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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떠남(창 15장):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
할렐루야! 좋으신 하나님,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고 지금 우리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제자를 부르시고 성령을 주셔서 나그네의 삶을 살며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떠나지 못하고 붙잡고 있기에 욕을 먹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셔서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성령을 받은 모든 믿음의 선진과 같이 용감하게 가야 할 곳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전진하게 하소서!
떠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삶에 대한 글을 인터넷에서 찾다가 들풀이라는 필명을 가지신 목사님의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깊이 있게 잘 정리를 해 주셨기에 그대로 올립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다른 글도 읽어보았는데 인생의 깊이와 함께 성경의 말씀을 너무나 잘 전하셔서 읽고 감명을 받고 목사님의 삶과 너무나 다른 제 삶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남에게 이렇게 저렇게 전하는 제 자신이 먼저 떠나야 할 사람임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보시고 성경의 본문과 지도를 보시면서 아브라함과 같이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고 반드시 떠나야 하는 존재임을 확인하시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소명
창세기 설교(완결) / 하나님 나라 이야기
2015. 5. 21. 12:40
2015.5.20. 영동교회 수요예배 창세기 설교 #18
아브라함의 소명
(12:1~3)
샬롬, 고단하고 피곤한 중에도 예배의 자리를 잊지 않고 나오신 여러분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혹시 이번 주 주일부터 교회 입구에 들어서면서 뭔가 교회가 좀 더 예뻐졌다는 생각을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우리 교회 전길자 집사님께서 교회 출입구에다 작은 화단을 꾸며주셨습니다. 패랭이꽃, 애니시아, 라임 제라늄...작은 푯말에 적힌 자기 이름을 목에 걸고 키 재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참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횡 하던 교회 입구 한편이 사랑스러운 생명들로 환해졌습니다.
하지만 제아무리 꽃이 이뻐도 보아주고, 불러주지 않으면 그 아름다움이 나에게 와닿지 않습니다. 반면 길모퉁이 아무렇게나 피어난 들국화도 눈길을 주고, 불러주면 나의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꽃이 됩니다. 이것은 나의 세상을 흔드는 하나의 사건입니다. 시인 김춘수는 ‘꽃’이라는 시에서 이 사건의 의미를 잘 설명해줍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어떤 대상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것의 몸짓에 관심을 주는 사건을 통해 이전까지 이름도 없던 대상은 꽃이 되고, 의미를 가진 존재가 됩니다. 이것을 소명, 부르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런 소명의 사건입니다.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 인류는 각각의 언어를 따라 흩어집니다.(11:9) 창세기 11장 후반부는 그 흩어진 여러 민족 중에서도 셈족의 족보를 추적합니다. 그 족보는 셈의 후손 데라 집안이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려던 중 뜻을 이루지 못하고 데라가 하란에서 죽었다는 비극적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
그리고 창 12:1에 들어서면 지금껏 셈의 족보에서 나열되던 여러 이름들 중에 여호와께서 한 사람을 부르시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을 부르신 것입니다. 소명의 사건이 일어난 것이지요. 하나님은 아브람을 주목하셨고, 아브람을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시려고 그를 불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시기 전까지 아브람은 자식을 얻지 못하는 비극적 가정의 가장, 데라와 함께 가나안 땅으로 이민 가려던 중 좌절을 경험한 불행한 아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불러 자신의 그의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은 창세기를 두 부분으로 나누는 무척 커다란 사건입니다. 창세기 1~11장은 태초부터 시작된 원시 역사를 창조와 타락, 홍수 심판과 바벨탑 사건이라는 4가지 사건 중심으로 기술합니다. 하지만 창세기 12장에서부터 창세기는 아브람이라는 개인과 가정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거대한 세속사의 이야기가 이제 한 개인의 가정사에 귀속되고 연결되어 이끌려 가는 것입니다. 왜냐면 아브람의 소명은 전 인류의 역사를 변화시키는 커다란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말은 곧 아브라함 이후 그의 믿음의 후손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신앙 소명을 따르는 자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소명을 통해 우리의 소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소명#1 떠남의 소명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의 명령은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 떠나라!!
아브라함이 살던 곳은 바벨론의 남부 도시 ‘우르’; 하나님께 대한 반역과 스스로의 업적에 메인 도시
고향(땅), 친척(인맥), 아버지의 집(유산)을 떠나라!
-우리는 너무 의지할 것이 많다. 그래서 떠나지 못한다.
마 19장 부자 청년, 예수님을 따르지 못함
내 힘과 권세로 업적이 쌓이면 떠나질 못하고 메이는 것이 인간의 습성
대구 성서의 모교회, 원로목사님께서 안락한 노후를 버리고 선교지로 떠나던 모습
내려놓음 이용규 선교사의 이야기
아브라함의 소명#2 하나님 나라 백성의 소명
-축복의 주된 내용: 민족, 이름을 창대케 함 & 땅(13:15, 15:7)
나라의 3요소(땅/백성/왕) ⇒ 땅과 민족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겠다는 하나님의 의지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라는 것이다.
창 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righteousness and justice)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미쉬파트: 공정한 재판/판단, 체다카: 약자(특히 가난한 자)를 돌봄 ⇒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
-아미쉬 공동체 이야기
2006년 10월 2일 총격 사건, 미국 펜실베이니아 랭카스트 카운티의 니켈마인스, 찰스 칼 로버트라는 감리교인이 9년 전에 낳은 첫 딸이 20분 만에 숨을 거두자 자기가 신으로부터 저주를 받고 있다는 강박을 안고 살다가 아미쉬의 한 고등등학교에서 총기를 난사, 10명 여학생 중 5명 사망, 5명 중상 BUT 희생자 유가족들은 자살한 칼 로버트의 가족들에게 전국에서 모인 성금을 나누어주고, 저녁식사에도 초대하여 위로함. 이들은 미국 전역에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사람들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삶으로 보여줌.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냄으로써 하나님의 왕 되심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아브라함의 소명#3 축복의 유통자로서의 소명
-12:3 목적절이 강조된 원문을 바탕으로 직역하면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수 있도록 나는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할 것이다.”
이스마엘의 12방백 + 이스라엘의 12지파
아브라함을 통한 후손을 야곱 후에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뀐 야곱의 12아들을 통한 이스라엘 12지파로만 기억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의 여종인 하갈에게서 나은 이스마엘을 통해서도 12방백의 민족을 주시고 그들을 축복하셨다.
아브라함이 엘람 왕 그돌라오멜을 대표로 하는 3국 연합군과 소돔 왕 베라를 대표로 하는 4국 연합군의 전쟁
14장에서 소돔 왕 베라를 포함 4개국이 엘람(그돌라오멜 왕)이라는 나라를 12년간 섬기다가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자 엘람 왕 그돌라오멜은 자신의 세력인 다른 3개국 왕들과 소돔 4개 연합국을 정벌하러 왔다. 강력한 엘람 3국에 패한 소돔 4개 연합국은 포로로 끌려가는데 바로 앞에 13장에서 소돔이 좋다고 이사 간 아브라함의 조카롯도 끌려갔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집에서 훈련시킨 318명을 데리고 쫓아가 막강한 엘람 3국을 격파한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조카 롯만이 아니라 소돔 4개 연합국의 모든 시민을 살려낸다.
아브라함을 보고 롯을 구하여 주심(19:20) 롯에게서 모압과 암몬 족속이 나옴
20장 그랄 왕 아비멜렉 집안의 불임이 해결됨
-우리가 가진 물질, 건강, 지식과 재능은 나의 것이 아니다.
행전 2:44~45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초대교회 신도들의 규례집인 <디다케>
“네 가진 것을 떼서 가난한 이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원래 그들의 것을 돌려주는 것이다. 형제자매들과 너의 소유를 나누고, 어떤 것도 네 것이라고 주장하지 말라. 영원한 것을 그들과 함께 나눈다면, 이 땅의 것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해야 하지 않겠는가.”
“성 암브로시우스도 우리가 궁핍한 이들의 필요를 채워준다면 이는 그들의 것을 돌려주는 것이지 우리 것을 너그럽게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고인 물이 썩듯이 축복도 고이면 부패한다. 나누지 않는 것은 부패의 현상이다.
-본문에서 우리가 나눠야 할 가장 큰 축복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이다.
아브라함적 삶(순종과 믿음)을 따르는 자는 복을 받고, 아브라함의 삶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받는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과 믿음의 삶, 즉 신앙으로 사람들을 이끌어야 한다.
결국 선교와 전도는 모든 성도의 소명이다.
이제 아브라함의 행로와 함께 창세기 12장 1-4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개역한글)
1. The LORD had said to Abram, "Leave your country, your people and your father's household and go to the land I will show you.
2. "I will make you into a great nation and I will bless you; I will make your name great, and you will be a blessing.
3. I will bless those who bless you, and whoever curses you I will curse; and all peoples on earth will be blessed through you."
4. So Abram left, as the LORD had told him; and Lot went with him. Abram was seventy-five years old when he set out from Haran.(NIV)
영어로 country는 나라, 국가, 지역, 조국의 뜻이 있습니다. people는 사람들, 인간, 국민, 주민의 뜻이 있고 민족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해를 하고 본문을 보면 아브라함이 살던 장소 즉 크게는 그 나라를 떠나고 그리고 작게는 그 지역을 떠나고 그리고 가장 작게는 사는 고향을 떠나라는 말씀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를 보면 국가는 국적을 버리라는 말씀이고 민족적인 관계 즉 혈연과 문화를 떠나라는 말씀이고 가장 작게는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떠나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사람이 우리나라에도 현재에 있는데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떠나는 것이 아니고 용감하게 어린 나이 즉 초등학생의 나이에 배움을 위해서 우리나라와 민족과 그리고 지역 고향과 그리고 부모를 떠나서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가는 학생도 있습니다. 이렇게 떠난 학생이 세월이 지나면 반은 미국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 중에서 과거에 일본의 압제를 피해서 그리고 가난을 피해서 연해주나 북간도,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난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약 100년이 흘렀습니다. 여전히 같은 핏줄들 민족끼리 결혼을 해서 외모는 우리와 완전히 같지만 그 사고방식이 중국 사람과 같이 되고 러시아 사람과 같이 되고 그리고 미국에 가신 분들의 2-3세는 미국인과 같이 되었습니다.
같은 떠남이지만 아브라함의 떠남은 이들과 같이 지역적인 떠남과 함께 문화적인 떠남도 함께 이루어졌고 자신이 가진 배움과 경험과 사상도 다 버리고 이제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신을 지배하던 갈대아 우르의 법도 버리고 하나님의 법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잘 모르던 사람이 창조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서 새로운 법과 사상과 문화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모든 믿는 사람의 본이 되는 삶을 사셨고 모든 믿는 이의 조상이 되었고 그리고 이스라엘과 이슬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 불리움을 받은 나그네들입니다. 우리가 비록 아직도 이 땅에 살며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법을 지키고 그리고 이 민족의 문화를 따르며 우리가 나고 자란 지역을 사랑하고 지역의 이익에 민감하지만 그리고 함께 자란 형제와 부모님과 관계가 긴밀하지만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법을 배우고 지켜야 하며, 그리고 민족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도리를 다해야 하고 그리고 우리가 자란 지역과 문화가 정겹고 또 중요하지만 우리가 섬기는 교회를 사랑하고 지켜야 하고 그리고 부모와 형제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중요하지만 믿음의 형제를 혈육의 형제보다 더 사랑을 해야 할 신분이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을 가족 중에서 처음으로 받아들인 자는 이 땅에서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을 견디며 살아야 합니다. 가족 중에서 버림도 받게 되고 남편과 아내로부터 핍박도 받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쫓아가는 지역감정도 극복을 해야 하고 그리고 때로는 국가적인 요구도 거절을 해야 합니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는 말씀에는 이런 시련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겁내지 않아도 되는 것은 늘 주님께서 함께 하시며 우리와 같이 고난을 겪으시고 우리를 늘 격려하시며 승리의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지 못하는 형제와 주님의 문화를 모르는 고향과 그리고 주님을 알지 못하는 민족으로부터 떠나지 못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국가가 허락을 한다고 하나님께서 금하신 법을 어긴다면 예를 들면 간통의 법이 쌍방의 합의가 있으면 처벌이 없다 해서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돌로 쳐서 죽이라는 간음의 죄를 범하면 이는 아직도 본토 즉 국가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하의 재산의 소유를 하나님께서 금하는 것을 하면서 소유하면 이도 본토를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즉 빈부의 격차가 극심한 현실에서 부자의 성도가 가난한 성도를 외면하면 이는 국법에선 죄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 나라에선 큰 죄가 되니 이런 부자 성도 모두가 여전히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은 다른 말로 세상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기신 세상을 아직도 못 이기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떠난 사람이 아브라함의 복을 받습니다. 떠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가진 세상의 것은 소유하나 천국의 복은 아직 없습니다. 선택은 나 자신의 몫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것은 세상의 것 보다 못한 것을 주시기 위해서 명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명하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신약의 백성에게 똑같이 명하십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떠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우리의 죄와 구습을 예수님의 보혈과 십자가의 공로로 벗어버리고 죄 사함을 받아서 새로운 백성 즉 피조물이 됩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아서 이제 이 땅의 나그네가 되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복음을 전하며 즉 아브라람이 의와 공도를 행하듯이 하면서 땅끝으로 나아갑니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게 되는 것을 배우고 하나님의 백성, 천국의 시민, 그리고 믿음의 형제가 있는 교회의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회 속으로 이제 들어왔습니다. 우리의 통치자는 지도자는 예수님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법은 성경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이제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을 이기고 살아야 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장소적으로도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외국으로도 가야 할 것입니다. 이 땅의 나그네로서 쓸쓸하고 외롭고 따돌림도 당하고 그리고 핍박도 받고 멸시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받는 것이고 정의롭게 살고자 하기에 받는 것이기에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될 일이라 합니다. 우리의 상이 쌓이고 있기 때문입니다.(이후 성경 본문은 개역개정, 공동번역, NIV 순서)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9. 그러나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이고 왕의 사제들이며 거룩한 겨레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두운 데서 여러분을 불러내어 그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을 널리 찬양해야 합니다.
10. 여러분이 전에는 하느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하느님의 백성이며 전에는 하느님의 자비를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분의 자비를 받게 되었습니다.
9. But you are a chosen people, a royal priesthood, a holy nation, a people belonging to God, that you may declare the praises of him who called you out of darkness into his wonderful light.
10. Once you were not a people, but now you are the people of God; once you had not received mercy, but now you have received mercy.
우리가 세상의 나라와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서 받는 상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변한 신분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그네의 삶을 형제가 연합하여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며 세상을 이기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벧전 2: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1. 사랑하는 형제들, 낯선 땅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고 있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움을 벌이는 육체적인 욕정을 멀리하십시오.
12. 그리고 이방인들 사이에서 행실을 단정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더러 악을 행하는 자라고 욕하던 그들도 여러분의 아름다운 행위를 보고 하느님께서 찾아오시는 그 날에 그분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11. Dear friends, I urge you, as aliens and strangers in the world, to abstain from sinful desires, which war against your soul.
12. Live such good lives among the pagans that, though they accuse you of doing wrong, they may see your good deeds and glorify God on the day he visits us.
이 세상에서 우리가 싸우며 우리가 포기하고 누리지 못한다고 때로는 서운해 할 수도 있지만 순간이라도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서는 아니되는 것은 천국을 이미 보시고 이 땅에서 고난을 자처하신 바울 사도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창차 받을 영광을 알기 때문입니다. 영광의 나그네의 삶을 함께 힘차가 오늘도 갑시다!!!
롬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8.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비추어보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8. I consider that our present sufferings are not worth comparing with the glory that will be revealed in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