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선물 같은 글
봄호를 어떻게 시작할까 막막했는데 벌써 겨울호라니, 시간이 참 빨리
흐릅니다. 잡지를 받아보는 분께는 그저 종이에 적힌 글씨일 뿐일 수도 있
겠지만 편집부에서는 이 글씨가 읽는 이에게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
습니다. 원고가 늦게 들어온다는 소식에 마음을 졸이다가 필자가 아프다는
사연에는 안타까움을 쏟아냅니다. 다들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내셨나요?
이번 호에는 ‘선물’을 주제로 잡았습니다. 글이 읽는 이에게 어떤 선물이
된다면, 혹은 내가 읽은 글이 어떤 선물 같았는지를 함께 살펴보고 싶었습
니다.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책이 있듯이 우리에겐 어떤 책이 선물처럼 다
가왔을까요?
“작가의 서랍”에서는 김유진, 장세정 두 동시인과 만났습니다. 가을로 접
어들 때 두 분과 나눈 이야기를 「한 명의 독자를 위한 동시」로 정리했습니
다. 두 분이 들려주는 동시에 대한 열정은 따듯하고 사람 사는 온기로 가득
했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지면 관계상 이렇게 실을 수밖에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동시뿐만 아니라 동화와 평론 등 다양한 작품으로 독
자를 만나는 두 분이 계속 좋은 작품을 발표하시길 바라고 응원합니다.
“시선”에서는 김선희의 「책과 선물」을 실었습니다. 책만큼 쓸모없는 선
물도 없다는 경험과 책을 선물 받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글로 풀었습
니다. 책만큼 여러 감정이 드는 선물은 드뭅니다. 이 글에서는 내가 가졌던
‘내 책’이 주는 기쁨과 설렘을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도 그 마음이 전달되길 바랍니다.
겨울호에도 다양한 “동시”를 실었습니다.
인공지능에게 자신의 시를 분석하게 한 결과를 함께 실은 작품도 있고,
개미를 여러 각도로 본 시도 있습니다. 젖은 물웅덩이 앞 참새와 1층 아래에
사는 아이가 신발들에게 건네는 당부도 있고, 나이가 든 사람이 맞는 ‘요즘’
을 인공지능과 지혜를 언급합니다. 아이들이 상상력으로 빚어낸 장면을 어
른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비슷하지만 다른 모습들로 서로에게 의견을 묻고,
누구에게 말하지 못할 비밀을 토끼에게 털어놓는 모습도 사랑스럽습니다.
어미 새가 아기 새에게 바라는 마음은 사람도 마찬가지겠지요. 까먹는 것도
이유가 있고, 미워하는 마음을 옅게 할 방법도 시에서 찾습니다. 매일 꾸준
히 노력하는 ‘나’는 미래를 이미 만들고 있습니다. 서로 달라서 생기는 오해
도 이유가 있듯이요.
“동화”는 세 편을 실었습니다.
강인송의 「지유들」에서는 성은 다르지만 이름이 같은 지유 셋이 한 번에
모이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성까지 부르면 이상하니까, 별명으로 부르겠다
는 담임 선생님 말에 셋은 당황합니다. 셋 다 자기 이름이 마음에 썩 들지
않거든요. 그래서 내놓은 해결 방안이 기발합니다. 사실, 이름은 내가 짓는
경우보다 어른이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많잖아
요. 이 세 지유는 어떻게 불릴지 함께 살펴봅시다.
신혜선의 「평범한 분실물센터」에 등장하는 남은이를 소개합니다. 남은
이는 전학과 동시에 친구인 해영이와 이별했어요. 매일 붙어 다니던 해영이
와 헤어진 남은이는 외로움을 달랠 길이 없어요. 그런 남은이에게 해영이
가 선물을 보냅니다. 바로 좋아하는 ‘수달’ 인형이에요. 그리고 남은이 앞에
‘평범한, 평범하지 않은 분실물 센터’가 등장합니다. 남은이가 어떤 모험을
겪을까요?
이숙현의 「고, 라니」는 로드킬을 당한 고라니를 떠올리며, 산책길에서 만
난 또 다른 고라니와 마주하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이 자연에 끼치는 영향은
아주 많지만, 특히 로드킬처럼 생명을 앗아가는 사건은 해마다 늘어납니다.
고라니를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읽힙니다.
“청소년소설”은 정오늘의 「나 지금 언니 방에 와 있어」를 실었습니다. 이
모 딸인 유민 언니가 사라진 뒤, 그 방에 묵는 유선의 시선을 담았습니다.
유선은 공부를 더 열심히 하라는 엄마의 바람으로 이모네로 와 있지만, 아
이돌을 좋아하는 학생이지요. 유선은 사라진 언니가 남긴 흔적을 보면서
언니에게 할 말을 읊조립니다. 끝까지 읽고 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무엇
이 필요한지를 돌아보게 되는 글입니다.
“평론”은 세 편을 실었습니다.
김태호의 「그림책, 그 시각의 혁명」에서는 그림책의 시각성이 갖는 예술
적 특징을 살폈습니다. 어린이문학 중 두각을 나타내는 갈래지만 이에 대한
비평이 더 많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송수연은 「소수자의 ‘있음’, 그 존엄에 대하여- 『오늘부터 배프! 베프!』가
우리에게 물은 것」에서, 소수자를 불편하게 여기는 시선과 정면으로 마주
합니다. 어린이문학이 현실 속에서 무엇을 실현할 수 있는지, 어디를 돌아보
아야 하는지 질문합니다. 그 질문에 어떤 대답과 실천을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우경숙은 「‘이야기 동시집’이 가는 길- 『티나의 종이집』, 『오늘의 투명 일
기』, 『드라큘라의 시』를 중심으로」에서 이야기 동시집을 평합니다. 이야기
동시집만이 지닌 매력이 무엇인지, 그 매력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
인지를 찾아내고자 하는 분석이 돋보입니다.
정재은의 「어린이청소년SF의 ‘플러스알파’를 찾아서-‘2023 보슬비 SF’
를 기록하다」에서는 ‘어린이청소년SF연구공동체 플러스알파’가 주최하는
행사로, 한 해 동안 출간된 어린이청소년 SF의 경향을 돌아보고 그 중 추천
작을 선정하여 발표하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그 과정을 서술한 원고로,
2023년 어린이청소년 SF 작품들이 어떤 경향을 띄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답
니다.
“기획”은 ‘선물’에 집중했습니다. 내게 선물 같은 책, 혹은 선물처럼 다가
온 책을 함께 나누고자 했습니다.
김은중은 「당신 기억의 해시태그 #선물」에서 처음 받은 책 선물을 소개
합니다. 아버지가 선물한 홍길동전이에요. 작가로 이야기를 만드는 원천이
었지만 오래 잊고 있던, 홍길동전에 얽힌 역사는 참 깊습니다. 홍길동전을
읽던 아이는 작가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선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돌아봅니다.
김태호는 「세 번의 선물 같은 책」에서 작가라는 존재를 알게 해 준 책,
글쓰기 능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 책, 작가가 자기 책을 대하는
태도를 알게 해 준 책을 말합니다.
유지현은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람들에게」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
기 몇 개를 예로 들어 그 힘을 짚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든, 아주 작은 목소리이든, 그 누구에게나 이야기는 필요하니까요.
“어린이와 함께”에서 「선물은 마음을 담아 주는 거예요」라는 제목을 발
견하자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연말에는 어린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크리스마스가 있으니까요. 그때 받았던 선물은 기억에 없지만, 선물을 기다
렸던 두근거림은 아직 남아 있네요.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마음이 잘
읽힙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은 무엇일까요? “어린이와 함께”에
서 만난 아이들이 들려준 이야기에 뭉클했답니다. 글로 확인해 보시길 권합
니다.
“삐뚤빼뚤”에서 어린이글을 읽으면, 이 글을 쓴 어린이들을 만나고 싶답
니다. 반짝이는 생각, 속상해하는 마음이 잘 보여요. 담백한 글로 사람을 움
직이는 힘이 살아 있습니다.
“이야기는 어디에서 오는가”에서 이병승의 「손님 맞을 준비」를 소개합니
다. 글이 안 써져서 애를 태우는 작가가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를
다방면으로 연구합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방식을 엿보기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늘 하던 대로 해결하려 하지만 글쓰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경험이
있으시다면, 백 퍼센트 공감하실 거예요. 절실하고 좋은 이야기 씨앗이 이
병승 작가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선물처럼 다가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목소리”에서는 정영화의 「책방의 책 향기를 맡고 크는 아이들」을 실었
습니다. 이 글은 동네 책방인 개똥이네 책놀이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개
합니다. 책을 읽기보다 문화 놀이터 공간에서 노는 걸 더 좋아하는 아이들
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책을 소중하게 다루
는 법, 책을 대하는 마음을 조금씩 알려주는 어른들도 보입니다. 동네 책방
은 이런 곳이지, 고개를 끄덕이며 읽습니다.
“서평”에서 김민정의 「노래는 시가 되고 시는 노래가 되고」에서는 김창완
의 시에 오정택이 그린, 『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을 살핍니다. 일상에서 찾
은 시, 그 시의 숨은 매력에 같이 빠졌습니다.
김태은의 「건강하게 표출하는 방법」에서는 김경미가 쓰고 심보영이 그
린 『마음 뽑기』를 읽습니다. 마음을 뽑는 기계라니, 호기심으로 들여다본
글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력을 얻었습니다.
이향지의 「너희들 말이야, 이렇게 멋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에서 구
도 노리코가 쓰고 그린 『우당탕탕 야옹이와 금빛 마법사』를 소개합니다. 우
당탕탕 야옹이 시리즈로 그림책에서 이미 익숙한 캐릭터들이 동화책으로
나타났습니다. 비슷한 듯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캐릭터에 당황하면서 그 비
밀을 유추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그림책의 그림을 읽다”는 고정순이 「유일한 문수에게」라는 글로 그림책
『문수의 비밀』에 등장하는 ‘문수’에게 말을 건넵니다. 강아지인 ‘문수’에게
자신과 함께 사는 멋진 고양이 ‘복만’을 소개하죠. 사람을 위로하는 기특한
힘을 갖고 있는, 동물 친구들이 주는 무한한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10회를 맞이한 “한낙원 과학 소설상”에는 김문경의 「시간 속의 너에게」를
선정해 실었습니다. 10회를 맞아 좋은 작품을 올려서 흡족하며, 우수작으로
선정된 작품들도 좋았습니다. 같은 길을 걸어갈 글동무들을 환영합니다.
겨울호를 앞둔 투고 원고에는 선정 작품이 없습니다. 이번 호에 없다면,
다음 호에는 더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을까요?
한 해 마무리 잘하시고, 우리는 내년에 다시 만나요. 그때는 우리 모두에
게 선물 같은 일들이 지금보다 많이 생기기를!
— 김하은 (본지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