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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리 역사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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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자유 게시판 스크랩 `제사 VS 예배` 갈등, 이렇게 극복했습니다
天風道人 추천 0 조회 24 13.09.20 09:2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제사 문제로 애를 먹는 집안이 많습니다. 가족 중 일부가 전통적인 제사를 거부하는 신앙을 갖게 되면 ‘제사 거부파’와 ‘제사 사수파’로 나뉘어 갈등을 빚는 경우를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제사 거부파’ VS ‘제사 사수파’

 

제 집안도 ‘집안 싸움’의 전운이 감돈 적이 있었습니다. 가진 것 없지만 조상에 대한 제사와 유교덕목을 ‘가보’ 처럼 지켜온 7형제 집안의 장남인 제가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건 7년 전입니다.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지방을 써놓고, 축문을 읽고, 향을 피운 차례상 앞에 술을 따르며 절을 하는 행위가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기독교 신앙과 문화에 깊이 빠져있는 ‘신앙 선배’들의 충고는 단호했습니다. 제사를 그만 두고 예배를 드리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더군요.

 

점차 명절과 제삿날이 곤혹스러워지더군요. 제가 제주였기 때문에 더했습니다. 교회와 ‘신앙 선배’들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무시할 수도 없고, 전통적인 제사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그렇게 2년이 흘렀지요.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혼자되신 어머님은 저와 함께 기독교로 개종하셨습니다. 그나마 얘기 상대가 있어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어머니와 상의했습니다. 어머니는 그저 “동생들과 충돌이 생기지 않는 게 최선 아니겠느냐”며 신앙과 제사가 충돌해 집안의 화평이 깨지면 안 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폭탄선언’에 동생들의 표정은...

 

그러던 중 막내 여동생도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됐습니다. 어머니까지 가족구성원 8명 가운데 3명이 ‘교인’이었고 5명은 불교 혹은 무신론자였습니다. ‘예배파’와 ‘제사파’가 3 대 5가 되자 가족 간의 유대에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버님 기일 직전 형제들을 모아놓고 제주인 제가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이번 제사부터 ‘전통적인 제사’가 아닌 ‘예배형태’로 아버님을 추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한동안 긴장감과 적막감이 감돌았습니다. 그런 뒤 동생들이 입을 열었습니다. “조상들과 아버님이 여태껏 지켜온 전통인데 이렇게 해도 되는 거냐”고 나지막하게 항의 하더군요.

 

첫 추도예배 드리는 날, 동생들이 어땠느냐고요? 표정에는 못마땅하지만 큰형이기 때문에 참아주겠다는 인고의 고통이 역력했습니다. 일단 참아준 동생들이 고마웠습니다. 하지만 그런 인고의 고통을 계속 안겨주다가는 ‘평화’가 깨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추도예배’와 ‘제사’ 사이, 소통이 필요했다

 

지혜가 필요했습니다. 기독교 방식과 전통 방식간의 ‘소통’이 필요했습니다. 동생들에게 전통방식을 틀린 것으로 단정하지 않을 테니 기독교식 예배도 틀린 게 아니라고 인정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추도예배를 ‘조금 다른 형태의 제사’로 봐달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러면서 제사를 신앙이 아닌 문화적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조상을 그리워하며 음식을 만들어 놓고 예를 갖추는 게 정말 지탄 받아야할 비신앙적인 행위일까요?

 

두 문화간의 소통과 융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의식을 치르는 것으로 제사를 대신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제사상에 오르는 음식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성의껏 음식을 준비해 놓고 먼저 찬송과 기도로 ‘추도예배’를 드립니다. 저는 제주가 아닌 ‘인도자’가 됩니다.

 

다름’을 인정한 뒤 찾아온 평화

 

그런 뒤 준비해 놓은 음식을 싸가지고 증조부부터 아버님까지 모셔져 있는 산소에 갑니다. 거기에서는 동생이 ‘제주’가 됩니다. 술을 따르고 절을 하고 전통의 방식대로 조상을 추모합니다. 산이다 보니 ‘약식 제사’가 올려집니다. 산소에서는 둘째아들이 ‘제주’가 되고 큰아들인 저는 제사에 참석한 아들 중 한명이 되지요.

 

 그러면서 달라진 게 있습니다. 추도예배 동안 입 한번 열지 않던 동생들이 익숙한 찬송가를 따라 부르더군요. 그리고는 그들의 얼굴에서 ‘인고의 고통’을 참아내려는 불편한 표정이 사라졌습니다.

 

한 뿌리에 자란 가지도 형태가 많이 다릅니다. 어느 놈은 굵고 어느 놈은 가늘고, 동쪽을 향한 게 있는 가하면 서쪽을 향한 것도 있지요. 진리라는 ‘뿌리’에서 생각해 봅시다. 전통적인 제사는 ‘비신앙적이고 마귀적이다’라는 주장이 맞는 걸까요?

 

상대의 ‘다름’을 서로 인정하는 것. 이게 진정한 소통일 겁니다. ‘예배형 제사’ 혹은 ‘제사형 예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쪽은 제사를 부정하고, 다른 쪽은 예배를 거부해 집안의 평화가 깨지고 서로 반목하는 게 하나님의 뜻은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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