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훈련 새벽기도 설교문1~6 "기도는 성도의 호흡입니다" 살전5:15-18 479장 사람이 태어나서 호흡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큰 일 납니다. 사람이 거듭난 이후에 기도의 생활을 제대로 시작하지 않으면 어떤 현상이 생길까요? 영의 아이가 자라지 않게 됩니다. 십년이 가도 이십년이 가도 기도생활이 몸에 붙지 않는 교인들은, 기도가 무엇인가를 실감하기 위하여, 한 30초간이라도 호흡을 멈쳐 보세요. 죽을 것 같지요. 우리 영의 사람이 기도하지 않을 때 이런 위기를 느끼게 됩니다. 영적 질식 상태인 채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기도는 호흡처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는 호흡임을 명심하십시오. 영의 사람이 무럭무럭 자라려면 기도에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은 기도생활을 통하여 점검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기도를 어떻게 몸에 붙이고 있느냐에 따라 그 깊이와 능력과 향기가 결정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의 환경은 척박하기 그지 없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예수님에게 모두가 역경과 고난으로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이 모든 일들을 기도로 돌파해 가셨습니다. 크고 작은 기적의 현장과 흥분 속에서도 늘 기도의 자리로 옮겨 가셨습니다. 제자를 세우실 때도 기도하셨습니다. 새벽마다 일어나 기도하시고, 산에 홀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밤이 ?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영성과 사명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게을리 하지 않는 것입니다. 쉬지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호흡하듯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아바 아버지께 무엇이나 언제나 어디서나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새벽에 잠이 깨어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는 무슨 일을 당하든지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는 자리에서든지 호흡하듯이 기도하도록 기대되고 있습니다. 왜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기도없이는 살기가 힘든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없이 살면 영적인 전쟁에서 패배할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가슴에 붙이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복음의 예비한 신발을 신고 믿음의 방패와 성령의 검을 들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여야 예수 그리스도가 승리한 승리의 깃발을 펄럭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를 호흡하듯이 쉬지 않고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들의 약함과 부족함을 아시고 하나님은 우리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지 못할 때 제대로 기도하지 못할 때 깊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기도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쉬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 안에 오신 성령님은 늘 기도하고 계시므로 하나님의 군대가 우리를 호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새벽. 이렇게 기도해 봅시다. "주님, 내가 하루 종일 호흡하듯이 기도하게 하옵소서. 성령으로 언제나 기도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침에는 소리 내지 말고 기도해 보십시오. 소리 내는 발성기도 대신에, 소리 내지 않는 기도를 침묵기도라고 합니다. 말하지 않고 침묵하면서 기도하는 것이지요. 묵상기도를 해도 좋습니다. 묵상기도는 어떤 말씀이나 어떤 주제를 제목으로 올리며 깊이 깊이 묵상하는 기도입니다. 또 관상기도를 해 보셔도 좋습니다. 관상기도는 생각조차 끊어버리고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 쉬는 기도입니다. 관상기도는 잠재의식과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상처들, 쓴 뿌리들, 견고한 진들을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힘이 임하게 되는 기도입니다. 이 새벽, 깊이 기도하시는 가운데, 성령의 바람이 여러분 각자에게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아멘. "기도는 대화입니다" 304장 (사58:9) "그 때에 네가 주님을 부르면 주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다. 네가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 '내가 여기에 있다'하고 대답하실 것이다." ** 이번 주 새벽마다 집중적으로 기도할 제목 을 교재 맨 끝 페이지에 기록들 해 두시기 바랍니다. 토요일이나 그 후에 응답여부를 체크하였을 때. 간증이 나오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가 호흡이라는 의미는 우리가 기도를 쉬지 않아야 한다는 측면입니다. 호흡처럼 생각하면서 기도해야, 늘 하나님의 뜻 안에 머무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기도는 대화라는 측면도 가집니다. 누구와의 대화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과의 대화가 기도입니다. 그런데 기도가 대화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기도가 즐겁지 않게 됩니다. 부담이 됩니다. 기도에 무슨 형식을 갖추어야 하나? 어떻게 기도해야 되나? 하는 점에 신경이 쓰이다가 그만 기도를 안 하게 됩니다. 대표기도를 하라든지 갑자기 기도 부탁을 하면 부담이 되는 경우가 그겁니다. 기도는 사람의 귀에 들리라고 하는 어떤 연설이나 의견 발표나 강의가 아니라,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라는 사실을 알면, 기도가 편해집니다. 그런데 대화에는 여러 가지 대화가 있지요? 도란 도란 나누는 대화도 있고요. 삿대질 하며 싸우는 듯한 대화도 있고요. 한 쪽에서는 놀란 눈으로쳐다보는데 통곡하듯이 토설하듯이 속시원하게 속풀이하는 대화도 있고요, 또 어떤 대화는 눈 지긋이감고 상대방이 하는말에 귀를 바짝 세우고 듣는 그런대화도 있지요. 비의 종류에 안개비,이슬비, 보슬비, 가랑비, 장대비, 폭우들이 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서로가 서로의 가슴을열며 허심탄회하게 아무런 격식없이 하는 대화가기도입니다. 편하게 그저 서로의 표현을 드러내어 커뮤니케이션 하는 게 기도라 그 말입니다.어떤 특별한 자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특별한 패턴이 있는 게 아닙니다. 아들이 없어서 괴롭다고 한탄하는 기도, 한나의 몸부림도 기도입니다. 마음이 괴로워서 기도하고 통곡하던 한나의 기도(삼상 1:27)를 하나님은 듣고 계셨습니다. 마음이 슬퍼서 심정을 통하던 한나의 기도 자세가 어떠했는지 그 울음과 그 통곡이 어떠했는지 상상이 가십니까? 나중에 소리 내지 않고 입을 오물거리자 제사장이 웬 여인이 술이 취해 실성한 채 성전에 엎디어 있는 줄 알 정도였으니까요. 기도는 아무나 하나님을 상대로 하여 기도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제한되어 있습니다. 누구만 기도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들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기도를 하나님이 이렇게 기쁘게 응답하고 계심을 구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에게 말씀하셨다. (왕상 9:3)"네가 나에게 한 기도와 간구를 내가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네가 내 이름을 영원토록 가리려고 지은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였다. 따라서 내 눈길과 마음이 항상 이 곳에 있을 것이다". 신약시대인 오늘날에는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로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들만 기도의 특권을 가집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자만이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쪽으로 틀어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반응하시게 되어있습니다. (대하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나의 백성이 스스로 겸손해져서, 기도하며 나를 찾고, 악한 길에서 떠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용서하여 주며, 그 땅을 다시 번영시켜 주겠다.". (시 65:2)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들으십니다. 이 새벽에 여러분이 겸손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그 모든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그 고난의무게가 너무나 무거워 정말 끙끙거릴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때 기도를 포기합니다. 기도해도 소용없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합니다. 그리고는 한숨을 푹 내리쉬며 혼자 말로 넋두리로 원망하고 불평하고 자조합니다. 그러나 그런 부정적인 독백들은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상대로 하여 간구하거나 토설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의 범위를 넓혀야 합니다. 우리 삶을 덮어오는 그 어떤 파도 그 어떤 문제도 모두가 다 기도제목이 됨을, 충분히 됨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시편 91편은 주님이 우리의 피난처 됨을 잘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15절은 하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나를 부를 때에, 내가 응답하고, 그가 고난을 받을 때에, 내가 그와 함께 있겠다. 내가 그를 건져 주고, 그를 영화롭게 하겠다." 이사야서 58장 9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때에 네가 주님을 부르면 주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다. 네가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 '내가 여기에 있다'하고 대답하실 것이다." (창 18:23-32)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그 기도에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나의 문제만이 아니라 남의 문제까지도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소돔성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 때문에 아브라함은 중보의 기도를 올립니다. 의인이 다만 몇 사람만이라도 있다면 용서해 달라고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쉰 명에서 열 명에 내려갈 때까지 사정사정 기도합니다. 이 거룩한 갸륵한 흥정에 구체적으로 일일이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묵상해 보십시오. 바로 이 분이 오늘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우리의 두서 없는 마음들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시다. 북한 땅의 어둠을 사라지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김정일의 마음을 주님께서 장악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국민들의 마음이 분열되지 않고 하나로 차분히 가라앉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그리고 우리들의 자녀문제, 가정문제, 사업문제, 경제적인 문제, 이런 저런 문제들을 대화하듯이 편하게 그러나 간절하게 올려 드립시다. 그러나 주님의 음성 주님의 말씀도 귀 기울여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간절히드리고는 침묵하면서 하나님의반응과음성을 기다리는시간을 잠잠히가져보세요. 노트에 메모하시면서 기도하셔도 좋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기도가 대화임을 아버지와의 대화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오늘 이 새벽에 대화에 우리가 민감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는 겸손입니다"눅11:10) 293 (눅 11:10)"구하는 사람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사람마다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교만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생각이 최고입니다. 자기 의지(意志)면 끝입니다. 자기 선택에 누군가의 다른 입김이 들어오면 그래서 거슬리면 화가 나고 짜증이 납니다. 자기 판단이 곧 하나님의 판단과 같은 최종적인 것이요 타협이나 양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은 좀처럼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할 리가 없습니다.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자기가 마음대로 하면 되니까.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다릅니다. 내 삶은 내가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삶의 주인이 있다고 직감합니다. 하나님의 내 삶의 주도권을 잡으시는 것을 어색해 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그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건 하나님이 어떻게 판단하시고 어떻게 생각하시며 어떤 것을 좋아하시는 지 궁금해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습니다. 기도의 결과 기도한 대로 결정하고 판단하고 나아갑니다. 겸손한 자는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기도의 삶을 사셨습니다. 겸손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신 그 자기 묘사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기도의 사람 예수님은 힘들고 어려운 사명을 무사히 잘 감당하시고 원래의 자리 영광의 보좌로 회복되어 오르셨습니다. 겸손한 자는 영광의 자리에 앉게 되지만, 교만한 자는 패망의 자리에 떨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 하늘의 법칙이요 영적 세계의 원리입니다. 겸손한 자는 늘 자기보다 하나님을 더 높입니다. 이것을 찬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겸손한 자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겸손한 자만이 주어진 삶의 환경 가운데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 환경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겸손해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자기를 낮춘다고 겸손해 지는 것이 반드시 아니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면 자기 비하가 되고 자기 정체감을 상실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유약하거나 비굴하거나 거짓 낮춤으로 삐뚤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당히 자기 정체성과 자존감을 가진 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거룩함과 아름다움을 지닌 채, 겸손하게 되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것은 상대방을 존귀히 여기면 됩니다. 높이면 됩니다. 감사하면 됩니다. 위로하고 격려하면 됩니다. 하나님이시라면 찬양하면 됩니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겸손하게 됩니다. 떳떳한 자기 정체성을 솔직히 유지한 채,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귀히 여기게 되면 그게 바로 겸손의 삶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분명히 겸손한 사람인데도, 놀랍게도 그 삶이 윤택하고 풍성한 것을 보게 됩니다. (왕상 8:23)."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위로 하늘에나 아래로 땅에나, 그 어디에도 주님과 같은 하나님은 없습니다. 주님은 온 마음을 다 기울여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주님의 종들에게는, 세우신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이 찬양은 솔로몬 왕이 이스라엘 온 회중이 보는 데서, 주님의 제단 앞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두 팔을 들어서 펴고, 올려 드린 찬양의 기도입니다. 이런 겸손한 기도, 찬양의 기도를 여러분도 새벽마다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그 기도는 허공에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영적인 세계에서는 살아 움직입니다. 철사줄의 뻗어가는 움직임과 같습니다. 빙벽을 녹이는 뜨거운 입김과 같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쓴 사도요한의 증언을 들어보면 우리들의 기도가 땅에 떨어지지 않고 하늘 나라 하나님의 얼굴 위로 어?게 올라가는 지 그림이 그려집니다. (계시록 5:8)."네 생물과 스물 네 장로가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히 담긴 금 대접을 가지고 어린 양 옆에 엎드렸습니다. 그 향은 곧 성도들의 기도입니다."(계시록 8: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사랑하는 새벽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가 금 대접에 담긴 향이 되어 주님 앞으로 언제나 예외없이 올라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에 힘을 쏟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창 32:28)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축복을 쟁취하기 위하여 씨름하던 밤,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씨름하는 기도가 뜨겁고 끈질기고 거세지만 그 깊은 속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겸손이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인생과 역사를 주도하시는 손길 앞에서 사실은 한없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드신 비유 중에 빵 세 개를 꾸어 달라고 밤 중에 집에 찾아와 졸라대는 친구의 비유가 있지요. (눅 11:9)그러시면서 강청하는 기도의 중요성을 설명하신 적이 있습니다. 구하라, 찾아라,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기도의 응답이 있다고 결론을 내리신 적이 있지요. 기도하는 자의 어떤 태도를 강조하기 위함이십니까? 겸손입니다. (눅 18:1-8)불의한 재판장을 자꾸만 찾아와서 귀찮게 하면서 졸라대는 한 과부의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밤낮으로 부르짖어 기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향한 내 마음 속에,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내 일을 하나님께 부탁하고 의뢰하면 응답이 없을 리 없다. 반드시 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계속하여 기도하자. 이런 겸손함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출 15:24-25).겸손한 모세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쓰디쓴 물이 달아지는 응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약 5:16)겸손한 자가, 믿음으로 간구하면, 하나님은 그 의인의 간구에 역사를 반드시 일으키십니다. (요일 3:22)겸손한 자가, 하나님이 주시는 계명을 다 지키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면, 응답의 역사가 폭발적으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겸손한 기도의 물결이, 새벽마다 날마다 여러분의 마음을 덮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새벽,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인생의 주인되신 하나님, 모든 응답의 열쇠를 다 쥐고 계신, 주님 앞에, 우리가 겸손하게, 기도의 무릎을 꿇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그 겸손함으로 우리를 채워 주시옵소서. 그 겸손은 우리의 가슴을 열정으로 태울 줄 믿습니다. 그 겸손은 우리의 마음을 소망으로 가득 채울 줄 믿습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는 전쟁입니다"(딤전 2:8) 찬송289장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 우리가 거듭나서 하나님의 나라를 알게 되고 느끼게 되면, 내안에 하나님의 나라와는 질적으로 다른 나라가, 그동안 존재해 왔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두 나라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기도의 내용이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그저 기도를 내가 필요한 무엇인가를 좋으신 나의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고 간청하던 기도의 차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게 됩니다. 이제는 나 혼자 내 소원만을 말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듣기 시작하게 되고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시고계신 영적전쟁이 기도와 연관되고 있음을알게 됩니다. 그래서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져 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영적 전쟁의 준비일까? 아니면 영적 전쟁 그 자체일까? 기도는 하나님의 뜻 안에 참여하기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이미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시간입니다. 적이 누구이며 무엇이며 어떤 경로를 통하여 나를 공격할지를 미리알게 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시간은 영적 전쟁의 대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은밀한 작전회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전략회의이기도 합니다. 그 뿐 아니라 실제의 작전이 수행되는 영적인 실제 전투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이 영적 전쟁의 비상회의를 가장 우선으로 하셨습니다. 새벽에도 하셨고, 밤늦도록도 하셨고, 때로 밤이고 낮이고 가릴 것 없이 한적한 곳을 찾으셔서 이 전략회의 비상회의 품평회를 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솔직하게, 진지하게, 뜨겁게 하셨습니다, 때로는 예수님은 간절한 심정을 토로하는 시간도 보내셨습니다. 잡히시기 전날 감람원에서의 기도가 그 예입니다. (눅 22:44) "예수께서 고뇌에 차서(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같이 되어서 땅에 떨어 졌다."고 묘사되어 있지 않습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은 기도가 어떤 파우워가 있는 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잡히자 그들은 어떤 세속적이고 세상적이며 인위적인 대책을 강구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했을 뿐입니다. 기도로 영적 전쟁에 임했을 뿐입니다. (행 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 그래서 그들은 주님의 승전고를 가슴에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눈 앞에 베드로가 응답이 되어 나타난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적들이 침공할 때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전쟁의 왕 만군의 여호와의 개입이 있게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위기를 당하자 영적인 지도자 사무엘에게 구원을 요청합니다. (삼상 7:9,10)"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의 기도에 하나님은 큰 천둥소리로 전쟁을 수행해 가신 것을 보게 됩니다. 기도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전략입니다. 가장 무서운 병기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전쟁의 승패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연결되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대상 16:11)"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오늘 우리는 평양 권세의 어두운 책동을 방어하고 진압하려면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됩니다. 낙동강 전선이 부산을 조여 올 그 때에도 조국을 살린 것은 기도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호소에 따라 기도의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모두들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낙동강 전선에 갑자기 장대비를 쏟아 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개입할 시간을 벌게 하셨습니다. 기도는 전쟁입니다. 하늘에서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그 어떤 전쟁이라도, 그 어떤 영적 전쟁이라도, 승리로 이끌어 가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느 9:27~28)"그러므로 주께서 그 대적의 손에 붙이사 곤고를 당하게 하시매 저희가 환난을 당하여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크게 긍휼을 발하사 구원자들을 주어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거늘 28. 저희가 평강을 얻은 후에 다시 주 앞에서 악을 행하므로 주께서 그 대적의 손에 버려 두사 대적에게 제어를 받게 하시다가 저희가 돌이켜서 주께 부르짖으매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여러 번 긍휼을 발하사 건져내시고 엘리야와 엘리사.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 앞에서 기도합니다. 그들의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전쟁의 탁월한 방법이었습니다. (왕상 18:37,39)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엘리사의 전쟁을 보십시오. 기도를 통해 적들의 눈을 어둡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움직이시게 하는 기적을 보여 줍니다. "시리아 군대들(아람 사람)이 산에서 엘리사에게로 내려 올 때에, 엘리사가 주님께 기도하였다. (왕하 6:18).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그러자 주님께서는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쳐서 눈을 멀게(어둡게) 하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벽에 이 기도의 의미를 가슴에 담으시기 바랍니다. 도는 전쟁입니다. 전쟁 준비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권면처럼, 여러분을 권면합니다.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손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손입니다. 하나님께 전쟁의 승패를 의뢰하는 손입니다. 전쟁의 승리를 확신하면서 여호와의 이름을 높여 드리는 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깃발입니다. 여러분이 이 시간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면, 민족이 살아납니다. 북한 땅을 위해서 기도하면, 북한땅의 어둠이 세력을 잃어가게 됩니다. 선교사님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부르며 기도하면, 그들을 공격하던 악한 세력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게 됩니다. 어떤 어머님이 새벽에 아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술에 취하여 차를 몰며 한강을 지나던 아들의 차가 살얼음 언 도로 위에서 미끄러지면서 낭떠러지 30센티 미터 앞에서 멈추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실제입니다. 전쟁입니다. 오늘 새벽. 여러분이 무슨 문제를 가지고 계시든 그 문제를 통해 그 어떤 악마가 공격해 오든 기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권세로 승리를 거두시는 이 아침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기도는 훈련입니다"(다니엘 6:10)"(단 6:10) 기도는 호흡이며 대화입니다. 기도는 겸손한 자만이 드리는 영적 전쟁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기도가 좋은 줄은 알면서도, 우리가 기도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죄악된 본성이 기도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게으른 인간이 본성대로 내버려 두면 저절로 기도하는 법은 없습니다. 위기가 태풍처럼 몰아치고, 환난이 파도가 되어 나를 덮을 때에야, 정신이 번쩍 들어 아버지를 ?고 하나님을 부르는 게, 우리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항로를 이탈하지 않으려면 무언가 대책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기도를 훈련으로 마음에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장차 장군이 되고 장교가 되어 하늘을 날고 싶은 사람은, 공군사관학교에 지망합니다. 한반도를 지키고 씩씩한 장군으로 한 평생을 군인으로서의 영광스러운 삶을 희망하는 소년은, 푸른 꿈을 안고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합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사관학교에 가면 고된 훈련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고 이에 대한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해병대를 지망하는 청년들의 마음 속에는 훈련은 어떤 고된 훈련 심지어 지옥훈련이라도 견뎌 내겠다는 뱃장과 기상이 숨어 있습니다. 이것은 기도 생활의 영적인 의미를 그대로 시사합니다. 우리가 만일 우리의 가정을 신앙의 명문가로 꿋꿋하게 세워서 우리 가문의 자손을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들로 키워내고 싶은 그런 거룩한 야심이 있다면, 우리는 기도를 훈련으로 감당하고자 하여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홍성에서 뿐만 아니라 이 한 반도와 온 땅에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건강하고 행복이 넘치는 교회, 수많은 생명들을 천국 백성으로 초대하여 제자로 훈련시키는 그런 교회로 만들겠다는 거룩한 야심이 있다면, 우리는 기도를 훈련으로 감당하고자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홍성긍정장로교회의 초기 시대를 감당하고 있는 특별개척 팀입니다. 특별하다는 것은 특별한 대접과 은혜를 받을 수있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특별한 훈련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합니다. 기도는 남녀노소,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감당할 수 있는 훈련이라는 점에 기도의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행 10:9; 오정 쯤).베드로가 초대 교회 시절 그 황무지를 개척하는 그 험난한 시기에 교회의 틀을 잡으며 사도로서의 권능과 기적과 영광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규칙적인 기도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기도 시간을 엄수하는 것을 자기 몸을 쳐 복종시키는 훈련으로 생각하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행 10:2; 늘 기도: 행 10:30; 오후 세 시 기도).가이사랴에 살고 있던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의 가문이 복음을 받고 선한 삶을 살며 성령이 충만하게 되는 축복을 경험하게 된 것도 고넬료에게는 기도 시간이 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넬료에게도 기도는 자기 몸을 하나님 앞에서 복종시키는 훈련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기도는 훈련입니다. 언제나 죄의본성안으로 오그러 들어가는 나 자신을 깨뜨리며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훈련입니다. 무소부재(無所不在) 하신 하나님이, 구태여 우리들에게 성산, 성막, 성전, 회당, 교회당을 주셔서 그 곳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공동체가 모여 들도록 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함께 모여 기도하고 각자가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우리를 배려하는 훈련의 장소로 주시고자 함입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셨습니다. (사 56:7). "내가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겠다. 또한 그들이 내 제단 위에 바친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내가 기꺼이 받을 것이니, 나의 집은 만민이 모여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내가 섬기는 교회 예배당의 어떤 장소를 내가 기도의 훈련을 하는 장소로 정해 버리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우리교회는 아직 교회와 기도실이 갖추어지지 않았습니다만 어찌되었든 집이든 회사이든 가게이든 직장이든 어디든지 간에 내가 특정한 장소를 내 기도의 훈련장으로 삼아 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 장소에 도착하면 순식간에 기도로 빠져 들 수 있도록 익숙해지는 것이 좋습니다. 다니엘이 이런 훈련 기도의 모범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는 하루 세 번 자기 집에서 그렇게 훈련을 쌓습니다. 마음 놓고 기도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리우스 왕 이외의 그 어떤 신에게도 무엇을 간구하는 사람은 사자 굴에 집어 넣게 된다는 왕의 금령을 알고도 다니엘은 평소에 하던 것처럼 무릎을 꿇습니다. 평소에 기도가 훈련되지 않았더라면, 그리하여 기도 시간에 하나님이 크신 위로와 약속과 응답이 다니엘과 늘 함께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가능했겠습니까? (단 2:19)꿈을 해몽할 수 있는 환상과 비밀도 (단 9:22)하나님의 지혜와 통찰력도 (단 10:12)겸손한 간구에 대한 응답도 (단 10:18)그의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안과 강건함을 회복한 것도, 다 기도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시간은 다니엘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자기 훈련의 시간이었습니다. 기도는 우리 모두에게 훈련임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마 26:41)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 훈련에 기쁨으로 임하여야 합니다. (눅 18:1)우리는 무슨 일에 결코 낙망하지 않도록, 기도 훈련에 소망으로 임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골 4:2)우리는 감사함으로, 기도 훈련을 쌓아 가야 합니다. (약 4:3)우리는 기도 훈련을 통하여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정욕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마 18:19)우리는 합심하여 기도함으로 서로의 기도 훈련에 기름을 뿌려 주어야 합니다. (행 1:14)우리는 기도 훈련에 매진하고 애써야 합니다. 그러할 때 마가의 다락방에 임했던 메가톤 급 성령의 역사가 여러분의 각자의 삶, 여러분의 가정, 우리 공동체에도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기도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기도를 하나님의 훈련으로 받으며, 기도 훈련에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소망으로 참여하는, 우리 모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는 응답입니다" (요14:14) (요 14: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 기도하는 삶이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기도에 그렇게 매달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도해 봤자 응답을 받는다는 데 확신이 없거나, 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해도 안 주시고, 기도 안 해도 주실 테니까, 기도에 그렇게 비중을 두지 않는 듯 합니다. 맞습니까? **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기도 내용 때문에 그 내용에 반응하시는 걸까요? 아니면 기도한다는 사실 자체를 좋아하시면서 여기에 기쁨으로 반응하시는 걸까요? 이것은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기도의 비밀과 연결된 질문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질문도 아울러 됩니다. 사사시대이지요. 하나님은 기드온을 부릅니다. 그를 이스라엘 구원할 자로 세웁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의심이 났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자기를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로 세운 것인지,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적군들을 모두 물리칠 수 있을는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양털 뭉치로 타작마당에 두어 두 번이나 하나님께 표적을 구합니다. 그 표적을 보고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알고 싶었던 것이지요. 한 번은 양털뭉치만 새벽이슬에 젖고요. 또 그 다음날은 반대로 타작마당만 이슬에 젖게 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드온의 해괴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섬세한 반응이요 즉각적인 응답이지요. & 하나님은 그 기도의 내용보다는 기드온 그 사람을 주목하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 기도내용이 때로 조잡하고 억지와같아도 하나님은 기도하는 우리의중심을 꿰뚫어 보십니다. 아바 아버지로 알고 나아오는 아들과 딸이기에, 기도하는 그 자체를 기뻐하시고 즐기시는 분이심을 명심하십시오. & 그래서 때로 기도하는 내용과 다른 응답이 내려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도하는 내용대로 응답이 되면 오히려 그 삶에 해가 되고 독이 되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정욕으로 구하면 순화시켜 응답하십니다. 때가 되지 않은 것이면 무응답인 것처럼 시치미를 떼시며 침묵도 지키십니다. 하나님의 응답의 수순은 흐트러짐이나 착오가 없음을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왜 기도만 하느냐 홍성이라는 바다를 향하여 손을 내밀어라 라는 말씀이 기도하는 저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솟아오르던 때에는 하나님의 응답의 손길 앞에 우리가 어찌 전율과 찬양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약5:13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고난의 파도가 나를 덮으면 기도하면 됩니다. (마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무언가 절실히 필요하면 기도하면 됩니다. & 무언가 잃어버렸으면 찾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됩니다. & 무언가 막혀서 답답하면 뚫어 달라고,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하면 됩니다. 사면초가에 있을 때 우리는 내가 누구인가를 얼른 떠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우리가 누구이기 때문입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요16:24)"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 기쁨으로 응답하실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임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요일5:14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그러므로 담대하십시오. (막11:24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이미 받은 줄로 믿으십시오. (빌 4: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염려를 마음에서 지워 버리십시오. 받은 줄 알고 감사하십시오. (약1:6-7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결코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아버지는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하여 영광을 받는 것을 너무너무 즐거워하십니다. 그 아들이 온갖 수치와 모욕 가운데 거룩한 구원의 대업을 다 성취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기도하는 자의 모든 죄 값을 다 지불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을 거룩하신 영광의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는 통로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 & 주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가 감추어지고 가려지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거룩하신 아버지 앞에서 기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나아가도록 하신 것이지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바로 이 점을 분명히 하시고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가장 좋은 응답을 확약하신 것이지요. (요14:13~14)"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 (에스라 8:23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에스라가 포로로 있던 동족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 올 때의 일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것이라고 장담을 했기에, 보병과 기병의 호위조차 이방 왕 아닥사스다에게 요청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금식합니다.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안전 귀국을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이 간절한 기도에 당연히 응답하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기도는 응답입니다.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고 금식하며 기도하고 확신과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의 기쁨을 펼쳐 주십니다. 우리가 기도했던 것보다 더 좋은 응답 더 큰 응답 더 영원하고 확실한 응답을 내려 주십니다. 우리는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깊이와 넓이와 길이를 헤아릴 수조차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요 딸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멘. 한 번 따라 하십시다. (렘 33:3)"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 교재 맨 뒤에 적어 두셨던 세 가지 기도 제목들을 점검해 보십시오. 그리고 응답을 이미 받으신 것이 있으면 그 날짜와 내용을 적어 놓으세요.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응답하시기를 늘 기뻐하시며 기다리시고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 모두 하나님 기뻐하시는 기도의 삶을 잘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우리에게 기도의 모범을 보여 주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출처: 자 은 동 부 교 회 원문보기 글쓴이: 지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