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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光同塵 2014. 10. 2. 15:00
http://blog.daum.net/kjs4311/852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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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에 얽힌 한겨레의 사적들
정 연 규1)
<차례>
Ⅰ. 머리말
Ⅱ. 마고의 신화와 전설
Ⅲ. 곰의 신화와 전설
Ⅳ. 소머리 신화와 전설
Ⅴ. 해의 신(Ra Ma)의 신화와 전설
Ⅵ. 뱀과 용의 신화와 전설
Ⅶ. 맺는 말
<요약문>
신화란 자연과 사화현상을 神格으로 한 설화인데 신화에는 역사적, 종교적, 문학적, 제 요소가 未分化상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신화는 인류의 상고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신화가 없는 고대사는 없다고 해도 과도한 말이 아니다.
용과 해의 신화를 통해 역대 왕들의 탄생사를 확인할 수 있었고, 인면사신의 복희 여와 상을 통하여 하수농경민의 역사를 살펴 볼 수 있었고, 신농의 우수 신상을 통하여 목축민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단군의 탄생 신화에 등장하는 곰을 통하여 북방계 수렵 인들의 사실도 이해할 수 있었다.
<부도지>에 따르면, 파미르고원의 마고성에서 출발한 우리 겨레는 지구상의 동서남북에 사방으로 이동하여 天道정치의 한국 문화를 전 세계에 심어놓았다. 天符의 한국 문화는 메소포타미아, 인도, 이집트, 그리스, 프랑스, 영국, 동남아시아, 태평양, 아메리카 대륙에 歷法, 거석, 세석기, 빗살무늬 토기, 신화, 전설, 종교, 철학, 천문학, 음악, 수학에 그 발자취를 남겨 놓고 있다.
<주제어>
마고성, 단군, 환웅, 有熊國, 天符經, 河圖, 洛書, 道敎
1)* 한국외국어대학교 전 교수, 상고사회원.
Ⅰ. 머리말
신화의 문헌학적, 역사학적, 설화 문학적, 민속학적 연구업적들이 쌓여 왔다. 신화에서 역사를 검증하는 연구는 단재 신채호를 비롯한 민족주의적인 역사 연구가에 의하여 시작되어 인접과학과의 제휴 아래에 과학적인 안목에서 연구가 모색되어 왔으며, 이러한 연구 업적을 바탕으로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한편, 한국문화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한겨레의 동질성을 규명하고 회복하는 작업을 수행하는 일이 매우 뜻있는 일이다. 이능하는 단군을 신권을 기진 군주로 보고, 환인, 환웅, 단군의 신화를 巫1)俗的이해의 가능성을 시사하였고, 환웅의 신시는 옛날에 무축을 하는 곳이요, 제단은 하늘에 제사하였으므로 단군이라 이름 하였다고 하였다. 즉 한국 신화의 원류를 무속에 결부시켰다고 할 수 있다. 최남선도 고조선을 祭政一致2) 시대로 무당이 군장이었다고 했다.
원시사회에 있어서는 우주의 자연현상은 신의 뜻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보았던 것 같다. 신의 뜻을 존중하고, 신의 뜻에 따라 사회생활이 이루어졌으며, 정치가 행해졌던 것이다. 신화란 자연과 사회현상을 神格으로 한 설화인데 신화에는 역사적, 종교적, 문학적, 제 요소가 未分化상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신화는 인류의 상고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우리는 그 동안 우리 겨레가 걸어온 자취를 거의 잃거나 잊고 말았다.
따라서 신화나 전설처럼 남아 있는 옛 선조들의 이야기 조차 우리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역사적 사료가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신화란 신령에 대한 이야기이고, 상고시대부터 체험과 생활상을 함축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연에 대한 감사와 두려움을 신화에 담고 있는 것이다. 신화를 갖추지 못한 겨레는 뿌리가 없는 나무와 같다면, 신화가 없는 상고사는 고대사가 없는 한국사와 같다.
즉 신화는 사상과 종교와 예술, 그리고 민속이 미분화된 상태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상고대의 역사를 기술함에 있어서 그 당시의 사회상을 깊이 이해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생각과 입장에서 옛날의 사실을 파악하
려고 하면 큰 오류를 범하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아득한 옛날부터 우리 겨레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 조상님들의 깨달음의 역사를 살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지금의 우리 모습을 가늠하여 인간 삶의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토템3)은 자신의 씨족집단과 다른 집단을 구별하는 표지이고, 신화와 관련되며, 겨레의 뿌리를 밝히는 열쇠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토템은 신화와 종교의 핵심이 되고 민족학의 연구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토템은 동식물, 강과 산, 바위와 연못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연현상이 주제가 되어 있다.
신화는 신령의 이야기이고 구전이나 제사의식을 통하여 전하여 왔다. 우리 겨레의 건국신화나 개국신화에는 많은 동물이 등장한다. 단군신화의 곰과 범, 동명신화의 해와 물귀신과 물고기, 부여신화의 금개구리, 신라의 천마와 까치, 그리고 닭, 우물, 바다 등이 있고, 가야의 거북과 바위와 바다가 등장한다.
단군께서 도읍을 세우고, 성곽을 쌓고 궁실을 세웠다.
神誌氏를 馬加로 삼아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관으로, 高失氏를 牛加로 삼아 농사를 관장하는 관으로, 蚩尤氏를 熊加로 삼아 병권을 관장하는 관으로, 단군의 태자 夫婁는 虎加(뒤에는 龍加로 변경)로 삼아 모든 부서를 총괄하는 관으로, 제2 황자 夫蘇를 鷹加로 삼아 형벌을 다스리는 관으로, 제3 황자 夫虞(부우)를 鷺加(로가)로 삼아 병을 다스리는 관으로, 朱因氏를 鶴加로 삼아 예법을 다스리는 관으로, 余守己를 狗加로 삼아 제주를 관장하는 관으로 각각 임명한 단군의 행정조직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동물명은 각 씨족들을 상징하는 토템이었다. 역대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대상은 곰과 법, 말과 까치와 닭, 그리고 거북 등이다. 그 가운데 해의 신(Ra Ma)이야말로 모든 신화에서 으뜸가는 신령이다.
신의 서열은 첫째 북극성을 포함한 천체, 둘째로 범과 곰, 그리고 늑대와 독수리, 셋째 말과 소. 넷째 개와 닭, 까치와 거북 등 온순한 동물, 다섯째 물고기와 지렁이 등 온순한 동물이다.
그러나 씨족이나 부족의 우열에 따라 물고기와 지렁이가 용으로 변신하거나 닭이 봉황으로, 개가 범으로 둔갑하는 예들이 있었다. 수신인 뱀과 거북의 토템을 가진 씨족을 지배하게 되는 자는 용을 내세우게 되고, 범이나 곰을 지배하게 되는 자는 사자를 내세우게 되고, 조류의 토템을 가진 씨족을 지배하게 되는 자는 봉황(Garuda)4)을 내세우게 되는 토템의 변화는 씨족의 우열이 바뀌는 변화로 생각된다.
1)『朱子語類』에서 巫는 신명을 다하여 춤추는 사람이다. 巫자의 工양변의 人자는 그 춤추는 모양을 나타낸다고 했다. 무당이 신을 의탁하는 것은 춤을 필요로 하는데, 춤을 출 때에는 신명에 달하는 것이다.
2) 고대 사회에 있어서는 정치의 지도자와 신앙의 지도자가 한 사람인 사회 체제를 말한다.
3) 토템이란 미국 인디언의 민속과 신앙에서 인용한 학술용어이다. 자기가 속한 혈연집단을 타자와 구별하는 표지이고 신화와 관련되며, 민족기원을 밝히는 열쇠가 들어 있다고 한다. 토템의 대상은 동식물과 강과 산 그리고 바위와 연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4) 천산, 금산, 백산은 다 같은 신산(神山)으로 해독되며, 하늘과 땅을 굳건히 지키는 하늘 기둥이다. 그 기둥 위에는 큰 까마귀가 있다. 이 까마귀를 가루다(garuda)라 한다.
천산, 천주 위에는 봉황, 대붕,앵조가 있는데, 이 새를 산스크리트어로 garuda, 몽골어로 garudi, 만주어로 garuda라 하며, 한국어에서 갈 새는 da 대신에 새를 붙여 갈 새라 한다. 그러므로 천산(天山), 북산(北山), 백산(白山), 곤륜산(崑崙山), 에덴동산은 다 구조가 같은 신산(神山)이다.
Ⅱ. 마고의 신화와 전설
『符都誌』5)에 따르면, 우리의 역사는 인류의 조상들이 함께 모여 살았던 원시여권씨족사회이며, 신권정치가 향하여진 마고성 시대로부터 시작한다.
5) 符都誌는 신라시대의 보문전 태학사 박제상의 저서(김은수 번역).
麻姑전설은 우리나라와 중국에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마고와 穹姬(궁희)그리고 素姬는 모두 여성으로서 창조적 생산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한편 궁희는 땅을, 소희는 하늘을 나타내기도 하므로 天空神과 地母神에 비유되는데, 남부 시베리아의 말타(Malta) 지역과 유럽지역에서 발견되는 지모신 숭배는 약 6~7만 년 전의 마고성 믿음이 이어져 계승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남 산천 군 지리산 천왕봉 밑 天王寺에는 麻姑성모를 모시고 제를 올리고 있으며, 符都誌의 저자 朴堤上의 관향인 경북의 영덕에는 麻姑山이 있다. 황해도 성주와 강동 지방에서는 支石墓(고인돌)가 마고할미를 위해 장수들이 만들어 준 것이라고 하며, 평안남도 양덕군 주민들은 마고할미 자신이 장사여서 큰 돌을 운반하여 고인돌을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한다. 맹산군 사람들은 마고할미가 매우 인자한 이라 가난한 사람에게 저고리와 치마, 속옷까지 벗어주고 맨몸으로 부끄러워 다닐 수 없어서 고인돌을 만들어 그 속에 살았다고 한다.
또한 황해도 봉산 지방의 전설에는 마고할미가 평평한 돌을 하나는 머리에 이고 두 개는 겨드랑에 하나씩 끼고, 하나는 등에 지고 와서 고인돌을 만들었다고 한다(박용숙, 1985).
북한의 여러 지방에는 支石墓와 마고할미에 관한 전설이 아직까지 전하여 오고 있다. 중국의 고서『山海經』에도 “藐姑射山에 神人이 있었다.”라고 했으며, 마고할미에 관한 전설이 중국에도 많다고 한다.
홍산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石墓系돌무덤이다. 돌을 쌓아 묘실을 구성하는 積石塚(돌무지무덤)과 돌판을 잘라 관을 짜는 石棺墓(돌널무덤)가 대능하 상류 지역 요녕성 凌源縣뉴허량 유적에서 발굴되었다. 이러한 돌무덤들은 후에 石槨墓(돌덧널무덤), 石室墓(돌방무덤), 支石墓(고인돌) 등으로도 다양하게 발전하는데, 특히 고인돌은 만주 일대와 한반도 전역에 분포하고 있고, 이것은 바로 고조선의 대표적인 묘제이기도 하다.
고인돌이 충북 청원군 문의면 이들이 마을에 발굴되었는데, 그것에는 북두칠성이 뚜렷이 새겨져 있었다. 고인돌과 칠성바위가 있는 마을이 많은데, 동네 이름이 ‘칠성마을’이라고 하고, 고인돌군을 일명 칠성바위로 불리고 있다.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은 이 지역에 있던 선사시대의 고인돌인 칠성바위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칠성바위는 현재의 칠성동 2가에 흩어져 있던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이다. 이 고인돌은 7개가 북두칠성처럼 놓여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이 칠성바위는 도로가 개통됨으로서 시민회관의 뜰에 옮겨져 있다. 마고, 황궁, 유인, 환인, 환웅, 단군으로 이어지는 한겨레의 우주생명관은 동아시아의 원시 우주 생명관은 세게 정신사의 핵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의 산동성 무씨 사당의 벽화에는 환인 천왕이 북두칠성을 타고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시는 광경을 묘사한 다음과 같은 벽화가 있다. 북두칠성을 타고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는 환인은 북두칠성을 마차로 삼아 천지를 오르내리며, 다음의 그림6)처럼 세상을 다스렸다.
6) Chung Yenkyu, New Horizon to Ancient Korean History, 지문당,1997. p.12
북두칠성을 타고 천강하시는 환인
고구려 사람들은 밤하늘의 별들 중에서 특별히 북두칠성을 숭상한 것으로 일려져 있다. 이 사실이 고구려의 유적인 고분벽화에 잘 나타나 있다. 북두칠성은 장천 1호분 외에도 안악 1호분, 삼실총, 대안리 1호분, 천황지신총, 가저총, 덕흥리고분, 오화분, 모두 14개의 고분에서 확인되고 있다.
파미르 고원의 마고성 시대부터 황궁, 유인의 천산주 시대에 이르는 기간으로 天文, 曆法, 圖像文化, 건축문화 등이 발달되고 있었으며, 여기에서 인류문화가 비롯되고, 이 씨족들이 지구상의 동서남북으로 이동하여 역법, 거석, 세석기, 빗살무늬 토기, 신화, 종교, 천문학, 음악, 수학 등을 전 세계로 전파한 흔적들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돌은 고대 문화의 상징물이다. 생활 도구, 사냥, 전쟁무기, 건축, 축성, 분묘, 신전 등 쓰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대표적인 거석문화로 이집트의 피라미드, 영국의 스톤헨지, 프랑스 카르나크의 열석, 태평양 이스터 섬의 거인상, 멕시코의 거석 인두상, 잉카 제국시대의 석축, 한국의 고인돌은 모두 마고문화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민속신앙에 七星閣에서 물을 떠 놓고 칠성님에게 비는 풍속이 아직 남아있다.
『태백일사』에 “옛날의 사람들은 죽어서도 사원을 떠날 수 없었으며, 모두가 한 곳에 합장되고, 고인돌을 세운다.”라고 했다. 이 고인돌은 뒤에 제단으로 불리었으며, 그 제단을 산 위에 세우고 天壇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단기고사』는 “고인돌의 천단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일의 시작이며, 그 제천은 단군에서 비롯되었다.” 라고 했다.
『후한서』에도 “고구려 사람들은 10월의 東盟祭를 지낸다.”라고 했다. 신전에 귀신을 모시고 단 즉 고인돌을 세워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천의식은 동이의 대표적인 종교의식으로 볼 수 있다. 동이족인 濊나라 사람들은 !0월에 舞天祭를 행하고 사당에 모신 범의 신상 앞에서 제사를 지냈다. 그들은 새벽에 일어나서 별들의 움직임을 보고 흉년이나 풍년을 미리 점쳤다고 하는 것을 볼 때 동이의 옛 종교가 점성술과도 깊은 관련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중국의 고서『山海經』7)에는 다음과 같은 마고에 대한 여러 전설들을 전하고 있다.
“바다 한 가운데의 섬 속에 列姑耶가 있다.
(중략)
바다 한가운데의 섬 속에 야고국이 있는데 열고야에 속하며, 산이 서남쪽을 에워싸고 있다. 그가 말하기를, 邈姑耶山에 신인이 있어 살색은 눈처럼 희고 단아하기는 처녀 같은데, 곡식은 먹지 않고 바람을 호흡하고 이슬을 마시며 구름 위에서 나는 용을 타고 사해 밖으로 놀러 다닌다고 한다.
그녀는 온갖 사물에서 부패를 없애고 오곡이 풍성하도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임금은 천하의 백성을 다스리며 바다 안을 다스렸다. 마고야산에 있는 네 명의 성인을 방문한 뒤에 枌手의 陽으로 돌아오며 자기의 천하는 이미 상실한 것으로 느꼈다고 했다.
한나라 孝桓帝때에 신선 王方平이 蔡經의 집에 내려왔다. 도착시간이 가까워지자 금북, 퉁소, 피리, 사람과 말의 소리가 들려왔다.
채경의 집안 사람들이 줄을 서서 알현하니, 왕방평은 머리에 遠遊冠을 쓰고, 붉은 옷을 입고, 호랑이 머리로 장식한 패물이 달린 큰 띠와 오색의 끈을 매고, 칼을 차고 누런 수염이 듬성듬성 나 있는 보통 키의 사람이었다. 羽車를 탔는데, 다섯 필의 용이 끌었다. 용은 각각 색이 달랐다. 깃발에서부터 시중드는 사람들까지 위험을 갖추어 마치 대장군의 행렬과 같았다.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대는 모두 기린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뜰에 모였다. 시종관은 키가 모두 한길 남짓 되었다.
도착하자마자 시종관은 모두 모습을 감추어 버려간 곳을 알 수 없었다. 다만 왕방평만이 채경의 부모형제를 찾아뵈었다. 왕방평은 혼자 앉아 있다가 잠시 후 사람을 시켜서 마고를 방문하게 하였다.
채경의 집에서는 마고가 어떤 분인지 아무도 몰랐다. ‘왕방평이 마고 어른께 삼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저는 오래동안 민간인이 되었으나 지금 여기에 와 있습니다. 마고 어른께서는 잠시 왕림하시어 말씀을 드려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전하게 하였다.
잠시 후 사자가 들어왔으나 마고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마고가 인사드립니다. 뵈옵지 못한 채 어느덧 오백 년이 지났습니다. 존비의 서열도 있는데 어떻게 뵙게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소식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곧 돌아오겠나이다.’라고 하였다. 마고가 도착하자 채경 일가는 모두 배알하였다.
마고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로 나이는 열일곱, 여덟 정도였다.
입은 옷은 金欄은 아니지만 모양이 좋았다. 눈빛도 눈부시게 반짝여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울 뿐이었다.
마고는 방에 들어가 왕방평에게 배례하였다. 방평도 일어섰다. 좌석이 정해지자 마고는 가지고 온 음식을 내놓았다. 모두 금 접시와 옥으로 만든 잔에 음식은 거의 과일 종류였으며, 그 향기는 안 밖으로 진동하였다.
마른 고기를 찢어 내놓았는데, 말린 기린고기를 숯불에 구운 것이었다. 마고가 이렇게 말하였다.
‘뵈온 이래 벌써 동해가 세 번 뽕나무 밭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난 번 봉래산에 오셨을 때에는 물도 먼젓번 대회 때에 비하여 그 반 정도 얕아졌습니다.’
왕방평도 웃으면서, ‘성인도 모두 바다 가운데에서 먼지가 오를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마고는 채경의 어머니와 아내를 만나고 싶다고 하였다. 당시 채경의 제수는 출산한 지 수 일이 지났는데, 마고는 멀리서 보고 알고 있었다. 마고는 ‘여기에 다시 오기 어려우니’라며 쌀을 조금 가져오라고 하였다.
쌀을 받아 손에 들고 땅에 뿌리니 모두 진주가 되었다. 방평이 웃으면서, ‘마고 어른은 역시 젊습니다. 나는 늙어버렸습니다. 이처럼 교묘한 변화를 하는 기분은 벌써 없어져 버렸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마고는 새와 같은 손톱을 가지고 있었다.
채경이 그것을 보고 등이 가려울 때 저 손톱으로 긁으면 꽤 기분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방평은 벌써 채경의 마음을 알아채고는 곧 채경을 묶어놓고 매를 때리게 하였다.
‘마고 어른은 신인이시다. 너는 손톱으로 등을 긁고 싶어하였는가?’ 하고 꾸짖었으나, 매가 채경의 등을 때리는 것만 보일 뿐 매를 든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방평은 채경을 향하여 ‘내 매는 절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연회가 끝나자 왕 방평도, 마고도 우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주악과 행렬은 올 때와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7)『山海經』은 周와 秦시기의 인물인 伯益의 저서. 동이 관계 사기가 많음.
마고 문화 연구가인 황혜숙 박사가 2005년 2월 5일 미국 로스엔젤레스 사우스 베일로 한의과대학이 주최한 제8차 한 사상연구 대회에서 발표한 원고의 내용을 옮겨 보면, 인류의 창조신이며, 하늘 신 또는 해의 신인 마고의 신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환단고기』는 마고를 三神, 大祖神, 天神, 天으로 묘사했을 뿐만이 아니라 중국의 사서에도 마고를 하늘과 동일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사천성 청성산 정상에 있는 연못을 麻姑池라고 부르는데, 마고지는 천지(天池)라고도 한다. 그러면 백두산의 천지도 마고지라고 불리었을 것이며, 태백산의 천제단도 마고 삼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제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리산의 천왕봉 밑 천왕사에는 마고 성모상을 모시고 해마다 제를 올리고 있다. 삼신할머니는 노고 할머니라고 하는데 현재도 서울 신촌 로터리 부근의 노고산동, 지리산의 노고단 등많은 지역에 마고가 음이 변한 노고라는 말이 있다. 지리산 노고단은 천왕봉에 계시는 천왕 마고 성모에게 제를 올리는 제단이다.
지금도 나이 드신 분들은 아이를 점지하는 신이라고 말한다.
우리 전통가옥의 부엌에는 /가마 솥/ “곰, 神, 솥”, /오지솥/ 즉 환웅 18세 자오지 蚩尤천황을 위한 솥, /노고 솥/ 즉 마고 할머니를 위한 솥 이 세 개를 걸었는데, 이와 같이 부엌문화의 전설이 그대로 전하여 오고 있다.
중국의 전설에는 도교도(Taoist)들이 마고를 불로장생하는 신선으로 생각하며, 신화에 있어서는 여성의 상징적 보호자로 알려져 있다. 예술계에 있어서는 ‘痲姑獻壽’라 하여 마고가 생일 축하를 하는 인기 있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고 한다. 중국의 문학 작품 속에는 마고는 긴 새와 같은 손톱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로 묘사되어 있다.8)
8)Seeking Mago, the Great Goddess : A Mytho-Historic-Theological Reconstruction of Magoism, an
Archaically Originated Gynocentric Tradition of East Asia PhD. dissertation, Claremont Graduate University, 2005 by Helen Hye-Sook Hwang, 385page 참조.
불가에서는 마고를 마야부인, 즉 부처님의 어릴 때 이름인 悉達多(Siddhartha)의 어머니라고 한다. 더욱 천부경의 진리 도를 펴낸 고운 최치원은 부처가 동이족 중의 偶夷族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러시아의 역사가이자 고전학자인 니콜라이 노토비치가 1877년 가을 인도 등지를 여행하는 중 북부 카시미르의 라다크 지역 히미스 사원에서 귀한 『이사 전(Issa, 예수의 아라비아 이름중의 하나, 불교계에서는 이사를 불명이랴 함)』을 발견하고『성자 이사의 생애(Life of Saint Issa)』라는 책을 저술했다.
이 경전은 이사의 출생과 어린 시절이 4장 중반까지 기록되어 있고, 8장까지는 13세부터 29세까지 인도나 히말라야 등지에서 공부했다는 기록이 되어 있으며, 나머지는 팔레스타인에 가서 전도를 했다고 하는 내용이다. 『이사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멀리 이스라엘에서 성스러운 아이가 태어나 이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는 열네 살 되던 해 초에 상인들을 따라서 인더스 강 유역의 신드 지방에 도착했다.”라고 했다. 이사가 곧 예수라는 설을 주장하는 책이 번역서를 포함해서 5권이나 국내에서 출판되어 주목을 받았다.
그러므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부처의 어머니 마야, 인도의 마야족,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이룩된 마야 문명,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는 파미르 고원의 마고성의 이 /ma/가 “어머니”라는 뜻이 있으니 역사적 인연관계에 대하여 밝혀야 할 호기심을 갖게 한다.
마고성의 /ma/, Mu의 /mu/, 마야의 /ma/, Naga의 /na/는 “어머니”의 뜻으로 만주어/eme/, 몽골어 /eme/, 일본어 /omo/, 한국어/əmi/ 등이 대응된다.
『성자 이사의 생애(Life of Saint Issa)』를 저술한 니콜라이 노토비치
예수가 인도로 갔던 길
예수가 인도로 갔던 길
엘리자베스 클레어 지음, 김용한 역, 나무, 1987년 간행의『불제자였던 예수』에 따르면, “라마성들은 그리스도가 인도와 티베트에 머물렀을 때 브라만도 크사트리아도 아닌 천한 노동 계급인 수드라(Sud-ras)와 만났음을 알고 있다. 라마승들의 기록에 따르면 그리스도가 얼마나 여성-세계의 어머니-을 찬양했는가를 알 수 있다.”라고 했다. ‘세계의 어머니’는 파미르 고원의 인류의 시조 마고를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심히 관심이 가는 대목이며, 연구의 과제로 남는다.
예수는 베들레헴(Bethlehem)에서 탄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는 요셉이라 불리는 목수이다. 아브라함에서 이삭과 야곱을 거쳐 다윗 왕에 이르는 이름 있는 혈통이다. 왜냐하면 다윗 왕의 피는 솔로몬으로, 야곱에게 즉 요셉의 아버지에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요셉의 아들로 추정되면서도 예수는 그의 어머니 마리아의 아들로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을 볼 때 파미르 고원의 여권 씨족 사회의 전통으로 추정된다.
저자의 책『수메르․이스라엘문화를 탄생시킨 한민족』에서, 에덴과 천산, 마고성의 구조가 같다는 것을 설명했다. 포도를 먹은 뒤 마고성에서 추방된다는 내용은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된다는 성서의 내용과 같다. 또한 여호와는 모세가 받들어 모신 그의 조상신 女媧라고 추정된다. 『구약성서』창세기 2장 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이 생력이 된지라.” 하였다.
하늘 신의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왔다. 아브라함과 다윗 왕의 후손인 요셉의 아내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여 순산하셨다. 이때에 동방에 그의 별이 나타났다. 세 사람의 현자(magi)가 그를 맞이하러 왔다. 와서 보니 아기는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었다. 유다 나라의 왕이 아기를 살해하려고 하므로 어머니는 아기를 안고 다른 나라로 피신 가셨다. 이 아기가 하늘 신이 사랑하시는 아들이시고 이 땅의 왕 중 왕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라고 하였다.
중앙아세아의 왕이 탄생되는 이야기와 같다. 다만 검은 까마귀 대신 비둘기라고 한 것이 다르다.
그러나 성경에도 노아가 세상의 종말 시에 방주를 타고 물바다 위에 떠다니다가 까마귀와 비둘기를 날려서 상황을 알아보았다는 이야기에 까마귀가 있다.
『參佺戒經』에는 “女媧님이 흙을 이겨 사람의 형상을 만들고 혼령을 불어넣어 7일 만에 이루어 마쳤다.”라고 했다.
수메르 민족이 이스라엘에 정착하기 이전에는 팔레스티나와 그 밖의 어느 곳에서도 야훼(Yahweh) 신앙의 흔적을 찾을 수 없고, 또한 그 이전의 문헌에서도 야훼라는 신명이 언급된 사례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야훼라는 명칭이 모세 조상신들의 씨족 신에 적용되어 있던 예배상의 명칭이었는데, 모세가 이스라엘 하느님의 공식 명칭으로 신봉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여와는 태음력과 易, 河圖를 제정한 태호 복희의 后이며, 복희는 환웅 5세 태우의의 황자이다. 우리나라 성경에는 여호아라 하고, 서양인 학자들은 Yawheh라고 한다. 모세가 입교한 여호아 신은 그들의 먼 조상신 여와라는 사실을 추론케 한다.
제임스 처치워드의『잃어버린 무 제국』에 따르면, “약 7만 년전 나아칼(Naacal)이 어머니 나라의 신성한 책, 거룩한 영감의 책의 사본을 위글(Uigur)의 수도로 가져왔다.”라고 되어 있다.
또한 같은 책에 “히말라야의 옛 사원의 기록에 따르면, 무(Mu)제국의 종교와 학문의 보급을 위해 나아칼이 무의 수도 힐라니프라에서 나와 미얀마 북방으로 온 것이 약 7만 년 전”이라고 했다. “어머니 나라”는 파미르 고원의 마고성을 말하며, “거룩한 영감의 책”은 천부경을 지칭한다고 추정된다.
Ⅲ. 곰의 신화와 전설
『三韓管境本記』에는 태백산 북쪽이 斐西岬의 경계라고 하고 중원의 웅씨나 神農모두가 小典으로부터 갈라져 나왔지만 이 모두는 환웅천자의 자손이었다.
고아시아족의 특성은 그들이 빗살무늬토기를 사용하고 어로와 수렵, 채집에 종사하던 사람들이며, 곰을 숭배하는 습속을 가졌다는 것이다. 빗살무늬토기 문화권은 발틱 해로부터 시베리아 및 북아메리카에 이르는 추운 삼림지대에서 어로와 수렵을 주된 생업으로 사람들이 만든 문화권이다. 이들은 시베리아 지역에서 요하의 동부지역을 타고 만주를 지나서 한반도로 들어온다.
환웅천왕의 봉후국으로 有熊國이 있었으며, 중국 사람이 국조로 받들고 있는 軒轅황제의 어머니 小典도 단군의 어머니 웅녀와 같이 유웅국 군주였다. 유웅국에서 유래된 곰 숭배 사상은 만주, 시베리아, 아이누, 에스키모, 그 외의 미국 인디언 사이에 널리 보급되어 있다. 웅녀가 단군의 어머니라는 사실은『삼국사기』와『삼국유사』에 단군신화와 더불어 명기되어 있다.
중국 만주의 滿天城에 조성된 단군공원 안에 거대한 웅녀상이 서 있다.
우하량 여신 묘에서 熊龍이 출토되었으며, 후기 홍산문화에 속하는 小河沿文化의 묘지에서도 곰을 표현한 흙으로 만든 채도가 나왔고 적봉시에서도 곰 머리형 채도 항아리가 나왔다. 홍산문화기의 사람들이 곰을 숭배한 사실이 분명하다.
홍산문화 牛河梁(뉴허량) 유적에서 발굴된 女神像이 발굴된 여신 묘에서 곰의 아래턱뼈가 발굴됨으로써 18세 거불단 환웅과 유웅국 출신의 熊女사이에 단군이 출생했으며, 헌원 황제의 부모인 小典이 유웅국 군주이니 1세 단군의 외가가 바로 유웅국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970년대에 阜新胡頭溝, 城子山등지에서 東山嘴적석무덤을 발견하였다. 또한 1980년대 이후에 중국의 고고학자들은 객좌 동산취와 建平牛河梁에서 홍산문화의 제단, 여신묘와 적석무덤을 발견하였다.
이 여신묘는 파미르 고원의 마고성에서 숭상된 지모신의 믿음이 이어져 환웅의 후가 되어 단군을 낳은 고마족의 여인상으로 추정된다. 이 홍산문화의 유적지에서 발굴되는 곰과 관련된 유물은 18세 거불단 환웅의 후가 된 단군의 어머니인 웅족의 유웅국이 있던 곳으로 주목된다. 객좌평원과 그 북쪽은 신석기시대에 홍산문화가 발달한 지역이다. 그곳에서는 파미르 고원의 마고성의 전통을 이어온 모계사회의 특성을 지닌 부족들이 홍산문화를 일구어낸 것이다.
요하 문명권이 고조선의 영역이며, 요동을 넘어서 요서지역까지 고조선의 영역이라고 중국의 여러 사서들이 기록하고 있다.
고대 한국문화의 정체성으로 생각해 왔던 빗살무늬토기, 돌무덤, 석성, 비파형 청동검뿐 아니라 중국문화의 상징으로 여겼던 용, 옥과 관련된 가장 오래된 유물도 출토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중국 학계의 일각에서는 요하문명과 황하문명이 만나 중국문명을 이루었다고 하거나 한 발 더 나아가서 요하문명이 중국문명의 시원이라 주장하며, 과거 동이족 문화를 중국문명의 일부로 포섭하려고 한다.
특히 홍산문화의 주역은 단군조선에 등장하는 곰 토템 부족의 원형이며, 이를 계승한 하가점하층문화도 단군조선이 일구어 낸 문화가 분명하다. 중국의 사서에 등장하는 동이, 동호, 숙신, 예맥, 산융 등은 단군조선의 봉후국이니 크게 중국 한족의 역사와 동이족의 역사를 구분해서 양국의 역사를 복원하는 것이 올바른 역사관이 될 것이다.
『三韓管境本紀』9)에 따르면, 14세 慈烏支환웅 즉 치우의 후손인 蚩頭男을 번한 왕으로 삼고, 熊氏의 후예 熊伯多를 마한의 왕으로 봉했다는 기록이 있다. 웅백다는 有熊國의 후예이며, 1세 단군왕검의 熊氏后도 같은 나라 출신이다.
9)『三韓管境本紀』는『환단고기』에 수록되어 있는 태백일사의 제4권이다.
동부 시베리아에서는 巫女를 kam이라 하고, 고 터키, 몽고, 신라, 아이누 족들은 신을 Kam 또는 Kamui 등으로 불렀다. 그 당시의 祭政一致시대에는 무녀가 부족을 이끌던 최고 권력자이며, 단군의 어머니 웅녀는 곰 부족의 최고 권력자였을 것이다. 곰녀의 곰이란 말은 환웅의 환과 같은 말이며, 한이 하늘의 준말이라면, 곰은 땅의 다른 말이다. 한님이 하느님이니 곰녀는 곧 곰님의 여자이다. 우리의 옛 사람들은 땅의 신을 감이라 했으니 웅 씨의 여인이란 결국 地神族을 뜻한다.
[고마계] 지명은 자연 지형의 표기로서 [고마나루] ‘態津’, [가마실] ‘態谷’, [감재], 檢丹, 감골, 곰실, 거무섬, ‘黑島’ 등 현행 지명에서도 수없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고마 態谷에서 先農祭를 立春뒤에 지냈는데, 우선 고마실에서 곰을 숭배하기 때문에 곰을 잡아 잘 기르다가, 때가 되면 곰을 죽여 天神, 地神에게 바쳤다. 이 祭는 인간의 뜻을 신에게 전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길리약인[Gilyak], 퉁구스인(Tungus), 골디인(Goldi), 캄챠카인(Kamchka), 아이누인(Ainu) 등이 거주하는 시베리아(Siberia) 전역과 北海岸에서는 일반적인 제(祭)의 의식이다.
[고마실]에서는 선농제, 蒜園‘바늘 밭’에서는 後農祭를 지낸다고 한다. [고마]는 고마 족의 桓雄后, 熊加의 관직명, 高句麗, 맥(貊)과 같은 국명, 지명으로 많이 계승되어 표기되었다.
웅녀가 단군의 어머니라는 사실은『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단군신화와 더불어 명기되어 있다. 중국 만주의 滿天城에 조성된 단군공원 안에 거대한 웅녀상이 서 있다.
우하량 여신 묘에서 熊龍이 출토되었으며, 후기 홍산문화에 속하는 小河沿文化의 묘지에서도 곰을 표현한 흙으로 만든 채도가 나왔고 적봉시에서도 곰 머리형 채도 항아리가 나왔다.
홍산문화기의 사람들이 곰을 숭배한 사실이 분명하다. 이 시기에 돌로 조각한 신상이 있는데 그 모습이 곰이다.
환웅천왕의 봉후 국으로 有熊國이 있었으며, 중국 사람이 국조로 받들고 있는 軒轅황제의 어머니 小典도 단군의 어머니 웅녀와 같이 유웅국 군주였다. 유웅국에서 유래된 곰 숭배 사상은 만주, 시베리아, 아이누, 에스키모, 그 외의 미국 인디언 사이에 널리 보급되어 있다.
내몽고 동남부의 중심 도시인 적봉은 웅녀의 고양인 유웅국이 있었던 곳이며, 중국이 국조로 받들고 있는 헌원 황제의 어머니인 小典군주의 유웅국이며, 단군의 외가가 이곳이란 인연이 있다. 또한 이곳이 홍산문화의 지역인 동시에 그 문화를 계승 발전시킨 하가점문화 지역이기도 하다.
今彌達, 蓋馬, 玄菟, 高句麗등은 /고마/라고 읽고 뜻은 “곰” 이다.
고구려어에서는 /功木/, /工木/, /熊問/, /功戊/ 또한 백제어에서는 /公戊/라 쓰고 /고마, 고모, 구머, 구무/로 읽었던 것이다. 본래 웅은 /감, 검, 금, 곰, 개마, 고마/ 등으로 표기되었다.
동부 시베리아에서는 巫女를 kam이라 하고, 고 터키, 몽고, 신라, 아이누 족들은 신을 Kam 또는 Kamui 등으로 불렀다. 그 당시의 祭政一致시대에는 무녀가 부족을 이끌던 최고 권력자이며, 단군의 어머니 웅녀는 곰 부족의 최고 권력자였을 것이다. 곰녀의 곰이란 말은 환웅의 환과 같은 말이며, 한이 하늘의 준말이라면, 곰은 땅의 다른 말이다. 한님이 하느님이니 곰녀는 곧 곰님의 여자이다. 우리의 옛 사람들은 땅의 신을 감이라 했으니 웅 씨의 여인이란 결국 地神族을 뜻한다.
그러나 최근 僚河(랴오허)문명론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지금까지의 역사적 시각에 대한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요하 강 유역인 내몽고 赤峰(츠펑)시 일대와 遼寧(라오닝)성 朝陽(차오양)시 일대에서 황하문명을 앞지르는 신석기와 청동기 유적이 대거 발굴되었다. 신석기는 기원전 7000년경까지 올라가 기원전 4, 500년 경 황하의 仰韶(양사오)문화나 기원전 5,000년경의 장강(長江, 창장) 유역 河姆渡(허무두)문화보다 2,000년 이상 앞선다. 홍산문화 牛河梁(뉴허량) 유적에서 발굴된 女神像이 발굴된 여신묘에서 곰 아래턱뼈가 발굴됨으로써 18세 거불단 환웅과 유웅국 출신의 熊女사이에 단군이 출생했으며, 헌원 황제의 부모인 小典이 유웅국 군주이니 1세 단군의 외가가 바로 유웅국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산동성 무씨 사당의 벽화에는 단군의 탄생을 묘사하는 다음과 같은 그림10)이 있다.
10) Chung Yenkyu, New Horizon to Ancient Korean History, 지문당, 1997, p.13
무씨 사당의 벽화
일본에 옮겨 간 고마를 살펴보면,『日本書紀』에, “元正天皇의 御宇靈龜2년에 고려왕을 비롯하여 1,799명을 그 고을에 와 정착하게 하고, 토지를 개간하고 경작하는 농업을 하게 했다.”라고 한다.
즉, 高句麗가 A.D. 668년 신라와 당의 연합군에게 패하게 되자, 왕자와 유신들이 작고(若光)의 영도 아래 무사시구니(武藏國) 사이타마현(埼玉縣) 이리마(入間)의 중부 니이보리(新掘)와 아오기(靑木)에 고마고오리(高麗郡)를 만들고 정착하게 되었다. 그곳의 聖天院에 작고왕(若光王)의 무덤이 다중탑으로 되어 있다. 그들은 지금 『고마고오리노 레키시(高麗郡의 歷史)』라는 책을 만들고 있고, 작고왕의 59세손인 고마우찌(高麗氏)가 宮詞가 되어 있다. 고마 우찌(高麗家) 씨족 계보를 보면, 오늘날의 高麗․高麗井․加藤․福泉․小谷野․阿部․金子․中山․武藝․芝木․新井등 20여 개의 성은 작고 왕(若光王) 이후의 고마 씨(麗氏)에서 분파된 성이라고 한다.
남 야마시로에도 고마사(高麗寺)가 있고, 그 일대에 우에고마(上貊)․시다고마(下貊)․고마(高麗) 등의 지명이 남아 있으며, 이곳 사가라미(相樂)에는 고구려 사신을 접대하는 고마 관(高麗館)이 있었다고 했다.
또한 도교도(東京都)의 서쪽에 고마에 고오리(狛江鄕)가 있었고, 지금도 고마에무라(狛江村)의 지명이 남아 있다. 東京都八王子市남서부에는 고마노키노(鮈木野) 지명이 남아 있는데, 이곳도 /koma/계 지명의 흔적이다. 일본 북부의 아이누인의 전설에는 어떤 과부가 곰과 혼인하여 아기를 낳았는데 사냥꾼이 되어 많은 짐승을 잡아 큰 부자가 되고, 아이누 사람의 조상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 과부의 말이라하여 다음과 같이 전한다.
“어느 날 내가 집에 있는데, 검은 옷을 입은 사람처럼 생긴 이가 나타나서, ‘나는 산신령이지 아이누 사람이 아니다. 네가 남편이 죽고 쓸쓸히 사니, 너에게 아이를 주려고 왔다. 아이가 나서 이름난 사냥꾼이 되어 부자가 되리라.’ 하고 사라져 버렸다.”
아이누 사람은 지금도 kamui 해서 곰의 아들 신이라 하여 자랑으로 생각한다. 길약 인, 퉁구스 인, 골디인, 캄드차카 인 북해안의 시베리아 전역에 걸쳐 북방계 수렵 인들의 곰 토템이 있다.
고구려[고마]의 어원을 규명해 보면,『史記』의 기록에 보이는 [固麻], [金馬], [古馬], [金磨], [古彌], [蓋馬] 또한『일본서기』에나타나는 [고마(高麗)], [기미], ‘君’, [가미] ‘神’ 등은 [곰]에서 파생되어, [검은색], ‘머리를 감다’의 [감다], ‘눈을 감다’의 [감다], [가마(솥)]와 같은 말로 파생되어 갔다.
‘곰’의 어원을 살펴보자.
『後漢書』에 “구려일면맥이(句麗一名 貊耳)”의 기록을 볼 수 있다. 고구려도 일면 貊耳라 표기하는데, 이는 /koma ki/의 옮김이다. 貊은 熊과 생김새가 비슷함으로 웅과 같은 /koma/의 표기이다.
이 [고마]를 알타이 자매 언어들과 대응시켜 보면 아래와 같다.
만주어 (Manchu) :
오로치(Orochi)어: Kumaka
오로키(Oroki): Kumala
퉁구스(Tungus): 에벤키(Evenki): kuma
소론 (Solon): xumxa̅
라뭇(Lamut): kuma
네기달(Negidal): komaka
일본어(Japanese): 구마(kuma)
한국어(korean): 곰(kom)
등으로 이와 같이 桓族의 고마 족은 알타이어족의 나라에 지명, 성씨 명, 성명, 읍락명 등으로 넓게 분포되어 있다.
Ⅳ. 소머리 신화와 전설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소머리’는 매우 종요하며, 그 것이 벽화나 신화, 전설의 주제로서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다.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소머리의 의미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샤로드(J. E. Crilot)의 사전에 황소는 형태적으로 두 개의 뿔 사이에 머리가 있는 모양이어서 그것이 음과 양의 관계를 교감시키는 역의 원리를 상징한다고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소는 그 형태로 삼각형의 도상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說文』에는 소머리의 뜻을 이 세상의 모든 이치로, 겉모양을 삼각형에 꽁지가 달린 모양으로 보았고, 소를 몰고 간다는 뜻을 해독하여 군자의 가르침에 비유했으며, 道(Tao)가 곧 소 몰고 가는 행위라 하였다.『사화』에 환웅천왕이 세상을 無爲自然의 이치로 다스리는 이치를 소를 끌고 가는 데 비유하였다.
지도자를 牛頭머리라고 하는 용어, 도읍지를 牛首州라고 칭하는 사실은 우리 겨레가 이들 문화와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홍산 문화인들이 남긴 소머리를 한 옥기는 소머리가 그들의 토템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소머리 신상의 이동경로는 한반도와 일본의 상고 문화의 흐름과도 관련이 있다.
환인의 나라 12국 가운데 須密爾國이 있는데, “소머리”는 이 나라 명에서 유래되었다.『단군세기』에 “겨울철 10월에 수밀이와 양운 두 나라 사람이 와서 방물을 바쳤다.”라고 기록했고, 또한 같은 책에 “3세 단군 嘉勒때에 斗只州의 濊邑에서 素尸毛梨가 반란을 일으키니 토평하고 그 땅을 소시모리라 하다가 지금은 우수국이라 하고 그 후손에 陜野奴가 있었다.”라고 하였다.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을 소머리라 했고, 지금의 춘천을 옛날에 우수주라고 했는데, 이 모두가 소머리 토템에서 유래된 말이다.
『고사기』에서, 아마테라스 오미가미(天照大神)의 동생인 스사노오노미코토(素盞鳴尊)는 용감하기는 하지만 잔인한 사람이었다. 모든 신들이 모여 의논한 결과 그를 네구니(根國)로 내쫓기로 했다. 그러나 그는 네구니에 가지 않고 그의 아들인 이다게루노가미(五十猛神)를 데리고 신라에 와서 소시모리에 있었다고 한다.
“소머리”를 뜻하는 소시머리는『단군세기』와『古事記』에 같은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홍산문화 지역은 일찍부터 세석기가 발달한 곳으로 어렵과 수렵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반인반수(therianthropic)인 牛首人身하면 炎帝神農이며, 人面蛇身하면 태호와 女媧상이다. 이들은 각각 하수농경민과 목축민을 대표하는 인물로 볼 수 있다.
염제 신농은 우수신의 모습을 하고 고구려 벽화에도 나타난다. 우리는 고구려 벽화에 그려진 소머리를 한 신상의 모습이 이미 요서지역의 홍산문화에 나타나고 있었다고 하는 사실은 우리 겨레의 이동과 관련해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神農의 몸은 사람이었지만 두상은 소머리였는데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기 때문에 신농이라고 한다. 그를 염제라고 하는 것은 불을 다루는 방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었기때문이다. 그가 처음 도읍한 곳은 徙魯였는데 그곳 산동에는 석굴이 있었다. 신농은 厲鄕에서 출생했는데 춘추 시대에 신농의 출생지가 厲國이 되었다. 홍산 문화는 대체로 B.C. 3,000년 전후에 형성되었다.
요서 지역에는 B.C. 6,000-5,000년경에 신석기문화를 꽃피웠던 査海-興隆窪(차하이-싱륭와) 문화인들이 있었다. 이들이 용과 옥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계승한 홍산문화에서 옥기는 찬란한 모습으로 빛났다. 홍산문화는 대체로 B.C. 3,000년 전후에 형성되었다.
우리는 홍산 문화인들이 남긴 옥기를 통해 그들의 의식을 읽을 수 있다. 옥기 중에 우리의 관심을 끄는 소머리를 한 牛首神器이다. 우수 신상은 홍산 문화시기에 사람들의 토템이었다.
牛首神器는 홍산 문화인들의 소 토템으로 보는 학자가 있는 반면에 태양신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홍산 문화의 옥기를 전문으로 연구한 陳逸民에 따르면, 소머리의 모습이 점차 사람의 얼굴 모습으로 변했으며 중국에는 해의 신의 모습으로 변했다고 한다. 이 소의 신상은 소를 소중히 여긴 집단의 토템이었을 것이다. 이 소머리 신상과 관련된 습속이 한반도와 일본에 많이 나타난다.
천신에게 제를 올리는 것을 부여에서는 迎鼓, 예와 맥에서는 舞天, 진한, 변한에서는 禊飮, 고구려에서는 東盟, 백제에서는 效天, 고려에서는 八關祭라고 각각 불렀다. 무천, 동맹, 영고와 같은 동이족의 제사에 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고, 소의 발굽으로 길흉을 점치는 풍습이 있었다.
『檀君世紀』에도 “단군 왕검이 도읍한 지 50년이 지난 B.C.2,283년에 홍수가 범람하여 백성이 쉬지 못하였다. 왕검은 풍백 彭虞에게 치수를 명하여, 높은 산과 큰 내를 정하고 백성이 편안하게 하였다. 牛首州에 홍수에 관한 기록을 한 바가 있다.”라고 서술했다.
수메르라는 국명은 환인 12나라 가운데 須密爾國의 /수미리/ “소머리”에서 유래된 말이며, 수메르 문명시대의 신전에서는 소머리가 우상처럼 벽면에 장식되어 있었으며, 수메르 도시 우르는 그 명칭 자체가 “소”를 뜻한다. 그들은 소머리를 삼각형의 윗변 양쪽에 점을 찍은 형상으로 표현했다. 소를 우상화하고 있는 이런 전통은 미트라(mitra) 교에 계속 전승되었으며, 오늘날 인도에서는 소를 종교적인 우상으로 믿고 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중국의 江蘇省에는 蘇密山이 있다.『東國與地勝覽』11)에 해인사가 있는 伽倻山을 “소머리”라 했고, 춘천의 옛 지명인 牛首州도 ‘소머리’를 한자로 옮긴 것이다. 京都에 있는 고류지(廣隆寺)의 太秦을 ‘오오하다’ 또는 ‘다이진’이라고 읽어야하는데, “우스마사”라고 하는 것은 “소머리”의 뜻으로 해독된다.
이와 같이 수메르라는 국명이 우리들의 말과 연관되어 있다. 소머리에 관한 명칭은 일본 신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반도에서 이주해 간 사람들이 세운 신사 중에 韓國牛頭岑紳社가 있다.
1961년 아나톨리아 남부에서 차달 휴이크의 유적지가 발견되어 테스트해 보니 약 6500년 전의 유적으로 판명되었다. 그 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수소 숭배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옛 시리아 왕국 우가릿(Ugarit)의 다곤(단군) 바알는 牛頭神으로 지상에 내려올 때 구름 신, 비 신, 바람 신을 대동했다는 신화는 환웅이 지상에 내려올 때 雲師, 雨師, 風佰을 대동했다는 신화와 같다는 것은 역사적인 친연을 암시하고 있다. 히타이트 외에 중동 일대에 소머리 신앙이 존재하고 있었다. 뱀과 물의 신이 하수농경민의 신인 반면 소머리와 불은 목축민의 신이었다.
머리 ‘頭’․뫼 ‘山’․ ‘宗’은 같은 뿌리의 말이다. [모리],[머리], [뫼]는 아이누(Ainu)어에 /mori/ ‘언덕’ 또한 琉球語에 /mure/, /muru/, /mori/ ‘언덕’, 만주어에 /muru/ ‘기둥’, Samoyed에 /mori/ ‘산’ 핀랜드어(Finnish)에 /muor/, /mur/ ‘산’ 등 우랄․알타이어와 대응이 된다. 이와 같이 須密爾, 蘇密城,涑沫江, 수메르족은 동계의 어사이다. 오늘날 여러 곳에 소머리산(牛頭山) 해서 산명, 동명 등으로 남아 있다.
11)『東國與地勝覽』은 A.D. 1486에 노사신이 편찬한 지리지이다.
Ⅴ. 해의 신(Ra Ma)의 신화와 전설
『天符經』은 구성 형태에서 나타나는 □과, 시작도 끝도 없는 선에서 나타나는 ○과, 삼극을 연결하여 얻어진 △의 철학을 담고 있다. 원 ○은 하늘과 태양을 상징하며, 방 □은 땅을 상징하며, 삼각 △은 사람을 상징한다. 마고성의 원, 방, 각 즉 天地人三才의 원리가 세계 여러 곳에 영향을 미쳐 유적을 남기고 있다.
李陌의『太白逸史』에 인용되어 있는 <大辯說>의 주에서 “南海縣浪河里의 계곡에 있는 바위에 神市글자를 새겨져 있는데, 그 글은 환웅이 사냥을 가서 셋 신에게 제사를 지내다.”라는 내용을 담은 것이라고 하였다.
무(Mu) 제국에서 나아칼이 종교의 가르침으로 사용했던 圓○, 方□, 角△은 天符經의 天地人 三才의 철학에서 유래된 것이다. 제임스 처치워드의『The Sacred Symbols of Mu』에서 이 원은 태양신 라(Ra)의 상징이라고 하였다. 이 원의 중앙에 인도의 나가(Naga)족은 점을 추가하였으며, 위글(Uighur) 사람들은 원의 중앙에 보다 작은 원을 그려서 이중의 원을 만들기도 하였다. 다음의 약간씩 변질된 도형을 보자.
태양신 라의 기호
1) 무의 유일신 라의 기호
2) 나가(Naga)족이 변형시킨 기호
3) 위글족이 변형시킨 도형 기호
4) 이집트에서 신들의 머리 장식을 상징하는 도형
5) 사자를 추념하는 의미로 붉은 원을 도형화한 것
아래 나아칼의 점토판 문자는 녹도문과 같은 그림 문자로서 하늘 또는 태양이 갖는 우주의 힘을 묘사한 것이다.
신석기 시대 창장 강(長江) 유역의 허무도(河姆渡)지역 홍산문화 사람들은 해의 신 Ra Ma에게 소원을 비는 샤머니즘이 있었다. 그들은 태양을 봉 조류의 새와 결합시켰다. 신석기 시대의 장강 하류 河姆渡문화인들도 태양을 숭배했는데, 많은 암각화에는 태양신을 표현한 것들이 많다. 이것은 파미르고원의 마고(Ra Ma, 태양신)를 받든 믿음이 이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의 전역에 天馬가 宇宙卵을 日輪에 싣고와서 왕을 탄생케 한다는 전설이 있다. 앙코르와트의 벽화에도 같은 전설의 그림이 있다.
천지창조에 관한 무(Mu)의 성스러운 그림 문자
그림 1. 가늘고 곧은 수평선은 우주 공간을 상징한다.
그림 2.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뱀이 원으로 표시한 우주 공간을 횡단하고 있다. 이 뱀 신이 동양에서는 龍으로 神格化되고, 또한 河水農耕民의 토템(totem)이 되었다. 또한 일곱 聖市(Rishi)를 나타낸다.
그림 3. 파도치는 수평선은 지상의 물을 상징한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그림 4. 이 원은 하늘 신 또는 태양신을 상징한다.
그림 5. 이 십자는 전지전능한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네 개의 성스럽고 위대한 우주의 힘을 상징한다.
『符都誌』에서는 氣, 火,水, 土이 네 가지 힘으로 만물이 생성된다고 했으며, 그 뒤 陰陽五行說로 발전하여 음양의 기가 있고, 우주의 다섯 가지 힘또는 요소를 水, 火, 金, 木, 土라 했다.
그림 6. 하느님과 그의 네 가지 위대하고 창조적인 힘을 상징한다.
그림 7. 라훈(Lahun)이라고 하고, 창조주의 兩性즉 음과 양의 에너지를 상징한다.
그림 8. 方□은 地를 뜻하며, 땅 속에 불타는 화산 또는 지진을 상징한다.
그림 9. 圓○은 天을 뜻하며, 태양에서 나오는 수직의 가느다란 점선은 지구의 빛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태양의 힘을 상징한다.
그림 10.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수직의 가느다란 곧은 선은 지구의 빛의 힘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태양의 힘을 상징한다.
그림 11.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수직의 파도치는 선은 지구의 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태양의 힘을 상징한다.
그림 12. 물 속에서 부화된 宇宙卵(cosmic eggs)에 미치는 지구의 생명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태양의 힘을 상징한다.
그림 13. 땅 속에서 부화된 우주란에 미치는 지구의 생명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태양의 힘을 상징한다.
그림 14. 생명의 어머니인 물을 상징한다.
그림 15. 타우(Tau)라고 하며, 復活과 再現을 상징한다.
그림 16. 생명의 나무와 뱀, 뱀은 유일한 생명인 인간의 어머니, 무 즉 뱀과 나무를 상징한다. 모든 자연의 삶은 환상이며, 곧 멸한다. 다만 인간은 생명이며, 생명은 영원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朝代記』에 이르기를 古俗에 해를 神이라 하여 만방의 백성들이 조석으로 경배하였다. 해는 광명이 모이는 곳이며, 三神이 계시는 곳이다. 아침에는 일제히 東山에 올라 뜨는 해에 절을 하였다.
신라의 왕명에 [남해]․[나해]․[점해]의 /해/, 부여왕 해부루(解夫婁)의 /해/, 신라의 명장인 金庾信의 시매인 寶姬․文姬의 /희/가 태양을 뜻하는 [해]이다. 한국어의 [해] ‘태양’, [희다]‘白’ [환] ‘밝다’ 일본어에 [hi] ‘日’, [hiru] ‘晝’, [hare] ‘晴’, [hikali] ‘光’ 등도 동계의 낱말이며, 퉁구스어의 [siun], [hiwun]도 동계 어사임을 알 수 있다.
『同文類解』에 기록된 [šun]도 동계의 어사이다.
신라 시조 신화에서 楊山下蘿井傍에 天馬가 내려와 놓은 알을 蘇伐公이 발견하여 그 속에서 낳은 아기를 새 나라의 왕으로 모시었다는 것은 北天山아래 떨어진 해가 새벽에 나와서 日光이 온 누리에 가득하게 되었다는 것으로서, 日輪(Sun Carriage)의 運行에 비유한 것이다. 북부여에서 동부여 가섭원(迦葉原)에 이르러 동명왕이 탄생되었다는 것도 하늘 위의 일륜의 운행과 땅 위에서의 왕의 순행을 비유한 것이다. 알에서 나왔다는 卵生신화도 원래는 태양의 아들 신화였다고 생각한다.
『사기』에 契이 商나라의 시조로 되어 있으며, 설의 탄생 설화를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세 사람이 목욕을 하러 갔다가 까마귀를 만나 그 떨어진 알을 蕑狄이 삼키고 契을 낳았다.”
중국의 학자 徐亮之는 은, 상은 곧 요동의 조선에서 일어난 동이라 하였다.
고주몽과 박혁거세는 알 애서 나왔고 그 알은 둥근 것으로 해의 신전을 가리키는 것이다. 혁거세에 대한 기사는 “알을 깨어보니 동자가 나타났으며,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그 동남을 가리켜 천자가 내려왔다.”라고 했다. 수로 왕 역시 금상자 속에 들어 있는 여섯 알 가운데 한 알에서 태어났다. 그 의식은 신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강신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 옛말에 [알]이 태양의 뜻을 갖고 있었다. 일본어의 [ama] ‘天’는 한국어 [al] ‘太陽’의 변화형이다. 아래 두 나라 말을 비교하면 쉽사리 이해된다.
한국어 일본어
al ‘太陽’ ama ‘天’
tol ‘石’ tama ‘球’
nal ‘生’ nama ‘生’
ǝl ‘水’ umi ‘海’
閼川의 [알], 신라 시조 왕후 閼英의 [알]도 동계의 어사로 생각한다. 楊山의 [양]은 [버드] 일본어 hoto ‘여음’ 즉 陰山北山이고 그 아래 蘿井또 奈乙은 출생의 샘구멍 즉 ‘여음’을 뜻한다. 沃沮에서도 샘구멍을 들어다보고 아기를 얻는다고 말한 것이다. 북방의 天山아래 沈淵이 있다는 지형적인 의미도 있다.
양과 음의 結合生子를 의미한다. 알(卵)=ama ‘天’(日本語)가 함축한 뜻을 이해했을 것이다. 신라의 朴昔金삼성의 왕과 가라국 김수로 왕 등 출생하기 전의 형태인 많은 /al/ ‘卵’도 같은 것이다. 알타이 이동민족에게 분포된 일구(日球) 즉 알이 상징하는 일자(日子)의 이념은 일본에까지 전파되었다.
일본어의 아마 ‘天’는 알타이계 어의 ama ‘父’인데, 일본인이 그들의 선조의 나라를 omo(母國)라 하고, 그 사이의 바다를 ama ‘天海’, kara ‘玄海’라 했다.
만주어에 북을 amargi라고 하는데, 이것은 ama ‘父’ + ergi ‘方’ 또는 amala ‘後’+ergi ‘方’라고 하는데, 그들의 조상이 만주의 북쪽 한반도 다가마하라(高天原)에서 ama ‘天海’를 건너 이동해 왔음을 시사하고 있다.
『日本書記』 720의 내용을 보면, “이자나기노미코토(伊焋諾尊)와 이자나미노미코토(伊焋冊尊)의 사이에 아마테라스오미가미(天照大神), 츠쿠요미노미코코(月讀命), 스사노오노미코토(素盞鳴尊) 세 자녀가 있었다.
스사노오노미코토는 아버지 이자나기노미코토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죽은 어머니 이자나미노미코토가 살았던 黃泉國을 그리워했다. 이러한 광경을 본 아버지 신은 화가 나서 스사노오노미코토를 네노구니(根國)로 추방을했다. 추방당한 그 신은 누나가 사는 다가마하라(高天原)에 고별인사를 하러 갔다.
동생이 많은 군사를 데리고 오는 광경을 본 누나는 자기 나라에 쳐들어오는 것으로 착각하고 天의 岩戶에 숨어 버렸다. 이 신은 태양신이기 때문에 온 세계가 암흑과 惡靈의 천지가 되어 버렸다. 이때에 아메노코야네미코토(天兒尾根命)가 신대 문자를 창제하여 신전에 주문(呪文)을 올리고 제사를 지냈다.”라고 한다.
이 찬미의 신인 아메노코야네미코토의 후손인 쓰시마(對馬島) 복부(卜部) 아히루(阿比留) 가문에 전하여 내려오는 문자이기 때문에 아히루 문자라고 했다. 또한 아히루모지(天日字)라고도 한다. 일본의 많은 신사에 모셔져 있는 이 신대문자는 의심의 여지없이 가림토문자와 자체가 같다.
아마테라스오미가미가 여성이면서 해의 신(Ra Ma)라는 이 신화는 태양신 마고의 믿음이 이어져 온 것이다.
/ra/는 일본어/ni/, 한국어 /nar/ “日”과 대응되며, /ma/는 “어머니”를 뜻한다.
북부여의 시조를 解慕漱, 가섭원(迦葉原) 부여의 시조를 解夫婁, 북부여 3세 고해사(高奚斯), 고우루(高宇婁), 또는 해우루(解宇婁)로 /해/와 /고/를 바꾸어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는 하늘의 해를 말하는 옛말 /가/에 대한 소리 옮김이다.
하늘 임금의 아들로서 햇빛을 받아 난 朱蒙을 고로서 성을 삼아 고주몽이라 했다.
/해/와 /고/는 모두 우리의 옛 말 /거, 가/에 대한 소리 옮김이다.
오늘날에도 구름이 없어지고 해가 나는 것을 /개다, 개이다/라고 하는데, /개/는 곧 /가/의 이형태이다.
/가>하>해/와 같은 음운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日蝕에 관한 설명에서 하의 가 를 먹는다 는 설명의 //는 [] ‘日’의 옛말이다. /기자/의 어원을 살펴보면, 일본어에 있어서는 3日의 日을 /kal/라고 읽는다. 부여의 왕명에도 /해/와 /고/를 혼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는 /해/의 이형태로서, 기자는 /해아지/“日子”로 해독된다. 고구려 동명왕의 성이 /해/여서 해주몽이었는데, 제왕이 이르기를 하늘 임금의 아들로서 햇빛을 받아 낳았으므로 /고/로서 성을 삼았다고 하는 옛 기록으로 보아서 /해/의 옛 말이 /고, 거, 기, 가/이었다.
오늘날 해가 나오는 것을 /개다/라고 하는데, /개/는 곧 /가/의 이형태 이다. 그러므로 기자는 “日子, 天子”를 뜻한다.
지구의 모든 에너지는 해에서 나온다. 해가 없으면 어떤 생물도 자랄 수 없다. 해에서 1초에 4백만 톤의 물질이 에너지로 변한다. 아인슈타인의 기본공식 E=MC2 즉 방출되는 에너지 양 E는 변화되는 물질의 질량 M×광속 C(1초당 30만 km)의 제곱과 같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원시 사회에 있어서는 태양을 위대한 신으로 모셨던 것이다.
위러(Wheeler)는 그의 저서『인도의 역사(History of India)』에서 “마야족은 35,000년 전에 인도에 이동하여 힌두 제국을 세운 나가 제국의 마야 왕자에서 이어 온 세계의 종족들이다.”라고 했다.
불교 석가의 어머니가 마야 부인이며, 미 대륙에 이주하여 마야와 잉카 문명을 건설한 종족들도 같은 세계로 생각한다. 마야 종족들은 우수한 과학자들이며, 건축가로 알려져 있다.
나가족은 첫 힌두 제국을 건설했으며, 그들의 첫 왕을 태양신 라마(Ra Ma)라고 했다고 한다. 나가 족은 파탈라(Patala)에서 왔으며, 이 파탈라는 나가 말로 “태양의 나라”를 뜻한다고 한다.
B.C. 3,500경 하이집트 왕국이 상이집트 왕국을 정복하여 수도를 헬리오폴리스에 정하고 처음의 큰 통일국가가 성립되었다. 그들은 “어머니 나라” 마고성의 전통을 이어, 헤로도토스가 말한 것처럼, 종교는 자연물 숭배(Fetishism)와 영혼 숭배(Animism)에 기원하고 있으나 농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태양신(Ra)이 그들의 주신이었고, 국왕은 라(Ra)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다.
이집트 사람의 문화적 업적 가운데 후세에 중요한 영향을 준 것은 태양력이다. 농업사회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천문 지식은 神官에 의하여 독점되고, 연구되어 일찍부터 발달하였다. B.C. 4,000년 이전부터 사용된 태양력은 로마로 전승되어 현대 역법의 기초가 되었다. 문자는 象形文字, 神聖文字를 사용하였다. 이 문자의 해독에 따라 그 당시의 의학적, 기하학적 높은 지식수준을 이해할 수 있다. 예술 방면에 있어서도 마고성의 문화를 이어 피라미드, 스핑크스, 오벨리스크와 같은 대규모의 거석문화, 조각, 회화와 같은 훌륭한 예술은 그리스 예
술에 큰 영향을 주고, 간접적으로는 서양의 예술에 공헌한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延烏郞과 細烏女라는 두 남녀가 신라의 동해안에서 일본으로 옮겨 가서 왕과 왕비가 되었다는 오래된 이야기가 있다.
연오랑 세오녀 부부는 해와 달의 신이었다. 일본의 해의 신 아마테라스오미가미(天照大神)와 달의 신 츠쿠요미노미코토(月引尊), 그의 동생인 스사노오노미코토(素盞烏尊), 일본의 제 1대 왕 진무덴노(神武天王)가 日向國에서 大和國으로 이동해 갈 때 길을 안내한 까마귀(烏)가 등장하는데, 마치 칠월칠석날 해신 견우와 달신 직녀가 만날 때 오작교를 건너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왕이 행차를 할 때 까마귀가 동행하여 섬긴 왕들은 고구려의 동명왕을 위시하여 모두 해의 신이었다. 이 왕들을 맞이하는 제를 해맞이제(迎日祭)라고 한다. 오늘날 지명으로 경북에 영일이 있다.
아이누의 신화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아주 오랜 옛 날 해가 처음으로 솟으려 할 때, 마귀가 해를 삼켜 버리려고 입을 벌렸다. 이때 까마귀 떼가 마귀의 입에 날아들어갔다. 입에 가득 찬 날개를 처치하려고 마귀가 애를 쓰는 틈에 해가 솟아올라 밝은 날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까마귀가 해의 신임을 암시한다. 이런 종류의 신화는 북동 시베리아의 원주민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베링 해협이 육지로 연결되어 있을 때 건너 이주해 간 에스키모 인들의 신천지에서도 해의 아들, 왕의 이야기가 있다.
“햇빛이 한 여자의 음부에 비추어 한 아이가 탄생되었다. 아이는 대단히 숙성하여 말을 배우기 전부터 활과 화살을 잘 쏘았다. 다른 아이들이 아비 없는 아이라고 놀리기에 어머니에게 아버지를 만나게 해 달라고 간청하니, 너의 아버지는 해라고 대답했다. 아이는 화살을 쏘아 사다리를 만들고 하늘나라 아버지의 집으로 찾아갔다. 아비 해의 말씀을 따라 대신 아비의 일을 하다가 구름을 쓸어버리고 땅에 가까이 왔더니, 땅이 달아오르고,
바다가 끓고, 바위가 갈라지고, 세상은 죽을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아비는 아이를 세상에 내려 보내 밍크로 만들었다.”
아버지 왕의 나라로 찾아가는 이야기는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 고주몽과 그의 아들 유리왕의 이야기와 아주 비슷하다. 유라시아 북부에 퍼진 이런 종류의 전설이 신천지 외에 서로 아일랜드, 동으로 그린란드 등 여러 지방에 분포되어 있다.
영국에는 검은 머리를 한 몽골로이드가 먼저 와서 살고 있었는데, 그 뒤에 노랑머리, 붉은 머리 등을 가진 사람들이 뒤에 왔다고 켐브릿지 대학의 사학자인 트레벨리얀 교수는 말하였다. 그는 우리가 켈트(Celt)라고 잘못 생각했던 검은 머리를 한 종족은 붉은 머리를 한 켈트와는 다른 종족이라 했다.
이와 같이 검은 머리 종족들은 거석문화와 신화 등의 유적을 남겼으며, 이들은 해를 숭배하고, 파미르 고원의 마고성의 천부경 철학을 이어받았다.12)
즉 프레이저는 그의 저서『새 황금 가지』에서 고대 이집트에서는 태양의 대표자인 왕은 일식이나 다른 재난 때문에 해가 정상적으로 운행할 수 있는지 살펴보기 위하여 사원의 담 벽 주위를 엄숙하게 순행했다고 말했다.
인류의 태고 시대를 정의한다면, 동서를 막론하고 神敎(Shamanism) 문명의 황금시대였다. 그 때 인류는 공통된 신앙 대상과 가르침을 갖고 있었다. 이는 아득한 옛날 태고의 숨결을 노래한 세계 각 민족의 신화 내용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자연의 품속으로 들어가 인간을 둘러싼 자연의 실상을 그려낸 신화 속에는 천지생명의 창조 원리와 순환 섭리가 신격화 또는 의인화되어 깃들어 있다. 신화의 정신을 모르면, 인류문명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인간과 천지가 온전히 하나 되어 살아가는 새로운 천부경의 얼이 담긴 신교의 시대가 오고 있다. 신교는 상고시대, 즉 즉파미르고원, 천산산맥, 태백산, 알타이산맥을 중심으로 번영했던 환국시대 이래로 우리 조상들이 받들어 온 겨레의 생활문화이다.
『천부경』의 철학을 살펴보면, 태초 우주 자연법칙에서 비롯된 음양의 이치로 상생, 상극, 한 짝을 이루게 한 우주의 한 집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자연의 길을 안내하고 있다.
서양이 낳은 철인이요 역사가인 토인비는 죽어 다시 태어난다면 동양철학에 심취해 보고 싶다고, “동양으로 돌아가라(Go back to the orient)”라고 경고했다.
12) Frazer also states in his book,『The New Golden Bough』 that in ancient Egypt, the king as the representative of the sun walked solemnly round the walls of the temple in order to ensure that the sun should perform his daily journey round the sky without interruption of an eclipse or other mishap.
Ⅵ. 뱀과 용의 신화와 전설
바이칼 호를 중심으로 살았던 농경민인 퉁구스 족이 중국의 남부와 동남방 지역까지 이동을 했다. 이들은 뱀과 용을 토템으로 하는 신석기 인들이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태양의 빛을 생명 에너지로 생각하고 그것을 신성한 뱀으로 표현했다.
이집트 람세스 2세의 이마 한가운데 자리 잡은 신성한 뱀의 머리 위에 올린 태양 원반은 왕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태양신의 아들이라는 속성을 갖는다. 이 신성한 뱀은 이집트 문명의 초기부터 왕국과 관련이 있었다.
뱀의 얼굴을 한 사람들은 태양과 우주의 생명력을 연결시키는 종교관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다. 모세의 아버지 아무람에게 나타났던 뱀의 얼굴을 한 신인이 발굴된 일이 있었다. 이 신인이 발굴된 지역이 농경 사회가 존재했던 곳이다.
만주족들도 뱀을 빛이 변화한 동물로 생각하는 정통이 있었다. 창세 신화인『天宮大戰』에도 뱀은 빛의 화신으로 나온다.
서 몽고 지역의 신석기 시대 암각화에는 뱀의 표현이 많으며, 알타이 산과 바이칼 호 사이에 사는 투바 족 샤먼의 의상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은 뱀을 나타낸다. 만주족에게 전하여지는 창세 신화에도 뱀은 광명의 화신으로 나온다.
우리나라에도 왕비의 머리 장식으로 뱀이 있었으며, 이를 첩지라고 한다. 우리나라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천전리에 있는 암각화에도 고깔모를 쓴 용이 새겨져 있다. 뱀은 하수농경민의 토템이며, 뱀을 보다 신격화한 것이 용이다. 고깔모의 삼각형은 바로 뱀 머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신교(Shamanism)의 그림에 환인이 고깔모를 쓰고 있다. 고깔은 삼각형을 나타내는 뱀의 도상이다. 뱀은 제주도에서 칠성신으로 모셔지고 칠성신화로 전승되었다. 뱀이 칠성신의 신체의 표상이다.
고깔모는 공공족의 족휘에서 나타난 뱀에서 제2세 부루 단군으로 이어지고, 우리 민속에 전해오는 부루 단지는 바로 업신인 구렁이와 관련이 있다. 무속화를 보면 환인과 칠성이 고깔모를 쓰는 것이다. 태양신 라마, 고깔모자, 구렁이, 북두칠성, 고인돌은 마고, 황궁의 후예인 한 겨레 뿌리 문화의 특징이다. 고깔모자는 뱀과 삼각형, 그리고 태양신 라마와 관련이 있다.
또한 중국의 옛 전설에는 서왕모는 얼굴은 사람이지만 이리의 꽁지와 범의 이빨, 머리의 구슬 장식, 몸에는 두 마리의 뱀이 감겨 있다. 『산해경』에는 巫咸國의 남쪽에 살고 있는 여축(女丑)이라고 하는 여신은 오른손에 푸른 뱀, 왼손에는 붉은 뱀을 쥐고 있으며, 그 곳에는 숙신이라는 동이의 나라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엘리아데(M. Eliade)는 그의 저서『Shamanism』에서 알타이 샤먼의 복장에 뱀의 장식이 있다고 했으며, 샤먼의 복장에 단 리본은 뱀이었다고 했다. 우리 겨레의 상고시대에는 무당이 지배하는 제정일치 시대상과 하수농경민의 뱀 토템 사상을 읽을 수 있다.
『삼국유사』에 나타나는 용이나 뱀은 이상한 마력을 지닌 무녀로 나타난다. 『산해경』은 巫咸을 비롯한 열 명의 무녀들이 산을 오르내리며 약을 캐는 神醫라 했고,『좌전』에도 이들 무당들은 신의라고 쓰고 있다.
고려 왕건의 신화에는 범과 굴, 바다의 용왕과 금돼지가 등장하여, 산신과 수신이 결합되었다. 후백제 견원의 설화에는 지렁이와 굴이 등장하였다. 금와와 지령의 원형은 물귀신인 용이다. 이씨 조선의 건국자는 태조를 해
동의 6마리 용이라 하여 <용비어천가>를 지어 선대를 찬미했다.
『삼국유사』에서 원효는 바다 용의 권유로『三昧經疏』를 집필했다고 했으며, 일연은 “원효가 붓과 벼루를 소의 두 뿔 사이에 놓았다.”라고 해석하고 그래서 그를 角乘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일본서기』에 나타나는 여덟 개의 꼬리를 가진 큰 뱀을 토벌하는 이아기도 같은 종류의 것이다. 스사노오미코토(素盞鳴尊)는 다사아마하라(高天原)에서 이즈모(出雲國)에 내려왔다. 그때 사람의 우는 소리가 들려 왔다. 찾아갔더니, 늙은 부부가 딸을 보고 울고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딸의 이름이 구시이나다히메(奇稻田姬)인데, 매년 딸이 한 명씩 야마다노오로치(八岐大蛇)에게 잡아먹히고 있었다. 스사노오노미코토는 야마다노오로치를 퇴치하고 구사이나다히메를 아내로 맞게 되었다고 하는 신화이다. 머리가 8개, 꼬리가 8개 달린 큰 뱀은 뱀을 토템으로 그 지방의 수장을 스사오노미코토가 토벌한 이야기가 각색된 것으로 생각한다.
영국의 저명한 사학자 토인비는 아벨과 카인의 제사를 농경문화와 유목문화의 갈등으로 보았다. 뱀을 토템으로 한 하수농경민과 소를 토템으로 한 유목민의 사회적인 갈등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농경민인 카인의 성격은 안정적이고 정체적인 면을 보여주고, 목축민인 아벨은 이동적이고 발전적인 적극성을 보여준다.
김원용 교수는 B.C. 5,000년경에 신석기인이 한반도에 들어와 어렵생활을 영위하면서 초기 신석기 문화를 남겼는데 그 담당자가 곧 고아시아족이라 하였다. 또한 B.C. 2,000년경에 한반도의 문화는 농경의 개시라는 일대 변혁을 일으키면서 후기 신석기 문화로 들어가는데, 이 사실이 하수농경민이 한반도에 들어 온 경위를 전하고 있다고 했다.
사전에 설명되어 있는 용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상상의 동물, 몸은 큰 뱀과 같고 등에는 81매의 비늘, 네 개의 발에는 각각 다섯 개의 발가락,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있으며, 얼굴은 길고 귀가 있으며 입가에는 긴 수염이 있다. 물속이나 땅에 살며 때로는 공중으로 날고, 구름이나 비를 일으키고 번개를 토한다.”
위 설명에서 주목할 점은 용의 몸이 뱀이며, 머리가 소머리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소가 두 뿔을 위로 치켜세운 ▽ 윗변 세모꼴을 상장하는 반면, 뱀은 반대로 △ 밑변 세모꼴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면 용은 두 개의 삼각형을 결합한 별모양으로 요약된다. 하늘에 승천한 용이 별이 되었을까? 용의 신비스러운 마법의 힘과 뱀의 힘이 결합되면서 나타나며 그것은 융(C.G. Jung)13)의 말대로 남성적인 원리와 여성적인 원리의 결합이며 이러한 모든 현상을 음양오행의 원리로 설명될 수 있다. 솔로몬의 인장에서는 두 삼각형이 각각 대우주와 소우주를 상징하게 된다. 이 점을 참고하면, 소는 남성적, 뱀은 여성적 성이된다.
13) 융은 C. J. Jung. Psychological Reflection의 저자, 미국의 신학자.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무지개가 神母를 둘러 伏羲를 낳고, 용이 女登에게 교접하여 炎帝를 낳고, 皇婀가 궁상의 들에서 백제의 아들과 사귀어 소호 김천 씨를 낳고, 岡媛은 거인의 발자취를 밟아 棄를 낳고, 簡狄이 알을 삼키고 偰을 낳고, 伂公의 어머니는 큰 연못에서 용과 교접하여 패공을 낳았다고 했다. 이와 같이 용은 탄생신화에도 많이 등장한다.
龍의 옛 글자가 伏羲의 易이며, 용이라는 말이 역에서처럼 연금술, 점성술, 예언으로 해석되는 고대의 기하학이나 수리학의 신빙성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81개의 비늘과 5 개의 발가락으로 표현된 숫자는 기하학과 수리의 철학을 나타내고 있다.
천부경은 문자 50자, 숫자 31자를 합하여 구성되는 가로 9자 세로 9자 즉 9 곱하기 9 = 81자로 된 정방형의 구도로 되어 있다. 9는 우주의 마지막 수 즉 최대 수이다. 하늘은 최대의 수인 9개의 행성 체를 거느리고 우주의 세계를 통괄하고 있다. 천부경이 담고 있는 火, 水, 木, 金, 土이론은 후대의 陰陽五行說을 낳고, 역법 이론 체계를 확립했다. 용의 발가락 5개의 5는 5행을 뜻하고 또한 오행 중 흙을 말한다.
이 5 토는 만물을 낳고 기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5皇極이라고도 한다. 즉 5-조하와 중매의 흙-중방-황색의 구조이다. 미국의 수학자 수웨쯔는 그의 저서『낙서의 유산』이란 책에서 하나라 우임금의 낙서는 성스러운 의식에 쓰이는 수 문자이며, 이 문자가 서구 세계에 전파되어 서구의 과학이 번영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音과 數는 인간의 의사소통 기능으로서 언어 이전의 수단이었다. 파미르고원의 麻姑城시대에는 음과 수가 神格化되어 있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선은 圓이다. 또 三極을 연결하면 삼각형이 된다. 그러므로 천부경은 구성 형태에서 나타난 方, □과, 시작도 끝도 없는 선에서 나타난 圓, ○과, 三極을 연결하여 얻어진 角, △의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은 하늘을, □은 땅을, △은 사람을 상징한다.
인도의 나가(Naga) 족과 마야족 그리고 모든 다른 문명을 성취한 국가들도 낙서의 이 聖用數문자를 수용했다. 태호씨는 일찍이 天河에서 나온 龍馬의 등에 그려진 무늬에서 하늘과 땅에서 나오는 생명의 율동상을 깨닫고 이를 그림으로 그렸다. 그것이 河圖이다.
하늘의 계시로 자연 속에 숨겨진 질서를 읽고, 이것을 천지의 기본수인 1에서 10까지의 수로 체계화하여 인류역사에 바쳤다. 용이 물이나 땅, 공중의 어디서나 살 수 있다는 표현은 무엇이건 마음대로 변할 수 있다는 마법적인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眞龍이라는 물건은 동해 바다의 용에게서 받은 것이며, 그 한 조각을 떼어 냇물에 던지자 곧 구름처럼 하늘로 치솟으며, 그 냇물은 큰 연못이 되어 버린다. 또한 같은 책에 신라의 탈해왕은 龍城國에서 온 사람으로 되어 있으며, 그 나라에는 28명의 용왕이 있고, 그 용왕들은 사람의 태에서 나왔으며 5, 6세 때부터 왕위를 계승하여 만민을 가르쳤다고 되어 있다. 신라 시대의 밀교승 明朗이 용궁에 들어가 神
印을 얻어 왕명으로 천왕사를 세웠다고 했다. 용왕이 사는 곳이 용궁이며, 신화나 전설은 그 용궁이 바다 속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左傳』에서 공공씨에게 勾龍이라는 아들이 있었다고 했다. 공공은 사람의 얼굴과 뱀의 몸을 가진 인면사신이었기 때문에 그의 아들인 구룡은 뱀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용으로 신격화되었다. 그리고 홍산문화의 유지에서도 옥으로 만든 용이 많이 출토되었다.
다음의 벽화14)는 환웅천왕이 다섯 龍車를 타고 天降하는 광경인데 중국 산동성의 무씨 사당에 있는 유적이다.
용차를 타고 천강하는 환웅
麗道元의『水經注』에, “중국의 서북쪽에 있는 昆崙山의 언덕은 세 개의 층으로 되어 있고 天庭이라 불리는 상층에는 큰 황제가 거처한다. 또 그 상층에는 세 개의 뿔이 있어 그 것들은 각기 정북, 정서, 정동을 향하고 있으며, 그 화려한 곳이 서왕모가 도읍한 곳이다. 또 거기에는 12시간을 주제하는 신인 오룡(五龍)과 천황이 있다.”라고 했다. 오늘날에도 임금의 얼굴을 용안이라 하고, 임금의 자리를 용상이라고 한다. 여기 서왕모는 여와를 말하며 천제는 복희를 지칭한다.
홍산문화 牛河梁(뉴허량) 유적에서 女神像이 발굴된 여신묘에서 곰 아래턱뼈가 발굴됨으로써 18세 거불단 환웅과 유웅국 출신의 熊女사이에 단군이 출생했으며, 헌원 황제의 부모인 小典이 유웅국 군주이니 1세 단군의 외가가 바로 유웅국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赤峰(츠평)은 웅녀의 고향이라고 상정하는 홍산문화 지역인 동시에 그 문화를 계승 발전시킨 하가점문화지역이기도 하다.
오늘날 중국의 산동성에는 얼굴은 사람이고 몸은 뱀인 이들의 그림을 볼 수 있다.
14) Chung Yenkyu, New Horizon to Ancient Korean History, 지문당, 1997. p.13
태호 복희와 여와의 人面蛇身像
太昊伏羲(B.C. 3,528-3,413)15)는 이러한 우주의 법칙(cosmic law)을 정립하기 위하여 歷과 易을 창제했다.
복희는 神龍이 해의 주위를 돌아 해가 12번 변색하는 것을 보고 桓歷을 창제하고, 우주의 힘(cosmic force)을 陽爻와 陰爻로 규정하고, 양효는 하늘이 주관하고, 음효는 땅이 주관한다고 했다.
15) 伏羲은 5세 태우의 환웅의 계자, 여와의 남편.
복희는 하늘과 땅이 움직이는 이치와 법을 연구하여 易의 원리를 제정하고, 卦를 그려서 미래의 일을 판단하였다. 易과 歷은 관계가 밀접하여 易이 천체의 관측과 관계를 맺고있다.
복희가 神龍이 해를 쫓아 해가 12번 변색하는 것을 보고 곧 歷을 만들었다. 신용은 곧 지구를 뜻하며, “신용이 해를 쫒는다.”라는 것은 지구의 공전을 뜻하며, “해가 12번 변색한다.”라는 것은 지구의 자전으로 계절이 변한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태호씨는 일찍이 天河에서 나온 龍馬의 등에 그려진 무늬에서 하늘과 땅에서 생기는 생명의 율동상을 깨닫고 이를 그림으로 그렸다. 그것이 河圖이다.
하늘의 계시로 자연 속에 숨겨진 질서(象)를 읽고, 이것을 천지의 기본수인 1에서 10까지의 수로 체계화하여 인류역사에 바쳤다. 복희는 신시에서 태어나 雨師의 자리를 세습하고, 뒤에 청구와 낙랑을 거쳐 마침내 陳으
로 옮겨 燧人, 有巢와 나란히 그 이름을 빛내었다.
천부경, 태호 복희씨의 河圖와 夏나라 禹임금의 洛書는 인류문화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하도와 낙서는 자연 속의 천지의 수(1-10)가 循環(circulating)하는 원리를 바탕으로 만물이 음양 氣의 힘을 받아 생성, 변화하는 상극, 상생의 대자연의 섭리를 밝혔으며, 이는 훗날 세계문명의 진수가 되고 기초 동력원이 되었다.16)
16) An American mathematician, F. Swetz says in his『Legacy of the Luoshu(洛書)』 that "this Luoshu, a hieratic numeral writing was transmitted to the Western worlds and became the foundation by which the Western science prospered." The Naga, the Maya and other seats of civilizations, all inherited this
hieratic numerals from this Luoshu. (정연규 저,『Ancient Korea and the dawn of human history on the Pamirs』에서)
“미국의 수학자 수웨쯔는 그의 저서『낙서의 유산』이란 책에서 낙서는 성스러운 의식에 쓰이는 수 문자이며, 이 문자가 서구 세계에 전파되어 서구의 과학이 번영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인도의 나가(Naga) 족과 마야족 그리고 모든 다른 문명을 성취한 국가들도 락서의 이 聖用數문자를 수용했다.”
그의 후예는 갈리어 風山에 살았으니 풍으로 성씨를 정했다.
지금 산서성의 濟水에 羲族의 옛 흔적이 남아 있다.
『漢書』에 “東平國任城은 태호의 후손인 風夷氏의 영역이었다고 하며, 현재 위치는 산동성 濟寧市동북쪽 연주(兗州)인데,연주는 고대 중국 9주의 하나였다.”라고 했다. 또한『大辨經』에는 복희의 능이 산동성 魚臺縣의 남쪽 風縣, 沛縣에 있으며, 복희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연주와 어대현은 제녕시에 속하며, 서로 가까운 곳이라고 한다. 소호는 태호의 손자이다.소호씨는 산동반도-淮岱에 그의 유적이 남아 있다.
이들은 인도의 마야족과 같이 해양 족이 사용하던 결승문자를 사용했고, 뱀을 토템으로 하는 하수농경민이란 사실도 확인하게 되었다. 여와씨는 엘람 드라비다(Elam Dravida) 족과 같이 뱀 토템 족이었다. 왜냐하면 베다(Veda)의 기록에 따르면, 드라비다 사람은 뱀의 신 빌도라를 숭배하고 아리안 족과 싸울때 뱀 토템 족으로 알려져 있다.
共工씨가 여와의 나라에 침범하여 왔으나 祝融씨가 물리쳤다. 공공씨가 여와의 나라에 홍수를 일으켜 혼란에 빠지게 했다. 여와씨는 이 홍수를 막아 冀州땅을 구하였다. 共工은 요나라 때에는 물을 다스리는 관이며, 순나라 때에는 百工의 관이며, 漢나라 때에는 少府의 관이다. 공공족이 가지고 있던 최고의 능력은 물을 다스리는 수관인 동시에 공사였다. 공공이 물과 물의 신을 숭배하던 사람들로 물의 혜택을 받으며 생활하던 하수농경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천산 너머의 중앙아세아의 어느 곳에서 살던 사람들일 것이다. 동남아에서는 일찍이 농업이 발달한 지역일 뿐만이 아니라 양소문화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인 채도가 발생한 지역이기도 하고, 그곳의 하수농경민들도 뱀을 숭배했다. 공공족이 뱀 신을 숭배했다고 하는 것은 고전에서 복희, 여와상과 같이 인면사신으로 표현되고 있다.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의 고향이라고 하는 阿喩陀가 인도남부의 타밀나두 주의 아요디야 쿠빰(Ayodhya Kuppam)이며, 아요디야는 인도의 12 성스러운 도시(Rishi)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용은 뱀을 신격화하여 부루는 인도에는 학문과 종교를 가르치는 ‘일곱 성스러운 도시’를 가리켜 리쉬(Rishi)라고 하였다. 이 7개의 리쉬를 7개의 뱀의 머리로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리쉬를 용성국이라고 했다.
Ⅶ. 맺는 말
신화란 자연과 사회현상을 神格으로 한 설화인데 신화에는 역사적, 종교적, 문학적 제요소가 未分化상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신화는 인류의 상고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사료가 되고있다. 신화가 없는 고대사는 없다고 해도 과도한 말이 아니다.
용과 해의 신화를 통해 역대 왕들의 탄생사를 확인할 수 있었고, 인면사신의 복희 여와 상을 통하여 하수농경민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었고, 신농의 우수신상을 통하여 목축민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단군의 탄생 신화에 등장하는 곰을 통하여 북방계 수렵인들의 사실도 이해할 수 있었다.
『부도지』에 따르면, 파미르고원의 마고성에서 출발한 우리 겨레는 지구상의 동서남북에 사방으로 이동하여 天道정치의 한국 문화를 전 세계에 심어놓았다. 天符의 한국 문화는 메소포타미아, 인도, 이집트, 그리스, 프랑스, 영국, 동남아시아, 태평양, 아메리카 대륙에 歷法, 거석, 세석기, 빗살무늬 토기, 신화, 전설, 종교, 철학, 천문학, 음악, 수학에 그 발자취를 남겨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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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ncient Korea and the Dawn of Human History on the Pamirs
Hankook Univ. of Foreign Studies, Former prof. Chung Yen-kyu
written by the author, makes the assertion that the culture of Mago Castle on the Pamirs dates more than 70,000 years ago, and that members of this race gradually migrated throughout the world, transplanting their culture, mythology and the traditional legends to the colonies as they went. For example, There is a mythology that Dangun was born between the eighteenth Hwanwung king, Keobuldan(居弗檀) and Female Bear. A female bear suggests that she was from the Youwung State(有熊國, A Bear State) which had been one of the feudal states of Hwanwung. Now there stands a statue of the Bear Woman in the Dangun Park of Mancheonseong(滿天星), Manchuria, which tells the vivid legend of Dangun's birth. Evidence of bear-worship is also found in the countless stories of the Siberians, Ainus, Eskimos, and American aboriginals just as Dangun's birth. The bear was called /kam, keom, keum, kom, kaema, koma/. In the eastern Siberia, the shaman was called kam, and in Turkey, Mongol, Silla and Ainu, the god was called Kam or Kamui. In the theocratic society, the shaman was the supreme ruler then.
This paper is to restore the ancient Korean history by tracing the mythology and legend of Mago, Bear, Dragon and Snake, Cow Head and Ra Ma.
All the religions, beliefs, principles and philosophies have a common origin in the Mago Castle on the Pamirs 70,000 years old. In this sense, we are all the global brothers and sisters who share the blood of the same ancestors.
The belief of Cheunbugeong(天符經), Hado(河圖), Luoshu (洛書), Taoism(道敎) and so on surely leads us to live peacefully and harmoniously without struggle and disaster in this global society as sisters and brothers. This ideal can be realized by your keeping Tao of Nature, the Sacred Inspired Writings of Mago Castle on the Pamirs, the cradle and center of human religion and science. This was the Religion of the Motherland, and the First Religion of Man.
Key Word : Mago Castle, Dangun, Hwanwung king, Youwung State(有熊國, A Bear State), Cheunbugeong(天符經), Hado(河圖), Luoshu(洛書), Taoism(道敎)
투고일 2009년 10월23일
심사시작 일자 2009년 11월10일
심사완료일 2009년 11월30일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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