봅니다.
1.성적쾌감 이상의 강력한 희열(고상하지 않은것같아 불교용어를 씁니다)이 몸전체를 훑어 지나가서 몸이 흔들거리기도 하고,단전호흡이나 요가하는 사람들이 성센터라고 부르는 곳에서 머리끝까지 쏘아올려지거나 하는 경우도 경험합니다(뭐 희열이라고 해도 좋고 에너지라고 해도 좋습니다). 제 판단으로는 경전의 희열=수온이라 보고 현혹되지 않고 계속해서 느슨한 호흡관찰을 지속하면 잔잔한 평온함이 지속됩니다. 요즘엔 저런 요란한 느낌(수온)은 드물고 잔잔한 느낌이 지속되다가 호흡이 아주 짧아지고 종국적으론 사라져서 호흡을 찾을 수없는 상태가 되기도 하고, 아니면 호흡이 마치 기계처럼 되는데 적당한 저만의 표현으로는 호흡을 하는 주체(나)가 없이 호흡이 어디 덩그라니 떨어져 시계바늘처럼 자동기계처럼 움직인다?그리고 그럴때는 호흡이 마치 잠이 깊이든 사람의 아주 낮고 평온한 깊은 숨의 반복임을 관찰합니다.
2.호흡을 찾을수없는 상태일때는 의도적으로라도 그상태에서 빠져 나와야 하는건가요? 경전에서 읽은건 있는지라 혹시 저게 무색계선정 비슷하게 아닐까싶어 저상태에 집중(일종의 비어있는 상태에 의식을 집중한다고 해야할듯)하면 그보다 선명한 의식이 나타나고 거기에 집중하면 자연적으로 놓아버려지면서 선명한 의식보다는 비워진 상태가 되곤 합니다.이런게 무색계선정 맞는지요? 그런데 이런 수행이 옳게하는건지 모르겠어요. 아나빠나사티는 무색계선정을 추구하는건 아닌거 같고 경전에도 16가지 구절의 마지막에는 무상,이욕,소멸,놓아버림을 관찰할때도 들이쉬리라 내쉬리라가 계속되는걸보면 호흡이 사라진 상태에서 제가 하는식으로 집중을 가져가면서 의식의 상태변화를 관찰하는건 잘못하고 있는것 거죠?
3.그래서 호흡을 다시 챙기면서 계속 느슨한 관찰을 하다보면 경전에서 말한 무상이나 소멸, 욕망을버림, 놓아버림이 이런거구나 하면서 (혼자 좋아하고 전율하고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깊어지면 눈물이 날때도 있습니다.예전에 종교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서 불자란 얘기안했는데 요즘은 불자임이 자랑스럽습니다) 자의적인 해석?에 빠져들기도 하는데 이런건 삿되거나 잘못된 이해일까요?
아나파나사티 수행을 더 진전시키려면 어떤부분에 더 신경을 써야할까요?
4. 좌선을 1년간 평균적으로 1시간씩은 한거 같고 최근 몇달간은 하루에 2~3시간씩 합니다. 주말엔 5시간씩 하기도 하네요. 문제는 수행이 성관계보다 좋아졌고 야한영화는 안본지 오래되었고 와이프와도 성관계를 피하게되서 미안한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 걱정되는것은 사정을 안하는 기간이 3~4달 지속되는경우가 많아졌는데 이런 상태가 고착되면 정액의 석회화나 전립선에 문제가 되어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 입니다. 방문객님은 수행경험이 많으시고 아시는 스님도 많으실테니 이쪽으로 지식이 있으실것 같아서 여쭙니다.저도 나이가 초중년에 다가가는지라 전립선 건강에 신경이 쓰이네요 ㅎㅎ
그나저나 카페에 글 안쓰신지 오래되신 것같은데 답글 해주실지도 의문이네요^^
첫댓글 반갑습니다.저는 화엄카페에 마당쇠입니다..방문객님이 화요일날에나 시간이 나신다고 야단법석에 공지를 해 놓으셨네요..막간을 이용해 ..혹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퍼왔습니다..무례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https://youtu.be/OZ1qKF51a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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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게을러져서, [ 유마와 수자타의 대화 ]에는 한달에 한두번 정도 방문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곳에 글을 올리면, 인지하고 응하는데 최대 한달 정도 걸릴 수 있겠네요.
이 까페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방문하구요, 호흡연습은 물론 어느 게시판에서든 지적을 받았는데 응하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간혹 지적 받은 거를 모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 야단법석 게시판등에 알리면 됩니다.
부부 사이... 제가 모르는 건데, 어쨌든 아끼고 소중히 한다는 거를 자주 표현하면 좋겠죠. 손 잡고 나란히 걷고, 다정한 눈빛, 따뜻한 말...등등요. 성관계야 뭐 나이가 들면 원래 뜸해지는 거니까요. 아닌가요? 그런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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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법은 워낙 다양해서요, 이래야 한다는 정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요. 불교에서 기법을 행한다면, 그것은 마음의 힘을 기르고, 현상을 알고, 확신과 함께 하는 신심을 기르는 겁니다.
그러니 불자라면, 신심과 마음의 힘과 현상의 앎을 늘 염두에 두는게 바람직합니다. 하나의 기준입니다.
기준에 입각해 보자면, 자신의 어떤 마음 상태가 선정인가 아닌가? 선정이라면 무색계인가 아닌가 등은 부차적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일으킨 조건을 알고 그러한 조건이 어떠한 마음 상태를 과보로 이끄는가를 알면 되는 것이거든요.
이러 저러하게 마음을 일으켰더니 이러 저러한 마음 상태가 발생하더라... '원한 대로 이러 저러하게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마음의 힘'이구요, '그러한 조건이면 이러한 상태가 발생하는 것을 아는 것'은 '현상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앎이 부처님 가르침과 부합한다면, 그러한 조건에서 확신과 함께 하는 신심도 배양되는 거구요. 그게 또 신심의 발생이라는 현상을 아는 것이죠.
우리가 '마음의 힘'이라고 할 때요. 조금 구체적으로 파고 들면요. 크게 두가지 방향성이 있습니다. 이미 스스로 취한 조건을 꿰뚫는 힘이 있구요, 지금 자신의 조건을 새로이 형성하는 힘이 있습니다. 힘은 업이니까, 당연히 과보가 따르구요. 조건입니다.
두가지가 다른 것만은 아닌데도, 편의상 구별하는 이유는요. 이미 스스로 취한 조건을 꿰뚫는 일은 충분한 집중력이 있기만 하면, 스스로 드러나는 측면이 강합니다. 특별한 마음의 일으킴 없이 그렇거든요. 반면 자신의 조건을 새로이 형성하는 측면에서는요. 스스로 드러나는 측면이 아주 약합니다. 그런 차이 때문에 구별하는 겁니다.
어쨌든 우리가 일상에서 마음의 힘을 기르는 워밍업을 할 때는요. 스스로 드러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최소한 불교에서는 그래요. 이유는요. 일상에서 일으키는 마음들은요. 처음에는요. 당연히 충분한 집중력이 없기에, 스스로 드러나는게 가능한 상태가 아니거든요. 그래서요, 결정한 대로 마음을 일으키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래야만 앎이 발생하지 않겠습니까? 결정한 대로 마음을 일으켜야만, 스스로 어떤 조건을 형성한 건지 알 수 있잖아요. 그렇겠죠?
호흡에 마음을 고정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면 호흡에만 마음을 둬야 합니다. 호흡을 놓치면 안됩니다. 적은 바 있지만, 육체적 호흡에 마음을 둔다... 그러면 결단코 호흡을 놓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구요, 호흡이 멀리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호흡이 멀리 느껴지거나 하는 등의 현상은요. 거의 대부분 육체적 호흡이 아니라, 내적 표상인 호흡을 붙잡은 겁니다. 즉 그러한 호흡이 알려진다는 것은, 애초에 자신이 결정한 육체적 호흡에 마음을 고정하는 일을 유지하지 못했기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육체적 호흡과 표상이 된 호흡은 구별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힘을 기른다는 것은요. 그러한 변별력을 기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초창기에는요. 육체적 호흡을 붙잡다가, 조금 집중이 강해지면 자신도 모르게 내적 표상인 호흡을 붙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다시 돌아와서 육체적 호흡을 붙잡아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한다고 하는가? 그게 정답이라서 그런게 아니구요. 자신이 육체적 호흡을 붙잡는 마음을 일으키기로 결정했잖아요. 그러한 조건을 형성하기로 결정했잖아요. 그러니 그냥 자신이 결정한 대로 마음을 일으킬 따름입니다. 이것도 마음의 힘을 기르는 겁니다. 결정한 대로 마음을 일으키는 연습이거든요.
육체적 호흡을 붙잡는 마음을 일으키는 연습이 충분해졌다, 이제 부지불식간에 내적 표상으로 전환시키는 일이 없이 원하는 만큼 그렇게 마음을 일으킬 수 있다. 사실 이게 쉽지는 않습니다. 마음을...그러니까 원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 그게 정말 쉬운게 아니거든요.
그러면 영원히 육체적 호흡만 붙잡아야 하나? 그런 뜻은 아니구요. 자신이 이제 육체적 호흡이 아니라 내적 표상인 호흡을 붙잡고 싶다, 그러면 내적 표상인 호흡을 형성하고 붙잡으면 되는 겁니다. 내적 표상인 호흡을 붙잡기로 했다면, 이제 육체적 호흡은 연습 초기에 내적 표상인 호흡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는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내적 표상인 호흡을 형성하는 훈련이 충분하면요. 육체적 호흡에 마음을 두는 일 없이, 그냥 바로 내적 표상인 호흡을 형성하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마음의 힘이 길러지는 것이거든요.
마음의 힘... 의도한 현상을 일으키는 힘... 의도한 마음(작용)을 발생시키는 힘...
그러한 힘과 함께 하기에, 당연히 수반될 수 밖에 없는 앎....
그와 같은 확인 과정에서 발생한 확신과 신심...
우리가요, 부지불식간에 초점을 바꾸는 것, 스스로 알지도 못하고 다른 마음을 발생시키는 것... 다른 것을 같다고 알게 되는 것... 원칙적으로 그러한 일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만 완비된 수행 기법 체계에서, 차후 보정 과정이 있기에 우선 특정 측면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는 경우도 있기는 한데요. 그러한 체계 속에 있지 않은 우리 일반 재가불자에게 권할만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글이 자꾸 사라지네요. 다시 적고 다시 적고 하다 보니 부실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제가 보기에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적었습니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지적하시구요, 차후라도 지적할 게 생기면 알려주세요. 그리고 참조할만하다 여겨지면 참조하면 됩니다.
(우리가 보통 호흡을 기억 못하잖아요. 그렇죠?) ...얼마전 방문객님 댓글 중에서..
우몽은 저 방장님 댓글을 보고 뿅 ! 벼락을 맞는 듯했다 ㅜㅜ
음.. 글구 성센터는 우몽의 기억으론 눈꽃님이 전문가 같으시니 ..한 말씀 땡기셨슴 싶네요 ..()..
우몽은 온몸 구서구석이 온통 성감대라 어디가 성센턴지 햇갈림 ㅠㅠ
가여히 살펴주오서.. 눈꽃관셈보살..()..
글구 ..무상님은 수행이 성관계보다도 더 좋고 아내에게 왠지 미안시럽다 운운하셨는데..그정도 경지면..음..아내분의 성감도도 살펴서
방편으로 ..가령..우몽이 아는 70 십 근처의 노가다판 형님은 주말부분데 ..굉장히 사이가 좋아 보이는데 ..그 형님이 평소 우리에게 왈!! 자고로 마누라랑 부득이 운우지정에 돌입할시는
기절할 정도로 반 죽여 나야 하느니라!!
토끼꽈 우리는 .. 형님이시여 그거시 어치께 가능함니껴? 믿어지지 않나이다..
형님 왈... 마눌이 하도 옹녀라..내가 살아남으려니 그리 되더라..
우리 홀몸 토끼꽈들은 부럼 반 박장대소 낄낄거렸다.
무상님이시여 .. 무상님은 마음만 일으키시면 이미 천하변강쇨 거 같으십니다.. 화엄은 언제나 안전제일 ㅎ
진심 부럽따..무상선생..
''마음의 힘을 기르고, 현상을 알고, 확신과 함께하는 신심을 기르는 것''
이게 진실한 수행의 목적이겠죠.
진심으로 마음의 힘을 기르게 되면 성취는 따라 오겠고 성취는 확고한 앎으로 이끌겠고요.
앎이 확고해지면 신심은 그 앎에서 나오겠으니 따로이 신심이라는 말을 할필요도 없게 될 것 같아요.
알려주신대로
다시 힘내 도전 도전입니다.
눈꼬사 ^^
https://youtube.com/shorts/NTrvuweT0Eo?feature=share
등현스님 강의에서 들었는데 사정을 하면 선정에 들기 어렵다고 하더군요.
몽정도 하면 안되는건지... 이것참 거시기하네요^^
적었듯, 정답이 있는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원칙에 크게 어긋남이 없는 게 중요한데요.
가장 중요한 원칙은, 자신이 하려는 것을 명확히 한 다음, 자신이 하려고 했던 것을 하는 겁니다. 그 훈련이 모든 수행의 토대예요. 정확하게 하려고 한 것만 하는 것... 그 어떤 수행을 하든 그렇습니다. 그러니 일상에서도 그런 습관을 지니려고 노력하면, 소위 수행이란 것에도 무자게 도움이 됩니다.
확언할 수 있는데요. 소위 '정액의 고정'은요. 선정의 성취에 필수 요소가 아닙니다.
물론 밀교의 기법 중 정액의 고정을 요구하는 것이 있기는 합니다. 그건 그 수행 기법의 절차상 요구되는 장치인 것이구요. 그것을 일반화시킬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보통 불교에서 선정이라 하면 소위 색계 선정만 쳐주는 경향이 있는데요. 몽정이든 좀 고풍스런 표현으로 교합이든, 욕계의 욕망 중 가장 강렬한 것 중 하나가 성욕이잖아요? 그리고 스스로의 행위가 스스로를 규정하므로, 욕계에 휩쌓인 사람이 색계로 접근하는 것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어려울 겁니다.
제가 기회가 될 때마다 강조하는 거지만요, 불교는 금기 내지 터부와 친하지 않습니다. 삼가함 내지 절제가 계의 중심입니다.
삼가함 내지 절제가 계의 중심, 잘 새기겠습니다.감사합니다
유마와수자타의 대화 책읽다가 카페가 있다길래 가입해서 방문객님과 여러분들이 쓰신 글들 밤새워보며 감동받을때가 거의 10년~15년 된것 같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이렇게 답글도 달아주시고 감격...눈물이...오랜 은사님,친구 만난 기분이네요.불교와 수행이 없었다면 이 모진 세월을 어떻게 견뎌왔을까요? 앞으로도 글 많이 써주시고 후학들,도반님들 도와주세요.건강하십시요 _()_
촤암~..무상님은 일상에서도 약간 느릿느릿하지요? 아내분이 답답해 죽갔다고 쪼인트 가끔 안 깝니까?
일찍도 댓글 다셨소ㅎ
므튼..무상님은 선근이 대단하신 거 같아서 부럽습니다..우리는, 화엄은 언제나 안전제일!! 자나깨나 아내에겐 언제나 복종제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