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이어받을 수 있던 왕의 자리와 그 모든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홀로 수행의 길로 들어섰던 싯다르타 왕자는, 늙은 부왕과 가엾은 아내와 아들 그리고 모든 신하와 성민을 버린 죄책감 속에서, 그러나 자기 자신은 물론 그 모든 이들을 생로병사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속에, 허공을 밟는 듯한 걸음을 내어 디딜 때마다, 과거에 대한 어찌할 수 없는 미련과 그리움을 다스리며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듯 정처 없이 걷던 왕자는 인적 없는 깊은 산길을 걷다가 사슴 사냥꾼을 만났는데, 그가 사냥꾼다운 옷이 아닌 수행승들만이 입는 익은 감색의 낡은 ‘가사’를 입은채 사슴사냥을 하는 것을 이상히 여긴 왕자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사슴들을 잡아 죽여 파는 사냥꾼이 어째서 수행승들만이 입는 낡은 가사를 입고 사냥을 하시는 건가요?”
“가사를 입고 있으면 사슴들이 저를 수행승으로 착각하여 가까이 가도 안심할 것 같고, 안심한 사슴은 잡기가 쉬우니까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대답이었으나 왕자는, ‘그 어떤 옷을 입어도 사슴은 구분하지 못할 것이니, 자기 자신까지도 속이는 헛된 마음을 쓰는 것일 뿐’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입고 있던 갖가지 보석이 달린 값비싼 옷과 사냥꾼의 낡은 가사를 바꿔 입자고 했었고, 뜻밖의 횡재라고 생각했던 사냥꾼은 선 듯 왕자와 옷을 바꿔 입었습니다
위의 내용은 왕자가 왕자의 옷을 입고는 수행을 할 수 없는 이유도 있었겠으나, 우리는 그때에도 수행자 또는 성직자의 탈을 쓴 채 사냥꾼이 사슴을 속이면서 사냥을 하듯, 선량한 사람들을 속이면서 삿된 이익을 추구하던 사악한 자들이 많았던 것을 풍자(諷刺)한 내용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후 왕자는 스스로 삭발(削髮), 즉 머리를 깎은 다음 낡은 가사를 입은 채 맨발로 외롭고 고통스러운 수행을 시작했었는데, 그때부터 왕자는 자기 자신을 사문 ‘고오타마’라고 불러주기를 원했으니, 고오타마라는 이름은 출가했던 고대 인도 왕의 이름이었고, 그 후 역시 출가한 석가 족의 왕도 사용했었다고 하며, 그런 이름의 뜻은 ‘으뜸가는 땅’, ‘으뜸가는 소’, ‘악을 멸하는.’ 등등의 다양한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런 고오타마라는 이름을 싯다르타 왕자 역시 출가 후 수행자였을 때의 이름으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
“끊임없이 자라는 머리와 수염을 자라는 족족 깎아 내듯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은 생각을 그때그때 남김없이 없애면서 끝내는 늙음과 병듦과 죽음에서 벗어나겠노라.”
당시 인도인의 삭발(削髮), 즉 머리카락을 자름이란 흉악범에 대한 형벌 중 하나였기에 어느누구도 삭발을 하지 않았었는데, 고오타마는 깨닫기까지는 삭발한 채였다가 깨달은 후에는 삭발을 하지 않았으니, 그러함은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부처님을 상징하는 그 어떤 불상이나 불화들을 막론하고 머리카락을 깎지 않은 부처님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불교 수행자가 삭발을 하는 것은 수행을 함에 있어서 긴 머리카락을 다듬는 시간과 불편을 겪지 않으려는 이유도 있었으나, 특히 수행에 방해가 되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은 마음 등 망상과 번뇌가 일어날 때마다 머리카락을 잘라내듯이 마음을 다스리고, 또 한편 그런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서 흉악범으로 보아 접근을 하게 하지 않고자 함과, 더하여 사람들과의 세속적인 그 어떤 관계나 소통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삭발은 세계 그 어떤 종교인들이라든가 신앙인들도 하지 않았으며, 오직 부처님으로부터 시작된 불교에서만 행하고 있습니다만, 부처님 시대에 나타나 부처님의 영향을 받은 ‘마하비라’가 자기 자신은 물론 제자들에게 권장하여 삭발로서 수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 수행자 중에는 깨닫지 못했으면서도 머리를 기른다거나, 머리는 깎되 턱수염은 기를 수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중생심으로 자기 자신마저도 속이며, 턱수염을 길러 쓰다듬으면서 우쭐대며 불교인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이득을 챙기려는 자들이 있어, 그런 자들이야말로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만 살핀다.’는 격언과 같은 어리석어 사악한 자들이니,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등불로 삼고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아야 한다.’는 뜻인 ‘법등명 자등명(法燈明 自燈明)’이라는 가르침을 잘 새겨, 삭발을 했던 삭발을 하지 않았던, 깨달아서 머리를 길렀든 아니든, 그런 수행승들을 잘 살펴 각각의 자기 수준에 맞춰 참된 스승인가 아닌가를 잘 살펴 자기 자신을 올곧게 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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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맑고 건강하소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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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이나교’는 '니간타'라고 전해지던 단체를, 부처님과 같은 시대의 ‘마하비라’가 불교적인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 다시 정리한 다음, 그의 제자였던 ‘지나’에게 일러주어 지나로부터 전파되었으므로, ‘지나’의 이름이 그들 단체를 뜻하게 되어 ‘지나교’ 또는 ‘자이나교’로 불리게 되었으나, 자이나 교도들의 나체수행(裸体修行), 즉 몸에 실오라기 한 올도 걸치지 않은 채 수행을 하는 등등의 시대 흐름에 적응하지 못함과 함께 불교의 세계화에 밀려 현재에는 그 흔적만 남아 있는 종교아닌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