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선명한 길몽
15년 전 아들녀석이 6살 때, 7월 말 일 여름날 이였다. 간밤에 기가 막히게 좋은 꿈을 꾼 덕분에 출근하려는 남편한테 오늘은 무조건 일찍 퇴근해보라는 의미있는 말을 던졌다. 꿈대로라면 분명 분당에 청약해둔 아파트가 당첨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꿈 얘기는 하지 않고, 남편한테 무조건 꿈을 사라고 했더니, 재미 없기로 소문난 남편은 픽 웃으며 쓸데 없는 소리 한다고 냉큼 나가 버렸다. 샐쭉 김샜구나 생각하다가 또한 뭔가 좋은 일이 있을것 같아서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곰곰히 이리삐죽 저리 삐죽하다가 혹시 불로소득의 활로였던 분당아파트 당첨이나 되었나 하마 발표되었나하고 은행으로 가 보았다. 으당 아파트 당첨건은 꽝 이였다. 무슨 복에!.픽 웃고 돌아서서 집에 도착하자말자 방바닥에 누워 천정을 쳐다보다가 꿈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차에, 유난스레 크게 전화벨이 울렸다. 작은 오빠였다.
" 정란아~!(어렸을적 예명)"
" 응..오빠.."
" 야~! 나.. 아파트 당첨 되아붓따..?"
" 엥? 킥킥킥..기가 막히게 아파트 당첨 될것 같은 꿈을 내가 꿨는데, 오빠집 당첨 꾸어 줬구만 그래. 축하해.. 잘살고 부자 되소. 나중에 나도 좀 갖다쓰게..ㅎ"
" 오냐~!"
그리고, 오빠집 희소식을 내가 대신 꿈을 꿔 주었나보다하고 잊었다. 그런데, 오후에 친정 아버지가 시골에서 갑자기 올라 오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저녁에 언니집으로 언니 오빠 형제들 다모이라는 부름을 받고 남편이 퇴근할시간을 기다려 밤이 어둑어둑해 질 무렵 언니집을 향하여 걸어갔다.
헉~! 그런데...
다소 넓은 골목을 걸어가는데, 길가에 커다란 지갑이 떨어져 있는거 아닌가?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까마득했다. 해거름이 어둠속으로 팍팍 깔림을 보았다. 그 지갑을 주우려니 목덜미를 누가 휘어 잡을것 같았고, 꿈속에서 아득하게 무서운 꿈을 꾸는것 마냥 까마득하고 식은땀이 나는 거 였다. 일단은 주웠다. 앞뒤를 돌아보니 저만치서 아들과 걸어오는 남편도 검은 그림자마냥 타인같았다. 무서웠다. 줍긴 주웠는데 제자리에서 움직여지지 않았다. 왜그리 그 지갑이 무거웠는지 츄리닝 바지가 벗겨질것 같았고, 뛰어가려해도 보폭이 좁혀지지 않았다 . 남편이 내 어색한 표정과 걸음걸이를 보고 왜 그러느냐고 물었지만 여러 생각이 뒤엉겨 아무 대답을 할수가 없었다. 간신히 정신차리고 어린아들 모르게 남편한테 살짝 얘기했더니 놀란듯 하다가 툭 던지는 말이 일시에 내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 열흘 전에 300만원짜리 가계수표 부도난거를 보충하라는 뜻인가 보다야.!"
정말 그런가 싶었다.
아무튼 식구들이 다 모이니까 아무소리 말라고 했다.
자잔한것에 욕심 많은 작은 오빠가 알면 당장 다 뺏어갈게 뻔하고, 아니면 형제들이 다 모였으니 당장 그돈 다 써버리고 나면,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안된다. 그뒤 분명 그죄는 내가 받을것이고-.등등 당부했다. 언니집에서 저녁 먹고 이런 저런 얘기하다가 내일 다시오겠다고 아버님께 인사한 후, 저녁 10시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지갑을 펼쳐 놓고 보니 더 가슴이 떨렸다. 현찰은 400만원이였고, 가계수표 어음 쪼가리가 1000여만원 이였다. 지갑속을 뒤져보니 남편이 하는일과 같은 월말에 수금하는 보따리 장사하시는 분이 틀림 없었다.
무진장 고생도 하셨던 분인지 사우디 근로자였던 민증까지 끼여 있었다. 망서릴것도 없었다. 남편도 흔쾌히 내 뜻에 따라 주었다. 아이쿠 맙소사! 시간이 너무 지나서 오히려 의심 할까봐 겁이 났다. 주소지로 찾아가도 되겠지만,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주었더니 보따리 내 놓으라하면 이거 정말 낭패 아닌가.? 왜 하필이면 아버지가 오늘 올라오셔서..? 하는 마음으로 죄짓는 아쉬움도 생겼다. 졸리다는 아들녀석 데리고 가까운 파출소로 갔다. 괜스레 걱정되어서 죄 지은거 마냥 오히려 변명을 늘어 놓았다.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파출소 안까지 들어가 봤다. 금새 신원 조회를 하고 잃어버린 지갑 주인한테 경찰이 전화를 했다. 아들녀석은 제 안방마냥 경찰이 준 수박 한쪼각을 들고 먹으며 장난치고 있었다. 그때 지갑 주인은 헐레벌떡 뛰어 들어 오시며 고맙다는 인사를 연거푸 하시며 활짝 웃으셨지만 나는 또 늦게 돌려준 사정을 얘기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나서 그 지갑 주인은 내게 흔쾌히 50만원을 사례비로 주시며, 손을 꼭 잡으시며 포기하고 있었노라고 했다. 그 경찰들에게도 술한잔 나누라며 10만원정도를 세어 준거를 봤다. 아무튼 50만원은 횡재한거다 .두번 다시는 그런 지갑이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란다. 그때 떨린 가슴과 유혹을 생각하면 다시는 그렇게 죄 없이 떨리고 싶진 않다. 훗후...
내식대로 해몽하자면, 그 기가 막힌 좋은 꿈은 이랬다. 갑자기 5층 높이를 짓는 아파트 건설현장에 내가 서 있었다. 그때 나는 25평 주공 아파트 분당과 평촌에 청약해두고 결과를 기대하고 있었다. 당첨 확률이 낮았다. 어이 없게도 광채가 나는 누런 동전들이 테트릭스 블럭쌓기 게임마냥 착착 층수가 올라가는 거 였다. 4층 한쪽이 내집이다 생각하며 구경하고 있는데, 공사현장 한쪽에 크게 푹 패인 마른 구덩이가 있었다. 잠시후, 황금 같은 누런 변이 커다란 바지개로 져다 부은 것처럼 컷고, 뱀또아리마냥 틀어 올라져 있었고, 또한 그 또아리 진 것처럼 누런변이 빛나는 광채를 띄우고 있었다. 이건 분명히 아파트 당첨되는 꿈이라고 생각 했드랬다. 재미있게도 오빠집 꿈이였지만--.지갑 돌려주고 사례비 받은것도 횡재라면 횡재였고, 그 다음 한 두달 지나 우연한 기회가 주어져서, 그 주운 총액수만큼 한 달 만에 순 차익을 남길만큼 쉽게 매출을 올린적이 있었다.
어릴적 다녔던 성당과 교회의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이 나를 시험한게 분명했다. 꿈(夢)은 잠재의식의 발현이라고 하지만 뭐라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내 상식이나 지식으로 풀이 하기엔 무리이다. 아무튼 그 뒤로 모든 일이 술술 모나지 않게 풀렸으니, 그야말로 꿈은 꿈대로이다.
뭐, 공은 닦은대로 가지만 죄는 지은대로 온다나 만다나..?
200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