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내용
1. 철학용어의 탄생
‘철학’이라는 용어는 한국인이 만든 어휘가 아니라, 서양에서 사용하는 ‘philosophia, philosophy’에 대한 일본사람인 서주, 니시아마네의 번역어이다.
서주는 철학, 과학, 미학, 기술, 주관, 객관, 연역, 귀납 등 수많은 근대 학술 용어를 만들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고 있는 ‘학술’이란 어휘 역시 ‘science and arts’를 그가 ‘학술기예’라고 번역한 것의 준말이다. 이처럼 그는 이른바 ‘서양철학’에서 사용하는 개념의 번역 과정을 통해 20세기 이후의 동아시아 철학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주요용어를 만들었다.
2. 철학 개념의 굴절
서주는 복택유길(후쿠자와 유키치)과 함께 일본의 근대화를 지향하는 주요사상가였다. 이들에 의해 강하게 주장된 일본의 근대화는 아시아 문명을 벗어나 서구문명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동아시아의 전통문명은 지양의 대상이지, 지향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유 • 불 • 도를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사유방식을 폐기하고, 민주주의와 과학기술로 무장한 서구사상으로 무장해야할 것을 강조하였다. 서주에 의해 번역된 ‘철학’이란 용어 속에는 이러한 그의 관점이 깊게 반영되어 있다.
한국에 소개된 ‘서양철학’의 내용은 서주의 번역어보다 훨씬이르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서양철학’의 초기 내용은 천주교의 영향이다. 이수광이 소개한 천주실의와 1631년에 정두원이 북경에서 가져온 세계지리서인 직방와기가 초기의 문서이다. 또한 1801년의 신유박해 때 황사영은 북경의 주교에게 보내려던 백서에 이가환의 집에 소장된 직방와기와 서학범을 언급하였는데 서학범은 선교사인 알레니가 서양의 학문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이책에는 학문을 문과, 이과, 의과, 법과, 교과, 도과로 나누고, ‘철학’을 이치를 연구하는 비록소피아의 학문으로 여기며 이치를 연구하는 이과의 범주에 해당시켰다. 이 책에서는 또한의 범주에 논리학, 물리학, 형이상학, 수학, 윤리학 등을 포함시켰다. 그리고 서양의 선교사인 삼비아스가 지은 영언려작은 유학적 관점이 풍부한 신후담의 서학변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선교사들에 의해 소개된 이러한 ‘서양철학’의 내용은 대부분 종교인들이 종교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범주를 분류하였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서양철학’을 오롯이 접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면에서 제한적이다.
3. 외래철학의 확산
일제강점기가 한창이던 1920년대와 1930년대에 한국에서 철학의 주류는 전통철학이 아니라 서양철학이다. 서양철학 가운데에서도 현실의 모순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회철학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해결과 일정정도 거리가 있는 형이상학적인 관념론이다. 왜냐하면 현대 한국의 철학 1세대들이 어려서부터 근대화 된 서구문명들을 추종하는 일제강점기의 교육제도와 교육관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부분 전통적인 교육방법이나 전통철학을 공부한 것이 아니라, 서구화된 교육시스템 속에서 주로 서양철학을 공부했다.
한국의 철학 1세대들은 대부분 초등학교부터 근대교육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근대 서양에서 형성된 지식체계와 탐구방식을 특별한 의심이나 비판없이 그대로 수용하였다. 대학교육은 초.중.고 등의 교육에 비해 더 비판적인 면이 있지만 철학을 처음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교수들의 가르침을 거부하기 쉽지 않았다.
4. 전통철학의 침체
1929년 3월에 경성제국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제 1회 학생은 총 7명인데 대부분 서양철학을 전공하였고 졸업 이후 교수가 되어서도 서양철학을 중점으로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법문ㄹ학부 철학과에서도 1946년 7월 총 64명의 한국인 학생들이 졸업을 하였는데 이들 중 많은 전공자들이 존재하였는데 철학전공자들 중에서는 동양철학 전공자가 서양철학의 전공자에 비해 환연히 적었다.
5. 한국철학의 부활
21세기가 진행 중인 오늘날 우리 사회는 온갖 문제가 중층적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라는 상황에서 빚어지는 이념적 갈등이 여전히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고, 신자유주의의 이념의 일반화에 의한 소외 현상이 각 계층과 세대와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갈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또한 종교적인 신념 차이로 인한 베타적인 이단 논쟁이 증가하고 있고, 생태계의 파괴와 인간성의 파괴 현상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문제가 산적한 한국의 현실에서 철학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지금 한국의 철학계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철학은 또한 이러한 문제를 외면해도 되는지, 철학은 현실의 문제보다 현실과 무관한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탐구하는 것으로 만족해도 되는지,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철학은 무엇일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6. 우리 철학의 정립
현대사회는 한편으로 신자유주의 이념이 확대되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신자유주의 이념에 대한 비판과 다원성이 존중되고 있다. 배타적 경쟁을 통한 승자 독식의 문제와 모더니즘에 대한 성찰을 통해 도구적 이성의 패권주의적 경향을 비판하는 이러한 풍토는 중심과 주변이라는 이분법적 논리 구조를 비판한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에서는 근대전환기에 일본의 지식인들처럼 서양문명을 중심으로 여기고, 아시아 문명을 주변으로 여기는 사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평등의 관점에서 문명을 바라본다. 이 때문에 다른 것은 다른 것일 뿐 틀린 것이 될 수는 없다. 다름이 틀림이 될 때에는 그것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옳지 않기 때문이다. 옳음과 그름의 기준 역시 어느 한 편의 기준에 의해 일방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쌍방 간의 유기적인 소통에 의한 협의와 합의를 통해 결정된다. 따라서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관계에서 서양철학은 중심이고 동양철학은 주변이라는 논리는 타당하지 않다.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은 각각 내부에 다양한 주제와 관점을 내포하고 있고 주제와 관점은 상호작용을 통해 전화될 수 있다. 이제 시대정신을 반영한 우리철학의 정립 문제는 조급하게 서두를 일도 아니지만, 게으르게 방치할 문제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