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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5월29일-30일(土日)晴
▲소백산(5)(덕현리-상월봉-국망봉-비로봉-비로사....봉정사)
해봉(56명)
♠ 참 고
▲소백산(小白山) 충북 단양군 가곡면(佳谷面),경북 영주시 순흥면(順興面)
내용 출처:두산세계대백과
1987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국립공원의 중심이 되는 소백산 비로봉 (1,440m)은
북쪽으로 국망봉(國望峰), 남쪽으로 민배기재와 연봉을 이루어 예로부터 태백산(太白山)
과 함께 신성시되는 산이다.
서쪽으로는 고위평탄면에 해당하는 비교적 반반한 고지가 펼쳐지고, 그 사이를 고수리
(古藪里) 부근의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국망천이 흐르면서 어의실 [於衣谷]을 기점으로
하는 등산로를 이룬다. 동쪽은 비교적 경사가 급하며, 낙동강 상류의 지류인 죽계천(竹溪川)
의 수원이 되는데 이 계곡은 등산로로 이용된다. 비로봉에서 죽계천을 따라 내려가면 석륜광산
(石崙鑛山)이 있고, 이곳 을 지나 더 내려가면 초암사(草庵寺)가 있다.
. 석륜광산에서 북동쪽으로 고개를 넘어 내려가면 계곡이 아름다운 골짜기가 나 타나는데
이곳에는 석천폭포(石川瀑布),성혈사(聖穴寺) 등의 명소가 있다. 이 골짜기에서는 산천어
(山川魚)가 잡힌다.
비로봉에서 남서쪽으로는 4km 가량 비교적 평탄한 고위평탄면이 나타나는데 이를 따라 내려
가면 연화봉(蓮花峰)이 있고, 다시 4km 가량 내려가면 제2 연화봉에 이른다.
그 중간에 국립천문대가 있다.
이 산의 남쪽 약 4km 거리에 죽령(竹嶺)이 있으며 제2연화봉의 동쪽 비탈면에는 희방사
(喜方寺),희방폭포 등이 있고, 더 내려가면 국도와 중앙선 철도의 희방사역 이 있다.
소백산 부근에는 예로부터 산삼을 비롯한 약초가 많고 정상 일대는 주목이 군락을 이룬다.
△국망봉(國望峰)
충북 단양군 가곡면(佳谷面)과 경북 영주시 순흥면(順興面)
높이 : 1,421 m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높이 1,421m. 소백산맥 중의 비로봉(1,439 m) 다음가는 고봉으로, 남서쪽으로 연화봉
(蓮花峰:1,394 m)에 이어지며, 낙엽수의 숲이 아름답다. 산의 남동쪽 기슭에는 부석사,
초암사(草庵寺), 석륜암(石崙庵) 등이 있으며, 유명한 석천폭포 (石川瀑布)가 있다.
선조(宣祖) 때 수철장(水鐵匠) 배순(裴純)이 왕이 승하하자 이곳에 올라와서 왕성을 바라
보며 3년 동안 통곡하였다 하여 이 산을 국망봉 이라고 이름 지었다.
♥봉정사[鳳停寺]
경북 안동시 서후면(西後面) 천등산(天燈山) 통일신라시대 절.
종파 : 대한불교 조계종 창건시기 : 672년
창건자 : 의상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672년(문무왕 12)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창건 이후의 뚜렷한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경내에는 대웅전 ·극락전 ·고금당(古今堂) ·화엄강당(華嚴講堂) ·해회당 (海會堂) ·적연당(寂然堂) ·
객료(客寮) ·양화루(兩化樓) ·장경고(藏經庫) ·동암(東菴 :靈山菴) ·서암(西菴:知照菴) ·덕휘루(德輝樓)
등의 중요 건축물과 고려시대의 대표적 석탑인 3층석탑이 있다.
이 가운데 극락전은 국보 제15호, 대웅전은 보물 제55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서암에는
《독포도덕(獨抱道德)》이라는 선조 어필의 현판이 있고, 극락전 ·대웅전에는 《대장경》 판목이
보관되어 있다.
♣산행 코스
03시47분 덕현리
04시40분 석천계곡
05시48분 잘록이
06시13분 상월봉
07시00분 국망봉
07시28분 초암사갈림길
08시25분 비로봉
09시50분 비로사
10시15분 주차장
총 6시간25분
출발(10시45분).... 봉정사(14시10분)
☞☞☞ 지금까지 소백산 산행은 많이 했지만 석천계곡 코스는 처음인데다
귀로에 우리나라 목조건물로는 가장 오래된 극락전이 있는 봉정사를 들린다는
이야기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백두대간 종주 소백산 구간을 통과할 때 귀로에 한번 들리자고 제의했는데
그게 이제 실현 된 샘입니다.
소백산 철쭉제가 열린다고 해서인가 시민회관 앞에 나온 가이드 산악회중 5,6개가
소백산 코스인데 몇 개 산악회가 인원부족으로 산행을 취소하는 바람에 그런 인원
까지 승차하여 초만원, 집행부는 물론 정회원 이사까지 자리를 양보합니다.
낙지해물탕 사장이라는 허 회원이 감기에 약을 복용하였다 면서도 좌석을 양보하고
통로에 앉는 초만원이 되어 밤 10시 정각에 출발합니다.
집행부등 많은 회원이 지나간 산행비디오를
통로에 포장박스까지 깔아놓고 앉아보며 달리다
언양 휴게소를 들렸다 달리면서 완전소등, 취침.
03시20분, 덕현리 주차장 도착.
보름달이 교교히 비추며 내려다봅니다.
10여분을 회원들이 용변을 보는 등 지체하다
산행들머리까지 차량으로 이동.
03시47분, 각자 플래시를 비추며
석천계곡으로 출발합니다.
좌측으로 개울 물소리를 들으며
서너 군데의 개울을 건너고
04시47분, 희미한 윤곽 속에
오른쪽으로 폭포소리를 들으며,
촬영하며 10여분 오르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 선두그룹을 만납니다.
주변이 뿌옇게 밝아오면서 플래시를 끄고
잠시 쉬며 숨을 고루다 다시 올라가다
적당한 지점에서 스탠바이 하여 뒤따라 올라오는
회원들의 모습을 캠코더에 담습니다.
김성수가 선두를 서고
남상희 회원이 미소 지으며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고
그 뒤를 이영택 회원이 빙긋이 웃으며 올라옵니다.
05시13분, 시야가 트이면서
날은 완전히 밝아 일출 촬영은 깨끗이 포기합니다.
이제 석천계곡의 상류인가
개울은 이끼 속에 졸졸 흐르고
05시30분, 공터에서 다시 휴식을 취합니다.
배낭에다 인형을 매단 아가씨회원이 인상적입니다.
05시48분, 출발한지 2시간 만에
지능선 잘록이 내기재에 올라섭니다.
왼쪽으로 꺾어져 완만한 비탈을 타고 올라갑니다.
부지런한 회원들은 등로변에 흐드러지게 자라고 있는
취나물 등 각종 산나물 캐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나르는 돈가스’ 부인이 김성수 대장의 배낭끈을 잡고
올라오는데 그 뒤를 돈가스가 따라옵니다.
많은 회원들의 지루한 숲속 오름을
각자 재미있는 포즈와 특색 있는 거동을
적당한 위치에서 캠코더에 담습니다.
시원하게 뻗어 올라 간 측백나무 군락지를 거쳐
싱싱한 철쭉지대를 지나칩니다.
산죽 길을 지나
간밤에 젊은이들이 야영했는지
텐트 너덧 개가 산재해 있는 곳을 통과,
완만한 오름에서 노장회원 한사람이
떠오르는 아침햇살을 받아 많이 지쳤는가
팥죽 같은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서있다
캠코더를 힐끗 보고 뒤돌아 올라갑니다.
06시13분, 바위 길을 휘돌아 시원한 바람이 부는
사방이 확 트인, 백두대간 주능 상월봉에 오릅니다.
아래 바위에
구인사의 중창조사인 상월원각대조사이신 박상월 스님이
9봉8문을 올라 국망봉과 신선봉 사이에 상월이라고 세겨 놓아서
상월봉이라고 부른다는 상월봉.
정말 ‘上月峯’이라고 써놓은 게 희미하게 보입니다.
백두대간의 잽싼 노장회원이 알려주는
남근바위는 20여m거리에 있고
‘백두대간종주’표지기 한 개 나뭇가지에 매달려있습니다.
지난해 7월26일 우중의 백두대간종주 때
안개구름 속에 지나쳤든 길은 바로 아래에 있습니다.
북쪽으로 멀리 구인사 갈림길인 1272봉에서
짙푸른 백두대간 초록능선을 반시계방향으로
국망봉을 거쳐 멀리 비로봉까지 촬영하면서
순간,
양 팔을 벌리고 푸른 숲 위로 붕 떠서 날다
사뿐히 내려 푸른 바다위로 헤엄쳐 나가고 싶은
충동과 환상에 빠집니다.
뒤따라 올라온 노장회원이
두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야~호!”하고 소리칩니다.
메아리 없는 일망무제!(一望無際).
언제까지 환영에 빠져 죽치고 있을 수 없는 일,
국망봉을 향해 백두대간 바위 길,
완만한 내림에 이정표가 나타납니다.
‘해발1260m 국망봉0.6km',
느릿한 오름길에 좌우에 나타나는 철쭉들,
개중에 개으름을 피우다 이제야 봉오리를 맺고
머리를 내미는 놈도 있습니다.
모두가 소중하고 귀여운 것.
조용히 캠코더에 담습니다.
07시, 아담한 암괴와 안내간판과
이정표가 서있는 국망봉에 올라섭니다.
선조(宣祖) 때 수철장(水鐵匠) 배순(裴純)이 왕이 승하하자
이곳에 올라와서 왕성 쪽을 바라보며 3년 동안 통곡하였다는데
봉우리라기보다 능선의 흔한 바위 같은 국망봉입니다.
먼저 도착한 대원들은
아침식사를 끝내고 여유로운 잡담을 하고 있습니다.
잠시 지나온 상월봉에서 대간 길을 촬영하는데
힘이 넘쳐난다는 ‘돈가스’가 집행부 아가씨와 씨름?을 합니다.
준비해간 빵과 우유로 식사를 마치는데
그제야 도착하는 요란한 조 사장 일행.
저 아래에서 식사를 하고 오느라 늦었다고 합니다.
임대장이 모처럼 전체가 모였다며 회보에 올릴
단체사진을 찍자고 하는데
돈가스는 허 회원과 장난치며
개구쟁이처럼 짓궂게 돌아다닙니다.
모두 동심으로 되돌아가 웃으며
단체 기념촬영을 마치고
07시12분, 12시 방향으로 쳐다보이는
비로봉으로 출발합니다.
펑퍼짐한 능선, 키 낮은 숲 속의 오솔길을 지나
07시28분, 왼편으로 초암사 갈림길 이정표를 거쳐
07시40분, 오르막에 우측으로 암괴 옆 자일이 쳐있고
07시55분,
어의계곡으로 빠지는 갈림길
넓은 초지를 거쳐 숲 속 비탈을 오릅니다.
오늘따라 좀 힘들다며 올라가는
이 대장의 뒤를 따라 올라가는데
놀래기 한 마리가 굼틀대며 올라가는 걸
한동안 촬영합니다.
다시 나타나는 자일에 내려오는 부녀등산객이
어렵게 자일을 잡으며 힘들게 내려옵니다.
08시13분, 비로봉이 지척에 쳐다보이는 초지에 올라섭니다.
‘비로봉0.4km 국망봉2.7km'의 어의곡 갈림길 이정표가 서있습니다.
오늘은 바람이 잠잠하지만
초지의 완만한 비탈에 심한 바람으로
잣나무 두어 그루가 동쪽으로 비스듬히 누워있습니다.
동절에 대비하여
좌우 로프로 만들어 놓은 가드레인.
비로봉까지 아니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원색의 등산객들이 개미떼처럼 와글거리며
이어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08시25분, 이정표(국망봉3.1km 죽령11.5km 비로사3.7km)가 서있는
장터처럼 번잡한 비로봉 정상에 올라섭니다.
시계가 좋아 멀리 서남쪽으로 백두대간의
천문대와 연화봉이 선명히 보이고
헬기 한대가 항공정찰을 하고 있습니다.
비로봉 정상석비 뒤쪽에
서거정의 소백산 시비가 음각되어있는 게
이색적입니다.
小白山 徐居正
小 白 山 連 太 白 山
邃 이 百 里 揷 雲 間
分 明 劃 盡 東 南 界
地 設 天 成 鬼 破 墾
" 태백산에 이어진 소백산 백리에
구불구불 구름사이에 솟았네
뚜렷이 동남의 경계를 그어
하늘. 땅이 만든 형국 억척일세 "
邃와 百 사이 글자가 마모가 심해
그 해독을 위해 영주시청에 문의하였으나
분명한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 와중에 약식 상봉식의 만세 삼창을 하고
08시30분, 백두대간에서 벗어나 나무계단을
타고 비로사 쪽으로 하산합니다.
08시40분, 고상돈 추모비를 거쳐
오른편으로 꺾어져 내려가다
우측으로 보이는 소백산 주능선을 촬영하며
20여분 내려가는데 한 아름이 넘는 적송 두 그루가
서로 껴안는 기이한 형상으로 서있는 광경을 캠코더에 담습니다.
많은 등산객 중에
어린이가 낀 가족등산객이 시선을 잡습니다.
비로사를 지척에 두고
풍기인삼조합에서 소백산 철쭉제에 참여한
많은 등산객들에게 홍보차원에 시원한 인삼차를
‘무료시음장’이란 글을 써 붙이고 한잔씩 봉사하고 있습니다.
09시50분, 비로사가 300m 거리에 있는
언젠가 둘러본 비로사 삼거리를 거쳐
10시15분, 주차장 이정표(비로봉5.5km 비로사1.8km)에 도착,
6시간25분의 산행이 끝납니다.
♥비로사(毘盧寺)는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豊基邑) 삼가리 소백산 비로봉 중턱의 절인데
내용은 두산세계대백과에서 아래에 옮겨놓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진정이 창건한 화엄종 사찰로, 신라 말에는 소백산사라고도 불렀다.
가난하여 장가도 들지 못한 채 홀어머니를 봉양하던 진정은 의상이 태백산에서 많은
사람들을 교화한다는 소문을 듣고 출가하여 의상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3년 뒤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7일 동안 선정(禪定)에 들었다가
그 소식을 의상에게 전하였다.
진정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한 의상은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소백산 추동으로 가서
초가를 짓고 제자 3,000명을 모아 90일 동안 《화엄경》을 강의하였다.
강의가 끝나자 진정의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나는 벌써 하늘에서 환생하였다" 고
말하였다. 이때의 소백산 추동이 비로사로 추정된다. 《비로사사적기》에는 의상이
683년(신문왕 3)에 이 절을 개창하고 비로사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 말 한 승려가 중창하고 진공을 청해 이곳에서 살게 했는데, 그때 고려 태조가
방문하여 법문을 듣고 그를 매우 존중하였다.
그가 이 절에서 입적하자 태조는 진공대사라는 시호와 보법이라는 탑호를 내려주었다.
1126년(인종 4) 인종이 김부식으로 하여금 불아(佛牙)를 이 절에 봉안하도록 하였고,
1385년(우왕 11) 환암이 중창하였다. 1468년(예종 1)에는 김수온이 사재를 들여 왕실의
복을 비는 도량으로 삼았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석불상 2구만 남고 모두 불타버린 뒤 1609년 (광해군 1)
경희가 중건하였다. 이어 1684년(숙종 10) 월하가 법당과 산신각 등을 중창하였고 1907년
범선이 요사를 증축하였는데, 1908년 법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타버렸다.
1919년 희방사 주지 범선이 법당을 중수하였고 1927년 요사를, 1932년 다시 법당을 중수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새로 지은 법당과 요사채 뿐이지만, 진공대사보법탑비 (경북유형문화재 4)
와 석조당간지주(경북유형문화재 7),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996) 등 중요한 유물들이 남아 있다.
버스뒤편 공간에
허 회원이 준비해왔다는 돼지수육으로
소주파티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망봉에서 안 먹든 허 회원이 기력을 회복했는지
수육상추쌈으로 포식하고 있습니다.
10시45분, 풍기를 향해 출발.
풍기읍에 들려 목욕하고 나오는데 이종원 회원이
건너편 식당에 들어가라고 합니다.
조 사장, 돈가스등 남녀 10여명이 막국수를 시켜 먹고 있습니다.
뒤늦게 먹고 있는데 돈가스가 여자들은 그냥 나가고 남자들만 운운합니다.
여 회원들이 나가면서 인사합니다.
“조 사장님 덕택에 잘 먹고 갑니다.”
식사를 끝내고 전례도 있고 해서 만원 한 장을 내고 나오니
감사합니다며 ‘돈가스’가 인사합니다.
13시. 봉정사로 출발합니다.
잠시 착각하여 봉정사 들머리를 지나
‘제비원’앞에서 회차 하여 봉정사 주차장에 도착한 게
14시10분, 임대장이 마이크로
한 시간을 주겠다며 관광하고 오라고 방송합니다.
‘天燈山鳳停寺’란 현판이 글린 일주문을 지나
양화루의 또 다른 ‘天燈山鳳停寺’ 현판아래
자연석으로 만든 돌계단을 거쳐 단청이 안 된
보물55호인 대웅전,
근래 우리나라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되었다는
부석사의 무량수전 보다 더 오래된 걸로 확인된
국보15호인 극락전,
보물448호인 화엄강당,
보물449호인 고금당등을 촬영하고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촬영지로 알려진 지조암(知照庵)을 촬영하기위해
삼성각을 촬영하고(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 회원이 아래에서 촬영)
옆의 희미한 산길을 따라 10여분 올라가다 시간에 쫓기고 마음이 급했든지
길이 보이지 않고 시간도 없어 욕심을 버리기로 하고 되돌아 내려갑니다.
15시17분, 부산으로 출발합니다.
영국여왕이 다녀간 뒤 갑자기 유명세를 탔는지
뒤늦게 들어오는 관광버스와 관광객들의 승용차로
좁은 도로가 막혀 고전하며 간신히 빠져나갑니다.
이제 그룹산행도 귀로에 문화재가 있는 곳을
들리는 방향으로 기획을 하면 회원확보에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임 대장에게 조언을 했지만 얼마나 귀담아 들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서안동 나들목으로 빠져나와
중앙고속도로를 달리다 대구I/C에서
경부고속도로에 올라 평사휴게소에 들려 잠시 휴식하고
18시35분,
아직 해가지지 않은 부산T/G를 통과합니다.
산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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