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의 월계관
-명례 성지를 찾아서
일상의 길 위에서 일탈하여 본당 레지오 마리애 꾸리아에서 밀양의 명례성지로 순례를 떠났다. 그곳은 우리나라의 네 번째 성당이며, 복자 신석복 마르코를 기념하는 성지이다. 2018년 새롭게 성당을 지어 신석복 마르코 기념 성당이라고 했다. 신 마르코 복자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방한하시어 시복되어 윤지충 바오로와 함께 복자품에 오르셨다.
신석복은 1850년대에 세례를 받았다. 그는 양반의 가문에서 태어난 넉넉한 가정이었다. 당시에 박해가 심했다. 신유박해를 비롯하여 병오박해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순교의 월계관을 쓰셨다. 박해 시대에 박해를 피해 숨어서 신앙을 지키고 하느님을 알렸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드러내놓고 선교했다. 소금 장사로 가장하여 마산과 밀양 일대를 돌아다니며 선교했다. 그러다 잡히어 대구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구출될 수 있는 길도 있었지만, 그는 기꺼이 죽음을 선택하여 1866년 병인박해에서 희생되었다.
당시는 신자의 마음을 돌려 배교하도록 하는데 있었다. ‘배교’라는 말 한마디에 삶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풀려나도 하느님을 믿겠다고 했다. 교수형에 처해 기꺼이 죽음을 선택했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주검을 수습하여 고향으로 왔으나 받아주지 않아 낙동강을 넘어 아버지를 매장했다고 한다. 당시에 박해의 서슬에 신앙을 감추었기에 기록을 남기지 않았지만, 아들은 기록을 남기었다. 그래서 오늘날 복자품에 오른 것이다. 많은 순교자가 있지만, 후손의 박해가 두려워서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에 시복되지 않은 순교자가 많다고 한다. 이순신이 오늘날 왜 추앙받고 숭상하겠는가? ‘난중일기’라는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 성조는 누구일까? 이벽 세례자 요한이다. 그런데 아직 성인품에 오르지 못하고 이제야 ‘하느님의 종’으로 시복 청원을 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 외방 신부의 ‘조선 천주교 역사’의 기록에서 배교자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것이 로마교황청에 보고되어 시복의 걸림돌이었다. 조선의 언어 문화상 효도로 인한 효심의 발로에서 ‘천주교를 내려놓겠다.’라고 한 순간의 거짓말이 그대로 배교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것이 진정 배교가 아님을 밝힌 사람이 대구교구 이성배 신부의 ‘유교와 그리스도교’ 박사 학위 논문에서 밝혀져 시복의 반열에 놓이게 되었다.
이벽은 1784년 이승훈을 북경에서 세례받게 했으며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조선에서의 가톨릭 신앙이 양반 자제를 중심으로 학문으로 받아들여 자생적으로 싹이 트였다. 가성직 제도로 세례를 주고받음이 독성죄에 해당함을 알았다. 그래서 중국에서 주문모 신부가 최초를 조선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그마저 신유박해(1801)에서 순교하셨다.
뒤이어 모방 신부가 들어왔다. 조선에 신부가 필요함을 절감하고 소년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를 발탁하여 마카오 신학교로 보냈다. 첫 사제가 김대건 신부님(1845), 둘째 사제가 최양업 신부님(1849)이다. 두 신부님도 피와 땀의 순교자가 되셨다. 조선 땅에서 첫 사제의 한 분이 강성삼 신부님(1897)으로 명례성당을 맡으셨다. 100년이 넘도록 외국인 신부들이 한국 천주교를 이끌었다.
명례성당은 두 번에 걸쳐 태풍으로 무너지고 세 번째로 건립된 ‘성모승천성당’이 옛 모습대로 보존되고 있었다. 건물이 무너져진 잔해 속에도 성모상은 고스란히 남아 있어 성모님을 기리는 성당으로 명명하였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남녀가 구별하여 앉았으며 제대도 벽을 향하고 있어 지금과 반대였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새로 지어진 성당은 특이한 모습이었다. 신석복 복자의 소금 장수를 상징하여 세워졌다. 건물의 겉모습은 소금이 녹아 흘러내리는 듯한 모습, 자신을 녹이며 순교한 신 마르코의 신앙을 12개의 소금 형상의 조형물로 표현하였다, 성당 내부는 그 조형물의 환기통을 통해 빛이 내부로 스며들고, 내부는 온통 소금을 상징하는 흰색(회색)으로 설계되어 있어 ‘빛과 소금’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곳 신부님은 오늘이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이며, 해질녘이면 새해가 시작된다고 했다. 대림 시기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십을 기다리고, 다른 하나는 아기 예수로 오심을 기다리는 시기라고 했다. 매년 맞이하지만, 준비 없이는 무의미하다고 했다.
오늘날 피의 순교는 없으며 땀의 순교로 표현한다. 우리나라는 최양업 신부님이 땀의 순교로 가경자로 시복을 준비하고 있다. 순교자들이 길 위에서 걸으며 우리에게 보이셨고 가르치신 삶의 정신을 본받아 새롭게 변하는 부활의 삶으로 길을 가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