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는 인생이다 / 알베르 카뮈
“그러나 페스트가 대체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인생이에요. 그뿐이죠.” (p.399)
약100년 전 소설
4월 16일 아침 시작하여 다음 해 2월에 종식되는 페스트의 연대기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질병이 곧 멈출 것이고, 가족들과 함께 무사히 모면하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런 조바심도 느끼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페스트가 어느 날인가는 사라져 버릴 불쾌한 방문자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p.126-127)
의사 리유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유난 떨지 않고 성실하게 이끌어가기 때문일까. 전염병으로 갑자기 도시폐쇄가 된다. 타 지역 사람인 랑베르는 도시를 탈출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쓴다. 리유는 그런 랑베르를 보면서도 이기적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럴 수도 있다는 관조적인 태도를 취한다.
“옳은 말씀이에요, 랑베르. 절대로 옳은 말씀이에요. 그러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금 하시려는 일에서 마음을 돌려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일이 내 생각에도 정당하고 좋은 일이라 여겨지니까요. 그러나 역시 이것만은 말해 두어야겠습니다. 즉,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p.216)
‘전염병’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자극적이지 않게 그저 일상같이, 그래서 역설적인 일상
죽음을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했거나 더 많은 사람들이 극적으로 죽었다면 조금 더 흥미롭게 진행될 수 있었겠지만 카뮈는 그러지 않은 것 같다. 리유가 좀 더 영웅주의적 의사로 표현되지 않았고, 랑베르가 더 악착같이 탈출을 시도하지 않았다. 파늘루 신부가 끝까지 신이 내린 형벌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지도 않았다. 전체적으로 강력한 악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건강한 연대의 힘
의사이기 때문에 ‘성실’하게 일하는 의료진들(리유와 카스텔)과 미지의 인물 타루와 이름과 달리 평범하다 못해 페스트와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그랑의 보건대 연대 역시 담백하다. 소설에도 여러 번 나오는 ‘성실성’이란 단어와 어울리게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성실’하게 일한다. 그들의 성실한 진심이 통했는지 오랑시를 탈출 시도하던 랑베르까지 끝내 합류하게 된다.
“나는 떠나지 않겠어요.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있겠어요.”
“그러나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p.272)
허무했던 결말, 하지만 현실이길 바라는 결말
페스트는 갑자기 종식된다. 보는 내내 등장인물들이 페스트에 감염되어 죽지 않을까하면서 봤다. 의외로 많이 안 죽는 대신 죽음의 형태는 의외성을 띤다. 재난상황을 일상처럼 담담하게 서술했지만 죽음은 일상적이지 않다.
본인은 때맞춰 예방주사를 놓지 않아 페스트의 종식과 함께 죽은 타루, 어느 정도 예상한 리유 부인의 죽음, 끝까지 치료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파늘루 신부의 죽음.
반대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남은 그랑, 자살시도로 첫 시작을 열고 총격전으로 마무리 지었지만 죽지 않은 코타르.
지극히 개인적으로 리유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는지 모르지만 등장인물들이 내 예상과 다른 결말을 맞이했다. 어쨌든 도시폐쇄까지 결정했던 오통시의 페스트도 1년 안에 종식되었다. 그것도 너무나 갑작스럽게.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p.401-402)
인류가 존재하면서 전쟁으로 죽은 사람의 수보다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 수가 훨씬 더 많다!
그렇다면 전염병은 왜 생길까?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지구가 나름의 자정작용을 하는 것이 아닐까?
지구가 수용할 수 있는 인구의 수를 넘어섰다든가 지구도 잠시 휴식기가 필요하다든가.
코로나 사태로 발이 묶여 여행금지 기간이 길어졌다. 베네치아의 강물이 몇 백 년 만에 투명해졌고, 멸종 위기종 거북이들은 해안가에 다시 알을 낳기 시작했다. 지구도 숨 쉬고 싶어서 슈펴균들을 퍼트리는 것이 아닐까.
왜 우리 인간들은 있을 때 잘하지 못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