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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의 '서장'통한 선공부] <1> 서장 (書狀)
진소경에 대한 답서(1)
이 둔한 것을 지키고 있어도 안되지만, 이 둔한 것을 버려서도 안됩니다. 날카로움을 취하고 둔함을 버림은 사람에게 있지 마음에 있지 않습니다. 이 마음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와 일체로서 둘이 아닙니다. 만약 둘이라면 법(法)은 평등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르침을 받고 마음을 전한 것이 모두 허망하며, 진실을 찾는 것이 잘못된 짓입니다. 다만 하나로서 둘 아닌 마음이 결코 날카로움을 취하고 둔함을 버리는 속에 있지 않음을 알기만 한다면, 곧 달을 보고 손가락은 잊어서 바로 한 칼에 끝장을 낼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다시 머뭇거리며 의심하여 앞을 생각하고 뒤를 계산한다면, 허망한 손가락 위에서 진실이라는 알음알이를 내게 되며, 주관(六根)이니 객관(六境)이니 오온(五蘊)이니 십팔계(十八界)니 하는 것에 사로잡혀 헛된 환상을 조작해내며 끝마칠 날이 없을 것입니다."
근기가 둔한 사람이나 근기가 날카로운 사람이나 생각의 내용에는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생각한다는 사실에는 아무 차이가 없다. 생각한다는 움직임(機用)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동일하며, 지식이 많거나 적거나 아이큐가 높거나 낮거나 아무 차이가 없이 동일하다. 즉 무상(無常)하게 변하는 생각의 내용이 어떠하든, 생각하고 있다는 불변의 사실이 바로 마음의 존재를 뚜렷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차별상(差別相)은 동시에 어떠한 차별상도 아니라는 것이 바로 부처님이 깨달으신 진리이다. 그 때문에 {반야심경}에서는 '색(色)과 공(空)이 동일하다' 하고, {금강경}에서는 '상(相)이 곧 비상(非相)' 이라고 하는 것이다.
유마거사는 중생이 앓고 있는 이 어리석은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불교의 진리에 관해 이러쿵 저러쿵하는 모든 말에 대하여 침묵을 지킴으로써, '지금의 나' 이외에 어떠한 부처도 따로 없다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을 행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대로의 내가 부처임을 머리로 믿는 것이 공부의 시작이고, 가슴 깊이에서 이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공부가 한 고비 넘어가는 것이다. 김태완/ 부산대 강사.철학 [출처 : 부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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