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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블랙야크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바람(김성학)
백두대간 종주 산행기
*일시: 2007.07.22(일요일)
*구간: 7구간(동엽령~빼재)/35 구간중
*산행거리(km): 도상거리:13/실제거리: 14.76 /접속거리: 4.5
*산행 시간(hr): 06:00~07:00(선두~후미)
*산행 인원(명): 66명(남: /여: )
*차량: 버스2대(45인승/30인승)
*출발: 블랙야크 상무점: 06:10/광주 문예회관 후문: 06:30
*날씨: 오전: 흐림, 안개 자욱, 햇빛, 조망: 보통
오후: 흐림, 안개 짙음, 햇빛, 조망: 보통
*기온: 20~21도씨
*산행 코스: (안성 탐방지원센터/칠연계곡)/08:45~동엽령(1320m/10:06)~
백암봉(=송계3거리)/(1420m/11:10)~횡경재(3거리)/1350m~귀봉~
못봉(=지봉1342.7m/12:50)~월음재/13:40~대봉/13:46~
갈미봉(1210.5m/14:20) ~빼재(=신풍령 휴게소 주차장 920m/15:00).
[산행기]
*출발: 상무점 06:10, 문예회관 후문 06:30
1호차 41명, 2호차 25명, 총 66명이 백두대간 장정 길을 한 땀 더
이으려 이른 아침잠을 털고 나선다.
88고속도로를 타고 남원 휴게소에서 잠깐 쉬고 회장님(이점재)과
등반대장(김성학)이 1호차와 2호차를 번갈아 인사도 나누고 오늘 여정을 예견 하여 본다.
오늘 구간은 나무가 없는 구간이 많아 그늘이 없는 구간을 통과해야 하고
덕유평전마다 원추리 꽃이 절정을 이룰 것이다,
회장님 부탁 말씀에 평소에 무릎 관절 관리와 체력 관리에
신경 써 주실 것을 당부 하신다.
앞으로 점점 멀어 지면서 더 힘들어 지는 걸 대비하기 위함이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비는 오지 않으나 흐리다.(07:30)
남장수 IC로 빠져나가 19번 도로 장수, 무주 방향으로 타고 예전 길로 지난다.
어느덧 낯설던 이정표나 지나는 동네며 담장에 핀 꽃의 근황도 궁금해 졌다
산 위쪽은 안개가 자욱하고 아래쪽은 맑고 깨끗해 비는 오지 않을 것 같다
금강물과 섬진강물로 바뀐다는 수분령을 지나는데 비가 온다.
기압과 기온의 경계점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수분령이 역할 하나보다.(07:45)
우측으로 장수의 오지 지지계곡으로 갈림길(743도로)을 지나쳐 계속 올라간다.
장수읍은 지나치고 싸리재 터널을 짧게 지난다.
아직도 이슬비는 내리고 안개가 바닥까지 자욱하게 펴졌다.
장계, 무주/덕유산, 무주 방향으로 진행 한다.
장수군 장계면 소재지 가운데를 관통하여 장계 문화의집과 면사무소를
직좌로 돌아 26번 도로로 잠깐 들어섰다가 다시 19번 도로로 복귀 하여
장계 농공 단지 앞을 지난다.(08:04)
장계면 소재지로 들어오지 말고 19번 도로를 계속 타고 덕유산, 무주,
진안 방향으로 계속 진행 했어야 했다.
장수 계북면 짚재를 넘어 통영~대전 고속도로 교각 밑을 지나며
압권마을도 지나고 솔재(530m)도 넘는다.
비는 그치고 산 아랫도리는 안개가 깨끗이 개였고 산위로는 여인네 하얀
잠옷 레이스처럼 펄럭이며 남덕유산이 늦잠에서 기침 하는 중이다.
19번 도로를 타며 계속 덕유산 능선을 남쪽에서 끼고 달리고 있는 중이다.
안개 속에 모두 숨어 버린 덕유산이 전령을 내려 보냈다.
삿갓봉, 시루봉 능선과 토곡동 계곡이 우측에서 내려온다, 그들이다
안성 8km 남았다. 계속 덕유산, 무주구천동으로 진행 한다.(08:16)
안성면 소재지에서 칠연 계곡 쪽으로 좌회전 하여 들어가서 좌측으로
칠연계곡 하류를 거슬러 오른다. 다 왔다, 아니 시작이다.(08:25)
덕유산은 완전히 안개에 묻혀 버렸고 하단부가 깨끗한 여운이 있어
걷힐 듯하다, 비는 오지 않기를 기대 한다.
앞 구간 마치고 뒷 풀이 했던 통안리 마을을 지난다.
통안리 자연학습장이 좌측이고 안성 탐방 지원 센터에 도착 했다.(08:35)
여느 때처럼 출발이다, 여태껏 예정 출발 시간에는 착오가 없었다.
*산행 출발(08:45)
(안성 탐방 지원 센터/산행 출발전 기념 찰영)
개와 고양이는 잠에서 깨어나 아주 큰 기지개를 켜고 턱이 빠지게
하품을 하며 일상을 시작 한다.
허리를 활처럼 휘었다가 큰 너울 물결처럼 일어나 근육과 관절을
이완하고 큰 하품으로 신선한 공기를 폐에 공급 하여 생체 리듬을 활성화 한다.
그래서 그들은 허리 디스크가 없다.
열씸, 정성껏 몸 풀기 할 이유가 충분 하다.
산행전에 스트레칭은 생각보다 순응적 반응이 크다.
뻐꾸기 자기 새끼 부르듯 각 조장님들이 조원들을 추슬러 떠난다.
2,7조 뻐꾸기 목소리가 가장 크고, 3,8조는 조용하다.
철문을 밀치고 콘크리트 진입로를 한 참 오르는 도중 좌측의 칠연계곡의
수량이 많아 계곡 전체가 폭포가 되어 하얀 무명천이 펄럭이며 바람을 일으킨다.
(칠연계곡 문덕소)
시원찮은 날씨 대신 계곡 물소리가 우렁차고 시원 하다.(08:55)
동엽령은 좌로 나무다리(뱀, 벌 주의/칠연폭포가 있는 계곡 상부가 뱀골이다)를
건너 가고 칠연폭포는 우측의 나무 계단으로 하여 15분여 올라 간다,
칠연폭포를 들렸다 오고자 했는데 동엽령에서 내려 오며 올라 갈 것이
생각나서 부담스럽게 한다.
사실 앞 구간에 야근하고 산행 하고 대포바위 갔다 오느라 무리했었다.
다음 기회에 미련을 이루리라…….
밤새 벼르고 쓴 연서를 아침에 못 붙이고 서랍에 숨겨 두었다가
훗날 우연히 발견 하고 읽으며 옛날 좋았던 시절을 추억으로 되새김질
하는 것도 좋으리라.
1.5km 왔다. 3km이상 더 가야 동엽령이다.(09:13).
본류 계곡으로 합류하는 좌측 지류를 건너 본류 계곡을 우측 아래로
끼고 올라가며 여전히 물벼락 친다.
2km 왔다. 계단길이 시작 되었다.(09:20)
안개가 자욱하여 가는 물방울 입자가 눈썹에 하얀 성에처럼 매친다.
빗방울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오늘 이렇게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다.
*이정표(09:47):동엽령 0.8km, 향적봉 5.0km, 안성 탐방지원 센터 3.6km
이슬 맺힌 야생화 꽃 빛깔이 더욱 깊고 짙한것이 매혹적이고 유혹적이다.
연자주색 산수국, 여로, 까치수염, 물레나물, 뱀무…….
동엽령 바로 아래 긴 나무 계단이다(09:55).
널빤지로 된 계단이 하늘로 올라가듯 길게 안개 속으로 끝이 보이지
않고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강한 햇살이 젖은 나뭇잎에 산란 되어 눈부시다.
계단은 길어도 발판을 넓게 만들어 두 걸음에 한 계단씩 오르게 만들어 오르기 편하다.
땀방울이 발끝에 채인다. 머리위로 바람이 스치고 넘어 간다.
하늘길이 열리고 안개위에 올라섰다.
*동엽령 도착(1320m/10:06)
이정표: 남덕유 10.5km, 삿갓재(대피소) 6.2km, 향적봉 4.3km,
백암봉(=송계 3거리) 2.2km, 안성 탐방 지원 센터 4.5km.
영호남(거창/장수)의 교역이 있었던 곳이다,
(동엽령, 6/7 구간 나눔점)
전망대 아래로 거창쪽 병곡리가 한눈에 들어오고 우측의 무룡산,
남덕유는 눈보라 같은 유동성이 긴박한 안개에 휩싸였다
안개가 부분적으로 걷히고 햇빛이 강하게 내리 쬔다
걱정 했던것 보다 수월 하게 올라 왔다, 이제부터 대간 능선이다.
새로 만들어진 전망대 넓은 대청마루에서 흰구름를 처마 삼고
하늘색으로 청기와를 올렸다.
휴식하며 간식 꺼리로 빈속을 달랜다.
심장의 압력이 가장 높고 폐의 부피비가 가장 정점일때 약간 안정후
마시는 얼음 맥주와 콜라맛은 먹어 본 사람하고만 이야기 해야 통하고
공감하는 부분이다.안주는 천원도 안하는 중국산 황도이다.
근심꺼리였던 급경사를 해치웠으니 뱃속 부담도 없다.
동엽령 능선 사면에 노란 원추리 꽃이 지천이고 야생화가 그린 카펫에
꽃 문양을 수 놓아 깔은듯 하다.
원추리, 까치수염, 가는 장구채, 물레나물, 싸리꽃, 여로, 노루오줌풀,
바위 양지꽃, 동자꽃, 잔대, 며느리밥풀꽃, 은꿩의다리, 일월 비비추, 단풍취,
기린초, 뱀무, 하늘말나리 이름 모르는 아가씨한테는 미안하다.
진행 할 백암봉쪽으로 가는 등산로가 비 때문인지 질펀하다,
하늘은 구름 사이로 푸른빛이다.
좌측의 백암봉(=송계 3거리)방향, 향적봉 정상 방향으로 가다가
송계 3거리에서 능선 직진은 중봉~향적봉이고 대간길은 우측으로 해서
귀봉~대봉~빼재로 간다.
동엽령에서 약간의 시간 동안 잡목숲길을 지나다가 차례로 작은 암봉이
두 개 보이더니 가던 사람들이 멈추어 있다.
(원추리가 만발한 평전에서/ 총무 윤영애님)
암봉전의 넓은 곳에 또 원추리 꽃의 잔치가 벌어졌고 발걸음을 잡히고 말았다.(10:44)
싸리꽃 터널을 지나고 몇 개의 바위를 비껴 두 번째 암봉 섰다(11:03).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귀봉의 펑퍼짐한 모습이 반야봉 엉디와 흡사 하고
구름 사이로 하늘색이 돋아나며 대원들 표정이 활기차다.
곧 백암봉에 도착 한다,
* 백암봉(=송계 3거리)/(1420m/11:10)
이정표: 동엽령 2.27km, 안성 통제소 6.6km, 삿갓재 대피소 8.5km, 남덕유산 12.8km /
횡경재 3.23km, 지봉 4.63km, 신풍령(빼재) 11km, 송계사 6.2km, 송계 통제소 6.4km /
향적봉 2.1km.
(백암봉=송계3거리/독도주의점/우측 횡경재~신풍령=빼재로 간다)
능선 직진으로 중봉이 눈앞에 보이고 향적봉은 구름 속에 묘연 하다.
이정표와 지도 속에서만 있고 주목과 구상나무들과 안개 속에 앉았다.
향적봉을 다녀오려면 중봉 구름 속으로 들어 배낭 두고 1시간여 걸린다.
가을인 듯 무수한 고추잠자리가 투명한 날개로 가벼이 바람 탄다.
선두로 가신 회장님께서 ‘독도주의’점에서 표식기로 우측 귀봉~지봉 쪽으로
유도 하시고 향적봉 다니러간 대원들 베낭 지키고 계신다.
진행 구간은 짙은 안개는 벗었다.
남덕유쪽 무룡산은 안개 속에서 춤을 추듯 보이다 사라진다.
*이정표(11:29): 송계 3거리(=백암봉) 1.4km, 향적봉 3.4km, 송계 통제소
5.1km, 나뭇잎 위로 햇살이 눈부시다.
향적봉도 중봉과 거리 차 때문에 쌍둥이 봉우리처럼 나란히 흰 구름
자락을 잡아 돌리며 머나먼 마음만 잡아끈다.
*횡경재 / 3거리(1350/ )
이정표: 송계사 3.2km, 향적봉 5.3km, 신풍령(빼재) 7.8km,
송계 통제소 3.2km(오른쪽/거창쪽 갈림길)
(횡경재/산악대장[이정현님/좌부터 3번째]과 대원들....)
*귀봉
빼재(신풍령) 5.5km 지점, 백암봉에서도 같은 거리를 왔다.
봉우리 올라오느라 엄청 힘들었다, 여기가 귀봉인 것 같다,
확인 할 증표는 아무것도 없다.
몸은 햇빛에 자주 노출 되고 조망도 많이 틔었다.
백암봉과 중봉은 조망 되고 여전히 향적봉은 안개 속에 있다.
무룡산도 구름자락을 잡고 승무를 하는양 흰 너울 휘날리며 바람길를
따라 연무를 일으킨다.
*못봉(=지봉)/(1342.7/12:50)
이정표: 신풍령 6.km1, 횡경재 3거리 1.7km, 송계 3거리 4.9km
(못봉=지봉, 뒤로 남덕유가 아스라이...)
올라오는 길에는 억새와 싸리가 빽빽이 자라고 억새보다
더 큰 붓꽃과 야생화가 꽃 문양을 놓는다.
봉우리에는 큰 도마만큼한 대리석에 ‘못봉’이라고 쓰여 이정표에
기대어 있고 주변에는 유난히 새며느리밥풀 꽃이 많이 피어 있다.
(며느리밥풀 꽃)
못 살던 시절 시집살이 한이 가슴에 못으로 박혀 슬픈 모습으로 혀에
쌀 밥알 두 개를 입에 물고 죽은 새며느리의 억울함을 무덤가의 꽃을
보고 모진 시집살이를 가늠해 본다.
새며느리는 시아버지 젯밥을 몰래 흠쳐 먹은게 아니고 밥이 잘 되었나
밥알 한 톨 입에 넣엇다가 억울한 오해를 받아 시어머니 주걱에 맞아
죽었다.
쌀 서 말도 못 먹고 시집가던 시절 이야기다.
남덕유 지리산까지 조망이 틔었다, 실루엣으로 지리산 능선이 머나멀다.
저 길을 내 발로 왔다.
요즘은 샤워하고 드라이로 머리는 안말려도 발가락 사이는 말린다.
잘 견디어 주고 잘 이겨주어서 구맙다.
*월음재(=월음령)/(13:40)
이정표: 신풍령 4.7km, 횡경재 3거리 3.1km, 송계 3거리 6.3km
억새와 싸리가 천지이고 봉우리를 오르며 내리며 빠른 속도로 진행 한다,
키 큰 붓꽃도 한몫 하고 고추잠자리도 파란 하늘과 어울린다.
왼쪽으로 갈라지는 투구봉 어디서 갈라지나?
달음재에서 갈라지는것으로 지도는 표시하나 대간상의 이정표에는 없다
지봉도 대간상 이정표에는 없다.
*대봉(13:46)
이정표: 신풍령 3.6km, 횡경재 3거리 4.2km, 송계 3거리 7.4km
오른쪽(동남쪽)으로 칠목재~호음산 능선(거창쪽)으로 갈림길도 있으나
이정표는 대간 안내만 하고 있다
싸리꽃 굴을 뚫고 힘들게 올라 왔다.
대봉 입구 억새풀위에 또아리를 틀고 햇볕을 즐기는 독사가 인기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의연히 흐트러짐 없이 자세를 유지 하고 있다.
(대봉 입구을 지키는 수문장/독사)
많은 대원들이 모여 있어 플래카드까지 앞세우고 단체 사진도 찍는다.
지봉은 어디로 갔는지 보지를 못 했다? 지나지는 않은것 같은데…….
휴식도 하고 급경사 내리막길로 떠난다. 1시간이면 오늘 몫도 다 한다.
*갈미봉/거창군(1210.5m /14:20)
이정표: 신풍령 2.6km, 횡경재 3거리 5.2km, 송계 3거리 8.4km
대봉에서 1km 왔다
작은 바위에 고정 되지도 않은 채 기대고 있는 사각 대리석 표지석을
좌로 끼고 돌아 빼재로의 마지막 봉우리로부터 하산 하는 내리막이다
봉우리라기보다는 지나는 하나의 작은 바위이다.
좌로 크게 돌며 급경사를 내려간다.
* 헬기장(14:31)
노란 달맞이꽃이 달 밝은 밤에는 누구를 기다리며 바람결에
마음을 실어 달빛에 띄워 보낼까?
귀찮은 누린재 한 쌍이 등불 같은 꽃잎 속에서 연애질하기에 딱이다,
덕분에 내년에도 노란 등불 같은 달맞이꽃을 더 많이 볼수 있을 것이다
하늘을 보고 있다.
바람의 시작과 끝을 찿으려 하지마
너와 내가 바람인거야
나는 너로인해 바람인거야....,
*빼재 1km 남은 지점(14:40): 빼재 다 와서 좌측으로 크게 돌면서
언덕 올라갑니다.
바닥이 깨끗한 길을 다시 내려갑니다.
좌측 계곡에서 폭포 소리인지 물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내려가는 갈림길도 있으나 능선으로만 진행해야 합니다.
큰 물소리의 계곡은 투구봉과 갈미봉이 만드는 능선 음부 계곡인것 같다.
야크를 계속 불러 메아리 소리를 남겨 두고 간다.
따라 오길 바라며……. 뻐꾸기 울음소리가 생각난다.
*빼재(수령, 신풍령) 도착(15:00) / 거창군 고제면
무주구천동과 거창 고제면을 잇는 잿 길(37번 도로/거창 31km)
이정표: 덕유산 백암봉 11km
(빼재/뼈재=신풍령=상오정 고개=수령)
갈미봉에서 좌로 크게 돌며 내려오고 올라가며 생각보다 길게 뻗은
길이었다.
급하게 내려가며 찻소리가 들리고 높은 송신탑과 망가진 철조망 따라
내려가다 콘크리트 도로에 내려서니 자귀나무 꽃이 함박 반긴다.
곧 아스팔트길이 나오고 차가 달려 나오는 길은 양쪽으로 급경사 절개지
사이를 빠져 나온다 .
위에 철조망은 철개지로의 추락 방지용이라는 것을 내려 와서 짐작이 갔다.
덕유산 국립공원 안내판과 나란히 입석의 절단석에 秀嶺이라고
붉은색으로 쓰여 있다.
언덕배기에는 팔각정자의 단청무늬가 아름답고 장승 한 쌍이 길손을 반긴다.
아스팔트 따라 조금 아래가 신풍령 휴게소이나 지금은 모두 폐업
상태이고 주유소의 저장 탱크 파이프만 흉물스럽다.
화장실도 꼭꼭 쇠사슬로 폐쇄 하였다.
약수터는 한구석에 1“파이프에서 신나지 않은 모습으로 물을 졸졸 흘리며 푸른 이끼위로 떨어진다.
신풍령 이정표 아래 작은 개울에서 임시로 씻고 내려가면서 우측
계곡(계음제 아래)에서 알 탕도 할 수 있다.
주유소 주유기 사이에서 뒤풀이 닭백숙으로 소진한 기력을 보충 한다.
빼재는 오래 동안 잊혀진 고개였다.
전하는 얘기로는 고개에 산적들이 많았다고 한다.
고갯마루에 산적들이 잡아먹은 산짐승 뼈가 쌓여 있어 뼈재라고
부른 것이 경상도 사투리와 만나 빼재가 되면서 ‘경치가 아름다운’
고개로 와전 되면서 수령(秀嶺)이라는 한자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신풍령이라는 이름은 빼재가 자동차 길로 바뀌면서 휴게소 이름을 신풍령이라 해서
요즘 지도에는 신풍령이라고 표기되기도 한다.
이 고개가 자동차 길로 열린 것은 무주 리조트가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장으로 결정 되고 이다.
구천동 계곡이 관광지로 계발된것은 60년대 초이지만, 길은 설천면과
무주읍을 지나 충북 영동으로 나가는 길 하나 뿐이였다.
6.25가 끝난뒤 군대의 비상 도로로 되기는 했으나 통행이 뜸했다고 한다.
산이 높고 계곡이 길어 하루에 넘나 들기에는 힘들어서 인 듯하다.
빼재에는 산악자전거 도로도 있어 대회가 열리는 플래카드도 걸려 있었다.
그러나 심사숙고해야 한다, 이름이 바뀌면 역사까지도 잃게 된다.
설화중 하나는 아기장수 설화다.
옛날 구천동에 용의 비닐을 단 아이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아기는 틈만 나면 진법을 짜고 산에 올라 지리를 연구 했다고 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어머니가 스님에게 아이의 장래를 물으니
아이를 죽이지 않으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죽는다고 답 했다.
마을 사람들이 나서 죽이려 했지만 끄덕도 하지 않아서 어머니가 나서자
아기는 때를 잘 못 타고 났다며 자기 몸의 비늘을 없앤 뒤 산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자 용소에서 용마가 튀어 나와 산을 넘어 갔는데 이때 ’용마가 내뺀 곳이
빼재‘라는 것이다. 아기장수를 시위 하는 병졸이 태어난 오졸터, 용마가 내달린 달래밭,
아기장수의 투구가 있었던 투구봉등의 이름이 덕유산 일대에 남아 있다.
또한 뼈재라는 이름에서는 임진왜란 승리의 주역인 의병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빼재를 넘어 비탈 물안실에는 살구지(殺區地)라는 곳이 있다.
의병이 왜군을 크게 무찌른 곳이다,
이때 죽은 왜병의 뼈가 나뒹굴어 뼈재라고 불렸다는 얘기도 설득력 있다.
산적이라는 얘기도 산척이라는 이곳에 사는 화전민이 와전 되어 부르지 않았나 한다.
심산유곡에 산삼을 캐고 산짐승을 잡아야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하는 이곳 사람들이다,
의병 중에 가장 용맹한 것도 그들이었고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사람의 왕래가 없고 화전민촌이 전부인 이곳에 산적이 등장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자기만의 귀와 자기만의 눈이 있다.
귀는 움직이지 않고 앞쪽으로 오므라져 있어 자기 앞에서 눈을 보며
말하는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게 만들어져 있다.
뒤에서 하는 얘기는 들리지 않거나 지나쳐 버리라는 조물주의 세심한 배려이리라.
동양철학의 관상학에서도 귀가 오므라지지 않고 반전된 사람은 남의 얘기는
잘 듣지 않고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여 독선적이고, 지나치면 오만하다는
이야기도 듣고 산다.(꼭 나쁜 것은 아니다?)
자신을 속이고 자신이 없는 이들이 거짓 선동적 언사로 뒤에서 진실의 그늘에 숨어
도망칠 생각만 하며 구실거리의 수령에서 헤매고 산다.
눈은 옥석을 가리는 혜안을 갖는데 많은 경험과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말은 줄이고 듣는 것을 더 하면 지혜로운 자가 된다.
산적 이야기에는 의병의 공을 감추고 업신여기려는 가진자들의
오만한 기침소리가 들린다. 살구지라는 지명도 잊히고 있다.
백두대간의 등줄기가 잘려 나가 떨어지면 죽을 것 같은 흉물스런 절개 된
사면을 보고 있자니 자동차가 밀고 온 바람에 몸이 흔들린다.
자연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마지로 선이다.
더 이상 이해타산과 정치논리의 희생양이 되어 우리 숨통을 끊고
후손을 병들게 하는 무식한 행정적 만행은 사라져야 한다.
공부하는 행정, 연구하는 정책, 발로 뛰어 확인 하는 양심, 자연중심적 계발속에서
함께 동화하는것이 편하고, 순리이며 만대가 영속할 일이다.
백두대간 용마루에서 바람(김 성 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