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뒷날 왁자했던 가족들이 떠나고
부모님만 옛집에 다시 남았다.
말씀은 안하셔도 자식들이 떠난 빈자리가 왜 쓸쓸하지 않겠는가.
나라도 자주 들려 소일거리를 거들긴 해도 부모 입장에선 언제나 떠나간 자식은 그리운게다.
고향집엔 일거리가 넘친다.
농사치가 있거나 소를 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일꺼리가 있느냐고 아내는 성화다.
그러나 나에겐 천지가 일거리다.
따지고 보면 그 일거리라는게 나의 취미이며 미래산업이다.
미래산업이라고 하니까 뭐 거창한 일거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저 내 속에서 꿈틀대는 엉뚱한 짓거리를 행동으로 옮길 뿐이니까.
어려서부터 손으로 뭔가를 뚝딱거리고 만들기를 좋아했다.
지금도 틈만 나면 가구를 디자인하고 작은 집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당장 만들 것도 지을 것도 아니면서 이런 집 저런 집을 혼자 궁리하기를 좋아한다.
그놈의 버릇은 명절이라고 쉬는 법이 없다.
내가 뭔가를 행동으로 옮길 때면 벌써 며칠 전 또는 몇달 전부터 생각을 궁구하던 것들이다.
연장은 톱과 망치다.
여기에다 못과 몇 가지 각재와 판재만 있으면 뭐라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명절연휴를 틈타 주향원 동측 밖에 마루와 차양을 들였다.
주향원은 온돌방 하나가 전부여서 좋든 싫든 실내에서 생활해야 한다.
그래서 벌써전부터 외부에 마루를 들이고 싶었다.
제대로 하려면 목수를 불러와야겠지만 그만한 여유는 없고
궁리 끝에 자가로 행동에 나섰다.
다행히 쓸만한 각재와 판재가 약간씩 있어 작업은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기둥 세우고 수장 걸고 처마에 잇대어 경사재를 걸고 그 위에 지붕틀을 짜고 골함석을 이었다.
돈을 최소화 하려면 이 방법이 최고다.
대신 함석면에 페인팅을 해서 아연도금이 최대한 오래 버틸수 있도록 했다.
그래봤자 오륙년 후엔 지붕을 다시 해야겠지만 지금 형편으론 이마저도 감지덕지다.
완성된 마루에 올라 동산 위로 떠오르는 만월을 보았다.
마누라 대신 엄니가 타준 커피잔을 받혀 들고 혼자서 분위기도 띄워보았다.
화단에서 귀뚜리가 처량하게 울고 차가운 가을밤바람을 타고 솔부엉이 울음 소리가 들린다.
이 작은 마루에 벗이라도 찾아오면 좋으련만 그런 벗조차 없다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져 온다.
벗이 없으면 혼자라도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면 그만아닌가...
첫댓글 평화로움이 느껴져요
멋지네요~~~제 맘에 꼭드는 주향원. 언제일지 몰라도 저도 나만의 작은 쉼터를 꿈꿔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