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의 글을 읽고…
지난 주간에 우리 교단 신문을 받아 읽고 놀랐다. 나는 보통 교단신문을 받아 5분 정도 읽고 휴지통에 버린다. 목회자들을 위한 신문이지만 목회자들의 소통과 시대정신을 통찰하는 안목을 열어줄 내용과는 거리가 먼 행사나 광고 이야기가 신문지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을 읽고 그들의 근황을 접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이번 신문을 버릴 수 없다. 그 마지막 페이지 한 면 전체에 김지사의 글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글은 현 정부를 주사파 정권이라고 매도하고 오는 4ㆍ15 총선에서 자신이 속한 당의 승리를 목표로 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우리 교단 총회 신문이 이처럼 정치적으로 편향된 글을 전폭적으로 게재하는 것 자체로 총회 지도자들이 얼마나 사상적으로 편향되고 무례한지가 드러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교단은 아예 전광훈 목사의 편을 들기로 작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영훈 목사도 그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의도총회장 이태근 목사가 전광훈 목사의 광화문 집회에 가서 거드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마침 어떤 불자가 2011년 뉴질랜드에서 일어난 지진에 대한 글을 쓰면서 언급한 김문수 지사와 조용기 목사에 대한 이야기를 찾았다.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과 쓰나미에 대한 조용기 목사의 평가는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이었다. 김문수 지사는 말하기를, ‘그래도 대한민국을 지켜 주신 하나님과 조상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글을 쓴 불자의 주장은, 이 발언들이 어떤 사건에 대하여 종교적으로 편향된 발언을 쏟아 놓는 종교인들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기독교 국가인 뉴질랜드에 지진이 일어나 크라이스트처치가 크게 파괴되었는데 이에 대해서 기독교인들은 침묵한다고 그 불자는 꼬집었다. 최근 중국 우한에서 일어난 코로나-19 감염증에 대한 일부 기독교인들의 평가는 과거의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중국 우한에서 많은 교회당들이 철거되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것이라고 말이다.
위 불자의 글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하시라.
제목: 맹인이 길을 인도하듯, 조용기 목사와 김문수 지사의 구업(口業)
http://blog.daum.net/gilin9292/234
나도 여러 차례 사람들 앞에 서서 옳은지 그른지 모르고 말을 했던 일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그 때 내가 왜 그렇게 했을까? 나는 그 때 나를 부추기던 그 사람들의 행동을 제대로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줄로 알았다. 이제 돌이켜 보니 그 사람의 생각이 보인다. 그 사람의 가치관도 보인다. 결국 어떤 행동은 그 행동을 유발하는 정신과 가치관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 있고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을 성경은 소경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대중 앞에서 사람들을 이끌 때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고 조롱한다.
나는 더 젊었을 때 이런 분들을 높이 보았다. ‘새벽을 깨우리로다’의 저자 김진홍 목사, 기독교 학술원장을 지낸 김영한 박사, 조용기 목사, 이영훈 목사, 그리고 내 주변의 선배 목회자들. 그런데 최근에 그 분들의 글과 언행을 보면서 내 마음이 매우 불편해짐을 느낀다. 나도 나이 들면 저렇게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니면 김문수 지사의 우려대로 나도 종북좌파 또는 주사파 사상에 물든 것은 아닐까! 김문수 지사와는 정반대로 나는 87학번으로서 사실 데모에는 단 한번도 참가한 바 없는 사람이 아닌가!
자신이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이 인간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소크라테스는 차라리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가! 침묵하는 편이 더 낫다는 말인가? 다시금 생각해 보건대, 사람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생각과 판단력이 자라난다. 과거에 깨닫지 못한 것을 새롭게 이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과거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문제가 크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반대의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사람은 생각과 언행이 달라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과거에 자신이 한 발언에 묶여 있는 사람은 지혜롭지 못할 수도 있다. 매 순간 새롭게 깨닫고 새롭게 살아가라면서 과거에 자신이 한 발언에 매이지 말라고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이 그의 책, 자기신뢰에서 충고한다.
우리 교회 안에도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함께 예배하고 서로 교제하며 한 교회를 이루며 살아간다. 우리가 어떤 점에서 서로 달리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생각을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은 무례한 일로 느껴진다. 하지만 각 사람이 생각하기를, 자기 자신의 생각은 완벽하여 현 시국에 대한 최고의 평가요, 그 생각대로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독선이요 편견이요,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바울 사도를 따라서, ‘우리가 다 부분적으로 알 뿐이라’고 고백해야 할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 말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보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 나은 길을 찾아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너무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이라 실현 불가능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도리어 이런 상황을 만들어가지 못하는 현실이 비정상이며 가장 큰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교단 총회신문에 김문수 전 경기지사의 글이 전면광고로 실린 것은 얼마나 우리 교단이 비정상적이며 무례하게 운영되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교권이나 직위나 교세나 나이를 가지고 주장을 펼치는 곳에는 자유로운 생각이 억압되고 지혜로운 판단은 자리를 감출 것이다. 우리가 모인 그 어느 공동체든지 더 나은 세상, 더 공정한 세상,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봄에 땅을 뚫고 솟아나는 새싹들처럼 수많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생각들이 만발할 수 있는 땅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은 생명으로 충만한 생태계와 같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그런 세상을 꿈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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