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금동대향로, 그대가 선물이다! (隨筆)
-코로나블루 극복을 위한 백제금동대향로의 선물, 힐링& 치유-
지온 김인희
여름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우산을 받치고 걸었다. 국립부여박물관 전시실을 향하여 걷는 발걸음마다 빗방울이 온몸을 던져 낙하했다. 차가운 그의 촉감을 고스란히 껴안고 걸었다. 찰나의 순간 우산을 던지고 빗속을 뛰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으나 간신히 밀어냈다.
박물관 전시실 입구 넓은 홀에 서 있는 현수막에는“코로나블루 극복을 위한 백제금동대향로의 선물, 힐링 & 치유”라고 쓰여 있었다. 가야금 다섯 대가 나란히 줄지어 서서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야금 앞에는 백제금동대향로가 아름다운 자태로 앉아 있었다.
행사 담당 학예사님께서 코로나19 때문에 온 국민이 팬데믹에 빠져있는 어려운 난국에 군민들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 박물관에서 특별히 기획한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모두 6회의 공연을 할 예정이고 첫 공연을 문인협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하게 되었다고 했다.
무대 중앙을 중심으로 거리두기만큼 떨어져 있는 의자들은 어림잡아 스무 개 남짓했다. 나는 그 순간만큼 이기적인 욕심을 맘껏 부리고 싶었다. 나는 무대를 중앙에 두고 앉은 순간 백제금동대향로를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사랑하는 연인을 마주한 것처럼 내 심장의 잔잔한 리듬이 해일 같은 변주곡으로 변해버렸다. 박물관에서 전시유물 해설 자원봉사를 했을 때 나를 온통 사로잡은 유물이 백제금동대향로였다. 그때 관람객을 인솔하여 전시실을 안내하고 전시유물을 설명할 때 절정을 이루는 하이라이트는 바로 백제금동대향로였다. 나는 백제금동대향로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백제의 태평성대와 슬픈 마지막을 역설한 후 관람객으로부터 박수갈채와 환호를 받았다. 더러는 눈물을 훔치는 관람객도 있었다. 추억을 되새기면서 나르시시즘에 흠뻑 빠져들고 실소를 머금었다.
우두망찰 서서 기다리는 가야금 앞으로 입장한 연주자들의 모습을 본 순간 앗 !하고 탄성을 지를 뻔했다. 백제의 의상을 입은 연주자들의 머리 모양은 향로 위에 있는 다섯 악사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가야금 선율에 온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얽히고설킨 생각조차 음악에 싣고 맘껏 힐링하고 싶었다.
가야금 연주가 끝나고 학예사님의 안내로 우리 일행은 백제금동대향로가 있는 전시실로 갔다. 백제금동대향로가 있는 전시실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은 마치 1400년 전 백제로 안내하는 오로라처럼 신비하게 다가왔다. 학예사님의 친절한 해설은 금상첨화였다.
백제금동대향로의 구조는 봉황 장식과 산악모양 뚜껑 그리고 연꽃 모양 몸체와 용 모양 받침으로 이루어져 있다. 향로의 꼭대기에 있는 봉황은 턱에 여의주를 가지고 있으며 두 날개를 펼쳐 금방이라도 하늘을 비상할 듯한 모습이다. 봉황은 태평성대의 성인이 나타남을 상징한다. 봉황 아래 다섯 마리의 기러기가 봉황을 호위하듯 둘러싸고 다섯 악사가 각각 다른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산악모양의 뚜껑에는 여러 사람의 모양과 신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산에 사는 동물들과 사람의 얼굴을 가진 상상의 동물이 있다. 태껸하는 사람의 모습과 계곡에서 머리를 감고 있는 사람의 모습은 흥미진진했다. 산봉우리와 신선의 모습에서 종교 도교를 만날 수 있다. 연꽃 모양의 몸체는 연꽃잎이 만개한 모습이며 꽃잎 하나하나에 수중 동물이 새겨져 있다. 불교를 상징하는 연꽃은 세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 용 모양의 받침은 향로의 몸체를 입에 물고 있는 용이 승천할 듯한 자세로 무게를 잡고 있다. 용은 한 발을 높이 치켜들고 꼬리와 세 발로 삼각형의 구조로 무게중심을 안정적으로 잡고 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완벽한 구조와 아름다운 비례와 균형을 갖추고 있다. 역사에 기록된 대로 철을 다루는 기술이 빼어난 백제의 장인정신을 확증하고 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의 모든 염원을 간직하고 있었다. 수중 동물의 왕인 용이 기저를 견고하게 다지고 신선들과 사람들이 어우러지고 악사들의 음악 소리가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하늘 향하여 뻗쳐오르던 태평성대를 이루고자 했던 백제의 거룩한 꿈을 전해주고 있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창왕명석조사리감이 있었던 능산리 사지에서 발굴되었다. 창왕은 성왕의 아들로서 후에 위덕왕의 보위에 올랐다. 신라군과 장렬하게 맞서 싸웠던 관산성 전투에서 창왕자가 군사를 진두지휘하여 싸웠다. 성왕은 창왕자와 백제 군사를 격려하고 위문하기 위하여 오십 명의 적은 군사를 거느리고 관산성으로 향했다. 일본 서기의 기록에 의하면 이때 성왕은 전선에 나가 있는 왕자 창을 위문하러 가는 길에 신라군에게 길을 차단당해 포로가 되어 죽임을 당했고, 그의 머리는 신라 북청 계하에 매장하고 신라인들로 밟고 지나다니도록 했다고 한다.
창왕자는 관산성에서 아버지 성왕을 잃고 삼만 명에 가까운 사졸들이 전사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창왕자는 아버지의 참담한 죽음과 사졸들의 전사에 얼마나 비통했을까! 창왕자는 왕위 계승을 거부하고 불가에 귀의하여 아버지 성왕과 사졸들의 공덕을 빌겠다고 선언했다. 백제 대신들이 왕자 대신 100명을 출가시킨 후에 왕자 창은 위덕왕이 되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능산리 사지 회랑 공방 터 물두멍에서 발굴되었다. 당시 백제금동대향로의 모습에서 긴급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의 태평성대를 노래하고 마지막에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무참하게 짓밟히는 순간 긴급하게 물두멍에 숨겨졌을 것이다. 1400년 동안 어둠 속에 박제된 채 떨고 있었을 것이다. 찬란하고 슬픈 역사를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렇게 백제금동대향로는 스토리를 가장 많이 간직한 유물이 되었다. 음악과 종교와 생활 문화까지 모두 보여주고 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어둠 속에서 1400년을 견디고 오늘날 우리 앞에 당당하게 서 있는 것처럼 코로나19 때문에 힘들어하는 우리에게 조금만 더 버티라고 격려하는 듯했다. 현수막에 쓰여있는 글처럼 코로나블루 극복을 위한 힐링 & 치유였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속삭이고 있었다.
아버지 성왕이 꿈꾸는 세계, 아들 위덕왕이 이룬 태평성대 <별>이 되어 우리 가슴에 내렸다. 그 아버지를 향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아버지를 두고 그대를 두고> 곡조가 울부짖었다. 왕자 창에게 <그날의 기억>은 아픔이었으리라. 죽은 자와 산 자를 이어주는 향로를 피우고 <어디로 갈까나> 위덕왕은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룬 후에 아버지께 돌아갔으리라.
가야금 연주를 마치고 독창 <햇살도 데리고 그대에게 돌아가리라> 노래를 들으면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백제금동대향로와 나의 재회의 기쁨은 찰나였다. 찬란한 슬픔의 역사와 함께 내 슬픔도 가야금 선율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그 아픔이 가슴에 파고들어 눈물샘을 휘저었다. 그대! 나의 연인이여. 햇살도 데리고 그대에게 돌아가리라.
** 가야금 연주곡 : <별>, <아버지를 두고 그대를 두고>, <그날의 기억>,
<어디로 갈까나>
독창 : <햇살도 데리고 그대에게 돌아가리라>
첫댓글 백제문화의 금맥
금맥향로 ?
아니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속에 살아있는 전설같은 역사야
음력 6월 6일 은 어머님의 기일
하마트면 잃어버릴 뻔 했던
나는 불효가 막심한 효교육원 원장 ?
원장님께서 역설하셨던 말씀
"어제는 오늘의 잣대가 되고
오늘은 내일의 잣대가 된다."
하여 역사는 과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단단한 연결고리가 되겠지요.
1400년 전의 백제의 스토리를 오늘 우리에게 전해주는
백제금동대향로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