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박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멈추게 한다. 꽁꽁 언 냇물과 달리 시린 몸을 녹여 주기도 하였다. 동네마다 여러 개의 우물이 있었다. 마을마다 유난히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찾는 우물이 따로 있다.
가뭄으로 개울물이 줄어 바닥 돌멩이에 하얀 꽃가지를 드러내어도 우물물의 양은 줄어들지 않는다. 물맛까지 좋으면 더할 것이 없다. 어른 네댓 명의 키를 합친 것보다 깊은 우물이다. 팔을 양쪽으로 펼친 정도의 넓이다. 바닥에는 작은 돌이 채워져 있고 원통 둘레는 큰 돌덩이로 쌓아 올렸다. 맨 위에는 시멘트로 된 원형 관이 얹혔다. 동네 사람들은 따로 말하지 않아도 찾아간다. 모두가 찾는 우물은 마을에 기껏해야 한두 개에 지나지 않아 눈치가 여간 아니다. 집마다 물동이를 머리에 이거나 물지게를 진 사람들이 줄을 선다. 물 긷는 일은 웬만큼 체격이 되는 여자애와 아기를 등에 업은 아주머니들이 나선다.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려고 길바닥이 희미하게 드러나는 동이 트기 전부터 물 나르기에 나선다.
우물은 관리도 잘 이루어졌다. 일 년에 한두 차례 우물물을 전부 퍼낸다. 가라앉은 찌꺼기나 물때를 웅덩이 바깥으로 보낸다. 미리 준비한 기다란 나무 사다리가 내려지고 몸이 가벼운 사람이 내려가 맡는다. 굼뜬 사람은 꿈도 꾸지 않는다. 줄에 매달린 오물통 끌어올리기를 반복한다. 이어달리기식 움직임이 서로를 껴안는다. 이 우물물을 먹고 마시는 사람들은 한 집에 한 명씩 참여해야 했다. 행여 대청소에 참석하지 않았을지라도 당장 불이익은 따로 없다.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우물가에서 마주칠 때마다 따가운 눈총은 피하지 못한다. 가끔은 두레박을 그들만 쓰도록 몰래 감추는 딴지를 놓기도 한다. 물 긷는 도구가 없으니 그야말로 그림의 떡인 셈이다.
두레박은 양철이나 나무를 재료로 만들었다. 이후 고무나 합성수지 제품이 나오기도 하였다. 뭐니 뭐니 해도 두레박 중에는 철모 바가지로 불리는 것이 으뜸인듯하다. 오래 쓸 수 있어 물바가지나 똥바가지의 쓰임새로 선호했다. 여느 재료로 만든 것보다 재질이 탄력성이 있어 한 번 만들어 놓으면 반영구적으로 쓰였다.
우물 중에 동네 사람들의 이용이 덜한 곳은 활용도가 따로 있다. 대나무골 우물은 여름철에 물이 시원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두레박으로 끌어올린 물을 한 모금 넘기면 별천지가 따로 없다. 일터에서 돌아온 남자들은 웃통을 벗고 등줄기부터 물을 내리붓는다. 어깨와 머리로 물이 내려오면 몸은 진저리를 친다. 물방울이 바지를 타고 속옷 젖는 것도 잊은 채 발걸음을 저절로 옮긴다. 땀이 멈추고 땀구멍이 조여들어 피부는 닭살이 돋는다.
우물은 마을 냉장고 역할도 해낸다. 항아리는 줄을 매달아 우물 속에 내린다. 집마다 그날그날의 반찬거리를 엿볼 수 있다. 두레박으로 물을 퍼다가 반찬 통을 건드리는 날은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식구들과 밥상에 둘러앉아 있을 기력도 없다. 어른들의 지청구에 밥맛을 잃을 때도 생긴다. 지뢰밭을 피하듯 우물 속 장애물을 이리저리 구석으로 몰아 놓는 연습이 필요했다.
어쩌다 두레박 줄을 놓쳐 우물에 빠뜨리는 날은 한바탕 숨바꼭질이 벌어진다. 아이들은 방법은 찾지 못한다. 일 나간 어른 대신 물 항아리를 채워 놓는 것이 하루 일 중의 우선이다. 물독만 떠올리다 그저 울음보를 터뜨릴 뿐이다. 집안 어른들이 돌아올 때까지 오도 가지도 못하고 매여 있다. 기다란 대나무 끝에 새끼줄로 낫 가락을 묶어 휘휘 낚시하듯 두레박을 건져 올린다. 어른들의 경험을 빌리면서 아이는 그제야 울음을 멈춘다.
우물 터는 동네의 크고 작은 일을 전해준다. 좋은 일은 좋은 대로 아닌 일은 아닌 대로 퍼져 나간다. 가끔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기도 한다. 출처를 알지 못하는 소문은 살이 붙어, 부풀어진 솜뭉치처럼 겹겹이 펼쳐진다. 예나 지금이나 남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쉽고 여차하면 솜사탕처럼 부풀려지기 마련인가 보다. 작은 정을 마련해 주는 터전마저도 이제는 사라져 버렸다.
시골집에는 작은 방 건너 감나무 옆에 자그마한 우물이 있다. 뚜껑이 덮여 있어 처음 오는 사람은 우물의 존재조차 모를 지경이다. 우물물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김이 서려 미지근함을 준다. 어른 세 발 정도의 깊이라 가뭄이 있을 때면 아예 바닥을 드러낸다. 물을 몇 두레박 퍼내고 나면 흙탕물이 일렁거린다. 한 뼘 정도의 대문 밖 텃밭 채소에다 물 주기를 하면 이랑에 스며든 흔적이 보일 듯 말 듯 하다. 새로운 발견이다. 바닥 토양의 성질을 드러낸다. 강물이 넘쳐 물벼락을 맞이할 때도 굳건하게 지켜왔다. 멀고 먼 세월 동안 버텨 온 생활의 기반이었다. 물이 가까이 있었기에 생활의 안정을 누렸다.
두레박 쓰는 일은 이제는 보기 어렵다. 어지간한 외딴 지역이라도 집마다 수도가 놓였다. 꼭지만 열면 물이 원하는 대로 얻어지지 않는가. 이제는 그림에서나 확인할 수 있는 이름이 될성싶다.
우물이나 두레박처럼 우리는 잊고 산다. 도리어 잊혀 가는 일이 많다. 지난날 여러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이제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사용하기에 손에 와 닿고 편하게 느껴져 이전의 형상은 천덕꾸러기가 되기도 한다. 앞선 세대가 애지중지하던 것 중에 지금은 소용이 없는 쓰임도 있다. 물건만이 아니다. 생각도 달라졌다. 어른의 태도는 낡고 보잘것없다는 인식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새로운 것이 나오면 편리성에 따라 옛것은 돌아보지도 않고 버려지기도 한다.
지혜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연륜이 다름을 증명해 준다. 전부를 말하지는 않는다. 할아버지가 서너 살 손주에게도 얻을 것이 있다 하지 않나. 어느 쪽으로든 치우치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과거와 현재도 중요하다. 새로운 것만 찾다 보면 지나간 세월 속의 흔적은 어쩌나. 옛것을 익혀서 미루어 새것을 안다. 좋은 것 새로운 것만 좇기보다 어른의 지혜를 따라가 보자. 잊혀 가는 지난날에서 오늘과 내일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봄이 오면 마당 우물가에 앵두나무를 한 그루 심어야겠다. 의자를 걸쳐 놓고 이웃집 어른과 함께 차를 마셔볼까. 가을에는 들꽃을 화분에 옮겨 담아 하얗고 노란 구절초를 곁에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