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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은 포천시·동두천시, 서쪽은 파주시·고양시, 남쪽은 서울시·의정부시, 북쪽은 연천군에 접한다.
시의 중앙부를 강화천(江華川)이 저위 침식구릉지를 북류하면서 연안에 좁은 충적지를 형성하며 임진강에 유입하는데, 지세는 대체로 험한 산지를 이룬다. 북동부의 동두천시와 남부의 의정부시 사이에는 남북주향(南北走向)의 단층이 있는데, 이 단층선은 주변보다 침식이 많이 되어 평탄하므로 주요 교통로로 이용된다.
중요한 산으로는 북쪽에 감악산(紺嶽山:675m), 동쪽에 칠봉산(七峰山:506m), 남쪽에 앵무봉(鸚鵡峰:622m) 등이 솟아 분지형 지형을 이룬다.
내륙에 있으므로 한서의 차가 심하여 1월 평균기온 -5.4℃, 8월 평균기온 26℃이다. 또 강수량의 편차도 큰 편이며 연강수량 1,300mm로, 한국에서 비가 많이 내리는 곳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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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지명 > 시
경기도 양주시
삼국시대 : 매성군(買省郡), 창화군(昌化郡)
통일신라시대 : 내소군(來蘇郡)
고려시대 : 견주(見州)
조선시대 : 양주목(楊州牧)
일제강점기 : 양주군(楊州郡)
경기도의 동북 내륙부에 위치한 시이다. 양주라는 지명은 고려 초기 문종 때 서울이 될 만한 역사적 배경과 자격을 충분히 갖추었다 하여 '양주'라 부르게 되었다. 『여지도서』에 의하면, 양주시는 삼국 시대에 군사적 요충지로서 백제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고구려의 남진으로 고구려 매성군 또는 창화군으로 불렀으며, 다시 백제 땅으로 환원되는 등 삼국의 각축전에 따라 그 변화가 심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757년)에는 내소군에, 고려 태조때에는 견주에 속하였다. 그리고 조선 1397년(태조 6)에는 치소(治所)를 양주시 주내면 고읍리로 정하고 양주라 칭하였으며, 1466년(세조 2)에 양주목으로 승격하였다. 양주는 『팔도군현지도』에 의하면 읍치가 양주군 주내면 유양리에 있었으며, 고을의 진산은 읍치 위쪽의 불곡산(470m)에 있었다. 양주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이색의 시에 "깎아지른 듯한 세 개의 영이 푸른 하늘에 꽂힌 듯한데, 가파른 길이 얼어붙어 말이 못 가네."라고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같은 책에 기록된 권우(權遇)의 풍양현 시에 "나귀를 타니 야취(野趣)가 많아, 천천히 저녁 빛 속에 걷는다. 역로(驛路)에는 모래와 먼지가 어둡고, 고을 성에는 수목이 울창하다. 산은 화악과 연이어서 많고, 물은 한수에 들어가서 길다. 이곳이 뽕나무 뿌리에 알맞아서 칠경 초당(草堂) 짓기로 기약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양주는 "세 봉우리가 우뚝 빼어나서 높이 하늘에 들어가 있고 논이 10분의 3이 좀 넘는다. 양주도호부 동쪽 도혈리에 도기소가 있고, 남쪽에 나라의 말을 놓아먹이는 목장과 동남쪽에 봉화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에 양주는 "농업과 누에치는 일을 주업으로 하며 일 년 내내 열심히 일한다. 토지가 메마르고 백성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장사와 수공업도 즐겨 종사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조가 양주 목장에 다녀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시대 양주 땅에 속하는 지금의 행정구역은 남면을 제외한 양주군, 와부읍과 조안면을 제외한 남양주시, 구리시, 동두천시, 연천군 전곡읍 · 청산면, 고양시 덕양구 일부, 서울특별시 은평구 일부, 도봉구 · 강북구 · 노원구 · 중랑구 일대 등이다. 『해동지도』에 양주는 조선 태조릉인 건원릉(健元陵)을 비롯하여 광릉(光陵) · 현릉(顯陵) 등 많은 능묘가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한성(漢城)의 동대문에서 지방으로 가는 모든 길은 양주를 지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양주의 행정구역 변화를 살펴보면 1832년에 양주군으로 지정되어 그 체제를 유지하다가 1980년에 남양주군이 분리되어 나가고 2003년에 양주시로 승격되었다.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2008.12, 국토지리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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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
37°47′06″N 127°02′45″E / 37.785131°N 127.04572°E / 37.785131; 127.04572
| 현황 | |
|---|---|
| 면적 | 310.34 km² |
| 세대 | 68,764가구 (2008.07.31) |
| 총인구 | 179,923명 (2008.07.31) |
| 읍 | 1개 |
| 면 | 4개 |
| 행정동 | 6개 |
| 법정동 | 17개 |
| 시장 | 현삼식 |
| 시청 | |
| 소재지 | 부흥로 1533 (남방동 1-1) |
| 홈페이지 | http://www.yangju.go.kr |
| 상징 | |
| 시목 | 소나무 |
| 시화 | 개나리 |
| 시조 | 까치 |
양주시(楊州市)는 대한민국 경기도 중북부에 있는 시이다. 동쪽은 포천시와 동두천시, 서쪽은 고양시와 파주시, 남쪽은 의정부시와 서울특별시 강북구, 북쪽은 연천군과 접한다.
목차[숨기기] |
양주(楊州)는 본래 현재의 서울 강북지역인 한양군(漢陽郡)을 고려 태조 때 양주로 개칭한 것에서 유래한다. 현재의 양주지역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고구려가 각축을 벌인 군사적 요충지로서, 당시에는 매성군(買城郡) 또는 마홀(馬忽)로 불렸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757년)에는 내소군(來蘇郡)으로 고쳤다가 고려 태조 때에 견주(見州)로 개칭했다.
양주시는 경기도의 중북부에 위치해 있으며, 동서로 20㎞, 남북으로 30㎞에 이른다. 대체로 산이 많아 평지가 적고, 서·남·북쪽 방면에 흐르는 하천변에 평지가 산재해 있다.[3]
양주시는 한강의 지류인 중랑천과 임진강의 지류인 신천(莘川)의 발원지로, 자연경관이 수려해 한국 100대 명산에 드는 도봉산(북한산), 감악산 등이 있는 곳이다. 장흥, 일영, 송추, 기산 등 계곡과 저수지가 많아 수도권의 1일 생활관광지로 이름나 있다. 또한, 장흥아트밸리, 송암천문대, 장흥수목원 등 새로운 문화 관광지도 각광받고 있다.
양주시의 행정 구역은 1읍 4면 6동(233통·리 1,914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양주시의 면적은 310㎢이며, 인구는 2012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7만7,578 세대, 20만7,871명이다. 동(洞)지역인 양주(28.6%)·회천(34.2%)에 전체 인구의 62.8%가 거주한다. 인구가 20만 명이 넘지만, 인근 동두천시(인구 9만6천명)와 국회의원 선거구를 공유하고 있다.[4]
| 이름 | 한자 | 면적 (㎢) | 인구 (명) | 행정 지도 |
|---|---|---|---|---|
| 백석읍 | 白石邑 | 41.4 | 15,023 | |
| 광적면 | 廣積面 | 48.49 | 6,312 | |
| 남면 | 南面 | 36.54 | 4,329 | |
| 장흥면 | 長興洞 | 63 | 5,482 | |
| 은현면 | 隱縣洞 | 34.54 | 4,208 | |
| 양주1동 | 楊州洞 | 23.64 | 7,114 | |
| 양주2동 | 19.5 | 52,335 | ||
| 회천1동 | 檜泉洞 | 10.54 | 7,224 | |
| 회천2동 | 11.18 | 29,272 | ||
| 회천3동 | 3.81 | 29,668 | ||
| 회천4동 | 17.13 | 5,062 |
온릉은 조선 중종의 원비인 단경왕후 신씨의 능이다. 사적 제210호로 지정된 문화재로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산 19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감악산은 양주시와 경기도 파주시, 연천군 사이에 있는 높이 675m의 산이다. 옛부터 바위 사이로 검은빛과 푸른빛이 동시에 쏟아져 나온다 하여 감악(紺岳), 즉 감색 바위산이라 불렀다.
1,300여 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고, 북한산성과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유지를 비롯한 많은 문화유적이 있어 1983년 4월 2일에 15번째로 국립공원에 지정되었다. 면적은 약 79.916㎢이다. 우이령을 중심으로 남쪽의 북한산 지역과 북쪽의 도봉산 지역으로 구분된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공원의 남동쪽은 서울특별시 도봉·성북·종로·은평구 등 4개 구에, 북서쪽은 경기도 고양·양주·의정부시에 속한다. 연평균 탐방객이 500만명에 이르러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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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청 소재지: 수원시 팔달구 | |
양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