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구 교수의 불교와 과학] 32. 종교와 인문학의 역할
물질적 풍요 속 정신적 빈곤은 불행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이 행복 척도
『법구경』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나왔고 마음은 모든 것에 앞선다. 그리고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이루어진다.” 이 구절대로 사람이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된다면 정말 행복하고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정부와 기업인과 개인 모두 각자의 차원에서 무언가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발전이 국가와 국민에게 무엇을 의미하며 무엇을 가져다줄지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분위기와 환경에서는 원하는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 발전을 원했던 사람에게 아무런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진 것과 성취한 것이 많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지치고 편치 못하다면 결코 행복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국가가 부강하고 개인적으로 소득이 많다고 하더라도 젊은이가 만나 서로 사랑하고 아기를 낳아 기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만큼 사는 것이 피곤한 사회라면, 그 부(富)와 발전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고 배운 사람이 드물 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만 하면 눈에 띄는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고 무엇을 배우던지 배움은 이 발전을 가속시킬 수 있다. 사람도 생물인 이상 반드시 배고픔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의식주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는 경제발전은 꼭 필요한 일이고 경제발전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분야에 대한 교육 역시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국민의 소득이 늘어 의식주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뒤라면 무턱대고 노력한다고 해서 원하는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제 한국에 필요한 것은 온 국민이 함께 추구하고 지킬만한 올바른 가치관과 도덕성의 확립이다. 이것의 확립 없이는 원하는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도 없고 이룩했다고 하더라도 생각했던 것만큼 행복한 사회도 국가도 될 수 없다.
한국이 원하는 경제발전을 이루어 국민일인당 소득이 10만 불쯤 되고 빈부의 격차도 크지 않게 된다고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삶의 내용이 바뀌어야 한다. 삶의 질은 인격의 완성도에 비례하기 마련이다.
상식이 통하고 서로 존중하며 아끼는 사회라야 살만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질적 풍요가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오는 것은 이 풍요를 누릴 정신력이 있을 때만 가능할 것이다. 물질을 다룰 정신력이 없다면 사람은 물질의 노예가 되게 마련이다.
정신력이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며 옳은 일을 행하고 그른 일은 하지 않는 능력이다.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종교이고 종교가 가르치는 것이 왜 옳은지 또는 왜 그른지를 판단하는 힘을 주는 것이 인문학이다.
지금 한국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일이다. 이 일에 불교와 불교학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는 내가 변할 것을 가르치는 종교이다. 필요 이상 많이 가지고 남에게 이기기 위해 힘쓸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주인이 되라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을 실천할 때 행복이 올 것이다.
김성구
이화여대 명예교수
[출처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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