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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과 익살의 시어詩語로 받아쓴 바위의 말
박 윤 배(시인)
Ⅰ.
신기업 시인이 상재한 첫 시집 ⟪하몽夏夢⟫의 시편들은 꿈 혹은 기억 더듬기다. 그의 기억에 이끼처럼 말라붙은 꿈들은 주관적 경험에서 과거를 현재에 지속시키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다. 후설Edmund husserl에 따르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 주는 기억은 실재의 과거 그 자체가 아니라 기억은 과거와 현재를 연속시킨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신기업의 시 속에 등장하는 과거의 사건들은 단지 과거에 머물고 있는 경험을 기록한 산물이 아니라 현재를 반영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보다 가치 있는 미래를 향해 던지는 의도적 희망의 메시지이다.
그는 자서에서 이미 밝히고 있지만 그의 시는 한 소년이 바위와 주고받은 따뜻한 말이다. 그렇게 시로 쓰고 싶은 말들이란, 팍팍한 현실의 시간 45년을 걸어오면서 늘 그를 괴롭혀 왔을 것이다. 한 권의 시집을 엮으면서 “이름보다는 가죽 남길 떨림에/두려움이 앞선다”라고 밝히고 있는 그는 “산기슭에 옹기종기 모인 바위에게/해마다 지는 잎이 겁도 없이/이마를 찧은 정질쯤으로” 살아왔을 것이고, 이젠 가족을 지켜야 했던 가장의 역할로부터 조금은 가벼워진 자신을 발견한다. 하여 “바위에게 했던 말을/누군가에게 들키고 싶다”라고 내면의 심사를 털어놓는 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의 자서에서 바위라는 말을 꺼낸 데는 그가 살던 유년의 거주지 주변에 바위가 많았음도 짐작이 되지만, 누군가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없는 성품을 지녔거나 약간의 소심함도 읽혀지고 있으나 그는 나름대로 공직 생활에서는 고위직의 자리까지 승진을 이루어 낸 것만 보아도 자신의 과오에 대해서는 늘 철저한 방비를 할 줄 아는 인품일 것이다. 그의 유년은 돈을 많이 벌어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자서에서도 지배하고 있었고 그것은 아마도 부모님들이 꾸려 온 살림살이가 그리 풍족하지 못한 데 얼마간 기인하기도 한다. 해서 어린 그의 마음은 돈을 선택하려 했으나, 그의 부모는 공적비쯤을 세울 수 있는,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다 갈 공직을 권유했음이 그의 시에 나타나는데 그 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어머니는 사람은 모름지기 녹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하였고, 비석에 새긴 금석문이 가문 일군다고 했다. 어떻게든 높은 지위에 올라야 신주 앉는 의자 등받이도 길다고 하였다. 나 돈 많이 버는 부자가 고위 공무원보다 나아요! 했더니, 옆에 계시던 아버지 그게 다냐! 하신다
- <공적비> 전문
어머니의 말대로 그는 녹을 먹고 살았고 비석碑石에 금석문金石文이라도 새길 만큼 공직에서 최선을 다해 나름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 그런 그가 퇴직을 앞둔 이쯤에서 돈을 더 버는 유년의 소망으로 돌아가지 않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은 ‘아이러니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돈과 시는 무관한데 이건 뭐지?’라는 의문이 바로 그것인데, 아버지의 말 “그게 다냐”에 대한 미처 하지 못한 그의 대답이 아마도 바위의 말을 알아듣고 바위의 말을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시인이 그에게 꿈이었던 건 아닐까. 아버지의 물음에 말문을 닫았던 것임을 위 시 <공적비> 전문을 통해 나름 짐작이 된다. 아니 현실이 앞서는 어머니였기에 아버지는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맘껏 살아라”를 “그게 다냐!” 응축시켜 표현한 것은 아닐까. 아버지의 마음을 지금에야 제대로 알아들었기에 혼자 중얼거리던 바위의 말을 이젠 누군가讀者에게 들키고 싶다고 자서自序에서 밝히는 것은 아닐까.
Ⅱ.
아무튼 그는 어머니의 말대로 살았다. 또한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가족들과의 훈훈한 정을 나누기에도 그다지 소홀하지는 않았다는 게, 시집 전반에 걸쳐 드러난다. 물론 시들 중 술酒을 통해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 전모들도 시로 형상화되긴 하지만 아마도 그가 술을 가까이한 데는 술이라는 대상이 목적이 아닌 이웃 또는 직장의 상하 관계에서 어쩔 수 없는 소통 통로일 것이고 여하튼 그의 시 중에서 <가장家長>, <홍옥 아내>, <이주 일기>, <종부>, <지독한 감기>, <번바라지> 등 제하의 시들은 그가 한 가장으로 살아오며 가족에게 삶의 따듯한 눈길을 보여 준 반증의 시들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눈 안에 갇힌 섬이 볼록하다
돌, 바람, 여자, 도둑, 거지, 대문
뜬 채 바라보는 눈 속엔
백록담에서 흘러온 뭉게구름이
수시로 뽑은 속눈썹을
바다에 던진다, 하여 하르방 눈은
요즘 이웃 나라 여자들이 기웃거려도
껌벅이지 못하는 반원의 무덤
짧은 치마 레이스가 빛난들
등의 땀 스스로 거두고 만다
용암 덩이들로 흘러간
우도 마라도 비양도가 보고 싶어도
껌벅이지 못하는 눈 하르방은
귤나무 그늘 아래 우두커니 서 있다
대문간 세워 두어도
도둑, 거지 가로막지 못하는
알고 보면 나도 하르방
언제나 감지 못하는 눈으로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을 본다
- <가장家長> 전문
그의 시 <가장家長>이 그런 그의 자화상일 것이고, “도둑, 거지 가로막지 못하는/알고 보면 나도 하르방”이라고 전제한다. “언제나 감지 못하는 눈으로/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을 본다”고 돌하르방을 이야기한다. 그 눈만큼은 함부로 감을 수 없는, 섬을 가두고 있는 돌하르방이며 이웃 여자에게는 눈 돌리지 않는 지조를 드러낸다. 어쩌다 눈 감고 쉬고 싶어도 백록담에서 흘러온 뭉게구름이 수시로 속눈썹을 뽑아서 바다에 던짐으로 감을 수 없는 하르방의 눈은, 자신의 눈임을 이 시는 비유로 짐작하게 하며, 그 눈은 결국 섬인 것이고 반원의 무덤이 되는 것임을 암시를 통해 드러낸다.
그의 시 <홍옥 아내>는 한 그루 사과나무가 어떻게 꽃을 피우고 생애를 살아가는가를 의인화하여 이야기하면서 아내를 생각했을 것이다. 이때, “사시나무에서 황급히 내려온/한 마리 새/햇빛 오래 머문 자리 골라서/시린 부리 사과에 박아 넣는다”는 문장에서 새는 아마도 자신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주 일기>는 공직에 처음 나와 부모로부터 집 한 채 물려받지 못해 가난한 월세 전세로 잦은 이주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이때 아내와 아이의 설움조차도 시 안에 체험적으로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갑甲인 남으로부터 꾸지람을 받은 아이들 두고 을乙인 아내의 눈에서 떨어지던 눈물을 시인은 함박눈으로 그려 내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아내는 월급을 아껴 저축을 하고 시인에게 사 준 한 켤레 등산화가 이삿짐에 얹혀 실려 가는 정황은 실감나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낮은 땅에 등 붙이고 살다가/드디어 옮겨 가는 아파트 5층/혹여라도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날엔/저 등산화 요긴하게 쓰이기도 하겠지”라며 너스레도 떠는 시인의 고백은 매우 낭만적이다. 아이들이 미래 과학 그림을 어찌 그려야 할지 물었을 때 그 갑갑한 심정을 짐칸 위에 실려 가는 등산화를 통해 날아가는 등산화를 상상해 내는 시인의 엉뚱한 상상력은 가난조차 재미있게 미화시키는 역설 표현이어서 더욱 놀랍다. 그러면서도 이사 가는 것에 대한 후회의 마음이 이 시에는 들어 있다. 이사 전에 살던 집에 대해서 “한밤중에도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들렸다, 지붕 파란 집 담장 위엔/밤에도 호박 넝쿨 기어가는 소리가/들렸다, 내가 이 집 떠난다면/이슬 내린 저 뜰 채송화 꽃잎은/매미 떠난 감나무 그림자가 보듬어 줄까”라며 시인의 심정을 토로한다. 정든 가난에 대한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조금 나은 환경에서 살게 되었다고 아파트로 간다면 어머니나 형제들이 자신에게 딸린 식구들을 조금 덜 안타까워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재미있게 우화적 역설로 드러내고 있다. “명절 끝에 어머니가 챙겨 주시던 음식/어느 형제보다 내 보따리가 컸었기에/나, 사실은/지금도 공장 옆 그 집에/다시 세 들고 싶다”라고 표현하고 있으니 이쯤 되면 핑계가 참 어리광스러워 재미를 더해 주는 시가 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의 시 <종부>는 전통 속에 묶여 자신을 꿋꿋이 희생하는 어머니나 아내쯤을 생각해서 쓴 시일 것이다. 어쩌면 형수일 수도 있다. 비단 자신의 어머니, 아내는 아니더라도 이 땅의 큰어머니인 것은 틀림없다. 그런 종부와 시인과의 관계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당나귀 귀에 쇠파리 들까/가랑잎으로 가려 주던 그녀”, “생각 깊은 밤의 말을/큰 바위 아래 촛불로 켜 두던//당신”의 표현은 많은 설명이 필요한 종부에 대한 서사를 한마디로 함축할 줄 아는 그는 좋은 안목을 가진 탁월한 감각의 시인이다.
또 다른 그의 시 <지독한 감기>에서는 자신이 독감에 걸렸던 경험 속에서 아내의 손길에 대한 고마움을 시로 표현해 내고 있다. “비몽사몽 간신히 잠든 꿈속에서 호랑이는 달려오는데/내 입 솜을 물었는지 손발은 움직이지 않고/눈물도 흘릴 수 없다/그런 나를 아내가 조금만 더 늦게 흔들어 깨웠다면/담요에 민망한 오줌 지도 그려 놓고/어부바 그 말부터/나 다시 배워야 할 뻔했다” 아내의 고마움을 이렇듯이 넌지시 적어 내고 있다.
해맑은 아이 곁에서
선잠 든 아내 보다가
나는 착한 남자가 되었다
쟁기질하는 아버지
새참 머리에 인 어머니
그 뒤 고무신에 올챙이 담아 따르던 나
아버지가 남긴 막걸리 한 사발은
등에 업힌 동생 젖 불릴 어머니에게 줄 몫
그날부터 나의 갈증은 싹텄다
아버지 먼저 세상 떠나시고
늦게까지 나 지켜보던 어머니
어느 날 툭, 문틈으로 사라지신 후부터
술독 묻혀 있던 아랫목은 내 차지가 되었다
사무실 일 챙기다 퀭한 저녁이면
목구멍으로 넘기고 싶은 막걸리
코 고는 아들 방문 열어 보는데
엊그제 아이 같던 녀석 머리맡에서
벌써 익은 누룩 냄새가 난다
- <번바라지> 전문
이렇듯 가장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그려 낸 시가 아마도 위의 <번바라지>일 것이다. 당번이나 보초를 이를 때 “번”이라는 말과 뒷바라지의 뒷글자 “바라지”를 합성시켜 나온 이 말은 아마도 머지않아 번을 서는 입장이 될 아들을 번이라고 볼 때, 그 번을 바라지하는 자신의 운명적 가장의 모습에서 이름 지어 “번바라지”라고 자신을 이르는 말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자신이 번이 될 때까지 걸어온 길을 시인은 기억해 낸다. 막걸리를 마시고 싶었고, 그 막걸리는 어머니가 마셔 동생의 젖이 될 막걸리였다는 데 대해 왠지 소외로 다가온 무의식 속에서 갈증은 시인이 지금껏 막걸리를 좋아하는 이유와도 연결된다. 그런 술독의 자리는 결국 부모님이 저세상으로 떠남으로 자연스레 내 차지가 되었고, 직장이라는 생업 현장에서 가장으로서 생겨난 갈증을 눌러 참기도 했었는데, 어느새 자신을 닮은 자식이 자신의 집, 자신의 자리에 누워 술 냄새로 잠든 모습은 자신이 번바라지임을 확연히 알게 되는 그런 삶의 현장을 생생한 정황으로 드러낸다.
Ⅲ.
삶을 찬찬하고 웅숭깊은 감성으로 바라본 시인의 기억 속 과거는 일종의 추상화된 과거로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과 경험의 재현이 아니라, 현재적으로 의미화 되고 변형된 정서로 재현되는 것이라고 볼 때 신기업 시인의 과거의 꿈들, 즉 현재를 살아가는 그의 기억에서 오늘로 당겨진 시들은 몇 가지로 구분되고 있다. 신기업 시의 몇 가지 특징을 정리해 보면 첫째, 외로움의 진술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몸짓의 시다. 둘째, 생존의 사냥터에서 살아남은 자의 고독한 언어 군집이다. 셋째, 어떤 절망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정신의 방 생어우환生於憂患 사어안락死於安樂을 지나면 긍정의 이미지로 옮겨진다. 이 세 가지 특징이 그의 첫 시집 <하몽>이 담고 있는 시들의 전반적인 특징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외로움의 진술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몸짓의 시들은 대개 이런 시들이다. <윤사월>, <이마의 주름을 만지다>, <조팝나무 곁에서>, <휘파람을 읽다>, <여름 방관傍觀>, <환승 구간>, <산소에서>, <유영遊泳의 비밀>, <위로의 詩>, <지산동 고분 44호>, <비단개구리표 고무신> 제하의 시가 그렇다. 위 시들 중 외로움이 물씬 묻어나는 문장을 모아 보면 “논두렁도 밭두렁도/뱀처럼 기어간다”, “그렇게 성큼 늙어 가는 시인의 이마/여름밤 물고기 잡이에/하나 더 생겨나다 문드러지는/송골송골 골진 물길”, “한술 밥 남긴 할아버지도 이젠 없는데/갑자기 긁힌 양푼이 닮은/동생이 보고 싶다”, “기지개 켜는 사이/이웃 아저씨 꽃상여가 지나간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으면 될 것을/입 안에 꾹 참았던 말들을 엮어/누가 저 낡은 CD에/신곡 팝송 담아 주면 안 되나”, “뭇 들꽃들이 춤출 때/그래그래, 다 안다는 듯/슬그머니 눈 감고 연기 피워 올리는/떨굴 수 없는 눈물 꽃이/허공을 구부리고 있다”, “논 귀퉁이를 잘라 만든 그 웅덩이가/비단개구리표 고무신 삼켜서/팍팍한 도시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엄살의 내 발밑은 언제나 질척했다” 등등의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진술 근거에는 외로움이 들어 있고 내뱉는 어투 또한 그러한 외로움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위로의 몸짓을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위의 시들 바탕에 깔린 정서는 결국 따스함이다. 따듯한 마음을 그려 냄으로써 시인은 위로를 얻는다. 위의 시 중에서 두 편을 보면 그러한 시인의 의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나절 땡볕만큼이나
술시에 걸린 횃불은
뜨겁다, 처서의 밤 개울에서
어깨춤으로 몰아가는 것은
퉁바우, 꺽지, 모래무지다
불빛 아래 반상회라도 한 것처럼
기웃거리던 물고기들
갇힌다, 일사불란한 족대 포위망에
모든 밤의 음모는
눈짓 손짓으로 이루어지는 것
퇴로가 막혀 버린 패자 몸부림
승자의 발길이 눕힌 물풀은
딱 따다닥 폭죽 소리를 낸다
이때 떠 넣어지는 각종 양념
부레 잃은 전사자들이란 밀가루
덮어쓴다, 그리곤 잠수하는 용광로
희열만큼 이마에 솟는 땀방울
그렇게 성큼 늙어 가는 시인의 이마
여름밤 물고기 잡이에
하나 더 생겨나다 문드러지는
송골송골 골진 물길
- <이마의 주름을 만지다> 전문
기지개 켜는 사이
이웃 아저씨 꽃상여가 지나간다
거북 걸음조차 멈춰 세우던
눈 내리던 지난겨울에도
미끄러짐 없이 비탈 잘도 오르던 김 씨
불과 석 달 전에 시리던 귓불이
시원한 나무 그늘 찾아가나 보다
어쩌면 저 꽃상여는
한낮 땡볕 강렬함보다
더 강렬함 지녔는지도 모른다
나무가 기지개 켜는 사이
이웃 아저씨일 수밖에 없던 이웃 아저씨
여름에 타고 갈
상여의 장식을 고민했을 터
먼빛으로라도 눈치채었더라면
나, 위로의 말 한마디
먼 길 떠나는 당신 상여에
종이배로 접어 출렁출렁
매달아 주었을 것을
- <여름 방관傍觀> 전문
위 시 <이마의 주름을 만지다>는 어린 시절 물고기를 잡던 기억을 데려와서 현재에 이른 그가 어릴 적 그 친구들을 만나 다시 천렵을 한다. 물고기를 몰아가는 과정은 그 혼자는 잡을 수 없는 행동이며 현재 자신의 외로움을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어 결국 동료를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퉁바우, 꺽지, 모래무지를 잡기 위해선 누군가 횃불을 들어야 하고 족대를 들고 고기를 담을 망태도 분담을 통해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현재 시인은 외롭고, 그런 친구들을 만나 유년에 그러했듯 천렵이라도 한다면 그렇게 성큼 늙어 가는 시인의 이마에 생긴 주름살도 여름밤 물고기 잡이에 하나 더 생겨나다 송골송골 물길에 지워지겠다는 생각을 얼핏 해 본 것이다. 이쯤 되면 현재 시인의 이마에 생긴 주름살은 결국 외로움 때문에 생겨났다고 추측된다. 결국 물고기 잡이는 치유를 위한 시인의 상상이다.
다른 시 <여름 방관傍觀>은 여름날 나른한 하품을 하고 보니 눈앞의 장면이 바뀌어 보인다. “거북 걸음조차 멈춰 세우던 눈 내리던 지난겨울에도/미끄러짐 없이 비탈 잘도 오르던 김 씨”가 난데없이 하품 끝에 꽃상여를 타고 간다는 이야기이다. 이 시에서 “이웃 아저씨일 수밖에 없던 이웃 아저씨”라는 표현은 나 이외에 옆의 죽음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지 않는 현실의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자신 또한 이웃으로부터 예외일 수 없다는 현대인의 근본적인 슬픔을 들여다본다. 결국 수수방관의 삶을 사는 자신을 반성하고 있는 그런 시이다. 이웃의 죽음을 떠나보냄에 있어 종이배 하나쯤은 접어 주는 것이 시인의 몫임을 묵시적으로 일깨우는 시이기도 한 것이다. 시인 신기업의 시는 과거와 현재가 구분되긴 하지만 어찌 보면 위 시 두 편을 보더라도 현실과 과거 그건 아무 경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과거의 체험이나 기억도 현재의 한 부분이 되고, 현재의 치유를 기억의 한 장면을 데려와 위로받기도 하는 것이 그의 시의 특징이 되고 있는 것이다.
Ⅳ.
앞서 거론한 신기업 시인의 시 “생존의 사냥터에서 살아남은 자의 고독한 언어 군집이다”에 해당되는 몇 편의 시들을 보면 <완장>, <복날 수박>, <국지성 호우>, <취몽>, <벼룩 운동회>, <추념秋念>, <늙은 저수지>, <팽 당한 은행나무>, <동화계곡 단풍나무>, <1등을 꿈꾸는 당신>, <떠난 자者의 노래 >, <안티 판타지> 등이 있다. 이 시들은 과거 억눌림의 설움을 담아내거나 현실 속의 각박함에 내적 불만을 다소 거친 시의 언어를 통해 내면에 쌓인 울화를 토해 냄으로써 시인 자신의 정화를 꿈꾸는 시들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목이 타들어 가는 뜀박질 끝내고
달려간 수돗가
입 다문 수도꼭지가
물 쏟아 내지 못하는 것이
완장 찬 사람이 중간 밸브 채운 것이라는 사실을
나 그날에는 알지 못했다
사슴뿔로 솟아오른 손잡이 비틀다 못해
입 대고 빨아도 보고
돌멩이로 때려도 보았던 것이다
그날 끝내 물 내어 주지 않던
뿔테 안경 낀 고로苦勞한 소사 아저씨
지금은 어디에서
행복한 열쇠를 쥐고 있을까
수도꼭지 볼 때마다
물보다 먼저 쏟아지는 갈증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완장의 횡포가 덜컥
나를 키웠다는 생각에 이르니
짓눌린 듯 가슴이 뻐근해 온다
- <완장> 전문
1.
기생충들도
꽃놀이가 한창이다
지난여름 즐기던 오수가 한패 하자고 씁쓸한 미소 휘날린다. 엄동설한 배를 채워야 살 수 있다며 허기진 독사들은 혀를 온 천지에 뿌려 놓는다. 경로당, 시장, 공원 이 동네에서 저 고을 산 너머까지 난무하는 탈춤이다. 승자 독식이라 표 많이 먹어야 장땡이라며 허방지방이다. 침 튀기는 빈말의 헛발질에 놀란 경주마 고지 향하여 달음질. 강 건너 불을 잡으려 암표 내다 판다
2.
피를
뽑아야 한다
엿판이 가위질 돕는다고 2/4, 4/4박자에 맞춰 피 흘린다. 심어 둔 한두 표 거둬들이는 손발의 피가 처량하다. 문전옥답서 다랭이 천수답까지 피가 없도록 뽑아야 한다. 온실의 화초거나 바람에 흩날린 들꽃의 피도 뽑아야 한다. 피 뽑아야 황천 갈 사람도 살리고 피 먹어야 흡혈귀가 때깔 곱게 웃을 수 있다고, 똥 3피 흔들고 먹다가 피박까지 덮어쓰고 50배 피 토하기도 한다. 때로는 토하더라도 뽑힐 때까지 빨강 파랑 쌍코피 가리지 않고 마구마구
3.
표 바다는 언제나
피 바다로 그렇게 자란다
큰길에서도 골목에서도
광기 어린 눈동자가 속삭인다
- <1등을 꿈꾸는 당신> 전문
위 시 <완장>에서 일부 인용한 “완장의 횡포가 덜컥/나를 키웠다는 생각에 이르니 /짓눌린 듯 가슴이 뻐근해 온다”라는 고백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공직에서 승진에 급급하거나 남보다 치열하게 현실을 살려고 한 의도 혹은 이유 같은 것이 바로 완장의 무지막지한 횡포를 느꼈기 때문인 것을 슬그머니 고백체로 드러내고 있다. 물론 시 속에서 완장의 대상은 학교 소사 아저씨로 등장되는 인물이다. 운동을 하고 물이 먹고 싶은데 그 수도를 채운 사람을 완장으로 생각하고 어린 마음에서는 모진 다짐이 생겼던 것이다. 결국 그런 오기가 자신을 오늘에 이르게 했다는 고백은 단순하지만 어찌 보면 이유 있는 항변인 듯 가슴을 찡하게 한다.
위 시 <1등을 꿈꾸는 당신>은 아마도 업무 중 하나였던 선거와 밀접한 관련 속에서 느꼈던 회한과 정치판의 속성과 출마한 자의 부적절한 판단과 난무하는 횡포 등 표로 사람의 능력과 인격조차 가르고 누르는 현실의 문제 등 “온실의 화초거나 바람에 흩날린 들꽃의 피도 뽑아야 한다. 피 뽑아야 황천 갈 사람도 살리고 피 먹어야 흡혈귀가 때깔 곱게 웃을 수 있다고” 무조건적인 표 사냥에 나선 선거판의 생리를 그대로 생생히 상황 묘사로 그려 낸 시다.
이에 비해 좀 더 무르익은 존재 탐구에 의해 얻어진 시들은 결국 “생어우환生於憂患 사어안락死於安樂”의 시각이다. 《맹자》의 한 구절인 이 문장은 아마도 시인 자신을 다스리는 좌우명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판을 걸어 놓고 시인은 자신의 방을 하나 만든다. 그리고 과거든 현재든 미래라 할지라도 기억과 꿈을 버무려 그 방 안을 통과시키려 한다. 아마도 그 방은 따스한 햇살이 비치고 청정한 공기가 맴도는 방일 것이다. 긍정의 힘으로 인공 수정된 그의 시들은 세상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할 새로운 이름을 명패로 달아도 좋은 신선한 꽃이다. 또한 그는 그걸 시라고 명명하고 시의 힘을 믿는다. 믿는 만큼 서정의 이미지로 옮겨 내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한 흔적의 결과물들이 아마도 다음과 같은 시들이 아닐까 싶다. 그의 시들 <순간벚꽃>, <파랑波浪의 비밀>, <하몽夏夢 >, <바람 춤>, <사과나무 자화상>, <산딸기>, <세속에 들다>, <연애편지>, <대기만성>, <춤추는 캐스터네츠>, <무죄>이다. 이러한 시편들은 맛으로 치면 자극적인 맛이 아닌 순수한 맛이다. 이러한 순수한 맛에는 세속에 길들여지지 않은 혀들이 감동할 어떤 그리움 같은 것이 들어 있다. “지금 어렵고 근심스러운 것이 나를 살리는 길로 인도할 것이요, 지금 편안하고 즐거운 것이 나를 죽음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라는 맹자의 말이 그의 시에서는 녹아 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뜨거운 공중을 파리가 난다
콧구멍 틈새로 슬금슬금 들어와
부아를 돋우는 아스팔트 열기에
식은 밥 찬물에 말아 찍어 먹는 풋고추에서도
땀방울은 송골송골
사고로 원전은 멈추고 송전탑 공사는 지연되고
횡단보도도 버스 승강장도 쇼윈도도
엿가락처럼 구부러지기 시작했다
여름밤 꿈의 말미
산 헐고 바다 메우고 달려온 시베리아의 풍관風管
기지개도 마음껏 펼 수 없는
현실의 이마 위로 날아온 시원한 바람은
땀조차 수정알로 응고시켜 놓는 거였다
눈을 뜨자 머리맡에 어머니는
잠든 나를 향해 손부채로 흔드느라
그놈의 망할 파리 쫓느라
땀 흥건한 얼굴이다
- <하몽夏夢> 전문
부른 배 힐끔거리는 눈치 둘
희끗해지는 머릿결 쓰다듬다
시린 허리 서로 쥐어박는다
움켜잡은 멍에 같은 끈이
구부러진 어깨 코뚜레에 꿴 한풀이
뒷굽 닳은 구두 궁상맞다며
뚫어진 양말에 지르는 부아
초승달은 초승달, 그믐달은 그믐달
눈썹 달리며 역주행하다 부딪힌다 해도
서로는 다른 장승들의 천식
거미줄로 엮어 기 살리려는 눈초리
낮과 밤 생존 영역엔 등골이 오싹
그래도 너와 나는
부딪혀서 즐겁다
- <춤추는 캐스터네츠> 전문
Ⅴ.
대표적인 위 두 편의 시는 결국 신기업 시인이 편안하고 즐거운 것에 안주하지 않으며, 부단히 정신의 또 다른 세계 탐색을 게을리하지 않으려 함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발전의 결과 또한 두 편의 시로써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다. 대개 늦은 나이에 시를 쓰게 된 시인들이 과거 기억이라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에 비해 이미 시인이어서 시를 썼겠지만 위 시 <하몽夏夢>은 꿈과 현실을 짓뭉개어서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는 추상의 화폭을 통해 그 느낌만으로 물씬 여름꿈夏夢을 그려 놓았다. 어찌 보면 익살과 엄살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화법은 그가 그려 놓은 여름날 낮잠 속 꿈 안에 들어오면 과거도 현실이 되고 현실도 아득한 꿈이 되는 경지다. 나는 살아 있고 죽은 어머니도 살아 있고 아등바등 현실들 송전탑 원전 횡단보도 등도 뜨거운 공중을 나는 파리 정도일 뿐이다. 한 권 시집 속에서 시인은 부단히 자신의 방을 축조한 흔적이 역력하고 나는 누군가와 또 닿아 박자가 되고 시를 읽는 자로 하여금 흥겨운 춤을 불러낸다. 그의 시 <춤추는 캐스터네츠>가 상징하는 바도 몸과 몸의 부딪힘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 과정이며, 희끗해지는 머릿결 쓰다듬다가 시린 허리 서로 쥐어박는 그런 사람과 사람, 대상물과 대상물의 부딪힘을 통해 얻어지는 사랑의 결과물인 것이다. 거미줄로 엮어 기 살리려는 눈초리가 만나서 춤추는 캐스터네츠가 된다면 낮과 밤 생존 영역에서 등골 오싹했던 사람들이 그의 시를 즐겁게 읽어 주리라. 그의 시 안에서 긍정의 안식을 만나게 되리라.
첫댓글 신기업선생님, 축하드립니다....
방에 자주 못 와봐서 죄송합니다.
부끄럽습니다만, 이렇게 관심을 가져 주시니 어떻게 인사 드려야 할지, 어찌 고개숙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떨리는 붓을 부여잡고 화룡점정의 시어를 그리도록 더욱 노력 하겠습니다.
많은 지도편달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