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 이제 어떻게 하지?#02"
두번째 수업도 재밌게 들었습니다. 사실 재밌다기 보다는 또 한 번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남는 시간이긴 했습니다. 현장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제가 몰랐던 사실을 알아간다는 점은 흥미로웠으나 긍정적인 흥미로움이 아님은 분명했습니다. 같은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극명하게 갈리는 것이 참 의아했습니다. 이전에 ‘체르노빌’이라는 HBO 드라마를 봤습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체르노빌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장소이지요. ‘사고만 나지 않으면 안전하다.’라는 현재핵발전소가 안전하고 효율적이라는 목소리를 내는 한수원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빠른 시일 내에 분명해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사고가 나지 않은 지금에도 여러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지요. 이런 문제는 우창님이 나눔 중에 표현하신 ‘서울공화국’을 위해서 묵인되고 개인이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지난 시간에서는 거시적 관점에서 ‘어떡하지?’였다면 이번 배움에서는 말씀대로 더 줌 인이 된 상세한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차원에서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우창님은 ‘모르겠어요.’라는 말씀을 참 많이하셨습니다. 그 표현 안에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상황, 수개월간 계셨던 지역의 목소리를 들으시면서 어떤 것 하나에 답을 내릴 수 없는 상황 등… 마음의 어려움을 감히 추측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수원 본사 앞에서 주기적으로 상여를 끄는 주민들의 모습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상여 위에 써 있는 글씨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직함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충격적이었습니다. “나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라는 메세지보다 더 강력한 메세지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 관에 그 글씨를 적을 때의 마음은 감히 상상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너무나 잔혹한 상황, 처절한 상황이라는 것 이상은 상상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이유라는 것이 핵발전소로부터 떨어진 곳으로의 이주를 지원해달라는 것이라지요. 국가 차원에서 이주를 지원하게되면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인정하는 상황이 되어버리니 쉽게 하지 못하는 상황이겠지요. 핵발전소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이런 목숨을 건 사회적 문제를 직면하는 상황은 큰 고통을 주겠구나… 싶었습니다.
방송사에서 월성지역 사람들의 소변을 통해서 얼마나 피폭을 당했는지 조사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피폭을 당하고 있다는 수치가 나타났다고 하고요. 2011년에 제출되었다는 ‘문제없다’는 자료는 이후 ‘핵없는세상을위한의사회’라는 단체를 통해 상이한 결과를, 다시말해 ‘문제있다’라는 결과를 냈다고 합니다. - <도서 한국탈핵 중, 김익중 지음> 지역에서 알아서 조사해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라라는 한수원 측의 반응이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아찔했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중요한 구성에는 ‘이웃’과 ‘함께’라는 부분이 분명 있을텐데 신앙적 공동체가 아니더라도 함께 살아가려 자기것을 포기하고 줄여가고 참으면서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아직 어리숙한 반응과 생각일지는 몰라도 또 함께사는 행위가 어색하고 어려울진 몰라도 마음은 그러하니 정부기관의 반응은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월성 지역은 한수원의 힘이 세다는 이야기도 있었지요. 그 이유를 물고 올라가면 결국 ‘돈’이었고요. 지난 시간 지연님의 나눔 중에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능 물질인 삼중수소마냥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의 힘에 얼마나 많이 피폭되고 의존하고 있는가”라는 이야기에 저항하기 어려운 수긍과 돌아봄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힘을 이루는 세상의 일부를 살아가고 있으니 원망의 목소리를 내기에는 자격이 없겠구나 싶기도 했고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은 분명 아닙니다. 무언가 해야겠지요. 해야겠고 그렇기에 더욱이 함께 힘을 모아야겠고, 관계를 맺어가야겠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마음에 심어봅니다.
우창님이 ‘한수원의 CSR’이라는 표현을 하실 때 함께 공부하던 몇몇 분은 실소를 금치못하셨어요.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무슨뜻이지? ‘CSR: 기업이 지역사회 및 이해관계자들과 공생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윤리적 책임의식’ 이라고 써 있더군요. 뜻을 알고나니 왜 웃으셨는지 알겠더라고요. 사전적 의미가 아니고 현장에서 쓰이는 조금 다른 뜻이 있다 하더라도 큰 맥락에서는 그들만의 세상에서만 통용되겠구나, 고립되고 힘없는 작은 사람들에게는 전혀 가닿지 않는 가치겠구나 싶었습니다.
이번 수업도 앞서 생각했듯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핵발전소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 핵발전소가 유지되는 것만으로 상생하고 있는 지역사회 또 그 이면에서 고통받는 사람들. 작은 인정도 두려워하는 거대 세력. 우창님의 말씀대로 ‘모르겠어요.’ 저도 갈등을 바라볼 때 성급하게 힘없는 쪽에 편을드는 결론을 내려왔던 사람인데 태식님의 말씀을 듣고 또 바로 모르겠더랍니다. 아는 것이 없으니 모르겠어요. 어떻게 나누어야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끝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만 이 상황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살고 있는 동네 흙에 토마토 씨앗 하나 심는 것으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남은 배움의 끝에 어떤 이야기로 갈무리가 될까?” 떠올리며 그 날 기다려봅니다.
첫댓글 해결을 향한 목표에 다닿는것도 의미 있지만 모든 걸음, 소리 하나 하나 그 과정이 이미 변화임을 잊지 않아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