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솔봉 아래, 사체
신성한 매실 758
지리산 초입에는 벌써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권 팀장과 김유리는 대원사 쪽으로 향했다.
나머지 한 조는 중산리 쪽으로, 기타 한 조는 덕산면 범산으로 직행하였다.
권 팀장은 범인들이 향한 곳은 지리산의 중심인, 천왕봉 쪽이라고 판단하였다.
세 군데에서 토끼몰이식 수색하다 보면 분명 어느 한 곳에서 걸릴 거로 보았다.
그게 아니라면 천왕봉과 가까운 곳에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될 것이었다.
권 팀장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에는 아까의 지도도 한몫했다.
지도상의 천왕봉 아래에 빨간 점들이 유독 많았기 때문이었다.
시천면 두 갈래 지점에서 세 대의 봉고차가 섰다.
권 팀장은 차에서 내려 손수 팀원들의 손을 잡아주며 격려했다.
그리고는 가장 먼저 차를 출발시켜 대원사 쪽으로 향했다.
봉고차가 대원사 쪽으로 들어설 때 권 팀장을 차를 세울 것을 지시했다.
“팀장님! 이 길로 계속 가면 도평마을이 나옵니다. 그곳까지는 차량 이동이 가능한데요.”
김유리가 의아한 듯 권 팀장의 팔을 끌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저기 절 사이로 외길 보이지? 저리로 올라가자. 어이! 모두 내려.”
권 팀장의 느닷없는 결정에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뭐야? 이 산길로 올라가자고?’
자꾸 눈이 내리고 있었다.
산 중턱으로 올라갈수록 발이 빠질 만큼 눈은 쌓였다.
김유리는 입이 이만큼 나왔지만, 팀장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젊은 의무경찰들도 몹시 힘들어하고 있었다.
하긴 이곳은 전문 산악인도 혀를 내두른 험한 지리산이었다.
더구나 이곳은 정상적인 길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나무꾼이나 약초꾼들이 가끔 다니는 오솔길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올라가니 지도에 표시된 점집이 하나 보였다.
김유리와 의무경찰들은 그제야 입구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때였다.
계곡 쪽으로 소변을 보러 가던 한 의무경찰이 소리를 질렀다.
“팀장님! 여기!”
의무경찰은 넋이 나간 듯 권 팀장에게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권 팀장과 김유리는 단숨에 그곳으로 갔다.
놀랍게도 계곡 입구에 오토바이 두 대가 쓰러져 있었다.
오토바이를 보자 권 팀장의 입가에는 미소가 돌았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어때? 내 말이 맞지? 범인들은 아까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한 놈은 중산리 쪽, 한 놈은 대원사 쪽으로 갔지만 결국, 여기서 만난 거야.”
“그러네요.”
“그래, 이곳에 오토바이를 버려두고 걸어서 목적지로 간 게 틀림없어. 그렇다면 저 점집이 범인들의 은신처?”
김유리는 얼른 오토바이 번호판을 확인하고 사진을 찍었다.
“됐어. 지문 뜰 필요는 없어. 딱 봐도 그놈들이 탄 오토바이가 맞아.”
김유리는 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런 험한 길을 오토바이로 올라왔다는 게 믿어지질 않았다.
“저 집이 맞을까요?”
김유리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가보면 알겠지.”
권 팀장은 벌써 품속에 있는 권총에 탄알을 장전하고 있었다.
김유리는 권 팀장의 용의주도함에 잠시 존경의 마음이 일었다.
“너희들! 일부는 입구에, 나머지는 입구 근처에 뿔뿔이 흩어져서 내 명령 있을 때까지 매복한다.”
“네, 알겠습니다.”
“이 시간 이후로 입구 밑으로 내려가는 자는 무조건 검문하고 행여 이상하다 싶으면 제압한 후, 날 불러라. 알겠나?”
“네~.”
권 팀장의 말에 의경들은 각자 제 위치로 갔다.
김유리도 마찬가지로 권총을 빼 장전했다.
점집은 보기보다 크고 넓었다.
본채가 있었고 그 외 별채도 몇 있었다.
특이한 점은 본채 위에 바위가 여럿 있다는 점이었다.
그 바위들에서도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었다.
권 팀장과 김유리는 일단 본채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본채 안에는 불상 아래에 몇몇이 엎드려있었다.
그 가운데에 무당으로 보이는 여자가 신들린 듯 주문을 외고 있었다.
권 팀장은 재빠르게 내부를 스캔했으나, 젊은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얼른 별채로 건너갔다.
김유리는 권 팀장의 눈짓에 본채 뒤, 바위로 올라갔다.
별채는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아마 기도하러 온 사람들이 사용하는 일종의 숙소인 모양이었다.
권 팀장은 빠짐없이 별채의 문을 열어 내부를 확인하였다.
모두 중늙은이 아니면 할머니였다.
그때였다.
본채 위 바위 근처에서 자지러지는 비명이 들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유리였다.
“아악!”
권 팀장이 깜짝 놀라 올라가자 김유리는 혼자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김 형사, 왜 그래! 괜찮아?”
그런데 그 앞에는 놀랍게도 벌거벗은 채로 서 있는 기이한 사내가 있었다.
‘뭐야 이자는?’
이런 추운 날씨에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사내는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그의 뒤로 움푹 팬 바위 안이 보였다.
은은하게 불붙은 초 몇 자루, 이상한 부적들 그리고 작은 불상 몇이 놓여있었다.
“뭐야?”
권 팀장은 권총을 사내에게 겨눴다.
그런데도 그는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별것 아니요. 기도하는데 갑자기 이 아가씨가 들어오기에.”
“그래서? 그걸 꺼내서 흔들었나?”
“무슨 말씀입니까? 흔들긴요. 그냥 달린 걸 본 거죠.”
권 팀장은 김유리가 사내의 알몸을 보고 순간적으로 놀란 것으로 이해했다.
이런 곳에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가 자신의 치부를 당당하게 드러낸 것이다.
여긴 분명히 여신도도 있을 것인데, 정말 기가 찼다.
권 팀장은 그에게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당신 뭐야? 뭐 하는 사람이야!”
헐!
권 팀장의 말에 사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나요? 보시다시피 기도하고 있잖소. 왜요?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권 팀장은 사내와 입씨름이 길어질 것 같아 얼른 김유리를 일으켰다.
그리곤 낮게 속삭였다.
“뭐야? 남자 거시기 처음 봐? 쪽팔리니까 얼른 일어나. 쯧.”
“아뇨. 그게 아니라, 저기, 저기 ….”
“뭐? 뭐가 있는데?”
김유리는 계속 손으로 얼굴을 파묻은 채 바위 안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제야 권 팀장은 김유리가 놀라 비명을 지른 이유가 따로 있다는 걸 눈치채었다.
‘그렇구나. 유리가 놀란 건 저것 때문이었어.’
“비켜!”
권 팀장은 위풍당당한 사내를 밀치고 바위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아까는 미처 보지 못한 끔찍한 것이 제단 위에 있었다.
‘이건 또 뭐야?’
그건 아직 살아 꿈틀거리는 것 같은 심장이었다.
철, 철, 철~.
그것을 담은 그릇에는 피가 흥건히 고여있었다.
맨눈으로 봐선 이게 사람의 심장인지 짐승의 심장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권 팀장은 이게 사람의 것으로 판단했다.
“모두 바위 쪽으로 올라와. 이상.”
섬뜩한 기분이 든 권 팀장은 일단, 무전기로 입구에 있는 의경 몇을 불렀다.
그리곤 다짜고짜 벌거벗은 사내를 힘으로 눌러 제압했다.
“억, 왜 그래요? 이런 씨팔.”
사내는 영문을 모른다는 듯 거칠게 반항했다.
“닥쳐.”
하지만 권 팀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엎드린 채 다리를 심하게 떨었다.
“저 안에 있는 게 뭐야?”
“뭘요? 뭘 말하는 겁니까?”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심장!”
그러자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마를 바닥에 댔다.
권 팀장이 고함을 지른 탓이었을까.
주위엔 어느새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겉보기와는 달리 바위에서 기도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때, 주변을 물리치는 사람이 있었다.
백발의 머리에 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마치 산신령 같은 남자였다.
“무슨 일입니까?”
남자는 작게 말한다 했으나 목소리는 쩌렁쩌렁했다.
그새 의경 몇 명이 달려와 김유리와 함께 권 팀장을 에워싸고 있었다.
“일단 이자에게 수갑부터 채우고 포박해!”
권 팀장은 호흡을 가다듬고 권총을 품 안에 넣었다.
그러는 사이에 산신령 같은 남자와 권 팀장의 눈이 마주쳤다.
“당신은 누구요?”
“난 이 점집을 운영하는 윤 보살이오. 그러는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남자는 지지 않았다.
여전히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지만, 위엄은 대단했다.
“경찰이오.”
권 팀장은 그에게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저자는 공연음란죄로 긴급체포합니다. 또한, 바위 안, 제단 위에 있는 심장. 저건 제가 보기엔 사람의 심장인 듯합니다. 따라서 살인의 죄가 있는지 한번 조사를 할까 합니다.”
권 팀장의 말이 끝나자 포박된 사내가 큰소리로 웃었다.
“아니, 이게 무슨 공연음란죄란 말인가? 내가 하루 이틀도 아닌 지난 일 년을 이곳에서 벌거벗고 기도하고 있는 건 모두 다 아는 사실 아니야?”
“시끄러워!”
그런데도 그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또! 뭐? 살인? 아니 죽은 놈 심장 하나 꺼냈다고 해서 살인이야? 안 그래?”
사내의 말에 권 팀장과 김유리는 간담이 서늘했다.
어쨌거나 제단 위의 심장은 사람의 것이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