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규장전 - 김시습
* 이생규장 : 이생이 담장을 엿보다.
○ 작품의 줄거리
개성에 살던 이생이란 젊은이가 글공부를 다니다 하루는 선죽교 근처를 지나면서 귀족 집안의 최씨라는 아름다운 처녀를 발견하고 매혹된 나머지 사랑의 글을 써서 담 너머로 던진다. 그 뒤 그들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이생 부모의 반대로 시련을 겪게 된다. 최씨 부모의 노력으로 결국 두 사람은 부부가 되고 이생은 과거에 오른다. 그러나 얼마 안되어 홍건적의 난으로 여인이 도적이 칼에 맞아 죽고 만다. 그런데 하루는 그 여인이 이생을 찾아와 둘은 다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3년이 지난 뒤 어느 날 여인은 아직도 들에 뒹구는 자신의 해골을 거두어 장사지내 줄 것으로 부탁하며 이생과 작별한다. 이생은 아내의 말대로 시체를 거두어 장사 지낸 후 그 길로 병이 들어 신음하다가 아내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나고 만다.
○ 작품 해제
작가 : 김시습(세조 때)
갈래 : 한문 소설, 전기 소설, 단편소설
제재 : 남녀간의 사랑
주제 : 죽음을 초월한 남녀간의 사랑
배경 : 시간적(고려 공민왕), 공간적(송도)
성격 : 전기(傳奇)적, 명혼소설(冥婚小說)
구성 : 추보식 구성, 3단구성
이 작품은 주인공들의 만남과 시련 및 이별이 거듭되는 복합 구성의 양상을 보인다. 주인공들 사이에 일어나는 세 번의 시련은 ① 부모님의 반대 ② 난리로 인한 부인의 죽음 ③ 삶과 죽음을 가르는 명부(冥府)의 법칙이다. 이 중에서 ①은 두 사람의 지극한 사랑으로 해결되지만 ②는 절망적인 것이다. 그러나 김시습은 전래의 설화에서 볼 수 있는 명혼(冥婚), 즉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의 결혼이라는 화소(話素)를 도입하여 환상적이고도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엮어냈다.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표현 : 직유, 은유, 과장법
의의 :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로 조선시대의 소설, 특히 한문 소설의 발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출전 : '금오신화(金鰲新話)'
기타 : 중국 明나라 瞿佑(구우)가 쓴 《전등신화(剪燈神話)》의 영향을 받음
○ 등장 인물
이생 : 시문에 능하고 수려한 외모를 지닌 선비. 부친의 명령을 무조건 복종하는 점에서 유교 사상에 충실한 인물
최낭자 : 당대에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여성
작품의 감상 및 이해
한문 소설의 효시인 <金鰲新話(금오신화)> 중의 한 작품으로, 삶과 죽음을 초월한 사랑의 성취를 그린 冥婚小說(명혼 소설; 귀신과 결혼하는 내용의 소설) 또는 屍愛小說(시애 소설; 죽은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내용의 소설)이라 불리는 작품이다. 전반부는 이승의 현실적 사건을, 후반부는 이승과 저승을 초월한 세계를 그린 2단 구성으로 된 작품이다.
작품 전반부에서 이생은 부모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최 낭자와의 결혼에 성공한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 의사에 의한 만남과 혼인을 표현한 점에서 작자의 남녀의 애정에 대한 진보적 시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렵게 성취한 두 사람의 사랑은 홍건적의 난리에 최 낭자가 죽음으로 해서 깨어지고 만다. 작자는 깨어진 두 사람의 사랑을 최 낭자의 幻身(환신)과 이생의 사랑이라는 전설적 구성으로 다시 이어 놓았다. 이 작품에 드러나는 귀신과의 사랑은 최치원의 <수이전(殊異傳)>에 나타나 있어 작자는 이러한 전설을 바탕으로 삼아 작품을 창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설화가 아닌 소설인 까닭은 자신들의 사랑을 좌절시키려는 세계의 횡포에 대해 주인공들이 치열하게 저항하는데 있다. 즉 주인공과 세계 사이의 갈등이 치열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극적 모습이 귀신과의 사랑이다. 현실적으로 좌절된 사랑을 귀신과의 사랑으로 바꾸어 성취시키는 것은 분명히 역설(逆說)이지만, 이 점이 이 소설의 전기적 특성을 드러내는 요소이다.
이 작품의 전반부에는 남녀 주인공의 자유 연애를 설정해 놓았고, 후반부에서는 '만복사저포기'에서와 같은 인귀 교환(人鬼交歡)의 이야기로 구성해 놓았다. 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이승과 저승의 한계를 뛰어넘는, 즉 죽음을 초월한 남녀간의 지극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전반부에서 보여 준 이생과 최 여인의 현실적 사랑은 당시 유교 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처럼 관습을 과감히 깨뜨리고 사랑을 실현한 행위는 작자의 솔직하고 대담한 애정관의 반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이 작품은 '전등신화(剪燈新話)'의 영향을 받았으나 단순한 모방은 아니고 여러 작품에서 모티프를 빌려 왔으며, 플롯이나 테마 면에서는 독창성을 충분히 발휘하여 완전한 하나의 창작 소설을 만들어 냈다. '이생규장전'은 소설의 한 본질인 흥미를 십분 살려 <금오신화(金鰲新話)>에 실린 다른 작품에 비해서도 작품성이 우수하다.
「이생규장전」외 『금오신화』의 수록 작품
(1) 「만복사저포기」: 남원에 사는 노총각 양생이 부처님과 윷놀이 내기를 해서 이기고, 여러 해 전 왜구에게 죽은 처녀의 환신을 만나 사랑을 속삭인다는 내용.
(2) 「취유부벽정기」: 개성 사람 홍생이 평양으로 장사를 갔다가 부벽루에 올라가서 놀던 중, 수천 년 전의 인물로 지금은 선녀가 되어 있는 기씨 여인을 만나 아름다운 사랑을 속삭였다는 이야기
(3) 「남염부주지」: 경주의 박생은 미신과 불교를 배척하는 선비인데, 꿈속에서 저승을 가게 되어 염라 대왕과 더불어 귀신, 생사의 문제를 토론하고 돌아오는 내용.
(4) 「용궁부연록」: 개성의 한생이 꿈 속에서 용왕의 초대를 받고 가서 시를 지으며 놀았다는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