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4:20-25절 지혜에는 장성한 자가 됩시다
지난주에 이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볼수 있습니다.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고 지혜에는 장성한자가 되라는 것,(20절)
방언과 예언 처음부터 다른 목적으로 주신 것(21-22절)
공적 예배에 있어서 방언과 예언에 대한 사용으로 그 결과를 예상하고 예언을 하라 권고함(23-25절)
성도는 은혜를 받았다고 해도 자기 안에 있는 본성을 경계해야 합니다.
20절을 보면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고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권면은 어찌보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무시하는 것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인이고 각종 은사를 받아서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처하고 있는 모양새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단어를 살펴보면
지혜를 다시 살펴보면 두 가지로 볼수 있는데 그 하나는 ‘소피아’가 있고 또 하나는 오늘 본문에 있는 지혜‘프레신’이 있습니다. 의미는 ‘생각과 깨달음에 있어 성숙’이란 의미로 씌여졌습니다. 깊이 생각하고 깨달음이 올 때 그의 판단은 성숙한 자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장성한”사람은 헬“텔레이오이”인데 “끝,마지막,목표”를 뜻하는“텔로스”에서 유래한 것으로“목적을 달성한, 완전한, 장성한, 성숙한”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장성한 뜻을 가지고 말하자면, 지혜로운 장성한 사람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감각, 판단 능력, 특히 도덕적 결단을 할 수 있는 그 분별력을 통하여 영적인 실체를 꿰뚫어 보고 결론에 이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적 통찰력과 이해를 하는 성숙한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또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어린아이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린 아이는 원어를 그대로 직역하면 ‘유치하고 연약한 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은사를 사용할 때 분별해서 절제해야 할 때와 사용할 때를 구분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무조건 자기가 받은 은사가 최고인 것처럼 자랑하고 내세우며 열광주의적으로 은사에 대한 허영심을 추구하는 것을 성경은 ‘악’이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악’은 “나쁜 것, 좋지 못함, 결점이 있음, 불완전함”을 뜻하므로 이런 것들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에 보이는대로 은혜도 충만하고 성령도 충만하고 거기다가 외관상 보여지는 것도 휼륭한 성인같아 보일지라도 신앙에서는 어린아이 같을수도 있다고 하시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전13:11절에서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이것이 정상적인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에서 유사한 일들을 찾아 볼수 있습니다.
성경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살았는데 그곳을 사도행전에서는 광야 교회라 했습니다. 즉 그들은 고전10장에서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신령한 식물을 먹었고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고 했습니다. 물이 나온 반석은 그리스도라고 바울이 말했습니다. 즉 그들은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구약시대에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신령한 먹거리를 공급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평하고 불신앙에 빠지다가 멸망을 당했습니다. 고전10:5절에서 하나님은 다수를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재림안식일 교회처럼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사랑하는 자를 지옥 불구덩이에 빠지게 하겠느냐고, 그 말에 속으면 안됩니다. 요단강을 건너간 사람은 출애굽1세대는 고작 2명이었다고,
민11:12절을 보면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원망하고 불평하는 백성들을 데리고 가라시는 하나님께 모세가 푸념하는 심정을 느껴지십니까? 은혜를 받았다고 성경말씀을 깨달았다고 성령으로 충만하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는 유치원 아이들처럼 유치함이 있고 연약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고 지혜는 장성한 자가 되라고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잠22:15절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엡4:14절“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아멘.
시97:10절“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요삼1:11절“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아멘
교회를 위해서는 방언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22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바울은 방언을 설명하기 위하여 구약을 소환했습니다. 사28:11절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여기서 방언은 두 가지 측면에서 하나는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능력을 보여 주는 표적이어서 교회에서 공동체 안에서 사용하지 말라는 권면입니다. 왜냐하면 방언은 교회에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방언을 신자들이 받았다고 하면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사용하는데 동시에 통변의 능력도 함께 구하여 통역도 함께 구사할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11:28절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분의 메시지를 거절하고 그것을 조롱하였기 때문에 장차 외국어를 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시겠다고 하신 것이며. 이 예언은 앗수로 침약자들이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그들의 말로 그들을 위협할 때 성취 되었습니다.(대하32:18~19),
23절“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여기서 생각할 것은 교회는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장소이지만 그러나 주변에 피해를 주면서 자기의 고집이나 아집으로 인하여 오히려 교회의 덕을 가릴수도 있습니다. 먼저 주에 나눈 이야기중에 전도를 갔더니 그 주인이 하는 말이 교회에서 너무 민페를 끼쳐서 교회를 안나갈뿐 아니라 싫어한다고, 어떻게 했길래, 교회가 자기 집하고 붙어 있는데 방음시설도 안되었는데 소리쳐서 기도하고 마이크소리 크게 올려서 노래하고 아이는 수능시험 공부한다고 하는데 시끄러워서 공부 못하겠다고 하고 교회 쫓아가서 조용히 하라고 해도 듣지 않고 그래서 교회 안 나간다고. 행전2장에서 누가는 기록하기를 예루살렘교회는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증언합니다.
마5:16절“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딤전3:7절“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24절”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믿는 성도들이 다 방언뿐 아니라, 다 예언(대언)을 하면 주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그들이 전하는 말씀들을 이해하고 자신들의 죄에 대하여 판단을 받을 수 있을 뿐아니라 믿고 회개하게 될 것입니다.
25절“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예언의 은사의 특징은 마음속에 숨은 일들이 들어 난다는 것입니다. 특히 어두운 일들은 숨기려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전해오는 이야기 중에 한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의 속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고전 2장에서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곳도 통달하셨다고 하신 것처럼 사람의 깊이 있는 것도 성령 하나님은 잘 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말로 하나님의 뜻을 담은 예언을 하면 아주 큰 영적인 유익이 있습니다. 예언의 유익은 첫째, 책망과 판단을 받아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유익과 영혼의 유익을 풍성하게 누리는 비결 중 첫 번째가 나는 부족하다. 나는 죄인이다. 나는 연약하다. 나는 정말 소망이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구원을 열망하는 상태가 되는 것, 진정하고 참된 구원자를 찾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언이 주는 유익이 우리를 마음이 가난한 상태로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잘못 사용하면 마귀가 틈을 탑니다. 감추어진 것을 들어낼 때는 단둘이 있을 때 해야 합니다. 감추고 있는 수치심을 교회 앞에서 들어내면 시험들고 교회를 떠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말씀을 많이 묵상해야 합니다. 책망도 성경말씀으로 하면 탈이 없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호세아서 설교를 들으면서 갑자기 아 내가 고멜이구나 하면서 눈물과 함께 회개가 터졌다고 하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나의 앞일과 과거를 듣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잘들으면 깨닫게 해 주시고 또 영혼을 살리는데 힘쓰게 됩니다. 욥26:6절“하나님 앞에서는 스올도 벗은 몸으로 드러나며 멸망도 가림이 없음이라” 욥의 고백입니다.
마치려 합니다.
바울은 오늘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어린아이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어떤 은사가 있는지, 어떤 직임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나라, 공동체를 든든히 세워가고, 섬기고 있는지 늘 자신을 돌아보고 계22:18-19에서 말씀처럼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서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아멘.
우리는 성경의 말씀에 비춰 보아, 위의 내용처럼 우리를 진실로 회개하게 하며 더욱 은혜와 예수님을 바라보며 사모하게 하며 의지하게 하고 돌아오게 하는지 살펴보고 더 멋진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의정부 등대지기 하늘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