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문명 이동과 토착견의 이동 변화
* 먼저 저는 제주도에 살고 있고 제주도에서 제주개를 먼저 보고 개를 시작했으며 이후 진도개를 30여년을 다루게 되었습니다.그래서 진도개를 공부하면서도 제주의 역사와 시대적 배경등을 같이 염두에 두고 바라보다보니 서로 보는 관점과 공부가 조금은 견해가 다를수 있는점 먼저 읽으시면서 양해 부탁 드립니다.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우는 파미르 고원
중앙아시아에 위치하여 유럽,중동,몽골,중국으로 뻗어 있는 말 그대로 대륙에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
파미르 고원을 통해 인간과 문명,개는 함께 발전하고 퍼져 나가게 되었다.
세계의 4대 문명
1.이집트 나일강문명
2.메소포타미아 수메르문명
3.인도 인더스문명
4.중국 황하문명
모든 문명에 본산은 파미르 고원 문명에서 시발되었다.
파미르 고원 문명은 여성 중심에 문명이며 마고,궁희,소희 시대를 거쳐 황궁씨(황인),백소씨(백인),청궁씨(홍인),흑소씨(흑인) 4개의 씨족으로 이어졌다.
우리 나라의 문명 역시 파미르에서 황궁씨에 의하여 이어져 왔고 대표적 문명인 배달 시대의 박달문명과 한국 시대의 천산문명이다.
1.박달 문명
배달 나라가 건국되며 태백산,황하,요하 인근에서 형성되어진 문명이다.
2.천산문명
파미르에서 황궁씨가 이동하며 몽골,황하,천산,만주 일대로 형성되어진 문명이다.
이때에 이어진 우리의 한민족이 바로 구족=구이의 나라라 칭해지게 되었다.
이렇게 이어진 동방문명은 단군조선의 문명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단군에 후손중 전쟁의 신 "치우천황"을 많이 이야기 한다.하지만 치우천황은 한반도의 선조라고 애기하는 학자는 드물다.오히러 중국의 묘족에 선조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여기서 치우천황을 잠시 다룬것은 뒤에 귀면와와 연관성 때문이다.
고조선과 고구려
우리 한반도의 문명과 나라란 의미의 첫 단추이다.
구족,구이의 나라 즉 동이족의 동방의 나라 "구려"
구려는 황궁씨중 12개의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여기서부터 한반도의 토착견에 경로와 변화를 다루고 싶다.
파미르 고원에서 파생되어진 미들아시안오브차카와 센트럴아시안세퍼트 두 견종은 아직도 가장 오래된 중앙아시아 세퍼트이자 견종으로 알고 있다.
파미르에서 형성된 볼테크코르 견종에서 파생되어지며 기후와 환경에 의해 또한 문명에 형성에 따라 유럽,중동,아시아 등지에서 새로운 견종에 모습과 형태가 바뀌고 적응한 습성을 현존하는 견종들에게서 보여주게 되었다.
한반도는 동방문명에 의해 이동되어 형성되었고 그중에 고리드족을 우리는 깊게 알고 가야한다고 본다.
고리드족은 수렵에 능통한 부족이다.그것도 개들을 데리고 말이다.
다음은 고리드 개의 예전 사진들이다.
고리드족은 만주와 시베리아로 이어진 지역에 분포되어 지내왔다.사진을 보다보면 라이카,방카르,진도개의 모습도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는 견종들이다.
다음은 최근에 고리드 개들 사진이다.
대체적으로 털 길이가 짧아지고 체형에 유연함이 좀더 보여준다.
고리드 개들에 이동과 형성에서 우리 한반도의 풍산개,삽살개,진도개등 토종개의 가장 큰 뼈대 윗 조상이 여기에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중에서 어떤 역사가들은 우리 토종개중 가장 형태의 변화가 적었던 견종이 삽살이라 말한다.그렇다 일본 강점기에 삽살이는 내선일체 방침으로 인하여 보호 받지 못했고 말살 위기를 맞았던 우리의 토종개이다.
진도개는 진도 고유의 외지섬에 위치했고 풍산개는 함경남도 풍산군의 개마고원 등지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서 진도개나 풍산개는 위치적으로 변화와 시대적 고통이 적었다.
하지만 한반도 전 지역에 퍼져 있던 흔한 개가 바로 삽살이였다.그래서 일제 강점기때도 이후에도 보신문화로 인하여 개체수가 급격히 줄게 되고 아픔이 가장 큰 우리의 토종견이다.
위에 언급한 치우천황은 전쟁의 신으로 도깨비를 형상화했고 2002년 붉은 악마의 마스코트도 여기에서 따왔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로 볼 수 없는 치우에 형상을 붉은 악마 마스코트로 만들면서 당시에 역사 학자들에 반발도 있었다.
삼국시대의 "귀면와"
집 지붕에 새겨 넣었던 문양이다.모습을 보면 치우의 형상과 같아 보인다.
하지만 귀면와는 중국에서 칭해지던 모양이고 한반도는 하늘의 신인 용의 머리를 문양으로 넣었던 것이다.그래서 정확히 말하면 "용면와"라 칭해야 한다고 모든 학자는 말한다.
일본에 고마이누 상이다.
고마이누 = 구이의 나라의 개(고구려개)
고마이누는 사자의 머리 형상으로 보인다.위에서 삽살이를 언급한바가 이와 연관성을 가지기 위함이였다.
우리 나라에서도 삽살이중 청삽살이를 "사자방"이라 불리웠다.
아스카 시대에 우리 문화가 연결되며 고구려 시절 특히나 광개토대왕 당시 일본 정벌 역사와 고려 삼벌초의 패잔병이 오키나와로 이동했던 경로,신라 시대에 일본과의 교류,백제의 왕자가 왕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 훗날 홋카이도 성주가 되었던 역사들...
당시에 한반도의 모든 전역에 퍼져 있었고 감쳐진 눈으로 귀신을 보며 몰아 냈다고 알려진 삽살이를 고마이누라 칭했을 확률이 높다.
한반도 전역에 가장 많았고 오랜 시간 이어져 왔던 삽살이는 토착견과의 연관성은 분명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4500여년전 제주의 첫 사냥꾼"소로소"란 분이 계셨다.실존 인물이고 훗날 제주에서 '사냥의 신'으로 칭했졌던 인물이다.
아직도 제주에서 제주정통사냥을 유지하려는 우리는 이 분에 무덤에 매년 제를 올린다.
소로소 조상은 제주의 역사 문헌에 당시에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제주 동부 (현재 송당리) 산기슭과 오름을 누비며 날짐승 사냥에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데리고 다녔던 개는 현재의 제주개가 아닌 삽살이였다.
제주에서는 니농이,니눈이,니방이란 말을 인용했다.
양눈썹을 두개의 눈으로 보고 눈썹에 감쳐진 눈을 또다시 두개의 눈으로 보았다.그래서 눈이 네개같다하여 불러진 것이다.그리고 감쳐진 눈이 사방위 즉,동서남북을 다 볼 수 있는 눈이라고도 하였다.
충청도에서는 니눈백이라 삽살이를 칭하기도 하였다.
현재 네눈박이라 하여 진도개의 모색을 애기하지만 원래 정확히 따지면 삽살이에 모습을 가지고 나온 말이였다.
제주에도 삽살이는 존재했다.그러면 진도에는 없었을까?
각자 생각을 유추해보셨으면 합니다.
파미르 고원에서 각 대륙으로 이동되어진 문명과 각 부족들이 이동하고 정착하는 과정에서 개들도 이동되었고 그렇게 기후와 환경에 의하여 변화를 이루었다.
우리 한반도는 고리드족에 영향으로 고리드 개의 형질을 보여준다.
그리고 고려 후기 몽골에 의한 토착견의 변화도 주목해 봐야 할것이다.
실제로 고구려나 몽골을 말을 잘 타던 기마병 위주의 전투를 하였다.그래서 날짐승으로부터 말을 지키고 경계 역할을 한것은 바로 개이다.
실제로 유목 민족의 선조는 개를 인간과 동급으로 생각했었고 현재도 몽골은 그러하며 죽어서도 똑같이 초원에서 의식을 치룬다.
이를 뒷받침할 역사는 징기스칸이 정복기 안에 방카르와 라이카 형태의 개들을 3만 마리를 데리고 다니며 전쟁을 치렸던 기록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도 고구려의 벽화에 수렵 그림에 개가 있었고 몽골처럼 말 지킴이,경계등을 개를 통해 이루어 졌음을 알수 있다.
한반도 속에서 모든 토착견은 서로 공존과 변화를 거치며 각 지역마다 색다른 모습으로 진화와 발전을 이뤘을 것이다.
우리의 토종견중 풍산 단모,제주 단모,동경이,거제개등은 고리드 개의 라이카형이며 풍산 장모,제주 장모,진도 장모등은 고리드 개의 장모종을 연상케 한다.
우리의 토착견이자 토종견인 진도개 역시 오랜 시간속에 파미르부터 고리드를 거쳐 한반도 남단에 진도란 섬으로 이동하고 진화하며 변화를 이루었고 현재 우리가 보고 지켜 나가는 견종이다.여기서 또 하나의 가설이 존재한다.
파미르에서 황하강을 기점으로 맥족...즉 옥저란 나라가 있었다.바로 옥저에서 전라도로 개들이 이동했다는 추측도 있다.
1950년대까지만해도 해남개,완도개도 존재했었기에 더 신빙성을 느껴본다.
마지막으로 파미르 고원의 개 사진 한 장을 남겨 놓습니다.이 사진 한장속에 아는 만큼 진도개는 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