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살의 올림픽 신인이인종
이제는 포기하라고 했다. 이 정도면 됐다고도 했다. 더 이상은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해냈다. 런던 올림픽 여자 +67kg급의 출전권을 어렵사리 거머쥔 이인종의 얘기다. 이인종의 나이, 서른하나, 올림픽 도전 네 번 만에 결국 숙원을 이뤘다.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출전이기에, 런던올림픽에서 이인종은 한국태권도 대표팀의 숨겨진 히든카드로 꼽히고 있다.
태권도를 시작한 지 20년 만에 독기를 품다
올림픽 금메달 따는 것 보다 힘들다는 치열한 국내 대표선발전에서 이인종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었다. 그를 20년간 지켜본 대표팀의 김세혁감독은 이인종이 마지막 3차 평가전에서 안새봄에게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인종이의 얼굴에서 성난 사자의 얼굴을 보았다. 드디어 끝까지 갈 줄 아는 선수가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인종은 근성 있고, 끈기 있는 선수지만 그동안 막판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지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 왔다. 2007년과 2009년에 있었던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도 리드를 하다가 역전패를 당해 결국 은메달에 머물렀던 터라 이인종은 뒷심이 부족하고 근성이 부족한 선수로 평가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선발전이 있기 전 태권도 관계자들은 올림픽예선전에서 출전권을 따 온 안새봄이나 지난해 12월 런던올림픽 태권도 시험경기에서 동메달을 땄던 박혜미의 우세를 점쳤고 언론들도 이인종에게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이인종은 세계대회 우승경험이 없는데다 언제나 후배들 뒤에 밀려나 2인자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태권도를 잘 하지만 국제경쟁력은 없는 그런 선수였다. 그러나 런던올림픽 평가전만은 눈빛부터 달랐다. 끝까지 밀어붙이는 근성있는 모습에 평가전 후 김세혁감독은 올림픽에서 이인종이 기대이상의 선전을 해줄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포기할 수 없는 올림픽
태권도가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2000년 시드니올림픽. 고3이었던 이인종은 기대주로 각광받으며 태릉선수촌에 입촌했지만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당시엔 막내니깐, 다음에는 자신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해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2번째, 3번째까지 실패할 줄은 몰랐다. 27살, 야심차게 덤볐던 2008 베이징올림픽의 출전까지 좌절되고 나니 올림픽을 꿈으로만 간직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꿈꿔오던 올림픽의 꿈을 그대로 버릴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도복의 허리띠를 졸라매며 2012 런던 태권도 대표 선발전에 초점을 맞추던 지난해 3월, 2011 경주세계선수권 출전 최종평가전에서 서울시청의 오혜리를 만나 태권도 인생 처음으로 10:0의 완패를 당했다. 그동안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던 부모님마저 이제는 끝인 것 같다며 올림픽출전을 포기했다. 모두가 그의 올림픽도전이 무리라고 말렸지만 이인종은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섰고, 지난 4월 국내선발전 마지막 평가전에서 그동안 세월이 그냥 흐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얼굴 공격과 뒤돌려차기 등 노련한 발차기로 쟁쟁한 라이벌들을 모두 격파했다.
이인종이 연이은 좌절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태권도를 즐겼기 때문이다. 태권도를 시작한 지 20년, 올림픽 도전만 해도 네 번, 포기했을만도 하지만 체력운동이 너무 고통스러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해봤을지언정 태권도가 지겨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이기기 위한 태권도를 하기보단 즐기는 태권도를 했기 때문에 세계대회에서 아깝게 우승을 놓쳤을 때도 자신만은 만족했다. 이인종은 “정말 이상했다. 세계에서 2등이면, 그게 어디냐. 난 정말 감사한데, 사람들이 자꾸 ‘넌 2등 선수’, ‘넌, 안 돼.’ 라고 하니까, 상처를 많이 받았었다.”라며 서러웠던 지난 시절을 회상했다. 1등만 기억하는 주변 환경에 지친 이인종은 올해 초, 올림픽 출전여부와 관계없이 2012년까지만 선수활동을 하겠다며 은퇴의사를 밝히고 자신의 태권도 인생에서 마지막이 될 런던 올림픽 대표선발전에 나섰다.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를 위해서 이번만큼은 ‘즐기자’가 아닌 ‘이기자’라는 생각으로 준비했고 그녀의 독기는 결국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이나 힘들다던 올림픽 출전 기회를 안겨줬다.
은메달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
이인종의 장점은 주특기가 없다는 점이다. 한 가지 특별나게 잘 차는 주특기 발은 없지만, 못 차는 발차기도 없다. 노련함이 있는 만큼,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갖고 있는 기술을 잘 구사한다면 런던 올림픽에서 승산이 있다. 김세혁 감독은 “여자 +67kg급에선 프랑스의 에팡이 유력한 우승 후보인데, 안새봄, 오혜리, 박혜미까지 한국선수가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이인종은 다를 지로 모른다, 이인종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까 노장이 투혼을 발휘만 해 준다면 에팡을 이기고 금메달을 딸 것 같다.”라고 귀띔했다.
‘한국 킬러’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에팡은 이인종과 전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노련한 이인종이 몸통(1점)을 내주고, 얼굴(3점)을 노린다면 충분히 금메달도 승산이 있다. 하지만 이미 이인종의 마음에는, 금메달 이외의 결과는 없다.
태권도 선발전에서 아끼던 후배 안새봄을 이겼을 때, 안새봄은 이인종에게 런던 올림픽 금메달 이미지 사진을 전송했다. 안새봄에게도 런던 올림픽은 꿈의 무대였을 터, 예선전에서 출전 티켔을 따 온 것도 자신이었고, 언론의 뜨거운 관심은 자신이 모두 받았지만 평소 멘토로 따르던 이인종이었기에, 뜨거운 패배의 눈물을 뒤로하고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미 3번의 쓰디 쓴 출전 좌절을 경험했던 이인종은 “내가 금메달을 따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긴 것이다. 그동안 나는 나 혼자 태권도를 너무 좋아해서 경기를 했고 만족했지만 이번엔 나를 끝까지 믿어준 사람들을 가슴에 새기고 런덩으로 갈것이며 꼭 승리할 것이다.”라고 다짐했다. 동료들의 금메달에 대한 염원까지 어깨에 짊어지고, 처음이자 마지막인 올림픽을 준비하는 맏언니 이인종. 그의 금빛 발차기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