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서울 도심 속에 있는 사찰, 정릉 흥천사(興天寺)를 들렀습니다.
위치는 성북구 돈암동? 정릉동에 위치해 있으며 북한산이 아닌 북악산 길에 있습니다.
흥천사는 조선조 건국조인 이성계의 둘째부인인 신덕왕후의 능침사찰로 바로 옆 300M거리에
정릉이 있습니다.
정릉은 조선조 초기 왕자의 난을 일으켰던 태종의 아우인 방과, 방석의 어머니였던 신덕왕후 강씨의 묘소입니다.
고려시대야 말로 불교의 나라였으며 인구를 당시 300만으로 추정하면 1/3이 승려로 100만명이 승려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물론 국교가 불교니 90%이상이 불교신자임을 두말할 필요가 없을겁니다.
그렇타 보니 훌륭한 스님들도 많이 나옵니다. 대각국사 의천(義天) · 보조국사 지눌(知訥) · 태고 보우(普愚), 나옹화상, 도선국사등등등 이고 정치권력에 타합한 신돈도 나옵니다.
하지만 중생세계에서의 불국토는 너무 어려운 과제인 것만은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종교가 흥하면 정치권력과 타협하게 되고 승려의 수가 인구의 1/3이면 가히 불국토라 할 수 있지만 고려시대는 당시의 세계 권력은 원나라(몽골)의 것이었고 국가 내부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불미스러움은 불교를 배척하게되는 원인이 되어 이성계와 정도전등 신진 사대부들이 유교라는 주자학 신봉자들이 새로운 정치권력을 만들고자 고려를 뒤엎고 조선을 만들어 낸 사실입니다. 조선 또한 유교라는 인간의 덕목에 치우친 이념으로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상적 상상에 사대부와 씨족 중심의 권력에 농단 당해 우물안 개구리로 조선을 지탱하고 결국은 일본에 병합되는 치욕을 안겨주었습니다.
과거를 알아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봉건 영주의 사회에서 사대부의 시대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주의 사회로 역사는 흐르고 있습니다.
일부 국가는 전제주의 아래에서 그 나라 국민들은 그러니 저러니 살고 있고....
흥천사 입구 오르는 언덕길 입니다.
흥천사가 과거에는 인적이 드문 산길이었겠지만 지금은 주변이 건물로 둘러 쌓여진 공간입니다.
흥천사 이력입니다.
국고와 지방비와 사찰재정으로 신축한 흥천사 무량수전과 약사전 종무소가 있는 건물입니다.
흥천사 구 건축물 입니다. 고풍이 나네요. 대중방(대방)은 염불과 참선등, 복합적인 수행공간으로 조선조말 대원군이 지은 것이랍니다.
흥천사 대방(대중방) 내 부처님을 모시고 용상방이 걸려 있습니다.
흥천사 용상방.
흥천사 대방 부처님의 단아하고 정갈한 모습.
흥천사 대방 전경.
흥천사 신축건물 2층에 자리한 무량수전.
도심의 사찰이 신축건물이다 보니 신도님들이 계실 공간이 넉넉합니다.
흥천사 신축 3층의 약사전 석조약사여래 입니다.
석조 지장보살상입니다.
석조 아미타여래상입니다.
신축 3층 약사전 네부에도 신도님들의 기도 공간도 넓어 좋아 보입니다.
흥천사 신축 3층의 약사전.
흥천사 신축 3층의 약사전 옆에 자리한 카페, 신도님들이 모여서 차를 마시며 한담을 하고 계십니다.
무료 카페 문구.
흥천사 신축 1층의 종무소.
흥천사 어린이집.
흥천사 삼각선원.
도심속에 위치하고 제가 살고 있는 곳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흥천사지만 왔다 갔다만 했을 뿐 부처님께 인사를 못 드리다가 모처럼 시간을 내어 흥천사의 이곳저곳를 둘러 보았습니다.
계속.............
도반님들 건강하세요 _()_ _()_ _()_
도반님들 행복하세요 _()_ _()_ _()_
도반님들 성불하세요 _()_ _()_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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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紀 2568年 (檀紀 4357年 , 西紀 2024年 ) 7月 3日 水曜日 (陰曆 5월 28일 무진)
一 休 合掌 _()_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