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 91칙 염관(官)화상과 무소뿔 부채
마음부채 놓고 왈가왈부…바람은 어디에?
{벽암록} 91칙은 염관화상과 무소뿔 부채를 주제로 한 다음과 같은 선문답이다.
염관화상이 어느 날 하루 시자를 불러 말했다.
“무소뿔 부채를 가져오너라!"
시자가 말했다.
"부채가 부서졌습니다."
염관화상이 말했다.
"부채가 부서졌다면 나에게 무소를 되돌려 다오."
시자는 대꾸를 하지 못했다.
투자(投子)선사가 말했다.
"사양치 않고 갖다 드리겠습니다만, 뿔이 온전치 못할까 걱정입니다."
설두선사가 말(拈)했다.
"나는 온전치 못한 뿔을 요구한다."
석상(石霜)선사가 말했다.
"화상께 되돌려 줄 것이 없다."
설두선사가 말했다.
"무소는 아직 그대로 있다."
자복(資福)선사는 일원상을 그리고, 그 가운데 우(牛)자를 썼다.
설두선사가 말했다.
"조금 일찍이 왜 빨리 제시하지 않았는가?"
보복(保福)선사가 말했다.
"화상은 춘추가 높으니 따로 사람에게 청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설두선사가 말했다.
"고생을 했지만 공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부채질해야 시원한 바람이 일 듯
본래 갖춘 불성도 닦아야만 체득
본칙의 공안은 {전등록} 7권 염관제안(官齊安)전에 보인다. 염관(755~817)화상은 마조의 법을 이은 선승으로 항주 염관의 해창원에 거주하며 선법을 펼쳤다.
그의 전기는 노간구(盧簡求)가 지은 <탑비>를 비롯하여 {조당집} 15권, {송고승전} 11권 등에 전하고 있는데, 속성이 이씨, 당 왕실의 후손으로서 선종(宣宗)이 한때 그의 제자가 되었으며, 신라의 범일(梵日)국사도 그의 법을 계승했다. 황제는 오공(悟空)선사라는 시호를 하사했다.
본칙은 날씨가 무더운 여름철에 선승들이 부채를 사용하면서 나눈 선문답이다.
{아함경}에도 아난과 라운이 부채를 손에 들고 세존을 시중한 사례가 있으며,
{선원청규}에도 옆 사람이 바람을 싫어하면 부채를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주의가 보인다.
{연등회요} 4권에,
마곡보철(寶徹)선사가 부채를 사용하자,
어떤 스님이 "바람의 성품(風性)이 항상 움직이며 일체처에 편만되어 있는데 부채를 굳이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까?"라고 질문하자,
"그대는 바람의 성품이 편만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바람 그 자체를 모르는군."
"바람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마곡은 잠자코 부채를 부쳤다는 일단이 보인다.
바람이 일체처에 두루하지만, 부채질을 하지 않으면 바람은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일체 중생이 불성을 구족하고 있지만 원력을 세우고 발심수행해야 보리 열반의 경지를 체득할 수 있는 것이다.
염관화상이 시자에게 "무소뿔 부채를 가져오너라!"고 말했다.
옛날에는 무소뿔로 부채를 만들었다고 한다.
염관화상은 부채가 부서졌다는 사실을 알면서 일부러 시자의 안목을 열어주기 위해서 부채를 가져오라 했다.
부채에 용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자의 본래면목을 제시해보라는 지시이다.
시자는 부채라는 사물에만 집착하여 "부채가 부서져 버렸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염관화상은 "부채가 부서졌다면 그 무소 뿔 부채의 골격은 남아 있겠지. 그것이라도 가지고 오라."
즉 부서진 부채는 그만두고 그대의 본래면목이나 제시해 보라니까. 시자는 화상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여 대답을 하지 못했다.
투자대동(投子大同)선사가 시자를 대신하여 말했다.
"사양치 않고 화상께 갖다 드리겠습니다만, 부채가 부서져 뿔의 모양이 일그러졌습니다."
즉 본래면목(부채)은 그대로 언어 문자로 설명하거나 제시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손으로 집어 들거나 언어 문자로 설명하면 본래면목을 상대적인 언어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한 부분만을 표현하게 되기 때문에, 진여법성 그 전체를 온전하게 제시할 수가 없게 된다는 말이다.
설두선사는 투자선사의 대어(代語)를 꼬집어서, "나는 온전치 못한 뿔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즉 제시할 수도 없는 본래면목을 제시할 수가 있는가?
온전치 못하다고 말하는데, 온전치 못한 진여법성이 있는가?
그런 모습을 제시해 보시요라고 날카롭게 꼬집어서 비판하고 있는 말이다.
석상경제(石霜慶諸)선사도 시자를 대신해서,
"화상께 되돌려드리고 싶은데 나에게 한 물건도 드릴 것이 없다"고 말했다.
본래 무일물이며 무상 무아인 본래면목을 어떻게 돌려 드릴 수가 있겠는가?
설두선사는 석상의 대어를 꼬집어서,
"무소는 아직 그대로 있다"고 말했다.
석상선사가 없다고 말했지만 본래면목(무소)은 항상 여전히 있는 것이며, 되돌려 준다고 결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복여보(資福如寶)선사는 하나의 둥근 원상을 그리고, 그 가운데 우(牛)자를 써서 무소는 여기에 있습니다 라고 했다.
{벽암록} 33칙에도 자복선사는 일원상(一圓相)으로 법문을 제시하고 있다.
일원상은 시방삼세에 두루하는 우주를 표현하는데, 그 가운데 우(牛)자를 써서 염관화상에게 무소(본래면목)의 골격을 염관화상께 돌려드리고 있다.
자복의 대어에 대하여 설두선사는 "조금 일찍이 왜 빨리 제시하지 않았는가?"라고 말했다.
그런 훌륭한 소가 있었다면 왜 좀 더 빨리 가지고 왔어야지, 지금까지 뭐하고 있는가라고 야유하고 있다.
원오도 "그림자를 가지고 노는 한심한 놈"이라고 착어하고 있다.
마지막에 설봉의 제자 보복종전(保福從展)선사가 시자를 대신하여 말했다.
"화상은 춘추가 높으니 다른 사람에게 (시자를) 청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화상께서 아까는 부채를 가지고 오라 하시고, 이번에는 무소를 가지고 오라 하시니 나이가 들어 망령이 든 것 같군요. 나로서 도저히 화상의 시자가 될 수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시자를 맡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즉 본래면목은 남에게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화상 자신이 찾아야 할 일이라고 한 말이다.
설두선사가 보복의 대어에 대하여 "애써 노력했지만 공(功)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라고 비꼬며 평했다.
그대가 지금 여기서 시자로 살면서 수행하지 않고 이곳을 떠나간다면 고행하고 수행해도 영원히 아무런 깨달음과 본래면목을 체득하지 못하고 만다고 염관화상을 대신하여 지적한 말이다.
이공안은 염관화상과 시자의 대화를 중심으로 투자, 석상, 자복, 보복 등 4명의 선승들이 시자의 대변을 한 말에 대하여 설두는 염관화상을 대변한 답변을 싣고 있다.
설두화상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고 있다.
"무소뿔 부채를 오랫동안 사용했네."
무소뿔 부채라는 본래면목은 사람들이 본래 구족하고 있기에 언제나 사용하고 있다.
"물어보면 의외로 아무도 모르네."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본래면목을 물어보면 모두가 잘 모른다. 매일 자신의 삶으로 사용하면서도 알지 못한다.
"무한한 청풍(淸風)과 뿔(頭角)"
석상 등 4인 선승의 대어에 대하여 읊었다.
무소이기에 뿔이라고 하고, 부채이기에 바람도 일으킨다고 했지만,
"구름과 비와 똑같아 뒤쫓기 어렵다."
자취나 흔적이 없기에 포착할 수가 없다. 설두화상이 다시 말했다.
"선객들이여! 각기 깨달음을 체득하는 한마디(一轉語)를 말해라."
앞의 4인 선승은 이 공안에 대하여 무한한 청풍을 일으키고, 무소뿔의 위용을 거듭 떨쳤는데, 그대들도 심기를 일전시키는 한 마디를 말해 보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설두화상은 염관화상과 똑같이 다시 말했다.
"부채가 부서졌다면 무소를 되돌려다오."
이때 어떤 스님이 나오면서 말했다.
"대중들이여! 설법이 끝났으니 선당으로 가자!"
상당설법이 끝났으니 각자 선당에 가서 편히 쉬라는 말은 주지가 해야 하는 말이다.
이 스님은 설두화상이 대중에게 요구한 한 마디(一轉語)에 대한 대답으로 한 말이다.
원오가 "도적이 떠난 뒤에 활을 당겼군"이라고 착어한 것처럼,
설두화상이 처음 한마디를 해 보라고 했을 때 곧장 말했어야지, 지금 늦게 서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래서 설두화상이 고함을 한번 치고,
"낚시를 던져 고래를 낚으려 했더니 겨우 새우를 낚을 줄이야"라는 말을 마치고, 곧 법석에서 내려왔다.
대중들에게 안목있는 한 마디의 견해를 말하라고 한 것은 고래를 낚으려 한 것인데, 겨우 새우 한 마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