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산일기 44
신두리 해안사구
그리 넓지도 못한 작은 반도의 내 나라 내 땅. 그러나 하늘이 허여해 주신 자연은 덜하거나 부족함이 없이 온갖 것들을 고루 갖추어 두었다. 신두리는 태안반도의 서북쪽 바닷가 한적한 마을이다. 국토의 한 모서리 이 곳 신두리 바닷가에 사하라나 고비같은 광막한 사막은 아니더라도, 해안사구라는 천혜의 지형과 자연물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으니 이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랴. 신두리 해안은 십 리가 훨씬 넘는 서해안 최대의 모랫벌로 해변 일대가 온통 사구(砂丘)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모래언덕의 형태가 잘 보존된 북쪽 지역 35만여 평을 2001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으니, 길이 3.4km, 폭 500m∼1.3㎞의 규모다. 이쯤이면 작으나마 바다사막으로 부를 만하지 않은가.
사구에 올라서서 태초의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자연은 한 순간에 멈춘 듯 고요와 정밀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어느 한 시각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생명을 호흡하며 크고 작은 힘으로 우주의 만상들을 창조해 내고 있다. 해류를 움직여 깊은 바닥의 모래를 쓸어내고 파도를 일으켜 또 다시 뭍으로 밀어 올린다. 몇 만 년, 아니 몇 억 년, 영겁의 세월 동안 모래언덕을 만들기 위해 바람은 불어댔다. 파도가 밀어낸 모래가 바람에 실려와 언덕을 쌓고 늪도 만들어 갯메꽃, 갯완두, 해당화를 꽃피워 내고 보리사초 풀숲을 길러 개미귀신도 종달새도 키웠다. 바람은 모래를 날라다 제 스스로를 막는 방풍벽을 만들어 찬기운을 막아주고 소금끼 바람을 가려주며 사구의 생태계 뭇생명들을 지켜주는 것이다.
안면도를 비롯해 태안 곳곳의 해안들이 개발의 허울을 쓰고 본래의 모습들을 잃어버린 지 오랜 일들인데, 신두리도 이제 흙길을 덮는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해수욕장을 알리는 큼지막한 빗돌이 초입부터 눈에 들어온다. 해안가 한복판 모래밭에 이미 리조트가 길게 들어섰고 잇달아 수많은 펜션들이 입구 쪽 사구에 가득 들어섰다. 보호구역 가까운 사구엔 빨간 지붕의 별장이 오뚝하다. 주민들의 편리와 소득 증대를 위해서는 길도 포장하고 해수욕장도 개발하고 갖가지 편의시설들을 만들어야겠지만, 소중한 자연유산을 잃는 우(愚)를 범해서는 아니 된다. 대천이나 꽃지에서 보듯 무분별한 축대나 해안도로 개설이 조류의 흐름을 바꾸어 오히려 백사장을 쓸어내고 흉물스런 자갈밭으로 폐허화시키는 어리석은 개발을 신두리는 결코 되풀이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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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낭산 이기순의 `내 나라 내 땅` 원문보기 글쓴이: 낭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