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프랑스 철학사(La philosophie française)
로비네(André Robinet, 1922-2016), PUF, (1966) 1977.
류종렬, 서광사, (1987) 수정본.
프랑스 철학사(La philosophie française, 1966)
- 1장 중세 철학 / 2장 근세 철학 / 3장 현대 철학 / 결론
1장 중세 철학
101, 샤를마뉴시대의 철학, 알퀭: 문화적 세계
102, 요하네스 스코투스의 철학: 자연의 세계
103: 안셀무스의 지성의 인식: 지적인 인식
104: 이법의 뿌:리: 영혼, 빅토리아학파
105, 아벨라르 변증론: 분할과 결합, 개별과 보편.
* * *
[05: 아벨라르의 변증론: (인간이 신을 이해하다)
분할과 결합: 개별과 보편.]
[- 유명론자: 로스켈레누스와 아벨라르 -]
이제 중세 철학의 비판적 국면이 전개된다. 아벨라르(Pierre Abélard, 1079-1142)는 “완전한 주의 (注意) ”(attention pleine)의 역할을 하기 위하여 철학적 추론이 어떤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가를 탐구한다. 어떤 존재도 소유하지 못하는 고유성을 이해력이 지적 작용에게 빌려준다 하더라도, 지적 작용은 내용이 빈곤하다. 주의의 특성은 그것의 무화(無化)하는 능력 속에 남아 있다. 만일 내가 소크라테스(Socrate)를 물체로 생각한다면, 나의 지적 작용은 통제된 무지로부터 생겨난다. 내가 대상의 구조를 변경시키지는 않지만 구체적 영역과 지식의 결정 사이를 갈라놓는다. 이해한다는 것은 파악한 것을 파괴하지 않고서 파악한 바를 구별하여 파악하는 것이다. 지성은 벩송(Bergson, 1859-1941)에 있어서처럼 단순한 것, 순수한 것, 그리고 상태 – 실재적 실체 속에 함축되어 있으면서 지성 속에 전개되지 않는 그러한 상태 – 에 호소한다. “나의 시각은 결합된 것을 분할 된 것으로서가 아니라, [스스로]분할로서 간주한다.” (24)
정신은 분할하고, 그리고 결합하는 이중의 능력을 갖고 있다. 정신이 “사물의 본성”을 초월하지 못한다는 것, 즉 “정신이 사물에 실재적으로 속해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추론 작업은 복잡한 기호로 세계의 근거를 규명한다. 기호의 결합이 실재를 생겨나게 하는 것이 아니듯이, 기호의 분리가 실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지각이 사유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지적인 질서 속에 남아있기 위하여 사유는 구체적 개별자들로부터 독특한 실재를 도처에서 감싸여 한다. (24)
과학적인 주의 집중은 여러 개별자들을 종(種)과 류(類)로 나눈다.그의 주의 집중은 많은 개별자들을 속성으로 가질 수 있는 “여러 보편자들”을 결정한다. 로스켈레누스(Roscellinus, 1050경-1121경)의 뒤를 이어 아벨라르는 역시 관념적인 해결을 인정하지 않았다. 보편자는 가지적 세계에서 형상과 실체로부터 독립하여 자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자들은 보편자로부터 그들의 본질을 유지하지 않는다. 반대로 본질은 본질을 드러나게 하는 존재로부터 끌어낸다. 보편자는 서술하는데 따라서 주어로 간주될 수 있는 그런 것일 뿐이다. 보편자가 존재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것을 시험해보아야 한다. 비판이 논리학의 중심부분이 되고, 논리학은 사유의 “손”(도구를 의미)일 뿐이다. “개념의 학문”인 논리학은 신학적 전제 없이도 사물에 대한 학문에 근거를 제공한다. (25)
명사의 논리인 이 보편적 기구는 모든 추론 규칙에 적용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물리학은 보편자들의 사용을 반대하고 사물들의 상세한 개별적 특징을 생각한다. 학문은 언어의 분석 속에서, 즉 사유의 구별 능력 속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그 때문에 꾸쟁(Victor Cousin, 1792-1867)은 “아벨라르와 데카르트는 의심할 바 없이 프랑스가 낳은 위대한 두 철학자이다”라고 한다. 질송(Etienne Gilson, 1884-1978)과 강디약(Maurice de Gandillac, 1906-2006)은 이 철학자의 “합리주의”에 관한 이해를 떠나서 이 판단을 인정한다. (25)
그 철학자[아벨라르]는 윤리학에서 자기 스스로 처신할 것을 가르친다. 그 윤리학은 소크라테스적인 자아의 인식을 덕목들 중 첫째로 삼았다.주의가 완전하면 지적 작용도 완전하다. 즉 행동은 의도가 바르면 정당하다. 선한 의도는 행동을 선하게 한다. 행동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똑 같은 인간이 다른 시간에 비슷한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으나, 그의 행위는 다양한 가치 등급을 매길 수 있다. 선한 의도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신적인 의지에 적합한 좋은 행위게 대한 신념이 아니다. 의도의 순수함 없이는 어떤 행동도, 아무리 신의 영험을 받았다 하더라도 선한 것이 아니다. 의도가 스스로 보여지는 것과 같이 선하다면, 또 우리가 신의 의지에 상응하기를 원한다는 믿음으로써 어떤 잘못도 범하지 않는다면, 그의 의도는 그것이 선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선에 호소하지 않아야 한다. 몽테뉴(Michel de Montaigne 1533-1592),와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에 앞서서 나온 자기 의식의 명백한 표명이 아닌가? (26)
직접적인 결론은 여러 종교들의 일치점에 선 합리적 탐구이다. 아벨라르는 철학자, 크리스트교인, 유태인과 마주한다. 그들은 환상 속에서 그들의 논쟁에 대하여 공평한 청강자에게 보고한다. 철학자는 “자연법칙”만 알고 있지, 절대자의 자연법칙은 알지 못한다. “철학의 최고 목적이 진리를 합리적으로 탐구하는 것, 믿음 속에 근거한 의견들을 초월하는 것, 모든 사물에서 추리의 영역을 의견들과 대체하는 것이 아닌가?” 자연 법칙은 시간에 앞선 첫째 법칙이고, 신앙이 과정을 무시할 때, 지성은 끊임없이 증가한다. 신데 대한 사랑이 자연에서 앞서고, 알퀭이 그의 수도승들에게 명했던 가까운 것[이웃]에 대한 사랑, 즉 가장 단순한 것은 쓰여지고 강요된 법칙,즉 가장 복잡한 것보다 앞선다. 기호(le signe)로서 보다 앞선 법칙은 의식의 직접성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낸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것은 쓸데없는 외적 표시들을, 즉 할례와 세례처럼 종교들이 자연에 덧붙인 것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는다. 결국 권리상으로 보다 앞선 자연적 법칙은 정의에 대한 분배적 개념에 머무르고,각자로 하여금 자기의 의무를 향하게 한다.이 자연적 권리는 표면적으로 유효한 자발적인 규약이 되고, 관습적이거나 혹은 성문화 되었거나 간에 실증적인 권리는 그 규약을 포기할 수 없다. 법칙은 주의처럼 구체적인 자연이 인정할 때만 세도를 부린다[권세를 누린다]. 합리적 논증은 이중적일 수 없는 지혜의 지표이다. 자연은 사물 속에서, 그리고 의식 속에서 한꺼번에 발견되는 말씀(Verbum, Logos)에 상응한다. (26)
변신론은 이 보편적인 법칙[법률]에 의지한다. 로고스의 능력은 신이 이유없이 행위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로고스가 허락하는 모든 것은 합리적이고, 이해된 악이다. “그러므로 그 악이 존재하고 생겨나는 것은 선 때문이다. 그러나 악은 결코 선이 아니다.” (26)
인간의 법률은 이 이상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있다. 인간은, 자기 선택의 동기가 자기의 논리적인 노력과 자기의식에 의해 밝혀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전적으로 자유에 책임을 질 수 있다. 그런 것이 인간 생활의 고유함이다. 즉 어린이의 편견으로부터 어른의 규칙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배웠던 것을 지극히 신성한 것으로 간주하지 말자.조숙한 집착들은 여러 분파에게 찬성의 자만과 거만을 불러일으킨다. 성숙에서 오는, 그리고 사유의 논리를 다시 파악하는 신중한 나이에 이르게 되면, 자신의 행동이 확고한 미덕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스스로 알아보고, 보편적 법칙의 효능을 넓히기 위하여 참는다.어른이란 “자기 자신의 판단에 만족하는” 사람이고, 자신엑게 현존하는 인간적 사유 속에서 의식적으로 자기의 여러 논증들에 힘쓰고 있는 사람이다. (27)
자연법칙의 관찰은 소위 “몇몇 인간들의 구원에 만족하는” 철학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아벨라르는 성 앙트완(Saint Antoine, 251경-356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서의 근원은 인간적 합리성의 분별이기 때문에, 이 분별을 소유하는 자는 누구든지 성서를 조금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성 아우구스티누에서도 이 점은 마찬가지이다. “변증법은 과학 중의 과학이다. 변증법은 배우기와 가르치기를 배운다. 변증법에 의해서 추론은 인간 속에서 드러난다. 변증법은 교훈을 주고자 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수도 있다.” 아벨라르는 긍정과 부정(Sic et Non, 1122)의 방법을 준수하면서 신학에 주목한다. 독자들이 개방된 많은 문제들을 마주 대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급진주의의 비평의 시대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27)
인간은 유일 신앙에 의해서 계시에 매여 있다. 그것은 아벨라르가 은총이 없을 때 추론이 자신을 영원한 삶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결론지었다고 말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그의 대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주의를 크리스트교에로 이끈다. 아벨라르의 삶의 목적은 인간으로 하여금 깊이있게 신앙을 갖도록 하는 것이며, 인간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것은 논리가 거기서 출발할 수는 있으나, 논리가 거기에 인도될 수 없는 의견 또는 판단에 의존하는 대상이다. (28)
아벨라르의 형이상학적 최적 조건이 그의 재난의 이야기(Historia calamitatum, 1132)의 인간 비극을 감출 수는 없을 것이다. 엘로이즈(Héloïse, 1092경-1164)와 서신교환은 서구 문명의, 그리고 매우 짧은 인간적 삶의 고귀한 순간들 중의 하나이다.
분명하게 파악하려는 의지는 신앙을 해칠 수 있다. 베랑제(Bérenger de Tours, 998-1088)는 신앙을 빛의 용어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추론은 영성체의 신비를 포함하는 신비적인 것들을 설명할 수 있다. 합리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 왜냐하면 지혜는 스스로를 분할하지 않기 때문이다. 캐터베리의 대주교가 된 안셀무스(1033-1109)는 합리적 논리에 따라, 육신화(Incarnation)는 필연적이라는 결론을 끌어낸 저작 왜 하느님은 사람이 되었는가?(Cur deus homo, 1098)를 완성한다. 모는 손실은 만족을 요구한다. 잘못으로 인하여 인간은 신의 작품을 위태롭게 한다. 유한한 존재[인간]는 공정한 보상에 어떻게 만족할 수 있을까? 신이 그것에 참여해야만 한다. 신격(神格)만이 신적 정의의 분노를 가라앉히면서, 인간에게 자신의 신성한 상패를 되돌려 줄 수 있다. 위그(1096-1141)는 삼위일체의 필연성에 대한 합리적 증명에 자신의 정력을 기울인다. 더할 나위없이 선한 신은 더할 나위없이 좋아할 수 있는 대상만을 좋아할 수 있을 뿐이다. 더할 나위 없이 좋아할 수 있는 대상은 신성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만일 신이 세계를 창조한다면, 신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그것에 가담해야할 것이다. 그렇게 행하기 위하여 그의 사랑은 삼위일체의 다른 위격(位格)을 생기게 한다. 왜냐하면 단지 한 위격만이 신의 사랑을 받기에 마땅하기 때문이다. 말브랑쉬(Malebranche, 1638-1715)는 그의 합리적 신학의 근거가 될 두 가지 증명을 얻을 것이다. 정의의 질서와 자연의 질서는 만족의 열쇠와 창조의 열쇠에서 신의 현존에 의존하고 있다. 육신화와 말씀의 생성은 필연적이다. 아벨라르는 결국 신비적인 것들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8)
-*-
469 소크라테스(Socrate, Σωκράτης, 전469-399; 70세), 철학의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 그는 영혼을 화두로 사유한 첫 인물일 것이다.
O
251 앙트완(Antoine le Grand, Antoine d'Égypte, Antoine l'Ermite, 251경-356경)[온다섯], 수도사(은둔지사). 크리스트교 수도원의 창시자. [요약본으로 일대기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젊은 시절 크리스트교 성립전의 수도사로서 힌두교의 요기, 불교의 선승과 같았다.]
730 알뀅/알쿠이누스(Alcuin, 730-804), 라틴어를 사용한 영국 신학자, 시인, 과학자. 영국서 태어나 프랑스 투르에서 죽었다. 샤를마뉴의 스승이자 자문관이었다.
998 베랑제(Bérenger de Tours, Beringerius Turonensis, 998-1088) 프랑스 신학자. 철학자, 이탈리아 베르세이 공의회(le concile de Verceil)에서 1050년에 이단으로 단죄 받았으며, 특히 랑프랑 뒤 베크(Lanfranc du Bec, 1010경-1089)가 반박했다. .
1033 안셀름/안셀무스(Anselme de Cantorbéry, Anselmus Cantuariensis, 1033-1109), 장한 박사(Doctor magnificus, « Docteur magnifique »), 이탈리아 카톨릭의 베네딕트 수도사. 독백론 (Monologion (« monologue »): 신학 시론. 대담(Proslogion, 1075). 아퀴나스에 이르러 베네딕트파에서 도미니크파가 주류로 떠오를 것이다.
1050 로스켈레누스(Jean Roscelin, Roscellinus, 1050경-1121경), 프랑스 스콜라 철학자, 유명론의 창시자로 알려졌다.
1079 아벨라르(Pierre Abélard, Abelardus, 1079-1142), 프랑스 철학자, 인간이 학문을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여겼다.
- 재난의 역사/ 나의 불행한 이야기(Historia calamitatum, 부재 Histoire de mes malheurs, 1132)(쉰셋): 그는 여기서 엘로이즈와 사랑, 거세, 그리고 1121년 스와송 공의회(concile de Soissons en 1121)에서 단죄, 그의 초기작품들의 파괴 등을 이야기한다. - 이 사건으로 베르나르(Bernard de Clairvaux, 1090-1153)는 아벨라르를 비난했다.
1092 엘로이즈(Héloïse, 1092경-1164), 프랑스 여성학자, 종교인, 아벨라르 부인, 그와 편지교환으로 유명하다.
1096 위그(Hugues de Saint-Victor, Hugo de Sancto Victore, 1096-1141) 독일 삭스지방 출생 파리에서 몰. 중세 철학자, 신학자, 신비작가. 저술이 많다. 크리스트교 신앙의 성례(聖禮)(De sacramentis fidei chritianæ 1141 [Des sacrements de la foi chrétienne](미완성작) 교육론(Didascalicon ou Eruditio didascalica (vers 1135)(6권)
[1287 굴리엘무스 옥카무스(lat. Gulielmus Occamus: fr. Guillaume d'Ockham, en. William of Ockham, 1287-1347), 14세기 잉글랜드의 프란치스코회 수도사, 신학자. - [13세기에 보나벤투라(Sanctus Bonaventura; 1221-1274), 프란체스코파 수도사.]
1533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1592), 프랑스 철학자, 사상가, 수필가
1596 데까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1638 말브랑쉬(Nicolas Malebranche, 1638-1715) [루이 14와 탄생과 별세가 같은 삶] 프랑스신학자, 오라트와르 신부, 철학자.
172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프로이센의 철학자, 경험주의와 합리주의를 종합하여 인식론, 윤리학, 미학에서 비판론을 전개했다.
1792 꾸쟁(Victor Cousin, 1792-1867), 프랑스 철학자, 정치가. 정신주의 철학자, 데카르트 편집자.
1859 벩송(Henri Louis Bergson, 1859-1941), 프랑스 철학자. 세계철학사의 셋째 전기를 마련한 철학자로서 심층의 발현, 인민이 스스로 신과 같은 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의 태도, 방향, 방법이 인간들 각자에게 발산과 수렴을 할 수 있게 한다.
1884 질송(Étienne Gilson, 1884-1978), 프랑스 철학자, 역사가. 중세철학 전문가. 토마스 주의(Le Thomisme. Introduction à la philosophie de saint Thomas d'Aquin, 1919), 그는 벩송 사후에 그의 학적 업적을 기리어 글을 썼지만, 그는 벩송의 대척점에서 사고한 아퀴나스주의자였다.
1906 강디약(Maurice Patronnier de Gandillac, Maurice de Gandillac, 1906-2006), 프랑스 철학자, 철학사가. 의
(6:06, 59OK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