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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론 90강
출애굽기 39:1-43
제사장의 옷 제작
회막의 모든 부분과 성소의 기물들이 다 완성되었으나 성막으로 세우기 전에 제사장의 의복을 만들었다. 1-31절은 제사장의 옷을 만든 것에 대한 기록이고, 32-43절은 성막의 모든 부분을 만든 것을 모세가 확인한다. 제사장의 옷은 대제사장의 옷과 일반 제사장의 옷으로 구분된다. 일반 제사장의 옷은 단순하나 대제사장의 옷은 에봇과 흉패가 더하여져 정교하고 화려하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1, 5, 7, 21, 26, 29, 31, 32, 42, 43절)라는 표현은 각 부분을 만들었을 때마다 이어지는 후렴구로 말씀이 이루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옷 역시 단순히 의식을 위한 옷이 아니라 언약의 말씀으로 주신 것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진리의 말씀으로 읽어야 한다.
“1 그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성소에서 섬길 때 입을 정교한 옷을 만들고 또 아론을 위해 거룩한 옷을 만들었더라 2 그는 또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에봇을 만들었으되 3 금을 얇게 쳐서 오려서 실을 만들어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에 섞어 정교하게 짜고 4 에봇에는 어깨받이를 만들어 그 두 끝에 달아 서로 연결되게 하고 5 에봇 위에 에봇을 매는 띠를 에봇과 같은 모양으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에봇에 붙여 짰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1-5절).
에봇을 제작하였다는 말씀이다. “거룩한 옷”(1절)이라는 말씀은 옷 자체가 거룩하기 때문에 어떤 모습을 하였든지 제사장의 옷만 입으면 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계시하기 위해 구별되었다는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죄인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별되게 하심 안에서만 정결을 나타낼 수 있다. “에봇”(2절)이라는 히브리어 ‘에포드’에 대하여 사실 정확하게 그 뜻을 알 수 없다.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대제사장이 가장 겉에 입는 옷으로 앞치마와 같은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5절)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옷이라는 뜻이다. 제사장이 에봇을 입어 하나님과 죄인들과 관계에서 중보의 역할을 하는 상징적 의미로 표현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 속에는 에봇이 우상이 되었다.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삿 8:27)
5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17:5-6)
“6 그들은 또 호마노를 깎아 금 테에 물려 도장을 새김 같이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을 그것에 새겨 7 에봇 어깨받이에 달아 이스라엘의 아들들을 기념하는 보석을 삼았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6-7절).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긴 호마노를 어깨받이에 붙여 만들었다. “호마노”(6절)의 ‘쇼함’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희게하다’라는 뜻에 의해 신약에서 “흰돌”(계 2:17)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열두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는 데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깨에 메는 형식을 지닌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어깨받이에 달았다고만 기록하고 있는데 제사장 옷을 만들라고 계시하신 말씀에 보면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워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출 28:12)라고 말씀한다. “기념”이란 기억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기억하고 그것을 반드시 성취하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이 두 호마노에 새겨진 이스라엘의 이름을 어깨에 멘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실 것을 의미한다(사 53:4).
마태는 예수님께서 귀신들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신 것을 병을 짊어지신다는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선언하였다(마 8;16-17). 고칠 수 없는 죄악을 병으로 비유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십자가 죽음은 자기 백성들의 죄악을 짊어진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가 되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짊어진 상태를 의미한다(고후 4:10).
“8 그가 또 흉패를 정교하게 짜되 에봇과 같은 모양으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하였으니 9 그것의 길이가 한 뼘, 너비가 한 뼘으로 네 모가 반듯하고 두 겹이며 10 그것에 네 줄 보석을 물렸으니 곧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 첫 줄이요 11 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12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13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이라 다 금 테에 물렸으니 14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 곧 그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도장을 새김 같이 그 열두 지파의 각 이름을 새겼으며 15 그들이 또 순금으로 노끈처럼 사슬을 땋아 흉패에 붙이고 16 또 금 테 둘과 금 고리 둘을 만들어 그 두 고리를 흉패 두 끝에 달고 17 그 땋은 두 금 사슬을 흉패 끝 두 고리에 꿰매었으며 18 그 땋은 두 사슬의 다른 두 끝을 에봇 앞 두 어깨받이의 금 테에 매고 19 또 금 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 두 끝에 달았으니 곧 그 에봇을 마주한 안쪽 가장자리에 달았으며 20 또 금 고리 둘을 만들어 에봇 앞 두 어깨받이 아래 매는 자리 가까운 쪽 곧 정교하게 짠 에봇 띠 위쪽에 달고 21 청색 끈으로 흉패 고리와 에봇 고리에 꿰어 흉패로 정교하게 짠 에봇 띠 위에 붙여서 에봇에서 벗어지지 않게 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8-21절).
대제사장의 가슴에 부착하는 흉패는 에봇과 동일한 재질의 가장 귀한 실들로 짰다. 가늘게 꼰 베실을 기본으로 청색, 자색, 홍색 실을 아름답게 섞어 짜고 거기에 금실이 추가 되었다. 가로세로 한 뼘 크기의 정사각형 모양이며 두 겹으로 제작되어 아마 봉투처럼 물건을 넣을 수 있었던 것으로 네모반듯하게 주머니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 네 줄로 보석을 붙였는데 한 줄에 세 개씩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개의 보석이 장식되었다.
대제사장이 열두 보석을 부착한 흉패를 착용하고 내성소에 들어가는 것은 대제사장의 모형이신 예수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모습을 나타낸다. 즉 십자가 죽음으로 얻은 자기 백성들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감을 보여준다(히 9;11-12). 요한이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요 13:23)라는 표현은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품고 십자가를 향해 가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의 가슴에 열두 지파 이름을 새겼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사랑으로 품은 언약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사랑의 절정이기 때문이다(롬 5:8).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롬 5:5)이 언약의 온전한 성취이다.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 1:20-22)
“22 그가 에봇 받침 긴 옷을 전부 청색으로 짜서 만들되 23 그 옷의 두 어깨 사이에 구멍을 내고 갑옷 깃 같이 그 구멍 주위에 깃을 짜서 찢어지지 않게 하고 24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로 그 옷 가장자리에 석류를 수놓고 25 순금으로 방울을 만들어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석류 사이사이에 달되 26 방울과 석류를 서로 간격을 두고 번갈아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달았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22-25절). “에봇 받침 긴 옷”(22절)은 에봇을 입기 전에 입는 청색 옷이다. 옷 가장자리 즉 맨 아래에 석류 장식물과 순금으로 만든 방울을 교대로 달았다. 방울 소리는 대제사장이 내성소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보여주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짊어지고 품은 상태로 일하고 있다는 것은 유월절 어린 양의 희생 덕분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즉 하나님 아들의 음성을 상징하는 것이다(요 5:25).
“27 그들이 또 직조한 가는 베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을 짓고 28 세마포로 두건을 짓고 세마포로 빛난 관을 만들고 가는 베 실로 짜서 세마포 속바지들을 만들고 29 가는 베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수 놓아 띠를 만들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27-29절). “속옷”(27절)은 우리말 표현대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반포 예복’이다. 두건과 띠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말씀으로 무장된 상태를 보여준다.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3-17)
“30 그들이 또 순금으로 거룩한 패를 만들고 도장을 새김 같이 그 위에 '여호와께 성결'이라 새기고 31 그 패를 청색 끈으로 관 전면에 달았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30-31절). “여호와께 성결”(30절)이란 ‘야훼를 위해 혹은 야훼를 향한 거룩함으로 구별된 자’라는 말이다. 야훼 하나님을 위해 거룩하게 구별된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눅 1:35, 참고 막 1:24).
“32 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성막 곧 회막의 모든 역사를 마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고 33 그들이 성막을 모세에게로 가져왔으니 곧 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갈고리들과 그 널판들과 그 띠들과 그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34 붉은 물을 들인 숫양의 가죽 덮개와 해달의 가죽 덮개와 가리는 휘장과 35 증거궤와 그 채들과 속죄소와 36 상과 그 모든 기구와 진설병과 37 순금 등잔대와 그 잔 곧 벌여놓는 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와 등유와 38 금 제단과 관유와 향기로운 향과 장막 휘장 문과 39 놋 제단과 그 놋 그물과 그 채들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과 40 뜰의 포장들과 그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뜰 문의 휘장과 그 줄들과 그 말뚝들과 성막 곧 회막에서 사용할 모든 기구와 41 성소에서 섬기기 위한 정교한 옷 곧 제사 직분을 행할 때에 입는 제사장 아론의 거룩한 옷과 그의 아들들의 옷이라”(32-41절). 성막의 모든 부분을 만든 것을 건립하기 전에 모세가 확인하였다는 것이다. 이 역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졌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닌 말씀이 이루었다는 뜻이다.
“4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역사를 마치매 43 (보라!) 모세가 그 마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모세가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42-43절). “모든”(42, 43절)은 ‘콜’로 ‘모두, 전체, 완전함’이라는 뜻이고, “역사”(42절)의 ‘아보다’는 ‘노동, 일, 수고, 노역, 봉사, 섬김, 예배’라는 뜻이다. “마친 모든 것”(43절)에서 “마친”은 ‘아사’로 ‘일하다, 행하다, 만들다, 형성하다, 이루다’라는 뜻이고, “것”이라는 표현의 ‘멜라카’는 ‘업무, 직업, 사업, 일, 기능, 재산’이라는 뜻이다. 즉 모세의 일은 완전한 섬김, 예배가 되었고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온전함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이 표현을 강조하기 위해 우리 성경에 번역되지 않은 ‘힌네’(보라!)를 단어를 사용하여 강조하였다. 그러니까 “모세가 … 본즉”이라는 표현은 창조 언약의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창조 언약에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4, 10, 12, 18, 21, 25절)라는 말씀과 함께 모든 것을 완성하신 하나님의 일을 나타낸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 2:3)
그러므로 “모세가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43절)라는 선언은 하나님 안식 안에서 주어지는 ‘복’(히, ‘바라크’)을 의미한다. 즉 언약의 말씀대로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언약의 말씀이신 예수께서 십자가 죽음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복이 안식이다(20261018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