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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역사와 함께 보는 미국불교사(56)
이 글은 1997년부터 약 20년에 걸쳐 미주현대불교에 번역 연재되었던 미국불교사에 관한 중요한 책들인 ‘백조가 호수
에 온 이야기 How the swans came to the lake(한국어로는 이야기 미국불교사로 출판’, ‘미국이 만난 불교 The
American Encounter with Buddhism’, ‘미국 불교 Buddhism in America’를 토대로 하여 이 책들을 다시 인용하여
재구성하여 쓴 글이다.
전체적인 방향은 아래와 같은 관점에 방점을 두고 기술할 것이다.
미국에 도래하는 불교는 뉴잉글랜드의 초월주의자들이 동양의 대안적 영성을 찾아 나섰던 이래로 150년간 지속되었던 구
도역정의 종착지였다. 유럽계 지식인 미국인들의 내밀한 관심사로부터 이른바 하나의 대중운동으로 변화했다. 여러 차례
에 걸쳐 미국사회의 흐름에 대한 반발과 그 대안으로 불교가 당시의 미국사회의 젊은이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글 김형근 (본지 발행인)
미주한국불교 주역들이 교체되고 다양한 단체가 나타나며
불교문화가 소개된 시기
미주한국불교계 2000년대 미주한국불교 (1)
2000년대는 2000년부터 2009년을 가리킨다. 20세기와 제 2천년기의 마지막 연대이자, 21세기와 제 3천년기의 첫 연대이다. 2000년대에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세계적으로 보급되며,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가 개막했다. 특히 세계적으로 2000년대 초중반을 기점으로 초고속인터넷이 대중화되고 일반 가정과 사회에 보급되면서, 디지털 망을 통해 정보가 공유되는 정보 지식화 사회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러한 디지털 매체의 대중화와 발전은 2010년대에 도래한 유비쿼터스 사회가 구축되는데 큰 역할을 하였고 아날로그를 정보의 전달 방식에서 완전히 도태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디지털 매체의 부흥에 따라, 아날로그 매체는 2000년대 전체에 걸쳐 서서히 그 영향력을 디지털에게 내주었으나 완전한 세대교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2000년대는 20세기와 21세기의 과도기로 분류하기도 하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이라는 두 가지의 정보 전달 방식이 혼재하여 존재하는 독특한 시대성 특성을 가졌다고 평가받는다. -인터넷에서 옮긴 글
미국은 2001년 11월에 소위 ‘9.11’이라는 사건이 터졌다.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 ‘9.11’이후로 미국은 새로운 미국처럼 변한 것이 많다. 비행기 탑승할 때 보안이 매우 엄격핸 진것도, ‘9.11’이후다. 이 시대에는 1980년대나 1990년대 등 전에 비하여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는 스님들은 많지 않았다. 미주한국불교는 미주불교의 포교를 담당하는 스님들의 세대교체가 많이 이루어지고, 스님들의 협의체인 승가단체가 여기저기서 많이 결성되었다. 태고종에서는 태고종북미-유럽교구는 종법으로 결정되었다. 또 이 기간에 숭산스님 제자인 ‘만행’ 저자 미국인 현각스님과 태고사를 건립한 무량스님이 미주한국불교계에 널리 알려졌고 이 스님들이 출연하는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전인 1990년대에 비해 사찰 창건도 많지 않았지만 이 기간에 창건한 사찰들은 대부분 몇 년 지나지 않아 소리 없이 사라졌다.
전에 있던 신행단체들과는 전혀 성격을 달리하는 신행단체들이 동부와 서부에서 나타났다. 뉴욕의 재미 한국불교장학회, 역시 뉴욕에서 ’전 패미리 프랭크 하나재단 장학금’, 뉴욕불교상조회, 뉴욕불교신도회, 로스엔젤레스에서는 ‘지구촌 공생회’, 도안스님이 주도하는 ‘미주종교평화협의회, 재불려, 북가주의 ‘북가주 불교청년연합( Korean Amrican Youth Buddhist Asso.)’, 뉴욕에서 사원연합회에서 ’뉴욕불교‘라는 잡지와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었으나 둘 모두 몇 년 운영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2008년부터는 북가주 사암연합회의 수원, 대석, 형전, 지연, 정율스님 등에 의해 유니온 시티 일본 절 홍간지에서 6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북가주 불자 송년잔치가 시작되었다. 이후 이 행사는 불교신자들에 의해 오랜 동안 지속되었다.
이 시기에 한국불교문화가 미국에 많이 소개되었다. 한국정부 기관들에 의해서 한국의 불상, 영산재 등이 뉴욕의 저팬소사이어티에서 큰 규모로 전시와 공연을 하였고,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 주최 범패 행사도 있었다. 이 외에도 미주현대불교의 노력으로 불교전통문화인 사경이 해외의 한국문화원 중에서 가장 유명한 뉴욕의 한국문화원에서 김경호 선생 전시회와 사경 강의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에 소개되었다. 그는 2021년 4월에 한국정부에 의해 사경장 1호로 지정되어 인간문화재가 되었다. 또 미주현대불교와 미연방수생식물원 공동주최로 워싱턴 수생식물원에서 2004년부터 연꽃축제가 시작되었다. 이 행사는 2017년까지 계속되었다.
출판에서도 눈에 띄는 것이 많다. 미국의 하와이대학교에서는 버스웰 교수에 의해 원효스님의 저서가 영역되어 출판되었고 삼발라에서 구산스님 책이 출판되었다. (고)성원스님에 한국불교서적을 영어로 출판하는 ‘Blue Pine’ 출판사가 등장하였다.
2009년 1월에는 뉴욕 컬럼비아대학교 Bulter Hall 에서 동아시아 학과장과 김자현교수 로버트 셔먼 등 불교학자, 조일환 사장 부부, 딸 조미나 부부, 아들 조민서 부부와 원각사 신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 불교학 프로그램을 위해 150만 달러 기증한 축하연을 가졌다. 이 기부금으로 현재 콜롬비아 대학교에서는 한국불교 강좌가 개설되어 있다. 한국학교가 많이 들어섰으며, 청소년 관련 행사가 아주 많아졌다. 이 시기에는 미주현대불교에 의해 미주지역 불교인들이 북한사찰 순례가 시작되었다.
미국에 입국한 스님들과
열반한 스님들,
그리고 뉴욕불광선원의 부상
이 시기에는 1990년대 비해 많은 스님들이 입국하지 않았다. 오히려 절을 파산하거나 팔고 가는 스님들도 있었다. 그 외에도 잠깐 있다가 한국으로 되돌아간 스님들도 많다. 이 시기에 입국한 스님으로 지금도 미국에 있는 스님들은 2001년 입국한 범휴스님(현 캘리포니아 금강선원), 2003년 성향스님(원적사). 2006년 불광선원 선문스님(한국으로 나갔다가 2022년 11월 다시 입국, 뉴욕 불광선원), 2007년 9월 혜각 스님(현 보스톤 문수사 대중스님) 등이다.
이 시기에는 미주한국불교를 이끌어왔던 초창기 1세대 스님들이고 미주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숭산, 도안, 법안 스님들과 청화스님 등이 입적하였고 또 몇분의 신자들도 별세하였다. 구체적으로 보면 아래와 같다.
2003년 2월 하와이 관음사 창건한 비구니 지법스님 입적 창건하기 전에 대원 스님을 도와 대원사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였다.
2003년 11월 : 삼보사를 인수하였고, L.A에 금강선원 창건
한 청화스님 한국에서 입적.
2004년 11월 : 숭산스님 한국 화계사에서 입적
2005년 12월 : LA 관음사에 있던 지환 노스님 입적
2006년 8월 : 미주한국불교 최대 사찰이었던 L.A.관음사를
이끌었던 도안스님 입적.
2007년 3월 : 1988년 중풍으로 쓰러진 후 투병했던 뉴욕
원각사 법안스님 입적.
2006년 12월 6일: 서경보 스님으로부터 1973년 8월에 ‘대혜’라는 법명으로 출가한 Don Gilbert(1909. 8. 켈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출생) 병원에서 노환으로 입적.
이 기간에 입적한 숭산, 도안, 법안 스님은 당시에 미주한국불교계를 대표하며 한국불교계의 상징적인 스님들이었다. 청화스님은 1992년 미주현대불교 창 간 3주년 행사에 초청되어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하였지만 당시에 미주한국불교계에 큰 영향력이 미치고 있었다. 숭산스님은 1974년부터 미국인들에게 선을 지도하면서 미주 한국불교계를 대표한 스님이었지만 당뇨병으로 입적 몇 년 전부터 화계사에 계셨다. 1976년부터 뉴욕불교계를 이끌면서 뉴욕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법안스님은 1988년 중풍으로 쓰러져 본인이 구상하던 대작불사를 시작도 하지 못한 채 20년 가까이 투병생활을 하다가 입적했는데 서울 구룡사 주지 정우스님을 후계자로 하였기 때문에 다행이 원각사는 잘 유지되고 있다. 미주 한인 최대 밀집지역인 로스 엔젤레스를 토대로 30년 동안 포교활동을 성공적으로 하면서 로스 엔젤레스 한국불교계를 이끌었던 도안스님의 입적은 관음사와 로스 엔
젤레스 한국불교계에 큰 후폭풍을 몰고 왔다. 도안스님의 영결식에는 미국의 서부 지역 대부분의 스님이
참석했고, 하와이에서 대원, 도현, 동부에서는 도범, 원영스님 등 전미주에서 많은 스님들이 대거 참여하여 스님을 추모하였다. 스님 입적 후에 불교유아원을 비롯하여 스님이 심혈을 기울여서 구축하였던 많은 것들이 후퇴하거나 없어졌다. 로스 엔젤레스 한국불교계 최대 사찰이었던 관음사는 후임 주지를 정하지 못하면서 신도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지금까지도 주지가 정해지지 않고, 이제는 로스 엔젤레스에서 존재감이 사라졌다. 도안스님 입적을 깃 점으로 L.A 한국불교계는 점차 쇠퇴했다. 숭산, 도안, 법안 스님의 입적은 미주한국불교 1세대 스님 시대가 종결되었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재가신도 중에도 최명심행 보살과 강옥구 시인 등 훌륭한 신자들이 별세했다. 뉴욕에 거주했던 최명심행 보살은 2000년 3월중에 별세했다. 뉴욕 원각사와 조계사 신도였고, 숭산스님을 따랐다. 콜롬비아대학교에서 동양미술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다옥 박사의 어머니로 뉴욕에 1960년대 초에 왔으면 뉴욕에 사찰이 없던 1960년대 말에 뉴욕에서 신행단체를 만들어 재가신도들을 이끌었다.
2000년 10월 25일 강옥구 보살이 별세했다. 켈리포니아 버클리에 거주하였고 시인으로 활동하면서 강청화 스님을 존경하면서 신도로 활동했다. 티냑한 스님과 달라이라마 스님, 게리 스나이더 책 등을 번역하였다. 게리 스나이더와도 절친했고, 본지에는 틱냑한 스님의 '평화로움’ 등을 번역하였다. ‘아 달라이라마, 지혜의 큰 바다’ ‘허밍버드의 춤’, ‘무성(No Nature)’ 등 여러 권의 번역서, 편역서가 있다.
이 시기의 사찰 개원과 폐쇄 이 시기에는 30여개의 사찰들이 스님과 신도들에 의해 창건이 난립되었던 시기이다. 지역도 로스 엔젤레스, 뉴욕, 북가주 지역 뿐 만 아니라 아리조나 주, 조오지아 주, 미주리 주, 하와이, 라스베가스, 오클라호마 주 등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하지만 문을 열지 마자 1년 정도 지나서 문을 닫는 사찰들이 많았고, 지금까지 지속되는 사찰은 뉴욕에 일관도 홍인법단, 능가사(현 뉴저지 보리사로 개명), 뉴저지 원적사, 조오지아 동화사, 뉴욕 청아사, 뉴저지 소심사, 카나다 토론토에 평화사 등이다.
종단도 다양했다. 카나다 토론토에서 천태종이 2003년부터 준비하여 2006년 7월에 평화사 개원했다. 이외에 원융종이 오클라호마주에 신흥사 2008년에 뉴욕에 효행종 선정원 등이 개원하였다.
너무 쉽게 개원을 하고, 빨리 문을 닫았던 사찰들이 많았던 시기이다. 1990년대 창건하여 이 시기에 폐쇄
된 사찰은 휴스톤 소림사(주지 해동스님2002년), L.A.대각사(주지 진각스님,2008년)이다. 특히 북가주에 사찰이 들어서고, 문을 닫는 사찰이 너무 많았고, 2008년 북가주 헤이워즈 보현사 주지였던 현묵 스님이 신도들 몰래 절 매각하고 돈을 가져가 북가주 불교계 전체에 큰 문제가 되었다.
스토리 텔링이 일어난 뉴욕불광선원과 휘광스님의 역할
1996년 휘광스님에 의해 시작한 불광선원은 시작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신도들이 많이 모이기 시작했다. 단 시일 내에 급성장한 불광선원 배경은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주지 휘광스님의 열정적인 노력이었다. 우렁찬 목소리로 독경과 기도를 하는 휘광스님을 따르는 노보살들도 꾸준하게 증가했다. 휘광스님은 원각사에서도 천일기도를 한 적이 있고 불광선원 개원 후에도 천일기도를 하여 처음으로 불상이 자리한 불광선원 터를 안정시켰다. 신도들에게는 항상 기도하는 스님이라는 인상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이런 노력과 더불어 불광선원이 자리한 곳은 한국인들이 많은 사는 곳에서 가까운 지역으로 당시에 이 지역에는 한국 사찰이 없었다. 또 한국에서 젊은 스님들이 와서 불광선원 대중스님으로 함께 사는 것도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2008년 5
월 6일자 뉴욕한국일보에 보도된 불광선원 기사에 보면 당시 상주스님은 주지 휘광을 비롯하여 능원(교
무), 법해(재무), 혜민(총무), 선문(어린이 지도), 진우(매하탄 분원)이다. 대중스님이 여섯 스님인 것이다. 이렇게 많은 스님이 대중으로 있는 사찰은 불광 선원이 유일하였다. 한국에서 온 스님들은 영어공부를 필수로, 대학교에 다니는 것을 장려했다. 공부하는 스님들을 돕기 위해 60세 이상의 노 보살님들로 구성된 ‘일심회’를 중심으로 장학금을 운영하였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한국에서 스님들이 많이 찾아왔는데 사찰에 상주 스님이 많은 것은 사찰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 또 하바드대학교에 다니는 일미스님, 혜민스님 등이 중고등학교 선생님으로 학생들이 지도하게 되니 교육에 관심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불광선원으로 대거 몰려왔다. “하바드대학교에서 공부하는 스님들이 학생들을 지도한다.~~. 오, 그래!” 이런 말이 학부모들 사이에 퍼지면서 불광선원에 대한 스토리 텔링이 일어났다. 이런 노력과 함께 당시 한국불교계에 이름난 법정, 미국인 현각, 능인선원 지광, 수불 스님 등을 초청해서 법회를자주 하였는데 이런 법회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왔다. 법당으로는 수용할 수가 없어서 마당에 대형 텐트를 쳤고 주차는 큰 문제가 될 정도였다. 본지에서 가지고 있는 자료를 토대로 정리한 2000년대 불광선원의 연혁이다.
1996년 10월 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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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5월 폴 현각 스님 초청 대법회
2000년 8월 능인선원 지광스님 초청법회2000년
2000년 9월 법정 큰스님 초청 대법회
2001년 4월 신규법당 Site Plan Board Meeting 통과
2001년 5월 법산 스님(동국대학교 교수)초청대법회
2001년. 6월 제 4회 어린이 캠프
2001년 10월 28일 법정스님 초청 수계대법회
2001년 11월 25일 천불전 중창불사 및 세계평화를 위한 1천일 기도 입재
2002년 10월 법정스님 초청법회
2003년 7월 4-6 뉴욕불교사원연합회 주최 미동부지역 청소년 여름 불교수련회 불광선원에서
2006년 5월 해창 스님 초청대법회
2006년 10월 22일 개원 10주년 기념행사
300여명 참석 연사 미국인 현각스님
2006년 10월 29일 설법전 신축기원 행사. 수불스님 설법 130명 참석
2007년 뉴욕 불광문화학교 설립
2007년 9월 10일 야외법당에서 프린스톤에서 ‘나한’ 연구로 박사를 받은 혜민스님과 ‘한일불교 관계사’ 로 하바드에서 박사를 받은 혜민스님과 일미스님 철학박사 학위 취득 기념법회
2007년 10월 폴 현각 스님 초청 대법회
2008년 4월 새법당 공사 시작
2008년 8월 상량식, 우학스님 초청법회
2008년 5월 신축법당 개원식
2009년 5월 9일 수불스님 초청 큰 법당 개원 대법회
2009년 6월 성관 스님 초청대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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