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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유
오래 전 원주에 있는 자유시장 앞을 지날 때였습니다. 어디선가 연신 빵빵거리는
소리가 나서 둘러보니 한 청년이 자전거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동차와 사람들로 붐비는 시장길을 빠져나가느라
애를 쓰고 있었지요. 경적을 계속 울렸던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유를
배달하는 작은 리어카가 자전거 뒤에 매달려 있었으니까요.
청년은 내게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줬습니다. 자전거 만이라면 더 쉽게 틈새를 빠져나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뒤에 매단 리어카를 잊으면 안됩니다. 빠져나갈 수 있는 틈의 기준은 자전거가 아니라 뒤에 매단 리어카였던 것입니다. 내가 자전거를 탔다고 내 뒤의 리어카를 무시하면 금방 사고가 나고 맙니다.
자유란 그런 것이었습니다. 혼자만의 출구가 아니라 모두의 출구를 찾는 것입니다. 혼자라면 얼마든지 홀가분할 수 있지만, 함께 사는 이들의 입장을 잊거나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자유였던 것입니다.
자유의 진정한 모습을 주님은 보여 주셨습니다. 얽매일 게 없는 분이었지만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거침없되 어긋남이 없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유였던 것입니다.
한희철 목사 (정릉감리교회)
헤븐리캐슬
“삶이란 공중에서 5개의 공을 돌리는 저글링 같습니다. 그 공은 일 가족 건강 친구 영혼입니다. 일은 고무공이기 때문에
떨어져도 다시 튀어 오릅니다. 하지만 다른 4개의 공은 유리공이라
떨어뜨리면 깨집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입니다. 가까이 있다고 당연히 여기지 말고 그것에 먼저 충실하십시오.”
더글러스 대프트 전 코카콜라 회장이 직원들에게 보냈던 신년 메시지 가운데 일부입니다. 그는 또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을 음미하는 여행”이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습니다. 경주하듯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여행하듯 가족과 친구, 무엇보다 영혼을 돌아보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선의의 경쟁도 이긴 놈만 말할 수 있는 거야!” 드라마 ‘SKY캐슬’의 대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는 세상은 경주하는 SKY캐슬이 아니라, 사랑하는 헤븐리 캐슬(heavenly castle)입니다. 천상의 성, 헤븐리 캐슬의 주민은 무엇을 중시할까요. 로마서 14장 17절에 그 답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오연택 목사(대구제일성결교회)
재방문은 안 합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풀림 성회’를
열며 현지 친구 덴티코 목사와 식사한 적이 있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저는 제가 사용한 테이블 냅킨을
아무렇게나 내려놨습니다. 반면 이탈리아인 친구는 냅킨을 정성스레 포개놓았습니다.
“뭐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친구가 말했습니다. “이거 몰라? 너처럼 확 던지는 것은 ‘음식이 맛있으니 다시 오겠다’는 뜻이고 ‘내가 봤을 때 이 식당은 별로야. 다시 오고 싶지 않아’ 그럴 땐 냅킨을 잘 접어놓는 거야.”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셨을 때 성경은 무덤 속 상황을 상세히 기록합니다. 예수님의 수의가 잘 개어져 있었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다시는 이 무덤을 방문하지 않는다’는 의미 아닐까요. 또 ‘나를 따르는 너희도 다시는 이 무덤에 올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메시지가 아닐까요.
묶인 인생은 살아있으나 끌려 다니는 인생입니다. 과거 실패한 곳을 자꾸만 방문하는 것은 상처만 남깁니다. 악몽을 되새기며 재방문 할 이유가 없습니다. 죽고 싶은 생각을 자꾸 반복하며 재방문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했던 ‘인생 냅킨’을 잘 개어서 테이블 위에 놓아보세요. 묶인 인생이 풀린 인생으로 바뀔 겁니다.
한별 (순복음대학원대 총장)
걱정의 무게가 삶보다 더 무겁다
중세의 한 기사가 먼 길을 떠나게 됐습니다. 싸움을 위한 무기를 챙기고 잠잘
때 덮을 담요와 베개, 먹을 때 필요한 식기와 충분한 양식, 불을
피울 장작, 목마를 때 먹을 물과 수통,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모든 것을 챙기다 보니 나귀에 잔뜩 싣고도 본인이 짐을 져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이 시원치 않아 햇빛을 가릴 모자와 여분의 옷을 더 챙겨 길을 떠났습니다.
얼마 안 가 개천을 건너게 됐습니다. 개천에는 만든 지 오래돼 보이는 나무다리가 있었습니다. 나귀와 함께 조심조심 다리를 건너는 순간, 그 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다리가 무너져버렸습니다. 개천에 빠지는 순간, 기사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젠장, 배를 준비했어야 해!”
과연 배를 준비했어야 할까요. 짐을 줄였어야 할까요. 우리가 무너지고 좌절하는 것은 너무 많은 준비와 쌓아놓은 짐 때문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배를 준비하지 못해 실패한 게 아니라, 준비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쓸데없는 짐들을 모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제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손을 잡고 길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걱정이 삶보다 더 무겁지 않게 말입니다.
김민정 목사(좋은목회연구소)
프로와 매너리즘
한 가지 일을 오래 한 사람 중 어떤 사람은 그 분야에서 프로가 되고 어떤 사람은 매너리즘에 빠집니다. 그 이유를 ‘김미경의 아트스피치’라는
책에선 ‘신선도’의 문제라고 이야기합니다. 신선도를 유지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워나가면 그 분야에서 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신선도는 다른 말로 하면 초심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신선도, 초심을 잃어버리면 교회를 오래 다닌 것이 오히려 신앙의 매너리즘에 빠지는 원인이 됩니다. 타성에 젖어 습관적으로 예배드리고 아무 감동 없이 입으로만 찬양을 부르게 됩니다. 설교를 들어도 다 아는 내용이라고 여겨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반면 신앙에도 프로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처음 인격적으로 만났던 감격의 신선도를 늘 유지하고 신앙고백의 초심을 품고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더 깊은 말씀의 은혜를 누리고 더 넓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더 높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신앙의 프로가 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새로우시고 성실하심이 크신 하나님(애 3:22~23)의 자녀답게 성장하는 신앙의 프로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손석일 목사(서울 상일교회)
버터가 줄어든 이유
마을 초입에 있는 빵 가게에선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맛있는 빵을 팝니다. 빵
가게 주인은 항상 친구가 운영하는 농장에서 버터를 사다 빵을 만들었습니다. 맛의 비결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부터 버터의 양이 줄어들었습니다. 1파운드 버터를
사다 저울에 달아보니 양이 모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친구에게 속았단 생각에 화가 났습니다. 급기야 빵집 주인은 친구인 농장 주인을 고발했습니다.
재판이 열렸습니다. 재판장은 농장 주인에게 왜 버터의 양을 줄여 팔았는지 추궁했습니다. 그러자 농장 주인은 “양이 줄어든 걸 몰랐다”고 억울해 했습니다. 그러면서 “항상 친구 빵 가게에서 산 1파운드 무게의 빵에 무게를 맞춰 버터를 만들었다”고 호소했습니다. 빵 가게 주인의 얼굴이 새빨개졌습니다. 농장의 버터량이 줄어든 것은 남몰래 빵의 양을 줄였던 자신의 결정 때문이란 비밀이 들통났기 때문이죠.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실수나 잘못을 보면서 추궁하고 문제 삼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의 원인을 혹시 내가 제공한 건 아닐까요. 남의 눈의 티끌보다 내 눈에 있는 들보를 빼는 것이 먼저는 아닐까요.
홍융희 목사(부산성민교회)
더해야 할 것들
신앙인들이 오해하고 실수하는 것 중 보편적이면서도 치명적이다 싶은 것이 있습니다. 신앙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 나머지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내가 신앙인이라는 이유로 상식이나 인격, 언행 등을 무시하는 것이지요.
독일의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는 1840년 질소 인산 칼륨 등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필수영양소 중 성장을 좌우하는 것은 넘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부족한 요소라는 ‘최소량의 법칙’을 발표했습니다. 나무통 법칙도 있습니다. 나무판자를 세워 잇대어 만든 나무통에 담을 수 있는 물의 양은 가장 긴 나무판자가 아니라 가장 짧은 나무판자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이라면 더욱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앙이 온전해지기 위해서는 믿음에 더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후 1:5~7)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무시하고 있는 한계가 우리의 믿음을 제한합니다.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은 나무통을 이루는 가장 긴 막대가 아니라 가장 짧은 막대입니다.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인생 가격표
늦은 밤 백화점에 희한한 도둑이 들었습니다. 물건은 하나도 훔치지 않고 백화점
안에 있는 물건들의 가격표만 모두 뒤바꿔놓는 어이없는 일을 합니다. 명품 옷에는 일반 옷의 가격표를
붙여놓고 저렴한 물건에는 값비싼 가격표를 붙여놓았습니다.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백화점은 개점했고 늘 그렇듯 손님들은 쇼핑을 했습니다. 한참 동안 아무도 가격표가 뒤바뀐 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네 시간 후 그 사실이 들통났고 백화점은 엄청난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누군가는 엄청나게 횡재했고 누군가는 큰 바가지를 썼습니다. 맥스 루케이도의 책 ‘하나님, 저도 고치실 수 있나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왜 많은 사람이 불행하다고 느낍니까. 어쩌면 잘못된 인생 가격표 때문은 아닐까요. 원래대로 인생 가격표가 정해질 때 비로소 행복은 시작됩니다. 셋째 하늘에 다녀온 후 보배 중의 보배는 오직 그리스도임을 보게 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 3:8~9) 새해 첫 달을 인생 가격표 점검으로 시작하면 어떨까요.
오연택 목사 (대구제일성결교회)
젊은 신앙을 가져라
중국에서 천만부가 팔린 ‘승풍파랑’이라는
책에는 젊음에 대한 글이 한 토막 나옵니다.
‘믿음이 있으면 젊은 것이고, 의혹이 있으면 늙은 것이다.
자신감이 있으면 젊은 것이고, 두려워하면 늙은 것이다. 희망이
있다면 젊은 것이고, 절망한다면 늙은 것이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을 만들지만, 사라진 열정은 영혼에 주름을 만든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성공이라는 의미로 쓰일 정도로 유명한 ‘승풍파랑’ 의 저자는 젊음과 늙음을 나이나 신체조건이 아니라 마음가짐과 정신 상태로 나누었습니다.
성경에서 위대한 일을 한 사람들도 나이나 신체 조건에 구애를 받지 않았습니다. 갈렙도, 모세도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나 청년이었고 하나 님의 일을 너끈히 감당했습니다.
젊은 신앙을 가진 사람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역을 충분히 감당하십시오. 반드시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주님! 나의 상황을 재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하소서!
피부의 주름보다 영혼의 주름에 더욱 신경쓰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부족함의 축복
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저서 ‘젊은 과학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수많은 분야에서 수많은 연구자를 만나봤습니다. 그 들은 모두 자기 분야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들을 만난 뒤에 저는 이상적인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오히려
너무 똑똑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연구를 완성하기 위해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 정도는 되어야 하지만 너무 똑똑한 사람들은 한 가지 일에 쉽게 질리기 때문입니다.”
사무기기 전문업체 쿄세라의 이나모리 회장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은
혁신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머리가 너무 좋아 어떤 일이 얼마나 어렵고 왜 안되는지 시작도 하기 전에
파악이 되기 때 문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인터넷도, 라디오도 없는 시대에 어떻게 전 세계에 전할 수가 있었을까요? 제자들이 똑똑한 사람이었다면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직하게 자신이 갈 수 있는 곳으로 전도여행을 떠났고, 순교를 당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부족한 나의 상황도 축복이라 여기고 내가 잘났다는 생각은 잠시 내려놓고 주님의 제자답게 우직한 믿음을 품으십시오. 반드시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주님! 능력의 부족함을 탓하지 않고 먼저 순종하게 하소서!
나의 약점이라 생각되는 부분들로 인해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창의적인 신앙
국제적으로 가장 유명한 리더십교육 전문가인 존 어데이 교수는 자신 이 만났던 ‘누구보다도
창의적인 사람들의 습관을 5가지로 분석’했습니다.
1. 고정관념에서 해방되라.
특정 분야에 아는 것이 별로 없을 때 창의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 우연히 생긴 일을 무시하지 마라.
창의력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냅니다.
3. 잠들기 전까지 문제를 붙들어라.
문제를 붙들다 잠을 청하던 도중에 문제를 해결한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4. 낯선 것을 친숙하게, 친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어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이 의외로 어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5.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저축하라.
종이에 적지 않은 아이디어는 대부분 머릿속에서 사라집니다.
지금 당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주일학교, 제자훈련, 새생명 축제, 열 린 예배…들도 처음에는 누군가의 창의적인 발상에서 나왔습니다. 나의 신앙, 우리 교회, 지역 주민들을 위한 좋은 생각이 있다면 기도로 준비하며 과감히 시작하십시오. 반드시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주님! 하나님이 주신 좋은 생각들을 과감히 실행하는 결단력을 주소서!
아주 작은 아이디어라도 그냥 두지 말고 남에게 알리고 실천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가르치고 실천하라
매라비안의 법칙에 따르면 상대방에게 의사를 전달할 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목소리와 말의 내용(45%)보다 표정과 태도(55%)가 더 큽니다.
이 연구와 비슷한 맥락으로 그렇다면 무언가를 익히고 배울 때 어떤 요소가 얼마나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결과도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 읽기만 할 때 10%
- 듣기만 할 때 10%
- 보기만 할 때 30%
- 보면서 들을 때 50%
- 보면서 말할 때 70%
- 말하면서 행동할 때 90%
- 배운 내용을 남한테 가르칠 때 99%
신앙 생활을 통해 변화된 나의 모습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나의 모습을 통해 알려줍니다. 변화되지 않고 있다면 말씀을 겉으로만 듣는 것입니다.
배운 말씀을 익히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에게 전하며 행동하는 것입니다. 깨달은 말씀을
남에게 전하고 직접 실천함으로 주님의 말 씀을 내 삶에 기록하십시오. 반드시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주님! 믿음이 삶과 일치가 되는 신행일치의 삶으로 인도해주소서!
바르게 알고, 바르게 실천하고, 바르게 가르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성공자의 하인, 실패자의
주인
나는 누구일까요?
나는 언제나 당신의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훌륭한 조언자가 될 때도 있고, 가장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합니다. 나는 당신을 성공의 계단으로 인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트리기도 합니다.
나는 당신이 맡기는 일을 습관적으로 처리합니다.
당신이 하는 일의 50%는 내가 알아서 처리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꼭 붙어 있습니다. 당신이 하는 일을 유심히 보고
따라합니다.
나는 모든 성공자의 하인입니다.
그리고 실패자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나로 인해 당신은 성공, 또는 실패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나를 잘 훈련시키십시오.
그렇다면 나는 당신을 평생 충실한 하인으로 섬길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멋대로 풀어준다면 당신은 평생 후회만 하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내가 누구인지 아시겠습니까? 나의 이름은 바로 습관입니다. 성경의 훌륭한 인물들은 모두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기도, 이른 아침에 하는 말씀의 묵상, 겸손과
정직, 이런 것들은 나를 주님과 더 가까이 하게 하고, 신앙을
성공하게 하는 좋은 습관들입니다. 오늘도 하루를 좋은 습관으로 인생을 채워가십시오. 반드시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주님! 거룩한 습관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소서!
신앙과 인생을 위한 좋은 습관 한 가지를 오늘 결심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고난을 기뻐하라
발명왕 에디슨은 “세상에 쓸모 없는 핸디캡은 없다”라고
늘 말했습니다. 그 역시도 실패나 실수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많은 발명을 했기 때문 입니다.
프랑스의 염색공장에서 한 가정부가 식탁보를 세탁하다 실수로 기름을 엎었습니다. 그런데 기름이
묻은 자리가 오히려 새하얗게 변했습니다. 그리고 이 실수로 드라이클리닝이라는 세탁법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병원에서 나프탈렌의 약효를 실험했는데 의사의 실수로 아세트아닐리드라는 약물을 투약했습니다.
그런데 이 약의 해열효과가 대단했고 부작용은 매우 적었습니다. 심지 어는 내성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약 ‘타이레놀’은 이렇게 발견되었습니다.
3M에는 아예 실패한 프로젝트만을 연구하는 부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핀란드에는 10월 31일을 서로의 실수를 공개하고 축하하는
‘실패의 날’로 지정해 지키고 있습니다.
고난을 기뻐하고 문제를 두려워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주 님은 약점을 강점으로, 악한 일도 선한 일로 사용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문제가 찾아올수록 기죽지 말고 더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반드시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주님! 실패마저도 주님께 맡김으로 평안한 마음을 허락하소서!
나의 실패에 낙담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실패도 비난하지 마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세계적인 시인이자 수필가 마리아 릴케에 따르면 천재 조각가로 알려 진 로뎅은 평생을 고독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조각가로 살 때의 로뎅은 무명의 설움 때문에 고독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명성을 얻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고 자기 작품을 인정해주면 공허함이 채워질
것이 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각하는 사람’과 같은 유명한 작품으로
명성을 얻고 난 뒤 로뎅은 더욱 고독감을 느꼈습니다. 평론가들은 멋대로 로뎅의 작품을 평가하며 이득을
취하려 했고, 로뎅에게 배우려고 찾아오는 문하생들은 단지 로뎅의 실력을 배우기 위해서 온 것이었습니다.
로뎅은 정말로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로뎅을 이해해주며, 예술작업을 도와줄 동반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는 그토록
큰 성공을 거둔 뒤에도 슬픈 눈을 하며 릴케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나의 제자들도 결국은 나보다 유명해지기 위해서 나를 찾아온 것입니다. 그들은 나를 이용하고
넘어서려 하지 나를 존경하고 도와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공허함은 하나님의 부재로부터 옵니다. 헛된 정욕으로 공허함을 채우려 노력하지 말고
만유의 주재이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십 시오. 반드시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주님! 잘못된 생각에 끌려 죄를 짓지 않게 하소서!
마음의 공허함을 느끼고 있다면 더욱 주님께로 나아가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100% 예수님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경기인 유럽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전 에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FC와 이탈리아의 유벤투스가 맞붙었습니다. 이날 경기를 보기 위해서
유럽 각국의 대통령과 총리, 그리고 수많은 유명 스타들이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이날 경기에선 바르셀로나가 3대
1로 유벤투스를 이기고 세계 최고의 클럽 자리에 올랐는데 이날 쐐기골 을 넣은 브라질의 신성 네이마르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갑자기 유니폼에
서 준비한 머리띠를 꺼내 묶었습니다.
머리띠에는 ‘JESUS 100%’라고 적혀있었습니다. 브라질은
카톨릭 국가이기 때문에 몇몇 기자들이 네이마르에게 카톨릭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카톨릭 집안에서 자랐지만 카톨릭은 아닙니다.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다면 카톨릭과 개신교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최고의 스타인 지금도 십일조를 잊지 않고, 골을 넣을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세레모니를
하는 그는 100%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의미로 머리띠를 준비했다고 말했습니다.
나의 삶의 모든 좋은 것이 주님께로부터 왔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모습을 주님은
기쁘게 받으십니다. 나의 삶을 통해 주님께 100% 영광을
돌리는 첫발을 오늘 내딛으십시오. 반드시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주님! 제 인생도 오직 주님으로만 채워지게 하소서!
내 삶의 제 1순위가 예수님인지 확인해 보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당신이 이기게 될 것이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우스는 밀비오 다리를 사이에 두고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전쟁을 벌입니다. 절대 약세인 콘스탄티누스는 절망 속에 고민하던 중 계시를 봅니다.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십자가가 보였는데 그 위엔 “이것을 가지고 싸우라! 승리하리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를 본 콘스탄티누스는 십자가로 깃발을
만들었고 이를 앞세워 전투에서 승리합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승리해 황제가 됩니다. 그는 313년 밀라노칙령을 선포해 기독교를 공인했습니다. 이로써 네로 황제 이후 기독교인에게 가해졌던 잔혹한 박해는 막을 내립니다. 지하무덤인 카타콤베에 숨어있던 그리스도인들은 예배의 자유와 전도의 특권을 얻었습니다.
승패는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인생은 전쟁입니다. 진학전쟁 취업전쟁 육아전쟁 질병과의 전쟁까지 우리는 계속 싸움을 합니다. 피할 수 없는 전쟁입니다. 신앙생활도 영적 전쟁입니다. 여러분의 전쟁은 어떻습니까. 어떤 싸움을 치르고 있든지 오늘 여러분이 치르고 있는 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당신이 이기게 될 것입니다.
한별(순복음대학원대 총장)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
새해를 맞아 기도하다 보면 흔히 ‘올해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를 짓지 않는 한
해가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작년에 지었던
죄들을 회개하며 올해는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죄를 짓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죠. 그러나 우리가
더 집중해야 할 것은 수동적인 죄가 아니라 능동적인 선입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 노력하는 삶보다 선을
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 훨씬 더 세상 속에서 승리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실수하지 않는 삶을 살려면 평생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는 것만큼 안전한 삶도 없습니다. 당연히 다른 사람보다 훨씬 적은 죄를 지을 수 있겠죠. 하지만 하나님 앞에 천 개의 죄를 짓나 백 개의 죄를 짓나, 우리는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으로 사는 똑같은 죄인입니다.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잠 14:4)는 말씀처럼 죄 안 지으려고 아무것도 안 하는 삶보다 하나님을 위해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삶이 더 보람될 것입니다. 죄만 피하고자 전전긍긍하기보다 선을 힘써 행하는 데 도전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김민정 목사(좋은목회연구소)
하나님 나라의 셰르파
지난 연말 MBC 방송연예대상 인기상은 ‘전지적
참견 시점’에 출연 중인 연예인 매니저들이 받았습니다. 한
매니저는 “무대에 오르는 직업이 아닌데 상을 줘서 감사하다”며
내년엔 담당 연예인이 상 받기를 바란다고 수상 소감을 밝혀 감동을 줬습니다.
히말라야 등반대원을 돕는 티베트계 네팔인을 부르는 셰르파라는 말이 있습니다. 셰르파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등반가 에드먼드 힐러리를 통해서입니다. 그가 정상에 올랐을 때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도 함께 있었습니다. 둘 중 누가 먼저 정상을 밟았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서로 미소만 지을 뿐이었습니다. 훗날 힐러리는 텐징이 먼저 정상 아래에 도착했지만 뒤처진 자신을 30분 기다려주고 먼저 정상을 밟게 했다고 고백합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텐징은 최고의 셰르파란 명성을 얻게 됐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셰르파입니다. 우리의 본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삶 속에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때, 본분에 맞는 최고의 명예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잠 4:8)
손석일 목사(서울 상일교회)
주객전도
옛날 인도의 어느 왕이 왕비와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왕비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왕은 깊은 슬픔 속에서 부인의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무덤 왼편엔 자신을 상징하는 용사의 상도 세웠고 맞은편엔 왕가의 상징인 호랑이 상을 세웠습니다. 호화로운 별장은 무덤 남쪽에 배치했습니다. 북쪽엔 웅장한 성을 지었죠. 왕은 시간이 날 때마다 무덤과 사방의 조형물을 돌아보며 왕비를 추억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왕의 눈에 거슬리는 것이 생겼습니다. 바로 무덤이었죠. “무덤을 당장 치워버려라.” 결국 무덤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허버트 G 웰스의 단편소설 ‘무덤’의 줄거리가 이렇습니다. 모든 게 아내를 기리려 시작한 일이었죠. 하지만 아내의 무덤이 보기 싫어져 치워버리라고 명령하고 말았습니다. 주객이 전도된 겁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사랑해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혹시 신앙생활과 거리가 먼 사교모임만 쫓아다니고 있지는 않나요. 권사며 장로 같은 직분에 마음을 빼앗겨 주객 전도된 신앙생활을 하는 건 아닌지 각자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홍융희 목사(부산성민교회)
업다와 없다
예전에는 아기들 대부분이 엄마 등에 업혀 다녔습니다. 생김새는 물론 어감조차
촌스러우면서도 정겨운 ‘포대기’에 폭 싸여서 말이지요.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고가(高價)의
유모차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엄마 등에 업혀 바라보던 세상이 우리가 처음으로
대한 세상이었습니다.
우리말 ‘없다’는 ‘업다’에서 왔다고 합니다. 가만 보면 두 말이 엇비슷합니다. 없다와 업다가 관련 있다는 게 낯설게 다가오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수긍이 됩니다. 아기를 등에 업는 순간 아기에겐 엄마 얼굴이, 엄마에겐 아기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어 없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것은 업었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서로 기대고 있는 것이지요.
믿음의 길을 가다 보면 주님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주님이 보이지 않으면 낙심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이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업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안 보이는 그때가 실은 가장 가까운 때입니다.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티백신앙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왕 앞으로 끌려왔습니다. 금신상에 절하지 않은 죄 때문입니다. 왕은 지금이라도 절하면 살려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호합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단 3:17)
중국의 문화혁명으로 모든 선교사가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한 선교사가 떠나기 직전, 제자훈련을 받고 교회의 지도자가 된 중국 목사님과 차를 마시면서 묻습니다. “많은 환난과 핍박이 닥칠 텐데 어떻게 견뎌내시겠습니까.” 가만히 차를 바라보던 중국 목사님이 말문을 엽니다. “선교사님, 차가 뜨겁죠?” 그러더니 차 티백을 꺼내 듭니다. “이 티백이 뜨거운 물에 들어갔다고 해서 그 맛을 잃었나요? 오히려 뜨거운 물 속에 있을 때 진짜 맛을 냅니다. 두고 보십시오. 환난 속에서 제 믿음을 주님 앞에 입증하겠습니다.”
풀무불 같은 역경은 진짜 복음이 아니라 거짓 사상을 태웁니다. 세상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거짓 선동, 세상을 얻으면 성공한다는 허황된 풍조 말입니다. 풀무불에서 오히려 더욱 빛나는 진짜 복음을 살아냅시다.
오연택 목사(대구제일성결교회)
심장이 뛰는 그 일을 하라
저는 청년 시절 찬송가를 많이 불렀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갔더니 리듬과 멜로디가
현대적인데 가사까지 복음적인 노래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걸 가져와 불러야겠다고 생각하고 번역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하느냐, 미친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인생 낭비하지 말고 네 앞가림이나 하라는 비아냥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심장은 뛰었고 기도하면 울림이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좋았고 행복했고 사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번역했던 곡들은 이렇습니다. ‘예수 가장 귀한 그 이름’ ‘나팔 소리 시온성에 크게 울려 거룩한 성에’를 비롯해 국민 CCM이 된 곡도 있습니다. ‘호산나 호산나 호산나 높은 곳에서’가 그렇습니다. 지금 하는 얘기지만 이 곡은 너무 멜로디가 밋밋해 율동을 붙였습니다. 그러자 한국교회 전체가 율동을 하며 따라 불렀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은 ‘예~수 사랑해요 나 주 앞에 엎드려 경~배와 찬양, 왕께 드리네’입니다.
20대 시절을 돌이켜보면 부족함은 있으나 후회는 없습니다. 심장이 뛰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심장이 뛰는 그 일을 하십시오.
한별(순복음대학원대 총장)
노래 부르는 한 해
얼마 전 TV에서 아이유의 ‘밤편지’라는 노래를 양희은씨가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똑같은 노래인데 그
맛이 얼마나 다른지, 마치 다른 곡을 듣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각자
가진 음색과 삶의 경험, 철학과 노력이 결집돼 같은 노래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신앙도 노래와 같습니다.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 그 맛과 아름다움이 전혀 다릅니다. 누군가의 모창을 하면 결국 그건 자신의 노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노래가 됩니다. 그 때문에 노래는 나의 것으로 노래해야 합니다. 나만의 목소리로 말이죠.
노래는 부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악보만을 두고 노래라 하지 않는 것처럼 신앙도 그러합니다. 수십년 동안 노래는 부르지 않고 악보만 교정하고 있는 건, 성경공부만 하고 삶에서 실천하지 않는 신앙과 같습니다. 조금 틀리더라도 부를 때 비로소 노래가 되듯이 조금 부족해도 실천해야 신앙이 됩니다.
2019년 새해에 우리는 더 많은 삶의 노래를 부르기 원합니다. 아이들의 엉터리 흥얼거림이 사랑스럽듯 우리의 미숙한 실천도 하나님께 그러할 것입니다.
김민정 목사(좋은목회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