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장은 하나님께서 기타의 규례를 수여하시는 내용입니다. 1절부터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조각목으로 ‘분향단’ 만드는 규례를 명하시는 내용입니다.
(성막의 구조)
(다음 순서에 올리겠습니다)
「분향단」의 재료는 조각목과 정금입니다. 분향단을 만드는 방법은 조각목으로 만들고 정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두르며 금고리 둘과 채를 만듭니다. 이것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증거궤(법궤) 앞에 있는 휘장 밖에 두고서 조석으로 등불을 켤 때 향기로운 향을 사르고 아론이 일 년에 한 차례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제의 피로 속합니다. 여기서 조각목으로 만든 것을 정금으로 싸는 것은, 천한 것을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덮어 주시는 것에 대한 상징입니다. 그리고 ‘뿔’은 하나님의 권세를 의미합니다.
분향단을 만들라고 명하시는 의미는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에 대한 모형적 예표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는 영원한 분향 제사가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구속 받은 성도들의 진정한 기도 역시 분향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즉, 우리를 죄악가운데서 구속하시고자 처녀의 배를 빌려서 마리아와 요셉을 통하여 육신의 옷을 입으시고 오신 그 이름 예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만을 향기롭게 받으신다는 뜻입니다. 어느 무엇도 안됩니다. 천하의 어떤 좋은 것으로도 받으시지 않습니다.【오직 한 분이신 예수십니다】
11절부터는 여호와께서 「생명의 속전」을 내는 헌납규례를 명하시는 내용입니다. ‘속전’은 생명을 속하기 위하여 내는 금전입니다. 13절에 나오는 ‘세겔’이나 ‘게라’는 금전의 단위로서, 생명의 속전으로 드리는 반 세겔의 가치는 노동자가 이틀 동안 일하여 받는 품삯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노동자들의 하루 품삯의 단위로는 데나리온과 드라크마입니다.
12절에서,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들을 계수할 때에 자기의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들을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질병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본문에서 몇 가지를 확인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첫 번째는 ‘조사 받은 각 사람’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을 받아서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계수할 때에 조사를 받는 자들을 가르키는데 이것은,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계수하는데 있어서 조사를 거부하고 이스라엘 수효 안에 들어오지 않는 자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조사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가르킬까요?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며 이는 스스로가 애굽에서 해방된 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자요, 애굽땅 종되었던 곳에서 해방된 것이 나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열조의 조상 아브라함의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서 나온 것임을 믿는 자라는 뜻입니다. 즉 이것은, 죽었던 나를 살리셔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빈부를 떠나서 모두가 같은 값으로 드리는 생명의 속전을 자원하여 기쁨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기의 생명의 속전’입니다. 영원히 애굽의 종으로 살아가야 하는 나를 해방시키셔서 자유케 하셨고 그리고 해방시키신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때마다 속전을 드리므로 이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게 됩니다. 죄인으로서 악성과 독성을 지닌 인생은 자신을 해롭게 한 것에 대해서는 오래 기억하면서 자신에게 도움과 유익을 준 것에 대하여 오래 기억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땅 종되었던 곳에서 해방되어 홍해의 기적과 아말렉과의 전쟁 그리고 만나 메추라기와 생수의 기적 체험까지 생생한 기적을 경험하고 두 눈으로 확인하고서도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여호와 하나님 대신에 송아지의 우상을 만듭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속전은 여호와를 기억하고 기념(16절)하여 주안에서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세 번째는 ‘질병을 없게 하심’입니다. 생명의 속전으로 여호와 회중 안에 있다는 것이 증명된 자들에게는, 죄로 말미암아 세상은 재앙을 당하지만 생명의 속전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은 재앙을 면하게 됨을 언약하십니다. 이것은 이미 유월절과 홍해에서 증명된 사실입니다. 속전을 드림으로 재앙을 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속전 자체가 자신의 생명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여호와께 있음을 시인하고 맡기는 것임으로 여호와께 맡겨진 자들에게는 재앙이 없음을 주께서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백성들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과 수고 그리고 걱정 근심 등을 맡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하면 안식과 평안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어두운 길에서 빛이 되어 주셔서 만사형통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어지는 16절을 조금 더 확인하겠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리라”. 본문에 의하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립니다. 그러면 이 생명의 속전을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와 가져가십니까? 현재의 교회에서, 저와 여러분이 드리는 헌금을 하나님께서 가지고 올라가십니까?
하나님께서는 ‘회막 봉사에 쓰라’고 명하시고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말씀하심입니까? 회막이 무엇인가요? 회막은 무소부재하신 전능자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대로 백성들이 지은 건물에 들어오셔서 너희와 함께 하시겠다는 표징의 장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좌소(座所)하시는 장소입니다.【구약에서 여호와하나님 기억의 실체입니다】
회막은, 제물로 제사가 드려지는 유일한 곳이며 제사가 계속 드려지기 위하여 회막을 관리하며 봉사하는 레위인들이 계속 거주하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속전 제물을 ‘회막 봉사에 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의 속죄제사가 이어지며 화제가 드려집니다. 이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명이 대속되는 것입니다. 이는 온전한 성전되시는 그리스도께서 택함 받은 성도의 생명을 속하여 주실 것에 대한 모형적 예표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당시의 회막 혹은 성막 성전은, 지금 신약시대의 교회와는 어떤 차이가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당시의 성막(회막•성전)은 하나님께서 낳으신 이스라엘과 함께 거하며 그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심에 대한 증표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데에는 성막 안의 첫 번째 장소인 제단에서 하나님께서 지정한 동물이 피를 흘려 죽고 기름이 태워지는 사건이 있어야만 됩니다.
말로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호소로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노력과 행위로도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짓게 하시고 그 안에서 제사를 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오직, 제단에서 나의 죄 때문에 흠 없는 동물들이 대신 죽듯이, 내가 하나님께 범죄하여 저주받아야 하는데 나를 대신하여 예수께서 저주받으시고 죽으셨음을 고백하며 이제는 나를 부정하고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받아 들여야만 됩니다.
예수께서 나의 죄 때문에 죽으셨음을 마음으로 인정하고 나 자신도 함께 죽었음(세례)을 고백하며 이제 내가 사는 것은 예수님 때문에 예수 안에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산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즉, 성막(회막•성전)은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한 모형이요 그림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짓게 하신 것은 장차 온전한 성막되시는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는 언약이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