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깅병로의 산야초 이야기] 능소화
담장 너머에까지 손을 뻗쳐 진홍빛 그리움을 토해내는 꽃을 아시는지요.
바람 불고 비 내리는 여름날, 온몸을 내던져 툭 툭 눈물로 떨어지는 꽃.
화려함보다는 몇배 더 아픈 슬픔을 간직한 꽃. 그래서일까요.
나태주 시인은 “누가 봐주거나 말거나/커다란 입술 벌리고 피었다가, 뚝/떨어지는 어여쁜/슬픔의
입술을 본다”고 했고, 이해인 시인은 “전 생애를 건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시인의 눈에 비친
능소화(凌宵花)는 이처럼 간절하고 애절합니다. 그러나 이뿐일까요. 능소화는 영광과 명예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낙엽성 넝쿨식물로 꽃 자체가 화려해 금등화(金藤花) 또는 어사화(御賜花)로도 불리는 능소화는
여름을 대표하는 꽃으로 관상용과 약재로 널리 쓰입니다. 담장을 타고 오르거나 다른 나무에
기대 자라며 꽃은 6월부터 피고 지기를 반복하지요. 동의보감에 따르면 “어혈을 풀고 부인병을
낫게 하는 효능이 있다.
피를 맑게 하고 대소변을 잘 나가게 하며 풍을 다스린다”고 했습니다. 본초경 또한 “부인병 치료와
산후조리에 능소화 뿌리와 줄기를 활용한다”고 했습니다. 꽃은 차 재료로 으뜸이지요. 기관지
염증과 목이 아픈데 두루 처방합니다.
이해인 시인은
‘능소화 연가’에서 “다른 사람들이 내게 주는/찬미의 말보다/침묵 속에도 불타는/당신의 그 눈길
하나가/나에겐 기도입니다”라고 읊었습니다. “이렇게/바람 많이 부는 날은/당신이 보고 싶어/내
마음이 흔들린다”고 서슴없이 고백하지요. 아쉽고 그리울 땐 능소화 꽃차 한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